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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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전야제
제랄딘의 메시지에 미엘이 급히 답한다.
[아직! 조금만 더!]미엘이 즉시 해제하지 못할 정도의 결계라니. 생각보다 황실에서 보안에 더 공을 들인 모양이다.
쳇, 황제 암살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보안이 삼엄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형진은 그렇게 속으로 혀를 차며 일단 은신으로 몸을 숨긴 다음, 결계를 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미엘을 보호하기 위한 위치로 움직였다.
[다른 놈이 오면 곤란해요. 차라리 빠르게 눕혀버리는 편이 낫겠어요.]크루그의 말대로다. 모르긴 해도 방금의 격돌로 왕궁에 있는 다른 폭력배들이나 병력들도 이곳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터. 괜히 시간을 끌다가 다른 폭력배 놈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해진다. 차라리 수적으로 우세한 지금 단숨에 몰아쳐 쓰러뜨리면 다음을 대비하기도 편하다.
제랄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전투 태세를 취하는 폭력배 놈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단숨에 몰아칠 거에요. 주변을 살펴 주세요.] [네.]그 메시지가 나온 순간, 공중에 떠 있던 제랄딘의 몸이 검은 안개로 뒤덮이는가 싶더니 하나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길쭉한 주둥이, 그리고 두툼하고 긴 꼬리. 형진은 그 형상을 보는 순간 하나의 동물을 떠올렸다.
[여우?]그냥 여우도 아니다. 저 모습은 꼬리 아홉개 달린 구미호라고 부른 편이 맞을 것 같다.
형진의 말에 미엘이 바로 대답했다.
[흑요호라고 해요. 환수의 일종인데, 제라는 그 힘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어요. 평소에 사용하는 검은 채찍도 그 힘의 일부죠.] [아!]검은 안개와도 같은 형상은 그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붉은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빛이 나타남과 함께 함께 갑자기 확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힘을 거둔 것이 아니었다. 두건 속에 가려져 있던 제랄딘의 눈동자는 어느새 붉은 불길을 뿜어내는 것처럼 붉게 변한 상태였고, 그녀의 몸은 두툼하고 푹신한 느낌의 검은 꼬리 아홉 개가 마치 구름처럼 휘감고 있는 상태였다.
그 검은 형상이 제랄딘의 몸 안에 완전히 스며들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저런 여자인 줄도 모르고 넘보다니. 멍청한 레이그릭. 하기야 누가 있어 왕국 최고 가문의 금지옥엽이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이나 했겠나만은.
“요사한!”
폭력배 놈은 그렇게 외치더니 온몸에서 불길을 뿜어내는 것처럼 신성력을 끌어올리고는 하늘에 떠있는 제랄딘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뛰어오른 놈의 발이 지상에서 떨어질 찰나, 하늘 위에서 요요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떠있던 제랄딘의 모습이 일순 사라지는가 싶더니, 폭력배 놈의 정면에 나타났다.
형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이 순간이동 같은 현상이 아니었다. 신체의 반응속도와 이동속도가 극대화되며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형진은 고도화된 집중력을 통해 인지할 수 있었다.
“엇?”
당황한 상태에서도 위기를 느낀 놈이 얼른 팔을 내밀어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순간, 제랄딘의 몸을 감싸고 있던 꼬리들이 마치 회오리처럼 놈의 몸을 연속으로 가격한다.
꽈과과광!
솜뭉치 같은 형상의 꼬리에 맞았을 뿐인데, 마치 연속으로 벼락이 내리꽂히며 천둥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강렬한 타격음이 이어진다.
“크악!”
놈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 성벽을 가로막고 있는 결계에 처박히고 말았다. 순간 강화된 결계의 일부가 밝게 빛나며 그 충격을 흡수하더니, 날아왔던 속도 그대로 놈을 튕겨내 버린다.
꽝!
그렇게 날아든 놈을 제랄딘은 다시 한 번 풍성한 꼬리를 휘둘러 땅바닥에 처박아 버리고 말았다. 마치 파리채를 휘둘러 날아드는 말벌을 떨구는 것처럼.
이번에는 폭력배 놈도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몸에 두른 신성력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지만, 입은 타격이 너무 엄중해서 그것을 회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지경으로 당했는데도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리는 생명력이라니. 보는 형진이 오히려 질릴 정도다.
[그래도 생각보다 급이 낮은 수호자였던 모양이네요. 우리로선 다행이지만요.] [허…]형진이 그렇게 탄성을 터뜨리자, 크루그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폭력배의 몸 여기저기에 단검을 찔러 넣는다. 죽이는 건가 싶었지만, 단순히 신체를 훼손하여 회복 시간을 늦추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마무리를 짓는 게 낫지 않아?]괜히 후환을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지만, 크루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이 깡패놈들과 전쟁이 터지고 말아요. 괜히 다른 성도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크루그의 말에 미엘이 설명을 보충했다.
[일단 지고 나면 뒤끝은 없는 녀석들이에요. 당장 맞부딪혔을 때가 문제라 그렇지. 어디 가서 자기가 진 얘기를 늘어놓고 다닐 놈들도 아니고요. 그러니 우리들의 인상착의가 퍼진다든가 하는 일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하.]뒤끝은 없다니 다행이다. 솔직히 저런 놈들이 원한을 갚겠다고 쫓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덜컥 상대를 믿어도 좋은 걸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다른 이들도 별다른 반박이 없는 걸 보면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대화보다 주먹을 선호하는 녀석들이니 누군가에게 말로 뭔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농담 같은 얘긴데 농담처럼 여겨지질 않으니 오히려 당황스럽다.
문득 형진은 그런 생각이 떠올렸다. 역시 아직 자신은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 역시 공부를 좀 더 해야 하는 걸까.
[그나저나 제랄딘에게 음식이라도 전해주세요. 지구력과 정신력을 보충할 수 있는 걸로요. 저 상태가 해제되면 일시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지거든요.] [알겠습니다.]엄청난 위력을 지닌 만큼 그것에 대한 반작용도 있는 건 당연한 일.
미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랄딘은 각성 상태가 풀리며 탈진 상태에 빠졌다. 형진은 급히 달려가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축하고는 음식을 꺼내 먹였다.
[후…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전투에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솔직히 끼어들었어도 도움이 되었을지는 좀 의문스럽다. 인스턴트 킬이 있긴 해도 저런 놈이 상대라면 약점을 찌르기도 전에 죽도록 얻어터질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형진의 말에 제랄딘은 살짝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진님은 지금 브라우니도 데리고 있잖아요. 괜히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귀여운 요정이 다치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 일이에요.] [하하. 하긴, 그렇네요.]그렇게 제랄딘을 부축한 채 음식을 먹는 것을 돕고 있자니,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소 마음이 조급해지려는 그때, 비로소 미엘의 메시지가 다시 전해졌다.
[열었어요. 어서 가요.] [네!]그들은 곧바로 미엘이 연 결계의 틈을 빠져 나왔고, 그들이 성벽을 지나쳐 밖으로 나오자 뒤늦게 도착한 폭력배 놈들의 괴성이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결계로 둘러쳐서 퇴로를 끊은 것도 아니라면 도망치기로 작정한 집행자를 잡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만약의 사태라는 것은 항상 있을 수 있기에, 형진이 꼼꼼하게 냄새 등으로 인해 남은 일행들의 흔적을 지우고서야 그들은 비로소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역시 업적 같은 건 안 나오네요. 의뢰를 받아서 간 게 아니라 그런가?”
“아쉽긴 하지만 좋은 경험을 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죠.”
“하긴, 그렇네요.”
왕궁을 뚫고 들어가 그 내부를 휘젓고 나오는 일 따위 보통 사람은 평생이 걸려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제랄딘은 그동안 스트레스의 원천이었던 황자를 처리했고, 형진은 브라우니라는 훌륭한 주방 보조를 얻었으니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럼 이만…”
이대로 헤어지기가 뭔가 섭섭하긴 하지만, 왕궁의 일이 조만간 알려질 것을 감안하면 무작정 방을 비워두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라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는 말을 하려는데, 문득 그들의 눈앞에 은색 상자가 하나씩 떨어져 내린다.
“어?”
“뭐지?”
어리둥절해 하는 그들의 시야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축하합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여러분의 활약에 즐거워하시며 선물을 내리셨습니다.]“헐?”
선물이라니. 설마 자신들이 벌인 일을 다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형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선물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넬 은화 20개, 가스트 주화 500개.강화석 5개.
고용계약서 1장.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활약을 즐겁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뜻하지 않은 보상.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기보다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먼저 느껴야만 해다.
“말도 안 돼.”
“다 지켜보고 계셨단 말인가.”
“그럴 리가.”
분명히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지켜봐주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도 아니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머리털이 쭈뼛하고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하하… 그, 그냥 걱정이 되어서 지켜보신 거 아닐까요.”
“…”
형진이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특히 제랄딘과 미엘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모시는 신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일지도.”
그때 크루그가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제랄딘과 미엘은 즉시 어떤 단어를 떠올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크흠. 좋게 생각합시다. 설마 공포와 죽음처럼 대단한 신께서 관음증 변태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
하지만 애써 머리속에서 지워 버린 단어를 형진이 그냥 여과 없이 입 밖에 내버리고 말았다.
“그, 그런 불경한 생각은 떠올리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도… 앞으론 좀 조심할 필요가 있을지도.”
제랄딘과 미엘이 애써 그렇게 말했지만, 이번엔 크루그가 초를 친다.
“뭐… 이 정도의 힘을 내려 주셨는데, 몸매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지 않아요? 아, 다른 것도 있긴 하구나.”
“…”
다른 것이라는 말에 형진은 여러 가지를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 떠오른 그 해괴망칙한 상상들을 얼른 지워버렸다.
“크흠. 아, 아무튼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쉬는 편이 좋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인사를 하면서 돌아가긴 하는데, 제랄딘도 미엘도 별로 표정이 좋지 않다.
솔직히 형진도 좀 찜찜하긴 했지만, 크루그 말대로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애써 그런 불경한 생각들을 머리 속에서 지운다.
그렇게 별채로 돌아오는데, 문득 크루그가 빙긋 웃으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전 상관없지만, 형은 큰일이네요.”
“뭐가?”
“유아 누나가 목욕할 때 훔쳐보기라도 하면 그걸 공포와 죽음께서도 다 본다는 얘기잖아요.”
“…”
순간 형진은 흠칫하며 굳어 버렸다. 유아의 빈약한 가슴이야 그렇다 쳐도, 이전에 그란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 탓이다.
“너도 마찬가지야.”
“뭐가요?”
“카트린 옷 갈아입히는 모습 같은 것도 공포와 죽음께서 다 보신다는 말이잖아.”
“컥!”
단순히 눈을 감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으니,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공포와 죽음께서는 다른 신들에 비해 정상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 작품 후기 ============================
공죽: 어, 억울하다. 이건 모함이야!
작가: 글쎄, 과연 어떨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