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69
00769 174. 징벌 =========================
넓은 방안이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암흑으로 채워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마치 코울타르처럼 진득거리며 밀려든 암흑은 아주 작은 빈틈조차 없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을 채워버렸다.
“허읍! 허읍!”
당황할 틈조차 주지 않고 덮쳐온 암흑에 허우적거리던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틈엔가 사방을 채워버린 암흑은 그런 식의 저항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딛고 있던 지면도 사방을 밝히고 있던 조명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시각도 청각도 하다못해 촉각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는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구의 어떤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남겼다. 바로 이 순간, 암흑 속에 휩싸여 감각을 상실하자 그가 떠올린 생각은 어이없게도 이것이었다.
물론 그 철학자는 정말로 모든 감각을 상실한 채 오직 사고만으로 자신의 존재의의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고찰하기 위해 그런 말을 남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떠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틈도 없이 그대로 허무 속에 침잠해버렸을 테니까.
만약 그가 철학자였다면, 자신의 이러한 상태를 고찰하여 앞서의 명제를 남긴 철학자에 버금가는 어떤 위대한 사유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조차 인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몸부림쳐도 소용없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허우적거리던 그는, 마침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는 어찌하여 죄를 저질렀는가.”
처음에는 자신이 너무나 공포에 질려 뭔가 착가이라도 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들은 목소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무언가를 들었다는 사실에 기꺼워하며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나는 결백하다! 죄라니!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대답을 하고 나서야 그는 또한 깨달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의 목소리 또한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목소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되물었다.
“너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도록 사주했으며, 그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과 그 소유의 시설을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죄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는 답했다.
“그들은 무신론자다! 또한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악마다! 성지를 지키는 의무를 지닌 왕가의 수장으로서 그들을 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목소리는 헛웃음 소리와 함께 다시 물었다.
“누가 너에게 그러한 자격을 부여했는가.”
그는 다시 답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위대한 진리가 담긴 성전에 기록된 것이다. 예언자를 통해 전해진 주님의 뜻이다!”
“그러니까, 누가 그런 걸 네 멋대로 실행하라고 정했느냐 이 말이다.”
“신이다!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신을 만난 적은 있는가.”
“그분은 언제나 함께 하신다. 성전을 읽고 기도를 드릴 때, 그분의 뜻과 의지가 깃든다.”
“그래서 네 뜻과 행동이 신의 그것과 일치한다 여기는 것인가.”
“그렇다!”
목이 아파오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성지의 수호를 맡은 왕가의 수장으로서 훌륭하게 답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신도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렇게 의지를 담아 자신이 지닌 신실함을 드러내 보일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옛 전설에 전해지는 예언자의 일화처럼, 자신을 지금과 같은 궁지로 몰아넣은 악마 역시 이 굳은 신념과 의지에는 당하지 못하리라. 그 어떤 사악한 마술도 주를 향한 자신의 굳은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 그것을 알게 된다면, 악마는 결국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물러가리라.
신에 대한 나의 마음이, 또한 나의 육체를 지켜 주리라.
하지만 잠시 말이 없던 목소리는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있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이가 없군.”
그리고, 어딘가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어떤 강력한 압력이 그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흐헉!”
아니, 아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물리적인 힘과는 전혀 다른, 정신적인 무언가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방을 짓누르는, 그것의 이름은 존재감. 실체화된 존재감이 청각을 제외한 모든 것을 상실한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짓누르는 존재감 속에 담겨진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분노였다.
“네가 감히 신의 뜻을 논한단 말인가!”
방금 전까지 말을 건네던 어조와는 전혀 다르다. 듣는 순간 가슴이 주저앉고 귀청이 터져 나가며 정신이 흔들리도록 만드는 그 목소리는 실로 벼락과도 같았다.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실린 힘과 위압감이 그 모든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번쩍하고 내려치는 벼락을 본 순간, 뒤이어 전해질 천둥소리를 기다리는 자의 마음과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우르릉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천둥이 그의 마음속에 떨어져 내린다.
“네가 감히,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방패로 신을 이용하려 드는가!”
“히익!”
지구의 역사에서, 신앙이 권력을 옹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예는 무수히 많다. 어찌 보면, 실제로 신의 존재가 드러나 있지 않은 지구에서 그토록 종교의 권위가 강한 이유는 권력과 결합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 지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권력가의 입맛에 맞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종교의 속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보면 이것은 신의 존재나 의지가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가 정말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교리를 재단한다든가 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나 모독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어떻게 보면, 타나토스는 그런 점에서는 이상적인 사회인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고, 추종자들이 그 의지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국가나 사회를 이루고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물론, 문제가 생기면 신에게 의지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 탓에 과학이나 기술과 같은 분야의 발전이 더디니 반드시 타나토스가 좋은 예라고 말하기도 어렵긴 하다. 그나마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신이 몇몇에 불과하니 그 정도지, 그야말로 발길에 채일 정도로 신이 활개치고 다니는 사회였다면, 자칫 발전 없이 멈춰버린 엘리시온 같은 곳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장점이 있어도 그것을 악용하려 드는 자가 있다면, 그 장점 또한 희석되기 마련이다. 지금 스스로의 뜻을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이 사내 역시 결국은 그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었다.
형진은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을 통해 종교가 지닌 순기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파괴와 재생의 구현자들을 바라보며, 그 중심에 선 자의 이성이 흐트러졌을 때 종교가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지도 보아왔다. 그는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라선 이래로, 그러한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특히 파괴와 재생 같은 존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어떻게 보면 지금 눈앞에서 스스로의 죄 없음을 강변하고 있는 이 남자 역시 종교의 나쁜 예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자들이 있기에, 그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옳은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신을 모욕했다.”
남자는 자신의 전신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더욱더 강하게 짓눌리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자신의 몸을 덮어 눌러 그대로 뭉개버리려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제서야 그는 다시금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자는 말로써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악마 따위가 아니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지금 심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그가 정한 법에 따라 벌 주어도 되는지, 아니면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는지를 따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비이슬람에서 개종할 경우 선택지는 단 둘뿐이다. 하나는 참수형, 또 하나는 추방형.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통용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라면 말도 안 되는 법임에도 그의 나라이기에 이것은 강제력을 갖는다.
여자 기숙사에 불이 났는데 차도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이 차라리 타죽으라며 대피를 막아서 75명의 사상자가 난 적도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놓고 종교 경찰들이 여학생들을 아끼는 마음이 지나쳤다는 식의 개소리를 한 것이 당시 왕세제였던 바로 이 남자였다.
왕실에서 찍은 성전에 달려있는 주석에는 ‘적’에 대해서 유대교, 기독교, 무신론자 등 비이슬람 전부라고 되어 있다. 무기, 수단, 방법에 대한 주석에는 칼, 총, 미사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지배하는 나라의 민낯이다.
물론 남자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미라지 코어가 추진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에너지와 통신 외의 모든 것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이 나라에게 있어서는 실로 사형 선고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일단 석유의 쓰임이 적어지고 탄화수소가 넘쳐흘러 말 그대로 강과 바다를 이루며 흐르고 있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이 개발되면 어찌 될까. 하다못해 지금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달만 해도 표면에 핵융합의 원료인 헬륨3가 잔뜩 쌓여있다. 헬륨3야 아직 핵융합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 그렇다 쳐도, 타이탄의 탄화수소는 당장 중동의 목숨 줄을 쥐고 흔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무슨 수든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형진의 선언으로 인해 종교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있는 국가들이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면도 있었다. 물론 처음에 비하면 강제하는 수준이 많이 낮아져서 처음처럼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터라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기는 했어도, 그런 식으로 규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들로서는 숨통이 조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궤변이다. 석유라는 검은 황금에 심취해 다른 산업의 육성을 게을리 하고 그것이 주는 풍요로움에 안주해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니까. 비걸프 지역의 산유국들이 막장으로 치달아 가는 것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것은 종교 문제 역시 마찬가지. 누구에게 죄를 떠민단 말인가.
“너는 신의 의지를 더럽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린 채 자신의 몸이 지나가다 밟혀 버린 바퀴벌레 같은 몰골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공포에 떨고 있던 남자의 눈앞에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것은 암흑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새카만 암흑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밝게 빛나는 별과 창백하게 빛나는 달빛과 뜨거운 태양이 공존하고 있었다.
너무나 크고 광활해서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거대한 암흑. 그것은 밤이며, 또한 우주였다.
“아아…”
남자는 이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존재가 얼마나 크고 광대한 존재인지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더불어 그는 또한 깨달았다. 이런 존재 앞에서 신의 의지를 호도하며 자신의 죄 없음을 주장한 어리석음을 떠올렸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 존재가 신을 모욕했다며 화를 내고 있는지.
어째서 이 존재가 신의 의지를 더럽혔다며 불 같이 노하고 있는지.
이 존재는, 바로 신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존재감, 그것은 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으… 아으으…”
남자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고, 그것을 통해 저질렀던 수많은 일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해했다. 사고를 가로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들이, 크고 넓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보는 순간 절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광대한 신격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지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죄. 따라서 나는 이제 너에게 고한다.”
목소리는 엄중하며 또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더 이상 나의 세계에서 용납 받지 못할 것이니.”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스스로를 인지하도록 만드는 마지막 끈이 서서히 사라져 가며 그 모든 것이 완전한 암흑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암흑이 너를 침묵케 하리라.”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테러 관련해서는 다시 확인해 보시길.
테러를 없애겠다고 한 건 공포와 죽음인데,
저항권과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학살과 관련된 자를 집행자를 통해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