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1
00731 165. 비밀 =========================
곧바로 황혼의 권능을 사용해 달로 자리를 옮긴다.
“와…”
여신은 바로 탄성을 터트렸지만, 형진이 보기엔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바다만 하더라도 이제 막 물을 부어 놓은 정도라 염분이나 용존 산소의 농도 같은 것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무작정 아무 생물이나 풀어놓을 수도 없다. 지구처럼 이미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변화를 거쳐 어느 정도 안착이 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염분의 변화 같은 것은 생물의 생존에 치명적인 요소이므로 무작정 현재의 환경에 맞춰 아무 생물이나 끌어다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육지 생태계를 먼저 조성하면 되는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구만 보더라도 육지 식물이 산소를 생산하는 양은 전체에서 약 3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바다의 생물을 제외한 상태에서는 기본적인 산소의 생산마저도 쉽지 않다는 얘기가 되어 버린다. 결국 형진이 물벼룩과 클로렐라의 이름을 듣자마자 특채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어떻습니까.”
“네?”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 잠시만요. 바다를 좀 살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아직 환경이 안정된 상태가 아닌지라 바람도 꽤 강하고 파도도 거칠다. 그렇다고 폭풍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신의 작은 몸 정도는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갈 정도의 파도가 간간히 밀려오는 중이라 꽤 위험하다.
형진은 주위를 결계로 감싸 위험하지 않도록 조치를 한 다음, 여신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 가듯 바다 위에 올라섰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니 어쩐지 에스코트를 받는 기분이다. 여신은 자꾸만 화끈거리는 얼굴을 형진이 볼까 두려워 감히 눈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형진이나 보호와 균형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신은 형진의 힘 덕분에 잔잔해진 수면 위에 내려서자 몸을 굽혀 쪼그려 앉은 다음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물은…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다만 너무 바람과 파도가 센 것 같아요. 햇빛도 좀 부족한 것 같고…”
“그렇군요.”
“제 생각엔 일단 바다보다는 내륙 쪽에서 먼저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그 아이들이 사는 곳도 그런 곳이니까요.”
“잠시만요.”
형진은 다시금 손 위에 달의 모습을 담은 홀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바다가 만들어지긴 했어도 수많은 세월동안 만들어진 크레이터 때문에 구름이 없이 그냥 표면 상태만 확인할 경우는 꽤 흉물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푸른 구멍이 흉물스럽게 뚫려 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고저 차에 의해 물이 흘러내리며 하천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면서 크고 작은 크레이터 호수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형진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하기 위해 비와 낭만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강수량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호수라면 꽤 많이 있습니다. 일단 적당한 크기의 호수를 위도별로 몇 군데 선정해서 시험해 보고, 문제가 없다면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 같아요.”
테라포밍 자체도 처음이고, 물벼룩과 클로렐라라는 이름의 여신이 그러한 테라포밍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처음이다. 하지만 달에서의 시험이 성공하면 그 경험과 시행착오들은 다른 행성들을 테라포밍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뭐든 처음 시작할 때가 가장 어려운 법이고, 그건 행성 개척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한 나절 이상 달 이곳저곳을 형진과 보호와 균형의 도움을 받아 돌아다니면서 기본적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조사와 시험적인 배양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시죠? 일단 돌아가서 씻고 밥부터 먹읍시다. 오늘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솔직하게 말하면 역시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신으로서는 지금 느끼는 이 피로감이야 말로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보람차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이들과 함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일에 매진하면서 얻는 피로감이란 건,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호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진이나 보호와 균형으로서는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놔두긴 했어도, 계약과 동시에 휴식조차 없이 일을 시킨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시죠.”
“네.”
앞장선 형진을 따라 공간을 넘자, 처음 보는 신기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펜션으로 다시 돌아온 건가 싶었지만, 아름다운 산호초를 중심으로 펼쳐진 경관은 펜션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크고 아름다웠다.
“저와 제 가족들이 머무는 왕궁입니다.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쉬시고, 내일 다시 천천히 거처를 알아보도록 하죠.”
“아,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그냥 엘리시온에서 지내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정직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혜택이나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가요?”
물론 아니다. 지금 있는 정직원들도 휴가용의 아바타를 지급 받은 뒤에야 이곳의 별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별궁은 왕궁이 아니라 이 행성 곳곳에 자리 잡은 문자 그대로의 별궁을 말한다.
“물론입니다. 림!”
-네, 스승님.
“여신님께 별궁을 보여드리고 원하는 거처에서 머물 수 있도록 도와드리렴.”
-알겠습니다. 스승님. 자, 여신님. 저를 따라와 주세요.
“네… 그, 그럼 이만…”
물벼룩과 클로렐라가 림을 따라 허둥지둥 별궁으로 향하자, 형진 옆에 가만히 서있던 보호와 균형이 물었다.
“그녀가 마음에 드세요?”
“응? 그야 당연하지. 적어도 내가 본 중에 당신을 제외하면 저렇게 열심히 뭔가에 열중하는 신은 처음이 아닐까 싶어.”
“…”
보호와 균형은 발그레진 얼굴로 그의 팔에 몸을 기댔고, 형진은 그런 여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한편,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요정 림의 안내를 받아 별궁 가운데 하나로 안내되었다.
-어떠세요? 이곳이라면 왕궁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데다, 바다나 언덕 같은 곳으로 가기도 편해요. 옥외 풀장이라든가 실내 온천 같은 것도 잘 갖추어져 있고, 원한다면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답니다. 여신님께서 머물기에는 그야말로 최고의 장소라고 할 수 있겠죠.
“그, 그러네.”
림의 말대로 별궁은 크고 화려하며 그러면서도 안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신은 처음에는 조금 감탄하는가 싶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나 혼자 머물기에는 너무 큰 것 같아. 좀 더 작고 아담한 곳이 없을까?”
-물론 있죠. 작고 아담한 곳… 그 정도면 충분할까요?
“그리고 너무 한적한 곳보다는 조금 시끌벅적한 곳이 좋겠어.”
-시끌벅적한 곳이요?
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성 라이언하트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갔지만, 그들 중에 시끌벅적한 곳을 원하는 이는 눈앞의 여신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어려울까?”
-아뇨.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보통은 안락하고 조용한 곳을 많이들 원하시던데.
“괜찮아.”
-알겠습니다. 마땅한 곳이 있기는 해요. 저를 따라와 주세요.
다소 특이한 취향의 여신인가보다 하며 림은 다시 앞장을 섰다. 그런 림에게 여신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밤의 신님을 보고 스승님이라고 한 건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거요? 그야 제가 스승님의 제자이기 때문이죠.
“뭘 배우는데?”
-요리요. 아시는지는 모르지만, 스승님께서는 정말 대단한 요리 솜씨를 가지고 계신 답니다. 모처럼 이곳에서 머물게 되셨으니 스승님의 요리를 많이 맛보고 가시는 것이 좋아요. 왕성 라이언하트에 머물면서 스승님의 요리를 맛보지 못하면 사실상 헛걸음을 하고 가는 꼴이나 다름 없는 일이니까요.
“그, 그렇겠네.”
림은 좋은 화제 거리가 생겼다 싶었는지 자신이 형진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제자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어떤 걸 배웠는지 시시콜콜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여신으로서는 뭔가 신기했다.
사실 형진에 대해서는 엘리시온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었다. 인간이 반신의 과정을 거쳐 신이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기존에 대신이라고 불리던 이들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을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화제가 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벼룩과 클로렐라도 그런 식으로 다른 신들이 떠드는 얘기를 곁다리로 주워들은 것이 고작이라 형진의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인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제자라는 요정에게 전해 듣게 되었으니 뭔가 막 신기하고 흥미로운 건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 스승님이 신이 된다길래 요리의 신이 될 줄 알았어요. 아직 신격이 하나 더 남아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요. 하긴 스승님이 좀 변태스럽긴 해요. 어쩌면 밤의 신이 된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고 다들 쑥덕거릴 정도니까요.
“벼, 변태?”
자신과 대화를 할 때는 그런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는 좋은 사람으로만 보였다.
-여신님도 조심하시는 것이 좋아요. 왕궁에 머물게 된 여신님들 대부분이 스승님의 부인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여신님도 아차 하고 잠시 방심하면 그냥… 헤헤, 이건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
못 들은 걸로 해달라고 해봐야 이미 늦었다. 이미 들어버린 걸 어쩌겠는가.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얼른 다른 얘기를 꺼냈다.
“크흠. 저기… 혹시 요리 말인데, 나도 배울 수 없을까?”
-요리요? 배우고 싶으시다면 스승님께 말씀드려 보세요. 저도 가르쳐 드릴 수는 있지만, 역시 스승님께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앞서의 것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별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쪽에 식구들이 모이는 정원이랑 공주님들이 노는 곳이 있어서 좀 시끄러울 수도 있어요. 너무 시끄럽다 하시면 창문을 닫고 결계를 활성화시키면 괜찮아질 거에요.
“공주님들?”
-네. 스승님의 따님들이시죠. 모두 열두 분이나 됩니다.
“헉.”
열둘이라니. 한두 명이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너무 많다.
-조만간 태어날 분들까지 합치면 더 많아지긴 해요. 아, 마침 저기서 놀고 계시네요.
“…”
림이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열둘이나 되는 꼬마 공주들이 정원을 마구 날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서는 니샤와 니야가 화판 같은 것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한 켠에는 아란과 미엘, 그리고 하엘이 메이드복을 입은 채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메이드 복을 입은 분들 보이죠?
“응.”
-한 분은 인간이고, 다른 두 분은 흑요호라는 종족이긴 합니다만, 전부 스승님의 부인이시니까 혹시라도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저희들도 메이드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전에는 이 성에서 사는 여성 분들은 일단 메이드복부터 입고 시작했거든요. 저 옷을 입고 부인이 되지 않은 건 저희들 같은 요정을 제외하고는 공작부인이 되신 하마란님 정도 밖에는 없을 정도에요.
“그렇… 구나.”
혹시 자신도 이곳에서 머물게 되었으니 메이드복을 입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걸 입으면 밤의 신이 부인으로 삼아버린다는데…
-어떠세요. 이곳이 마음에 드시나요.
“응.”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여신님의 수발을 들 요정들을 골라서 보내드릴게요. 그럼 편히 쉬고 계세요.
“고마워.”
-별말씀을요.
림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창가에 가만히 턱을 괸 채 건너편 정원에서 놀고 있는 꼬마 공주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어쩐지 넋나간 것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꼬마 공주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밤의 신이 보호와 균형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좋아 보여…”
스스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어쩐지 자꾸만 옆구리가 시린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이젠 아침 나절엔 춥기까지 하네요.
뭔 날씨가 이 모양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