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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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임인 듯, 게임 아닌, 게임 같은 그곳.
“으… 머리야.”
형진은 깨질 듯 아파오는 머리의 통증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통증도 오랜 만이다. 그리고 술을 끊게 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끔찍한 숙취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멍청한. 하기야 어제는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긴 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먹으면 골 때릴 걸 알면서도 결국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꼭 인생 같다고.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는 어쩐지 촉감이 다르다. 바닥을 짚은 손도,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따끔한 느낌도, 아니 그런 건 어쨌든 간에 이 퀴퀴한 냄새는 도대체?
수분이 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뻑뻑해진 눈알을 비비다가 결국 눈물을 주륵 주륵 흘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주위의 모습을 좀 더 명확하게 살필 수 있었다.
“감옥?”
그냥 감옥도 아니다. 구치소나 파출소 철창 같은 곳이라면 술 먹고 뻗어서 어디 노상 방뇨라도 하다가 잡혀 왔나 하겠지만, 지금 형진의 눈에 들어오는 감옥의 풍경은 잘 해야 빠삐용이고 자칫하면 조선 시대 사극보다도 못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다 썩어가는 감방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느낌이라고나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또 묘하게 낯설지 않으니 참 기이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머리 위의 작은 구멍 -창문이 아니다. 거의 수채 구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작은 구멍이다.-으로 빛과 공기가 조금이나마 흘러들어온다는 정도다.
“…”
다시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런다고 당장 눈앞의 풍경이 바뀌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숙취 때문에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던 감각이 하나 둘씩 깨어나면서 보다 현실감 넘치게 주위의 정황이 인식되기만 할 뿐이다.
퀴퀴한 냄새. 옷을 빨다 말고 물기에 젖은 채로 방안 구석에 던져 놓고 한 일주일쯤 푹 묵혀 놨을 때의 그런 곰팡내 가득한 냄새가 마비되었던 후각으로부터 밀려들기 시작한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나마 얼마 들어오지도 않는 구멍으로부터의 빛으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손과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다. 다만 쇠사슬 같은 것은 달려 있지 않고 그냥 고리만 채워진 상태일 뿐이다. 몸에는 아까부터 사방에 진동하는 곰팡이 냄새의 8할 이상을 생산해 내는, 도대체 재질이 뭔지조차 모를 누더기가 걸쳐져 있다.
“…”
다시 한 번 침묵에 잠긴다.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싶다가, 이내 아무래도 술 먹고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는 건가 하는 식의 현실 부정이 뒤따랐다. 현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숙취가 너무 생생한 게 묘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날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먹었던 사람이 다음 날 깨어나는 장소로는 뭔가 핀트가 너무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일단 무시하고 다시 잘까.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그냥 좀 더 자다 일어나면 이런 개꿈 따위 바로 깨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이 뇌리에서 채 지워지기도 전에, 머리 위 환기 구멍으로부터 작은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어이.”
“…”
“시간이다. 받아.”
“…”
시간이 됐다는 건 무슨 소리고, 받기는 뭘 받으라는 건지.
하지만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밀어 넣었고, 그것들은 작은 마찰음과 함께 곰팡내 나는 지푸라기 위로 떨어졌다.
“…”
이건 또 뭔가 싶어 물끄러미 환기 구멍과 무언가가 떨어진 바닥 쪽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무언가 익숙한 것이 눈앞에 떠오른다.
[새로운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가트는 약속한 대로 단검과 열쇠를 넣어주었다. 일단 족쇄를 풀고 감옥을 벗어나자.이런 형태의 알림 창. 뭔가 익숙하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이 투박하고 눅눅하며 지저분하고 퀴퀴한 감옥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의 감옥에 직접 수감되어 본 적은 없지만, 왕궁의 개축을 위해 시설을 돌아보면서 감옥 역시 잠시 지나치듯 살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 해도, 역시 뭔가 이상하다.
지금까지의 정황대로라면 게임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했던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시온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체감 게임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구분이 될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게임이긴 하다. 하지만 몇 년 전 발의된 관련 법안으로 인해 이런 종류의 체감 게임은 반드시 현실과 구분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요소를 첨가할 필요가 있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 자체를 기피하는 식의 정신 질환을 막기 위해, 일부러 현실감을 낮추고 위화감을 조성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 법안의 골자였고, 엘리시온 역시 이러한 법안의 영향 하에서 개발된 게임이라 인터페이스나 다른 기타 요소로 일부러 위화감을 유발하여 현실과 구분되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그런 식의 일부러 부여된 위화감의 요소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숙취다. 아무리 엘리시온이 현실감 넘치는 게임이라 해도 숙취까지 구현하지는 않는다. 누가 게임에 들어와서까지 이 지긋지긋한 숙취를 느끼고 싶겠는가!
형진은 임무에 따르기보다는 우선 이런 식의 상황에 직면한 인물들이 흔히 먼저 떠올리는 행동을 했다. 바로 인터페이스를 불러내어 로그아웃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그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주어진 임무대로 행동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정신을 잃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곰곰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술 때문에 중간에 필름이 끊겼는지 누락된 기억이 제법 많았지만, 이내 몇 개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보 같은 회사입니다. 이런 능력이라면 달리 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혹시 당신의 그 재능, 저에게 맡겨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환영합니다. 이제 당신도 타…
“끙…”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온다. 뭔가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려 버린 것 같기는 한데, 정작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빌어먹을.
열쇠인지 그냥 이쑤시개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쇠막대를 들고 잠시 낑낑거리던 그는 마침내 손발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풀어낼 수 있었다.
족쇄를 풀어낸 그는 열쇠와 함께 넣어진 단검을 집어 들었다.
“…”
손에 착 감기는 익숙한 그립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엘리시온에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계속 손에 쥐고 있던, 흔히 초보자 단검이라고 불리는 예리한 철제 단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도대체 뭐가 뭔지.
가만히 손에 쥐어진 단검을 바라보자 아이템 정보가 떠오른다.
아이템정보
명칭 : +1 예리한 철제 단검 (독)
등급 : 일반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단검. 무기뿐만 아니라 도구로서도 유용하다.
효과 : 공격력, 치명타 발생 확률 증가. (치명적인 독)
강화시 효과 : 공격력 증가.
얼씨구. 강화까지 되어 있는데다 독까지 발라져 있다.
이건 누가 봐도 평범한 도구로서의 단검이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상처 입히거나 호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그런 무기다.
혹시 캐릭터 정보나 저널 같은 것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어서 머리 속으로 다시 한번 인터페이스 호출 명령을 불러내 봤지만, 역시나 소식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대충 알 것만 같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이건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튜토리얼이다.
형진은 처음 엘리시온을 접했을 무렵 대부분의 초보들이 뭣도 모르고 그러는 것처럼 튜토리얼을 건너뛰었다. 덕분에 이 게임이 이전의 체감 게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접속해서 제작사가 초보들을 위해 마련해둔 튜토리얼 보상 같은 것만 받고 바로 마을에서 게임을 시작했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결국 동영상 같은 것을 통해 튜토리얼 과정을 따로 복습하는 뻘짓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알고 있는 엘리시온의 튜토리얼과는 다르다. 게다가 처음부터 +1 강화된 독 단검 같은 걸 쥐어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이 단검으로 스스로를 찌르면 사망하면서 이 기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어 바로 떨쳐내 버렸다.
“그렇다면, 일단은…”
일단 이 튜토리얼부터 클리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인터페이스가 불러내지지 않는 것이 튜토리얼을 중간에서 그만두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검을 손에 쥐고 녹이 잔뜩 슨 쇠창살로 다가갔다. 혹시나 족쇄를 푼 열쇠로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될까.”
문을 열고 나가는,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손에 들린 단검을 보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인스턴트 킬이었다.
영정을 당하고 캐릭터 삭제가 되도록 만든 원흉이자, 마지막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때까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던 전투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단검을 손에 쥐고 쇠창살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대리석을 부쉈을 때.
토끼를 죽이고, 족제비를 죽이고, 여우를 죽이고, 늑대를 죽였을 때.
그 빌어먹을 놈의 번쩍거리는 갑옷을 부쉈을 때.
그 모든 기억이 아직까지 숙취가 남아 지끈거리는 머리 속에서 떠오르자, 마침내 이제까지는보이지 않았던 어떤 것이 그의 시각에 자리 잡는다.
천천히, 하지막 정확하게.
그의 단검이 철창 한 곳을 찌르자, 잔뜩 녹이 슬기는 했어도 단단하기 그지없던 쇠창살이 마치 두부 썰 듯 갈라지다가 단숨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인스턴트 킬! ‘녹슨 쇠창살’이 파괴되었습니다!]역시 게임이다. 현실이라면 아무리 약점이라도 단단한 쇠창살이 이런 식으로 무너지듯 부서지지는 않는다.
“킥!”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것 때문에 영정을 당하고 캐릭터 삭제까지 된 마당에 다시 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조소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 영문은 모르겠지만 잘 됐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엘리시온의 그것이 맞다면, 이 기회에 망할 제작사 놈들을 엿먹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놈들이 두려워하던 그 모든 일들을 해보는 거다. 완전히 뒤집어져서 거품을 물 정도로 거하게 깽판을 쳐보는 거다. 이미 엘리시온에 대해서는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상태. 캐릭터에 대한 미련이야 남았지만, 어차피 영정 당하고 캐릭이 삭제될 거라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한심하게 쭈그려 앉아 있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낫다. 뭐라해도, 일단 속은 개운하지 않겠는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갇혀 있던 감방을 빠져 나와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복도를 가로지르다가 올라가는 계단 근처에 도달하자 문득 누군가가 내려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일단 계단 옆 귀퉁이에 얼른 몸을 숨겼다. 그러자 누군가가 투덜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으, 냄새. 이 망할 곰팡이 냄새는 도대체 없어지지가 않네.”
슬쩍 바라보니 병사 하나가 쟁반을 받쳐 들고 투덜거리며 내려오고 있다.
아마도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려는 모양이다.
그냥 가게 내버려 둘까 하다가 자신이 쇠창살을 부수고 나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게 아니더라도 식사를 가져다주면 어차피 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될 터.
“…”
토끼나 족제비 같은 동물이라면 몰라도, 인간형의 엔피시에게 무기를 휘둘러 본 적은 없는지라 그는 잠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게임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단검을 손에 쥔 채 병사에게로 다가섰다.
“응?”
하지만 바닥에 자근거리는 모래가 부스러지는 소리 때문이었을까. 병사는 그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를 알아채는 즉시 들고 있던 쟁반을 놓고 얼른 몸을 숙이며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단검을 피해냈다.
“이런!”
인스턴트 킬이 실패하자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작해야 식사를 나르는 병사가 이런 식으로 기습을 피해낼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탓이다.
이거 튜토리얼 아니었나?
그는 속으로 상소리를 삼키며 곧바로 주머니에서 호각을 꺼내 불려고 하는 병사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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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응, 아니야.
주인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