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2
00732 165. 비밀 =========================
한편, 침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물벼룩과 클로렐라의 룸메이트는 생선 손질하는 연습을 하러 간다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른 조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나는 못 봤는데.”
“나도.”
“어디 간 거야.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조원들은 바로 펜션 주위를 확인해 보았지만 여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그들은 곧바로 자신의 조를 관리하는 정직원인 벗과 추억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아, 그녀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그게 무슨…”
“나도 방금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정직원으로 특채되어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다더군요.”
“특채요? 정직원이라고요?”
“네.”
예상치 못한 말에 1조는 당황해 버렸고, 그 사실은 연수에 참가한 다른 신들에게도 금방 알려지게 되었다.
“특채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 글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1번이 누구야? 누구 아는 신 없어?”
아는 신이 있을 턱이 없다. 원래부터도 지닌 바 신격 때문에 다른 이와 교류가 많지 않았던 데다, 그나마 잠시 친하게 지냈던 1조의 인원들도 이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바로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없었잖아.”
“될 수 없다는 말도 없었지.”
“당했다. 완전히 허를 찔렸어.”
일단 연수 기간 중에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사례가 생겨나자, 다소 마음이 풀어져 있던 신들은 그야말로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인턴이 되었으니 고지의 반은 일단 올라온 셈이지만, 정직원이 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인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연수에 참가한 정직원들에게 그들이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전해 듣게 되고, 특채된 여신이 어떻게 연수에 임했는지에 대한 것도 알려지게 되자, 연수에 참여하는 자세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빛이 어쩐지 무서울 정도에요.”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좀 늦은 감이 있다. 남들이 안 할 때 혼자 열심히 하면 눈에 바로 띄기 마련이지만, 남들이 다 열심히 할 때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면 그대로 묻혀버리기 쉽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탱자탱자 놀고 있는 신들보다야 낫겠지만.
“관찰은 잘 하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연수는 이제 기본적인 단체 생활에서 직접적인 직무 교육으로 넘어 가고 있었다. 기존의 정직원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인 허세와 망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허세와 망상이라고 한다.”
이미 꽤나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에, 신입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허세와 망상을 맞이했다.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허세와 망상도 처음부터 인성질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완전히 대신의 자리에서 밀려난 그였지만, 지금의 위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골치 아프게 추종자들이나 교단을 관리할 필요 없이, 자기 할 일만 확실하게 하면 공헌도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고, 다른 신들도 이런 식으로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대신이라 칭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이전에 대신이라 불릴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의외로 별 문제없이 직무 교육이 끝나자, 연수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원이 많으니 배치도 쉽지 않군.”
“일단은 정직원 아래 팀으로 나눠서 관리를 하는 편이 좋겠어요.”
“생산, 개발, 관리, 총무, 보안… 이 정도로 나누면 될까.”
“물벼룩과 클로렐라 같은 수호신 계열은 어디에 속하는 거지?”
“수호신들은 환경 쪽으로 따로 분리하는 편이 좋겠어.”
“그럼 여섯 개 부서가 되는 건가.”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으로부터 건네받은 명부와 연수 기간중에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하면서 신들을 어느 부서에 배치해야 할지를 정했다.
“엘피스.”
“응?”
“네가 환경 쪽을 맡아줬으면 해.”
“내가?”
“응. 환경이라고 이름 붙이긴 했어도 결국은 생명에 관련된 일이니까.”
희망과 생명은 조금 귀찮은 기색이었지만, 형진이 계속 권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락했다.
“네가 그러길 원한다면 한 번 해보지 뭐.”
“고마워.”
형진은 다시 공포와 죽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딜리아는 보안 쪽을 맡아줘.”
“보안만?”
“응. 총무 쪽은 보호와 균형이, 관리는 신뢰와 헌신이, 생산과 개발은 허세와 망상에게 맡길 생각이야.”
“저, 저도요?”
신뢰와 헌신이 직접적으로 형진의 업무 체계에 편입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보호와 균형이 총무 쪽을 맡게 된 것도 다소 의외의 일이었다.
“그냥 얼굴만 내밀어도 돼. 구체적인 업무는 제랄딘와 요안나가 맡게 될 테니까.”
“그, 그런 거라면야…”
총무는 구체적인 직무 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모든 업무를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비서와 같은 업무 역시 포함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형진의 비서 역할을 맡았던 제랄딘과 요안나가 그 업무를 이어받는 것이 맞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신이 아닌 인간의 입장이기 때문에 다른 신들을 통솔하는데 무리가 있다. 제랄딘의 경우엔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이긴 하지만, 그것은 당사자와 형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물론 형진에게 그럴 의지가 있다면 그냥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식으로 다른 신들의 반발이나 불만 정도는 얼마든지 눌러버릴 수가 있겠지만, 조금만 방법을 바꾸면 되는데 굳이 그런 위험 요소를 만들 이유가 없는 일이다. 보호와 균형이 총무를 맡는 건 바로 그런 절충안의 한 가지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보호와 균형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의존증 성향이 있는 그녀로서는 업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공식적으로 형진과 항상 붙어 다닐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 자체가 중요하다.
“누구는 좋겠네. 언제나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
희망과 생명의 말에 보호와 균형은 대답할 엄두도 못 내고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만다.
새로운 신들이 대거 참여하자 기존에 형진이 추진하고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빠르게 가속하기 시작했다.
“움리드가 사용했던 우주선의 엔진이 발견 되었어.”
“오, 그래?”
이미 형진은 마법과 권능을 조합해 항성계 안에서의 빠른 이동이 가능한 방법을 마련해 둔 상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들의 힘에 기반한 방법. 권능의 사용에만 의존하게 되면 과학 기술은 그만큼 진보가 멈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미라지 코어가 기술을 독점하는 사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원천 기술에 대한 것을 은닉하기 위해서도 과학으로 구현 가능한 기술 정도는 지구에도 공개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적당한 것이 바로 움리드의 기술들이다.
움리드는 하나의 항성계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구조물인 링월드를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만든 링월드는 아직도 거짓된 천국의 유저들에 의해 탐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지만,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적어도 십여년은 더 탐사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들이 지닌 기술의 실체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릴에게 확인은 해봤고?”
“해봤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우주선에 대한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일단 지금까지 발견된 정보 단말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있긴 하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복제를 시도하는 것조차도 당장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뭐라해도 신들은 그쪽 방면에는 영 젬병이니까.”
“그래?”
공포와 죽음의 말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굳이 고생할 필요 없이 지구 쪽 연구소에 맡겨.”
“지구 쪽에?”
“어차피 바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쪽의 기술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떡밥이 되겠지. 기밀을 유지한다 해도 어차피 정보가 빠져 나가는 걸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기술을 밝혀낼 수 있으면 좋고,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다른 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얘기로군.”
“바로 그거야.”
형진으로서는 확인해도 좋고, 아니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기술이다. 하지만 지구인들로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기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엔진은 곧바로 미라지 코어가 소유한 몇몇 연구소에 보내져 구체적인 연구가 실행되었다. 정확히는 영문모를 엔진 하나를 던져주고 그것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실행하라는 밑도 끝도 없는 과제였지만, 연구자들은 그것을 보는 순간 이것이 미라지 코어가 자신들에게 던진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이건가. 이게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속도의 범선들을 움직이는 엔진인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그들의 기술에 대한 실마리를 밝혀내는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이걸 이해해야, 비로소 그들의 기술에 다가설 수 있다는 얘기로군.”
연구자들은 쉬쉬하며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와 같은 내용은 은연중에 각국의 정보기관에 포착되었다.
“미라지 코어가 산하 연구 기관에 엔진 하나를 공개한 모양입니다.”
“엔진?”
“우주선 엔진으로 파악됩니다.”
“헉! 그게 정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무력으로라도 빼앗아 오고 싶지만 상대는 미라지 코어다. 함부로 손을 쓰거나 했다가는 그대로 나라 자체가 뒤집어질 가능성마저 있었다. 수십년은 걸릴 거라 예측되었던 달 개발조차 순식간에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다가올 새 시대에서 완전히 뒤쳐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미라지 코어에서 접촉해왔다.
“몇 가지 연구 과제가 있는데, 한번 참여해 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여, 연구 과제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들만으로는 모든 걸 처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하는데…”
“하겠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저희들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물론 연구소에 배정된 엔진 연구가 아니라, 링월드에서 발견된 움리드들의 다른 유물들에 대한 연구가 주어졌다. 간단한 가전제품 같은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링월드를 구성하는 건축 자재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연구 과제들이 각국 연구 기관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신들은 물론이고 지구의 문명 또한 한 단계 발돋움하는 시점에, 형진은 새로운 소식을 하나 더 접하게 되었다.
“입학?”
“네.”
그것은 바로 제랄딘의 대학 입학이었다.
“입학이라면 보통 연초에 하는 것 아닌가?”
“미국 대학은 가을 학기 때부터 한다던데요.”
“그래?”
한국에서의 일만을 생각했던 그로서는 가을 학기 입학 자체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근데… 그거 해야 돼?”
막상 제랄딘이 대학에 입학한다는 말을 듣자 어쩐지 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가 대학에 입학하려 했던 것은 엘 파르드의 교육 제도를 손보기 위해서, 지구의 교육 제도를 직접 체험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엘 파르드는 제랄딘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청렴과 절조라는 신에 의해 잘 다스려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대학 입학을 예정했던 것은 제랄딘이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라는 사실을 아직 몰랐던 시점의 일이다. 이제 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나 할까.
“안 돼요. 약속했잖아요.”
“쳇…”
벌써부터 제랄딘에게 달라붙을 파리 떼가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다. 그런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은 키득거리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나요?”
“당연하지.”
사실 제랄딘의 입학이 급하게 결정된 것에는 약간의 꼼수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올해부터 입학 준비를 시작해서 내년 이맘 때나 입학할 수 있었겠지만, 요안나가 손을 써서 한 해 빠르게 입학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나중에 입시 비리니 뭐니 해서 문제 생기는 거 아닌가 몰라.”
“걱정 말아요. 요안나가 누구의 성녀인지 잊은 거에요? 다 미리미리 적법하고 뒷말 안나오게 준비한 거라고요.”
“정말?”
“정말요.”
어쩐지 좀 믿기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제랄딘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는 형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대학 입학 날짜가 다가왔다.
기선을 제압할 생각으로 형진은 한껏 멋을 부리고 최신형 부양 자동차까지 갖춘 모습으로 제랄딘을 데리고 입학식이 열리는 학교를 찾았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형진은 예상 외의 인물과 마주하고 말았다.
분명 모습은 달랐지만,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형진은 단숨에 꽃다발을 들고 학교 입구에 서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포트니아 테론…”
그녀는 천천히 형진과 제랄딘이 타고 있는 차 옆으로 다가오더니 가만히 차창 안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잠깐, 같이 타도 될까?”
타나토스라면 몰라도 어떻게 지구까지 모습을 드러낸 걸까. 단순히 파괴와 재생의 기억을 읽은 것만이라면,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결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가 이런 식으로 지구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형진은 아직 완전히 포트니아 테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