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55
00755 170. 파문 =========================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한 무리의 신들이 어느 해안가에 모여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원근감이 어그러진 것처럼 주위 사물과의 비율이 뭔가 맞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아바타를 구할 수 없는 신들이 비상용으로 사용하는, 그래서 일반적인 인간보다 훨씬 작은 요정 사이즈의 아바타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본신으로 이 위험한 세상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니까.
“공포와 죽음도 말했듯이, 우리는 이미 두 번의 기회를 걷어찼습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의지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 몇몇 신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괜찮을까.”
“난 수영을 해본 적도 없는데.”
그러자 앞에 선 신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최소한 보호와 균형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째서?”
“그녀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저 거대한 바다를 건넜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들의 주위에는 이렇게 많은 동료가 있습니다. 위험할 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아…”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누구 하나 기댈 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저 망망대해를 건넜던 보호와 균형과는 달리, 그들 주위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수많은 신들이 있었다. 비록 권능은커녕 지닌바 힘조차 같은 사이즈의 요정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상태라고는 하나,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 이토록 많은 이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이 위험한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지금의 기회마저 놓치게 되면, 나중에는 정말 보호와 균형처럼 혼자서 이 크고 넓은 바다를 건너야 할지도 모른다. 달리 기댈 이조차 없이, 혼자서 집채만 한 파도를 뚫고 나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아득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
“저기… 그런데요.”
“네. 말씀하십시오.”
“그 왕성이라는 곳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잡신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영을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앞에선 신은 이미 그런 부분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는 듯이 무언가를 꺼내어 보이며 말했다.
“저는 이미 출발하기 전에 보호와 균형에게 왕성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전해 들은 뒤입니다. 이곳을 출발지점으로 삼은 것도 바로 그래서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하늘을 가리켜 보인다.
“저기 빛나는 파란별이 보이십니까!”
신들은 이내 하늘 위에서 새파랗게 빛나고 있는 별 하나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기 저 별을 따라 가면 됩니다. 바로 저 별 아래!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오오!”
일일이 계산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저 별만 죽어라 따라가면 된다. 이 얼마나 확실한 이정표인가!
차라리 이 시점에서 보호와 균형의 조언을 받지 못했다면 다시 한 번 물어보기 위해 엘리시온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그 결과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형진과 마주치며 이 수영 대회의 장소가 변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그 고된 일을 되풀이 하려는 잡신들이 안쓰러웠던 보호와 균형은 가급적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이정표를 알려주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없는 이 수영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보호와 균형께서는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헤엄치려면 반드시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제가 먼저 시작할 테니 잘 따라해 주십시오!”
“네!”
사실 보호와 균형은 바다를 건널 당시 준비운동 따윈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준비운동의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아기공주들이 물놀이할 때 형진이 가르쳐 주던 것을 보고 배운 탓이다.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 부족인 신들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조언일지도 몰랐다.
헛둘 거리며 준비운동을 마친 잡신들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거칠게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
“우와아아!”
앞장 선 신의 외침과 함께 그들은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물론 사이즈가 작아서 모인 인원에 비해 전체적인 모습이 그리 압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기에 보통의 파도도 마치 해일이 닥쳐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그것은 더욱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꺄아악!”
“어푸! 어푸!”
기세 좋게 바다로 뛰어들긴 했지만, 처음부터 잡신들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해안가로 밀려드는 집채만한 파도가 그것이었다.
“혼자서는 무리지만 모두가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서로의 손을 잡으십시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고, 잡신들은 서로의 파도에 떠밀려 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쿨럭!”
“허웁!”
그렇게 악전고투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티끌은 모여봐야 결국 티끌일 뿐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찰나,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바다로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신들이 단숨에 바다 쪽으로 화악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헛! 이, 이건!”
“꽉 잡으십시오! 떨어지면 안 됩니다!”
갑자기 신들을 바다 쪽으로 떠밀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이안류였다. 보통의 파도와는 달리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빠르게 밀려나가는 이러한 흐름이 발생하자, 파도조차 뚫지 못하고 아우성치고 있던 잡신들은 손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바다로 밀려나고 말았다.
신들은 비로소 겁이 덜컥 나고 말았다. 그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자연의 힘은 강력하고 또한 예측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 어쨌든 바다로 나왔으니 잘 되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저 푸른별을 향해 헤엄치는 것뿐입니다!”
“오오!”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하긴 했지만, 이미 시험은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저 앞으로 향하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런. 이미 시작해 버렸군.”
형진과 제랄딘이 모처럼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포기한 채 급히 달려왔을 때는 이미 잡신들이 거대한 부유물처럼 무리 지은 채 헤엄치기 시작한 직후였다.
“요정들을 불러올까요?”
“구해내려고?”
“네.”
“글쎄… 시작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바다로 뛰어든 이상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시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면 겁먹고 도망쳐 버릴지도 모르니까.”
“하긴…”
자연이 지닌 강력한 힘을 체험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체험해 버린 상황에서는 그것이 두려움으로 작용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 두는 건 좋겠지.”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공위성과 무인기들을 헤엄치는 신들 주위에 배치했다. 만에 하나라도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파악해 구조해 내기 위해서다.
적당히 조치가 끝나자 형진은 다시 제랄딘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그럼 가서 못 다 받은 상을 마저 받아보도록 할까?”
“어머, 벌써 시간이… 다음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걱정 마. 늦지 않게 보내 줄게.”
“어쩐지 믿기 어려운 약속인데요.”
“나중으로 미루면 그만큼 이자가 불어날 텐데.”
“설마, 저 못 믿어요?”
“못 믿는다기 보다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는 거지.”
“변태.”
형진과 제랄딘이 그렇게 노닥거리면서 다시 모습을 감추었지만, 잡신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계속해서 헤엄을 쳤다.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이틀이 지났다.
신들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점차 꾀를 부리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었다거나 양심에 걸려서가 아니다. 이미 자신들이 출발한 이상 밤의 신이 어딘가에서 이런 모습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잠시 편하자고 꾀를 부렸다가 그런 모습이 밤의 신에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모처럼의 고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때로는 갑자기 거대한 삼각파도가 덮쳐와 그들의 무리가 흩어질 뻔 하기도 했다. 거대한 해양 생명체가 그들의 주위를 멤돌기 시작했을 때는 두려워 떨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연대는 견고했고, 그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헤엄을 치며 밤이 되면 어김없이 하늘 위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푸른별을 향해 나아갔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고, 다시 나흘이 흘렀다.
다 합쳐서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신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와 균형이 말한 것과는 달리, 왕성이 있는 섬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 설마 길을 잃은 건…”
“그럴 리가! 분명히 저 파란별을 따라 그대로 헤엄쳐 왔는데!”
그제서야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자신들의 이런 상황을 혹시 밤의 신이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밤의 신에게 자신들을 기용할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식으로 바다를 몇날 며칠 동안 죽어라 헤엄쳐 봐야 의미 없는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때.
지금까지 조용하고 묵묵하게 헤엄만 치고 있던 이들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그래요. 섬이 어딘가로 도망간 것이 아닌 이상, 계속 헤엄치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거에요.”
“이미 여기까지 왔습니다. 만약 후회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도착하고 나서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모두 함께라면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예전의 그들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마음 속 어딘가에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면 그 순간 도전은 끝나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그들은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나마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졌던 이들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금 푸른별을 향해 헤엄을 치며 나아갔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 응답한 것일까.
이제는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반쯤 넋이 나간 채 몽롱한 느낌으로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던 그들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힘의 장벽을 지나쳤다.
“어?”
“이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화들짝 놀라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나는 순간, 지금까지 그들의 이정표 노릇을 했던 푸른별이 모습을 감추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궁전이 바다 위에 떠있는 모습을 그들은 마침내 발견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설마 왕성 라이언하트를 다시 타나토스로 되돌려 보내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었다. 형진은 보다 간단한 해결 방법을 마련했다. 그들이 지쳐서 정신마저 오락가락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모여 헤엄을 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의 진행 방향에 황혼의 권능으로 입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을 알리 없는 신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이 고되고 힘든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뒤이어 파도에 떠밀려 해안에 도착하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조심해서 숙소로 옮기도록.”
-네! 스승님.
형진은 잡신들이 빠짐없이 해안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림을 불러 요정들로 하여금 신들을 미리 마련해둔 숙소로 옮기도록 했다.
마침내 엘리시온에 남아있는 신들 대부분이 그곳을 빠져 나와 형진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쳇. 저 바보들까지 먹여살리려면 꽤나 힘들겠어.”
푸념 섞인 형진의 말에, 조심스럽게 다가온 유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문제 없을 거에요.”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