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3
00733 165. 비밀 =========================
형진과 제랄딘이 타고 있는 차는 날렵한 스포츠카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좌석을 젖히면 드러나는 뒷좌석 쪽은 공간 확장 기술을 통해 커다란 응접실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 때문에 들떠 있던 제랄딘 역시 굳어진 형진의 표정을 보고는 눈앞의 여인이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뒤이어 들려온 메시지를 통해 상대가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안 열어 줄 건가?”
포트니아 테론은 이전의 아줌마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위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몸매와 더불어 성숙함이 가득 흘러넘치는 고아한 느낌의 외모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웨이브진 갈색 머리카락은 지나가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번쯤 돌아볼 정도다.
어떻게 보면 아란이 지구로 넘어와서 한 열 살쯤 더 먹으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느낌. 하긴 모녀 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랄딘은 앉아 있던 의자를 뒤쪽으로 젖히고는 뒷좌석으로 옮겨갔고, 그제서야 문이 열리며 포트니아 테론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재미있는 차로군.”
널따란 응접실을 연상시키는 뒷좌석으로 들어온 포트니아 테론이 그렇게 말하자, 역시나 좌석을 뒤로 젖혀 뒷좌석으로 넘어온 형진이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랄딘을 바라보았다.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데, 부모가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제랄딘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희망과 생명이었다면 대번에 누가 누구 부모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겠지만, 제랄딘은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받아들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포트니아 테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화를 내면 모른다. 어쨌든 뭔가 감정이라도 표출한다는 건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제랄딘은 속내를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경계의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럼?”
“다시 묻죠. 무슨 일입니까.”
형진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역시 단숨에 신뢰를 얻는 건 무리였었던 모양이군.”
다소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 보이더니 품에서 작게 빛나는 구슬을 꺼내 형진에게 내밀었다.
“받아. 일전에 말했던 보상이야.”
“네?”
형진은 물론이고 제랄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포트니아 테론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꺼내들었지만, 일전에 말한 보상이란 결국 엘리시온의 운영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뭘 그리 놀래?”
“놀랄 수밖에요. 이게 그렇게 간단하게 주고받을 만한 물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신들 전부를 끌어낸 것도 아니고, 일부를 인턴이라는 형식으로 받아들여 일을 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직 그들은 신으로서의 존재감조차 제대로 내비치지 못하는 얼치기들. 게다가 활동 범위 역시 아직은 거짓된 천국에 국한될 뿐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이른 보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앞으로 그 아이들을 보다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운영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문제는 엘리시온의 운영권이 신들에게 있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권한이라는 점이다. 당장 엘리시온에는 주신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이번에 형진이 운영권을 차지하게 된다면 사실상 그와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타락한 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신들에게 있어, 엘리시온의 운영권이란 그 정도로 강력한 권한이다.
인턴이라는 형식으로 많은 신들을 외부로 끌어내긴 했지만, 아직도 엘리시온에는 수많은 신들이 머물고 있다. 운영권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엘리시온 안에 처박혀 있는 신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식의 조치도 가능해진다. 물론,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생길 반발을 고려하면 함부로 권한을 남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신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뭐해? 받지 않고. 정 뭐하면 그냥 입학선물이라고 생각하든가.”
“…”
입학선물이라는 말에 형진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금수저들이 입학 선물로 건물을 선물 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자신도 아니고 마누라 입학 선물로 신들이 사는 곳의 운영권을 받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형진은 먼저 제랄딘을 바라보고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트니아 테론의 손에 놓여져 있는 작은 빛 덩어리를 받아들었다.
그것을 받아들자, 곧바로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엘리시온의 운영권을 습득했습니다.] [당신의 권한 레벨은 0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엘리시온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엘리시온의 최고 단계 운영자가 되었습니다.]가장 먼저 나온 메시지들은 이와 같았고, 뒤이어 엘리시온의 현황이 간략하게 브리핑 되었다. 일전에 확인한 신들의 명부를 비롯해, 인간의 지위로 신들에게 허락받아 엘리시온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현황까지 간략하게 나열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별 것 없지?”
“그렇… 군요.”
어쩐지 좀 허무한 기분이 들 정도다. 잠시 멍하니 눈앞에 나타나는 현황을 확인하던 형진은 문득 이전에 경황이 없어서 묻지 못했던 일들을 언급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흑요호에 대해 알고 있으십니까?”
“아… 그 얘기군.”
포트니아 테론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 아이들이라면 내가 잘 보호하고 있어.”
“보호하고 있다고요?”
“그래.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상태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멸절할지도 모르니까.”
“…”
확실히 흑요호는 문제가 있다. 원래부터도 수가 많지 않은 종족인데다, 그나마도 젊은 흑요호들을 아이 낳는 일을 꺼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점점 수가 줄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신의 반열에 오른 형진으로서도 방법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흑요호도 당신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형진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물론이지. 나를 일컫는 말 가운데 짐승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짐승이란 곧 환수를 의미하는 말이야. 자네도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 챘겠지만.”
“역시 그랬군요.”
확실히 거기까지는 포트니아 테론의 말대로 형진 역시 어느 정도 예측했던 부분이지만, 뒤에 이어진 말에는 그조차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수호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환수들을 수호하는 존재라 할 수 있네. 물론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종족이니 수호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에 있어 아이들은 결국 언제까지나 보살펴야 할 대상이라던가. 확실히 이 경우에는 수호신보다 어머니라는 표현이 더 알맞은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더욱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환수들이 신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좀 더 원초적인 존재라고 해야 하나. 이쪽의 표현을 빌자면 조상… 은 좀 그렇고 선배 쯤 되는 위치에 있는 셈이니까.”
“환수들이… 말입니까?”
“왜. 믿기지 않는가?”
빙그레 웃는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형진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환수들은 참으로 기이한 존재들이다.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그 생태나 습성은 물론이고 형태조차도 다르다. 태어나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신들과 흡사한 면이 많았다. 오랜 시간을 거쳐 정기를 흡수한 뒤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는 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기존의 신 이외에 새로운 신이 태어난다면 환수들이 그 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했지. 태생이 비슷한 쪽이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기가 더 쉬울 테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내 손에 의해 직접 탄생한 존재가 아닌 자연이 직접 빚어낸 존재인 인간이 그 주인공이 되었지.”
포트니아 테론은 형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네는 더욱 특별해. 나로 인해 탄생한 존재가 아니면서도, 또한 내가 빚어낸 존재들과 빠짐없이 얽혀 그들과 맺어지고 또한 아이까지 가졌으니까.”
“그건…”
형진은 그 말을 통해 포트니아 테론이 어느 틈엔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것도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대로 형진은 세 부류의 존재로부터 자손을 얻었거나 잉태한 상황이다.
첫 번째는 인간. 희망과 생명의 성녀인 유아가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아이를 낳을 것이다.
두 번째는 환수. 흑요호인 미엘과 하엘이 이미 그의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는 신. 제랄딘과 아란의 본신인 공포와 죽음이 그의 아이를 가졌다.
이것은 이미 형진이라는 존재를 통해 세 부류의 존재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겠나. 내가 왜 자네에게 엘리시온의 운영권을 맡기는 것인지.”
엘리시온은 그 자체로 안식을 위한 장소. 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부터 그곳에서 태어난 신, 신과 같은 존재로부터 태어나 먼저 세상에 퍼져 나간 환수들, 그리고 비록 포트니아 테론으로부터 태어나지는 않았으되, 스스로의 의지를 지닌 인간과 같은 존재들에게 주어진 안식의 장소인 것이다.
형진은 이미 그 세 부류의 존재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그 운영권을 얻을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신들을 끌어내라는 식의 시험은 처음부터 빌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과연 세 부류의 존재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들을 이끌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어차피 나에게는 이미 의미 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자네도 알다시피 난 이미 엘리시온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지 않은가. 그런 내가 운영권을 지니고 있어봐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지.”
엘리시온에 들아갈 수 없는 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설마… 타락한 겁니까.”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제랄딘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포트니아 테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타락이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난 이미 언데드의 힘에 너무 많이 물들어 버렸으니까. 자의든 타의든 간에.”
포트니아 테론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푸념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지만, 형진과 제랄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로를 돌아보았다.
“저… 사실은 말입니다.”
형진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언데드의 영역에 들어서고 나서 겪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설명했다.
“뭐? 신을 정화해서 엘리시온으로 돌려보냈다고?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포트니아 테론은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그게… 성공해서 이미 아이와 잘 살고 있는데요.”
“…”
“모르셨습니까? 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맙소사…”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던 일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포트니아 테론은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그녀의 정보 습득 수단이 전지라 불릴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또한 어떻게 제랄딘의 입학을 알게 된 것인지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포트니아 테론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엘리시온 내부의 사정이나 그간의 일을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네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군.”
“뭐… 종종 그런 얘기를 듣곤 합니다.”
잠시 당황을 감추지 못했던 포트니아 테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군. 보통의 신과 나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그 말에 형진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거야 해봐야 아는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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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원래는 아침 일찍 올리려고 했는데, 쓰던 중간에 너무 졸려서 한숨 자다 왔네요. 후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