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67
00767 174. 징벌 =========================
실리콘 밸리 지사를 공격한 조직의 수장을 형진이 직접 처리하는 동안, 다른 시설과 인원을 공격한 이들 역시 차례로 주시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이 동네는 뭔가 특이하네. 건물도 크고.”
“그러게.”
이번 임무를 위해 투입된 인원들은 이전에 집행자들이 투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2인 1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구성원들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
지금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나와 있는 둘 역시 마찬가지다.
한 명은 노스페라투 즈라탈의 딸인 힐리에타. 이번 임무가 하달되기가 무섭게 솔선해서 지원했다. 물론 그 이유는 주시자로서의 사명 따위가 아니라 어떻게든 형진의 눈에 들기 위해서다.
또 다른 한 명은 환수 가운데 한 부류인 산군, 그 중에서도 형진의 제자로 들어간 규설. 물론 이 아가씨 역시 요리보다는 다른 꿍꿍이로 형진의 제자로 들어간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둘이 한 조로 묶인 것 자체가 공교로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둘은 처음 마주치는 순간 서로가 라이벌임을 직감적으로 인식했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는 애매했지만, 어쨌든 상대의 의도가 자신과 같다는 사실만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날씨가 적당히 따뜻한 건 마음에 들어.”
“그러게.”
사실 늦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날씨는 빈말이라도 따뜻하다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영하는 아니어도 기온이 한 자리수를 오가는 날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이들의 옷차림 역시 빈말로라도 따뜻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풍성한 가슴골과 가냘픈 허리, 그리고 매끈한 종아리를 어김없이 드러낸 힐리에타는 물론이고, 그녀에 비하면 다소 정숙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역시나 허벅지 위쪽으로 십센티미터는 올라오는 치마에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 스타킹을 신은 규설의 옷차림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겨울철에 가까운 날씨에 야외에서 입을만한 복장으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노스페라투가 살던 밤의 영역에 비하면 이곳은 문자 그대로 적당히 따뜻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물이 얼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표현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이것은 산군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포트니아 테론에 의해 마을을 옮기기 이전에 산군이 살던 곳은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은 또한 만년설이 자리잡은 곳이기도 했다. 노스페라투가 살던 밤의 영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 역시 추운 곳에서 살던 종족이었던 셈이다.
“…”
“…”
추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고작 이 정도에 호들갑이냐고 말해 주었을 텐데. 힐리에타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는 규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산군의 숨겨진 능력은 바로 상대의 본성을 알아보는 것.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말을 건네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정도는 규설에게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목표다.”
주는 것 없이 괜히 얄미운 이 계집애가 무슨 말을 꺼내야 제대로 반응할까 고민하던 힐리에타는 나직한 규설의 말에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녀의 말대로 검은 화살표 셋이 어떤 인물들을 지목하고 있었다.
“셋이나 한꺼번에 몰려있네.”
“도망치는 건 아닌 건가.”
“글쎄. 어차피 상관없잖아?”
“하긴.”
힐리에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규설은 더 이상 시간 끌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먼저 몸을 움직였다.
“앗!”
말도 없이 먼저 움직이는 규설의 모습에 힐리에타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급히 모습을 바꾸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3인의 테러리스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핀란드 역.
핀란드 역이라고 해서 핀란드에 있는 역이 아니다. 이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5대 주요 터미널 가운데 하나로 이 역들의 이름은 각각 열차들이 목적지의 이름을 따서 붙여져 있다. 즉, 핀란드 역이라는 이름은, 이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의 목적지가 핀란드 헬싱키 방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스크바에서의 거사가 실패한 뒤, 그들이 속한 조직은 뿔뿔이 흩어졌다.
원래는 이차 삼차에 이은 연쇄 테러를 계획했으나, 그들이 터트린 폭탄이 그을음과 파편 약간만을 남긴 채 미라지 코어 지사의 시설과 인원에 티끌만큼의 피해도 주지 못한 것을 보고 그들은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만 그런 결과를 얻은 것이라면 뭔가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겠거니 했겠지만, 세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테러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것을 확인하자 이것이 방법이나 수단 이전의 문제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의 테러는 그저 의미없는 발악에 불과하고, 상대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뿐이다.
“차라리… 미라지 코어를 직접 노리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시도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글쎄…”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핀란드 역을 오가는 인파를 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리자, 다른 두 명은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미라지 코어가 엄청나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그렇게 철통 같이 지켜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래 테러 중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삼는 소프트 타깃 테러는 특히 막아내기 힘든 쪽에 속한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잘만 하면 미라지 코어를 대중과 괴리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천벌이라 불리는 벼락이 그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여러 테러 시도 가운데 개별적인 인원을 목표로 한 시도는 대부분이 이것에 의해 가로막혔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무결한 법은 없듯이, 빈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역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들이 역사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직전, 하늘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시커먼 연기와도 같은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게 새카만 연기와도 같은 무언가 속에서 세 남자는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발견했다.
“…”
그들은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산군의 실체를 목격한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신체의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호랑이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힘들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눈동자를 빛내며 먹이를 노려보는 호랑이의 시선을 연상한다면 딱히 틀리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헬싱키 방면의 열차를 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시커먼 무언가의 모습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쳇. 선수를 치다니.”
뒤늦게 힐리에타가 삼인조 테러리스트의 등 뒤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모습 또한 대기 중일 때와는 달랐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거대한 낫을 들고 망토를 연상시키는 검은 기운을 전신에 두른 그녀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사신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주, 죽음의 천사!”
힐리에타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외쳤다. 물론 이전에 형진이 하고 다니던 모습과 그녀의 모습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지만, 당장 힐리에타의 모습을 달리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조차 떠올릴 수가 없다.
힐리에타는 규설의 시선에 사로잡힌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세 명의 테러리스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 놈들이 맞는 건가?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
그녀가 보기에 이 세 명의 테러리스트는 자신이 나설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얼핏 임무 중에 마주친 적이 있는 집행자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인간들의 어떤 점이 위험하다는 건지.
그러자 규설이 말했다.
“확인해 볼까?”
“어떻게?”
“어떻게긴. 그분에게 직접 여쭈어 보면 되는 일이지.”
“…”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는 규설의 모습에 힐리에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언급된 그분이란 당연히 형진을 의미한다. 즉, 규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과 형진이 그런 식으로 개인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관계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나, 나도 아빠한테 말씀드리면 연락 정도는 되거든?”
“그렇군.”
나름대로 반박을 했는데도 어쩐지 진 것 같은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아니, 진 것이 맞다. 규설은 그냥 직통으로 연락이 가능한데, 자신은 아버지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직접과 한 다리 건너서의 관계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큭…”
힐리에타가 그렇게 입술을 잘근잘끈 씹으며 뭔가 상대의 콧대를 눌러줄 만한 일이 없는지 머리 속을 뒤지고 있는 동안, 규설은 자신이 말했던 대로 형진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저… 규설입니다.”
열심히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생각을 하고 있던 힐리에타는 규설의 목소리를 듣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자신에게 던지던 차갑고 냉랭하기 이를데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사근사근하고 듣는 이의 귀가 살살 녹아내릴 것 같은 목소리가 규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 목소리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응? 무슨 일이지?”
물론 본 모습을 드러낸 규설의 상황을 알 리 없는 형진은 평상시처럼 그녀의 말에 응대했다.
“지금 목표를 확보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약한 존재들인 것 같아서요.”
“그래? 잠시만.”
형진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을 해보았고, 곧바로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다시 답했다.
“그 녀석들이 맞아. 이 녀석들은 자신의 신체 능력보다 도구를 가지고 싸우는 쪽이니까, 감안하도록.”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마. 수고하도록.”
“네. 스승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화를 마친 규설은 다시 앞서와 같은 냉랭한 목소리로 힐리에타에게 말했다.
“이 녀석들이 맞대.”
“뭐야, 그게! 방금 전과는 완전 다르잖아!”
“뭐가?”
“…”
뻔뻔한 규설의 대답에 힐리에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뒤늦게 그녀는 규설이 마지막에 사용했던 호칭을 알아차렸다.
스승님.
분명히 규설은 형진을 그렇게 불렀다.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면 분명 그 말은 형진과 규설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는 호칭인 셈이다.
하지만 도대체 뭘 배우는 걸까.
힐리에타는 다시금 머리를 굴려보려고 했지만, 뒤늦게 주변의 인파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그들 주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너무 시간을 지체해 버린 탓이다.
“칫.”
힐리에타는 혀를 차며 거대한 낫을 치켜들었다. 형진과 규설의 관계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움직임과 동시에, 규설의 전신으로부터 거대한 회오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힐리에타와 규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지만, 그것이 휘몰아치는 순간 주위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격렬한 검은 회오리가 주위를 감싸며 시선을 가로막는 것을 느꼈다.
화르륵!
갑자기 생겨난 회오리는 주위를 강렬하게 휩쓸더니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이건…”
급히 무기를 들고 달려오던 경찰들은 물론이고, 황급히 물러나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한 장애물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힐리에타와 규설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대신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무언가에 크게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세 명의 남자 뿐이었다.
경찰은 천천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어깨를 건드리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순간 경찰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화르르…
세 남자의 몸이 마치 모래탑이 바람에 스러져 가는 것처럼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으로부터 흩날린 티끌들은 허공에서 반딧불 같은 불꽃을 피워내며 흩날릴 뿐이다.
“어, 어어?”
당황한 경찰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세 남자의 몸은 천천히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사라져 갔다.
마치,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