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16
00816 187. 포교 =========================
어깨 위에 세 여신이 올라앉자 형진은 다른 이들이 그녀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도록 환상으로 가린 다음 유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타나토스나 지구와는 느낌이 좀 다르네.”
“그러게요.”
형진의 어깨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종알거리는 여신들의 귀여운 모습에 유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다희가 비와 낭만을 보물처럼 꼭 안고 다니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몇몇 사람들이 형진과 유아를 알아보고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 온다.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마침 물 좋은 생선이 들어왔는데 보고 가실래요?”
“그래요? 어디…”
딱 봐도 눈에 띄는 커플인데다, 항상 둘이서 장을 보러 나오다 보니 이제는 상인들도 그들의 그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딱 봐도 우아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유아가 먹성 좋은 느낌으로 이것 저것 먹어치우는 모습은 아예 이곳의 명물마저 되어 가고 있었다.
“뭐… 쓸데없는 짓만 하고 다닌 건 아닌 모양이네.”
상인들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희망과 생명이 툴툴거리고 있는데, 문득 보호와 균형이 어딘가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어, 저기… 저 사람 혹시…”
“응?”
무슨 일인가 하고 바라보니 한 사람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누군가를 미행하는 듯한 모양새. 얼핏 보기엔 그냥 의심스러운 인물처럼 보이지만, 여신들의 눈에는 그 존재의 실체가 명확하게 파악되고 있었다.
“저거… 신이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전에 그… 오디션인가에서 본 거 같은데.”
“맞다. 성장과 질주. 그런 이름이었을 거에요.”
그녀들의 말대로, 지금 스토커 짓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오디션에 출전했던 신 가운데 한 명인 성장과 질주였다.
형진과 유아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헛! 까, 깜짝이야. 아… 그러니까 그게… 아하하하…”
다시 봐도 건강한 소년 같은 느낌. 성장과 질주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어색하게 웃다가, 형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세 여신을 알아보고는 크게 놀랐다.
“딱 보니까 나쁜 짓 하다가 걸린 모습인데.”
희망과 생명의 말에 성장과 질주는 찔끔하는 기색을 보이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나쁜 짓이라뇨. 저는 그저…”
“그저?”
“…”
얼른 대답을 하려던 성장과 질주는 아차 싶었던지 이내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가만히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한 마디를 툭 던진다.
“보아하니, 저 여자애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네.”
애초에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누군가를 훔쳐보는 일에 있어선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고 봐도 좋을 공포와 죽음이 상대라면 그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자 다른 여신들이 얼른 말을 받는다.
“누구? 아… 지금 저기 뭔가를 들고 뛰어다니는 애?”
“저 아이가 마음에 든 거에요?”
척 하면 척. 여신들은 대번에 성장과 질주가 지금 무언가를 배달하고 있는 여자 아이를 훔쳐 보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저, 저는 그게…”
말까지 더듬거리며 얼버무리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치 하나는 이미 동네 아줌마를 넘어선 여신들에겐 이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짓이다.
“추종자로 받아들이려고? 아니면, 그냥 단순히 마음에 들어서?”
“둘 다 아닐까요? 얼굴이 새빨개진 걸 보니.”
“헤에…”
결국 성장과 질주는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수그려야만 했다. 확실히 아직 숫기가 없는 그로서는 세 여신의 수다를 감당하는 건 역부족이다. 형진조차도 세 여신이 작정하고 몰아붙이면 꼼짝 못하는 판에, 아직 여자 손도 제대로 못 잡아본 풋내기 신이라면 그건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다.
보다 못한 유아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넨다.
“마음에 드셨다면 먼저 말을 걸어 보세요. 그냥 지켜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렇지만… 전 아직 미숙한 신이고…”
성장과 질주의 대답에 희망과 생명이 혀를 찼다.
“네가 완숙해질 즈음에는 이미 저 아이 늙어 죽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텐데?”
“그, 그런…”
당황해 버렸지만, 또한 반박의 여지조차 없는 말이다. 확실히 신과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느낌 자체가 다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묵직한 희망과 생명의 펙트 공격에 성장과 질주는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깨우쳐 주셔서. 그럼 전 이만!”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성장과 질주는 그 이름처럼 한 달음에 달려가서 아이에게 달려갔다. 너무 어리다 싶어서 억눌러 두고 있었던 마음이 여신들에 의해 단숨에 해방되어 버린 모양이다. 잠시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한 번 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모습은 역시 성장과 질주답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린 거 아닌가요?”
보호와 균형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리다고 추종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은 없지. 게다가 지금 이 도시에서라면 다른 어떤 신이 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니까 우물 쭈물할 틈도 없고.“
“하긴.”
그들의 말대로 지금 이 도시에는 추종자를 찾기 위한 신들이 여기저기서 바글거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방인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좀 특이한 행색의 사람들이 찾아온 모양이라고만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추종자는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과거 보호와 균형이 토끼들에게 힘을 퍼부어주고 난 뒤 잊혀진 신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엉뚱한 이를 추종자로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른바 대신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라면 그 정도의 손해는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성장과 질주처럼 이제 막 교단을 만들고 불려나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 신들을 위해 형진은 대출을 시작하는 중이다. 잡신들은 형진의 밑에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공헌도를 모아두긴 했지만, 자기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교단을 만들고 꾸려가는 데는 생각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형진은 그런 신들에게 공헌도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며 배를 불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를테면 창업 지원을 빙자한 신종 빨대인 셈이고, 신들이 열심히 교단을 불려가는 동안 형진은 가만히 누워서 마누라 엉덩이만 두들기며 자신의 세력이 시시각각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는 그거 안 하나요?”
“뭘?”
“그러니까… 김밥 파는 곳이요.”
“아, 김밥천국? 슬슬 시작해 봐야지.”
아무한테나 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잠시 보류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저마다 추종자를 제법 모은 상황이니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김밥천국이나 가스트샵 같은 것은 다른 세계의 문물을 전하는 효과와 더불어 신들이 새롭게 받아들인 추종자들에 대한 호구지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신들이 공포와 죽음이나 형진처럼 의뢰 시스템을 통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신들의 일을 돕기만 해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혜택을 부여하기는 힘들다. 추종자라고 해도 일단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 게다가 성소가 처음 등장한 곳이 빈민가인 탓에 그곳에서 선발된 추종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더욱더 필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말 나온 김에 그 부분도 해결을 봐야겠군.”
형진은 곧바로 지형도를 불러들여 도시 안에 적당한 입지가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이전에 성소가 들어설 자리를 구입한 일을 기억하는지, 시청 직원은 깎듯한 자세로 형진과 유아를 맞이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직원 앞에 앉던 형진은 이 직원 역시 이전과는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군. 청렴과 절조의 추종자가 된 건가.”
직원은 형진의 말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엘 파르드의 일을 맡겨 놓았더만, 어느 틈에 와서 추종자를 뽑고 간 모양이다. 청렴과 절조의 눈에 들 정도라면 믿고 맡겨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내가 이곳에 몇 곳의 상점을 낼 생각이다. 수속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형진의 정체를 알아본 탓인지, 아니면 청렴과 절조의 추종자가 되면서 심신이 새로워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원은 일사천리로 필요한 수속을 끝마쳤다.
“어쩐지… 나중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죄다 추종자가 되어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글쎄. 하지만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신에게 귀의하면서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일반인들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면, 권력자들은 함부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기 어렵게 된다. 이를테면, 민중이 총이라는 무기를 소유하게 되면서 전제주의가 붕괴되고 민주주의가 들어서게 된 과정이 이곳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방금 전에 형진의 일을 처리했던 시청 직원 같은 경우도 있고, 앞으로 각 나라에 수호신들이 파견될 예정이니 지구에서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중에게 힘이 부여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 정치든 경제든 앞으로의 앙그릴은 이전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변화된 모습이 반드시 좋다고만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앙그릴은 여전히 성장해 가는 세계이고, 그런 시행착오들은 이후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최소한 피와 눈물로 쌓은 시행착오가 아닌 것만도 어딘가.
형진은 우선 새로 구입한 건물로 가면서 근처에 살고 있는 주시자와 사제를 한 명씩 불러들였다.
“너희들에게 맡길 일이 있다.”
“말씀해주십시오.”
주시자는 물론이고 얼결에 불려온 사제조차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신의 모습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들이 당황해 하거나 말거나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상점을 하나 열고자 한다. 너희들이 그곳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사, 상점… 말입니까?”
불려나온 추종자들은 크게 놀랐다. 사원이라면 몰라도 상점이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놀라는 이들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 이 상점들은 각각 김밥천국과 가스트샵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형진은 간략하게 두 가지 상점이 어떤 곳인지 설명했고, 그제서야 두 추종자는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맡겨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가 평범한 상점이 아님을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다.
“둘이 함께 보살펴도 될 것이고, 각각 적성에 맞는 곳을 맡아도 좋을 것이다. 그 부분은 둘이 의논하여 결정하도록.”
“알겠습니다.”
추종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당장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시자로 뽑힌 이는 항만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고, 사제로 뽑힌 이는 근처 식당에서 식재료 다듬는 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이들은 각각 김밥천국과 가스트샵이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신 대신 맡게 되었다.
“우리 장 보러 나온 거 아니었어?”
“뭐… 겸사겸사라고나 할까.”
“어휴. 하여튼 못 말려.”
김밥천국이나 가스트샵의 내부 인테리어 같은 것도 결국은 형진의 손을 거치게 될 것이니 앞으로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희망과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여신들과 유아 역시 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형진이라는 남자가 본래 그런 사람이란 건 그녀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그런 모습에 이끌린 것도 사실이고.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고. 할 수 없지. 기왕 벌인 일이라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돕는 수밖에.”
“그래봐야 다시 또 새로운 일을 벌일 것 같지만요.”
“하긴.”
“하하하…”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그럼 밥먹고 좀 쉬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