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13
00813 187. 포교 =========================
“으으으…”
포트니아 테론은 작게 신음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른 누구도 감내할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것이다.
“예상보다 빨라…”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처음은 아니다. 마치 간을 보듯이 압력이 강해졌다가, 어느 순간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이런 일이 있어도 그냥 혼자 인내하고 감내하면 그 뿐이었다. 사실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언젠가 자신의 뒤를 물려주고자 예비된 자가 엄연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자신의 뒤를 잇는 것은 아직 좀 더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마음이 약해지려는 것은 그런 식의 대비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자신이 좀 더 버텨줘야만 한다. 그는 분명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의 뒤를 이을 정도는 아니다. 자신의 책임을 그에게 건네주더라도 문제가 없을 시점까지는,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어야만 한다.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다시 마음을 다잡자, 마치 문을 두드리듯 가해졌던 압력은 다시 수그러들였다. 그래. 아직은 아니다. 포트니아 테론은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요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여기 있습니다.”
“좋아. 분명히 받았다.”
반지의 주인들로부터 두 황녀의 안위를 확인 받자, 양 제국은 협정의 조인을 서둘렀다. 그 결과, 도시를 운영하는 시장이나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들의 의향은 요만큼도 포함되지 않은 채 앙그릴 최대의 상업도시인 카살 제르토나의 영구 중립을 인정하는 협정이 양 제국에 의해 발효되었다.
협정문은 곧바로 아운 제국에 전달되었으며, 제국 황제 라만은 협정문을 추인하고 카살 제르토나의 독립적 지위를 승인했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이러한 결과물을 세 제국의 명의로 전달받은 카살 제르토나의 시장은 얼떨떨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 어떻게든 이루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일이 마치 누군가 등을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간단하게 해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겠으나, 이것이 시장의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계시겠지요?”
시장을 찾아온 아운 제국 대표부의 특명 전권 대사 드룩스의 말에 시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누가…”
시장의 떨리는 물음에 드룩스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이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에는 그분이 개입해 계십니다.”
“역시 그랬군요.”
“그분께서는 이곳이 좀 더 자유롭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니 시장께서도 그분의 뜻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해했습니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드룩스의 말은 경고였다. 혹여라도 이번 일을 기회로 도시의 행정에 관한 일을 독점하여 제왕적인 권력을 추구한다든가 하는 식의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 일을 주도한 그 누군가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게 확약된 자유가 주어졌던 것처럼, 그분이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어쨌든, 뒤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가던 간에 카살 제르토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염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음에 환호하고 기뻐했다. 물론 세 제국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당장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기왕 손에 넣었으니, 좀 다듬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쩌려고요?”
“기뻐하는 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져서.”
형진은 곧바로 슬럼화 되고 있는 일부 지역의 소유권을 사들였다.
“이런 말씀 드려도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지역들은 당장 토지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뭔가 작물을 재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건물을 지어서 상점을 들이기도 그렇고. 사실 그런 처치곤란한 장소이기에 시에서 관리를 맡고 있긴 합니다만.”
정확히는 토지의 가치가 낮다기 보다는 처치곤란한 부랑자들이 모여들어서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려 들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나름 그런 사정을 포장해서 말한다는 것이 고작 이 정도다.
“상관없습니다.”
관리는 한 번 더 만류하려다가 형진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이한 존재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매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토지의 소유권을 사들이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유아와 함께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먼저 요 며칠간 위성을 통해 확보한 도시 전체의 실시간 데이터를 불러들인다. 그러자 마치 모형정원과 같은 형태의 홀로그램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성소부터.”
손가락으로 홀로그램을 톡톡 두드리며 성소가 들어설 장소를 지정한다. 그렇게 장소를 선택하고 실행을 명령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엇!”
“지진이다!”
슬럼화된 도시 일부로부터 작은 땅울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곳에 머물고 있던 부랑자들과 빈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걸 봐!”
“맙소사! 이게 도대체!”
지면으로부터 하얀 돌기둥이 솟아오른다. 그것들은 이내 원형의 열주를 이루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쓰레기와 오물들은 순식간에 불타서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비롭기 그지없는 조형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 뭐지. 이 향기는…”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아…”
느닷없이 지면을 뚫고 나와 모습을 드러낸 성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부랑자와 빈민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현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성소를 에워싸듯,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치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쑥쑥 자라난 나무들은 순식간에 잎사귀와 꽃잎을 터트리더니,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과실들을 맺기 시작했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놀라운 일들에 고개를 조아리며 경배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놀라워하며 고개를 조아릴 때 몇몇 아이들은 성소로부터 졸졸 흘러나오는 맑은 물과 그 주위를 에워싼 나무로부터 맺혀진 열매에 마치 홀린 듯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소의 샘에 손을 담그자, 아이들의 몸에 나있던 부스럼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열매에 손을 내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의 손 위에 떨어졌고 한입 깨물자 배고픔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놀라워하며 다른 열매에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한 사람에게 하나씩. 정말로 배고픈 사람에게만. 혼자서 욕심을 부리는 나쁜 아이는 되지 말아요.”
“죄,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겪은 일은 다른 이들도 모두 보았다.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성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샘에 손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아… 몸이…”
“활력이 생긴다. 이런 놀라운 일이!”
기적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은 잠시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전율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미처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한 이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앙그릴의 의료 수준은 그리 낮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유한 계층이나 귀족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었다. 부랑자나 빈민들은 자신이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조차 모른 채 꾹꾹 눌러 참다가 한도를 넘으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앙그릴 최대의 상업도시 카살 제르토나에서도 마찬가지. 그래서일까. 기적을 경험한 이들은 급히 자신들의 친지와 가족을 불러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경험한 이 모든 일들이 처음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이 놀라운 기적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긴 자들도 있었다. 질병을 치료하는 성스러운 물과 배고픔을 사라지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과일이라니. 가져다 팔수만 있다면 떼돈을 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들은 그릇을 가져다가 물과 과일을 담았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성소에서 나오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욕심에 눈이 돌아간 몇몇은 성소 그 자체를 장악하려 했다.
“물러나라! 지금부터 이곳은 내가… 케엑!”
하지만 그들이 욕심을 드러낸 순간, 하늘로부터 한 줄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아무리 강인한 몸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그 벼락 앞에서는 잠시도 버틸 수 없었다.
“천벌이다.”
“천벌이 내렸다!”
“신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성소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조용히 줄을 서서 그곳으로부터 베풀어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게… 도대체…”
갑작스런 소식에 놀라워하며 달려온 시장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도시가 정말로 신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음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걸로 끝인가요?”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아의 물음에 형진은 빙긋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형진은 아름다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시 말했다.
“당분간 저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볼 거야. 그리고 그들 가운데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뽑아야겠지. 본격적인 일은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난 다음부터야.”
“이곳에서도 사제들을 뽑으시려고요?”
“사제에 걸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주시자나 집행자에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겠지. 방금 전에 성소가 드러날 때 보여주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같은 일을 접하더라도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니까.”
“하긴, 그건 당신 말이 맞아요.”
기적에 대한 일은 협정을 마무리 짓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절단에게도 전해졌다.
“정말… 신이었단 말인가.”
“허… 이런 놀라운 일이.”
제국의 사절단쯤 되는 집단이면 상당한 수준의 마법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도 있게 마련. 하지만 그들중 누구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곳이 제국 안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반신반의하면서 성소에 들렀다 온 사람들은 직접 기적을 확인하고 나자 반지의 주인들에게 뭔가 방법이 없겠느냐는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새삼 그들이 지닌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만, 만약 일이 성사가 되어도 귀족이 아닌 빈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황실에서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는 일이구요.”
“아차… 그런 문제가…”
신의 존재가 부각되면 반대급부로 기존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째서 신이 다른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이곳에 먼저 성소를 만든 것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 신이시여.”
첫날의 일을 직접 목격하고, 성수를 통해 오랫동안 앓아왔던 병이 낫는 기적을 경험한 사내는 매일 같이 아침저녁으로 성소에 나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나 오물들을 치우는 일을 했다. 건강해진 몸으로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가족을 다시 부양할 수 있게 해준 신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소 주위를 청소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며 누군가와 마주했다.
“그분을 대신하여, 그분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맡기고자 한다. 받아들이겠는가.”
그는 자신이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서있음을 이해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더욱 고귀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데는, 그런 이들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앞에서 사람들이 정한 기준은 의미가 없다. 너는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었다.”
“아…”
남자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그 즉시 희망과 생명의 사제로서의 힘을 전해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롭게 추종자의 자격을 얻은 이들 중에는 사제 뿐만이 아니라 집행자나 주시자와 같은 이들도 존재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신뢰와 헌신이나 꽃과 바람, 비와 낭만 같은 이들도 서둘러 성소에 드나드는 사람들 지켜보며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추종자를 뽑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카살 제르토나는 또다른 신들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