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29
00829 191. 진수 =========================
진수란 배를 물에 띄우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배가 완성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에 띄울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함선들은 진수가 이루어지고 나서도 내부 구조물을 채우는 의장 공사를 진행하게 되며, 군함의 경우에는 다시 인도와 전력화라는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일컬어지게 된다.
일반적인 배라면 드라이독에서 바다로 나가는 과정을 거쳤겠지만, 부양선은 바다가 아닌 하늘과 우주를 나는 배인 만큼 이것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확히 따지자면 진수가 아니라 진공이나 진주 정도의 단어가 적당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식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을 정도다.
“제법 크군요.”
이번에 건조된 액화 가스 부양선은 길이만도 345미터에 달하는 초거대함이다. 참고로 이것은 미국의 최신형 원자력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보다도 큰 규모다.
처음은 역시 적당한 규모의 배로 시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소형 선박의 경우엔 부양 자동차의 매커니즘을 활용하는 편이 보다 효과적이다. 게다가 이런 대형 부양선의 건조는 그에 걸맞은 설계 기술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 거짓된 천국에서는 만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배라는 운송 수단의 가장 큰 장점은 한 번에 대규모 물자를 운반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번에 진수될 부양선은 그런 점에서 가장 선박의 존재 가치에 부합하는 선박이라 할 수 있죠.”
사실 미라지 코어 역시 투자를 한 상태라 이번에 진수된 부양선의 규모나 운송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면밀한 보고가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지금 이렇게 조선소장이나 선박 제조에 참가한 엔지니어들의 설명을 듣는 것은 진수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을 위한 요식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되자, 이번 진수식에 참석한 이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보다도 더욱 카메라 플래시를 많이 받은 것은 역시 형진이었다. 진수식이라면 빠질 수 없는 행사인 병을 깨는 일이 제랄딘에게 부여된 것도 한 가지 이유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본래 바이킹들이 배를 물에 띄울 때 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의식에서 기원한다. 이것은 이후 중세가 되면서 신부가 성자의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를 뿌리는 의식으로 바뀌었고, 종교의 시대가 끝나자 선주나 귀빈의 배우자가 샴페인병을 깨트리는 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요안나. 같이 해요.”
“저도요?”
“당연하죠. 요안나도 진의 부인이잖아요.”
대외적으로는 제랄딘만이 형진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안나만 멀뚱거리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유아가 반신으로 올라선 이상, 다음 차례는 요안나가 될 것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라 여신이니 성녀니 하는 구분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고.
“감사합니다.”
요안나 역시 기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도 사람인 이상 다른 이들 앞에서 아무런 관계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기꺼울 리가 없는 일이니까.
각국 정상들의 간단한 축사가 끝나자, 마침내 병을 깨트리는 의식의 차례가 되었다. 제랄딘은 요안나와 함께 단상에 올라 선체를 향해 병을 던졌다.
다분히 미신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던져진 병이 깨지지 않거나 하면 그 배는 불운한 운명을 짊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제랄딘과 요안나의 손을 떠난 샴페인병이 선체에 부딪히며 화려하게 박살나버리자 참석한 인원들 모두가 커다란 환호를 터트렸다.
“그럼 진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체 주위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곳까지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부터…”
사회자의 안내 방송과 함께 선박 주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미리 정해진 통제선 바깥으로 질서 정연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병을 깨뜨리는 의식을 마친 제랄딘과 요안나 역시 한쪽에 마련된 귀빈석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티폰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군.”
“티폰이요?”
“응. 티폰의 사체를 개조해서 항성간 우주선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거든.”
지금 진수식이 거행되고 있는 이 선박도 실제로 보면 그 규모에 압도될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티폰은 그런 식의 인지범위를 초월한 행성 급의 존재이다. 모르긴 해도 그것이 완성되어 실질적으로 항성간 항해에 동원되는 날이 오면 세계는 다시 한 번 뒤집어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도크 안에서는 진수를 위한 마지막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박 근처에 남은 인원이 없는지 확인하고, 선체를 고정하고 있던 여러 가지 기구들이 하나둘씩 해제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자, 마침내 사회자의 카운트와 함께 진수가 거행되었다.
혹시나 실패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선소의 책임자들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원자력 항공모함보다도 거대한 선체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성공이군.”
“허… 저런 거대한 배가 정말로 떠오르다니…”
떠올랐다고는 해도 고작 일 미터도 되지 않는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제부터 바다 위로 옮겨져서 의장 공사를 끝내고 얼마간의 운행 시험을 거쳐야 비로소 타이탄과 지구 사이를 왕복하는 액화 가스 운반선으로 활용될 수 있다.
처음에는 일단 바다 위를 낮은 높이로 떠오른 상태로 운행하는 시험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의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차츰 고도를 높여가게 되고 마침내 대기권 밖으로의 항해 시험마저 성공하게 되면 본격적인 취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민간 부양선인 만큼 면밀한 시험이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떠오른 부양선의 모습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무척이나 두텁게 보완된 용골의 모습이었다. 물 위라면 부력을 통해 하중의 상당 부분을 감쇄시킬 수 있지만,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는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설계 구조가 지탱해야만 한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용골이 부서지면서 배가 두 조각 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 이런 부분은 하늘호를 만들 때처럼 마법과 권능을 활용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래서야 기껏 여기까지 발전시킨 과학 기술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과학과 이능의 조화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더 좋은 방안을 찾아가야만 한다.
“아직은 막 시작했을 뿐이니까.”
지금 만들어진 부양선은, 이를 테면 과도기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부양선으로 만들어진 선박이 나오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선체의 형상은 현재도 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니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않을까 싶다.
떠오른 부양선은 천천히 바다 위로 움직이다가 항만에 인접한 상태로 멈추었다. 이제 당분간은 저곳에 멈춘 상태로 남은 의장 공사를 마저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부양선이 머물렀던 드라이독에는 새로운 부양선의 건조가 시작될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질 선체는 현재 연구 중인 신형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첫 번째 부양선의 진수식이 끝났지만, 형진은 이후로도 몇 번 더 같은 일을 경험해야만 했다. 앞다투어 세계 각국의 조선소에서 부양선의 진수가 이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바지선 같은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잠수함이다.
“용케도 이걸 부양선으로 만들 생각을 했군.”
오늘은 제랄딘과 요안나만이 아니라, 프리츠와 그의 부인까지 대동한 상태다.
“생각해 보면, 잠수함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선박 가운데 우주 항해에 필요한 부분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는 또 하나의 우주라고 불리어도 될 만한 공간이니까요.”
“보고서에는 우주보다는 심해 탐사가 주목적이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습니다. 하늘호의 항해를 통해 부양선이 지닌 심해 운항 능력이 드러났고, 기왕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김에 부양선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와서 이렇게 계획을 변경하여 부양선으로 완성하게 된 것이죠.”
“하긴. 아직 그것도 필요한 일이긴 하지.”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함선들과는 다른 검은 빛의 선체를 보며 다시 말했다.
“본래 군용으로 설계된 함선이라면, 무장도 갖추고 있겠군?”
“아닙니다.”
“아니라고?”
“네. 원래는 어뢰 발사관을 포함해서, 순항미사일을 장착할 예정이었습니다만, 부양선으로의 전환이 결정되면서 이들 구획은 탐사 장비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잘도 미 해군이 그런 조건을 받아들였군.”
“그들로서는 잠수함을 부양선으로 건조하고 그것을 운용함으로서 얻어지는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또한 필요하다면 오버홀을 거쳐서 재무장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원래부터 군용으로 만들어진 함선이니까요.”
“그렇군. 제법 잔머리를 굴렸어.”
괘씸하긴 하지만, 군함도 분명히 필요하긴 하다. 앞으로 우주 개척이 본격화되고 민간의 부양선 운용 역시 본격화되면 필연적으로 해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적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함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현대의 해적들이 고작해야 어선이나 고무보트를 가지고 수만톤급의 거대한 화물선을 털어먹는 걸 감안하면, 차후 우주에서 생겨날 해적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띄게 될 가능성이 높다.
괜히 커다란 함선을 가지고 있어봐야 유지비만 많이 먹힐 뿐이고, 어차피 정규군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강한 화력이나 방어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빠르고 날렵하며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작은 선체가 기습에 유리한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물론 부양선에는 기본적으로 데브리나 방사선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 설비가 장착되겠지만, 소수의 인원이 선내에 침투하여 승무원을 제압하는 방식의 공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형진도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 둘 생각이기는 해도, 완벽한 대책이라는 건 본래 존재하지 않는 법이고, 인간은 또한 그런 식의 빈틈을 잘 찾아내는 종족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차후 다른 우주와의 통로가 개방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군함의 개발은 필요하다. 거짓된 천국의 생산력으로는 우주 전체를 감당할 정도의 함대를 건조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인프라를 쌓아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급하게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미국 대통령과 그 수행원들인 것이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유럽 정상들이 형진에게 호되게 당했던 일을 전해들은 탓인지, 미국 대통령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군용 잠수함을 부양선으로 건조하는 일은 미라지 코어와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고 진행된 일이긴 하지만, 꼼수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이상 형진이 뭔가 트집을 잡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제법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본래는 군용으로 계획된 함선이라죠?”
“그, 그렇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색. 미국 대통령은 오늘을 위해 특별한 트레이닝까지 거쳤다.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최대한 견뎌내는 것이 바로 그가 받은 훈련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다른 함선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다른… 함선이라면…”
“이 잠수함의 자매함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야…”
이번에 부양선으로 완성된 잠수함은 원래 계획대로 만들어졌다면 버지니아급 잠수함으로 불리워지게 되었을 것이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이미 완성된 것과 건조중인 것을 포함해 총 48척으로 계획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기공에 들어가 머지않은 시일 안에 진수가 예정된 것은 두 척이다.
“현재… 기공에 들어가서 건조 중인 자매함은 두 척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부양선이 아닌 통상적인 잠수함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요? 두 척이라…”
형진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그 두 척. 제가 사죠.”
“네?”
미국 대통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지금 뭐라고…”
혹시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 되물었지만, 형진의 대답은 확고했다.
“현재 건조중인 두 척. 전부 제가 사겠습니다.”
“…”
뭐라 대답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며 형진은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그쪽도 난감한 일 아니겠습니까. 기왕 시작한 거니까 만들고는 있는데, 이대로 계속 만들자니 완성하는 순간 이미 전략적인 가치가 대폭 감소해 버린 구시대의 유물이나 다름없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저에게 넘기십시오. 어떻습니까. 제 제안이.”
“그게… 그러니까…”
확실히 그건 형진의 말대로였다. 원자력 잠수함이라는 것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왕 시작한 터라 취소하지도 못한 채 꾸역꾸역 만들고 있기는 해도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미국 대통령은 비로소 형진이 굳이 화를 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결국 이건 어떻게 보면 거래나 마찬가지였다. 꼼수를 써서 군함을 부양선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반대급부라고나 할까.
“왜요. 싫습니까?”
미국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손익계산을 하려다가 형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로서야 더 할 나위 없는 일이죠. 그렇게 하십시오.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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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벌써 금요일이네요.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간건지도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