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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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승리다!”
“와아아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형진의 외침에 호응하며 함성을 터트렸다.
다른 우주의, 자신들과는 다른 근원을 지닌 자들과의 전투란 어떻게 보면 매우 큰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잡신들 가운데 일부는 균열이나 다른 우주라는 것을 전해 듣자 섣불리 건드려 문제를 만들기 보다는 그냥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의견을 내는 자도 있었다. 이기면 몰라도 만약에 지게 된다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초전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는 그러한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힘이 다른 우주의 존재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이 그들의 불안감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해소시켜 주었다.
“나스트론드는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군.”
허세와 망상이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뒤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있기에 앞으로 주저 없이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스트론드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죠. 만에 하나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곳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가.”
“물론입니다.”
흔히 방패를 든 자는 수세적인 입장에 서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패를 들지 않은 쪽보다 오히려 더 공세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걸음을 옮기기만 해도 방패가 없는 쪽에서는 주춤거리며 물러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방패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티폰이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와 같은 방패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나스트론드라 할 수 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형진이 공세를 가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나스트론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는 입장이라면 이런 부분은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한다.
“탐사선을 준비한다!”
“탐사선을 준비합니다.”
“탐사 경로는 모든 방향, 가능한 최대량의 위성을 탑재하도록!”
“모든 방향으로, 위성 탑재량 최대!”
교두보를 확보한 이상 다음은 정찰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천체의 분포는 어떤지, 적의 거점 위치는 어딘지 등 알아내야 할 정보는 산처럼 쌓여있다. 물론 지구의 기술이라면 스틱스에 가만히 앉아서도 광학 정보등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혀낼 수 있겠지만, 어떤 것도 실제로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것보다 명확하지는 못한 법이다.
비록 초전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정보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형진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외우주 탐사선들이 준비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곧바로 스틱스 주위를 에워싸듯 자리 잡았다.
잡신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외우주 탐사선들이 나아갈 경로를 세팅한다. 모니터링하는 요원들이 배치되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인 경로 정도는 잡아줘야만 서로 다른 탐사선들이 뒤엉키지 않고 균등한 간격으로 탐사를 진행할 수 있는 법이다. 운용 요원들은 탐사 중에 벌어지는 만약의 사태, 이를테면 경로 상에 천체가 가로 막고 있는 상황이라든가 적에 의해 나포가 시도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외우주 탐사선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했다. 준비된 탐사선부터 발진을 시작하라!”
“발진을 시작합니다!”
곧바로 스틱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외우주 탐사선들이 워프 버블에 휩싸이며 사방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꼭…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것 같은 느낌이네.”
“그럴 듯 하군. 하지만 아주 적당한 표현이야. 저 씨앗들이 사방에 퍼져 우리쪽 영역을 확대시켜 줄 테니까.”
외우주 탐사선이나, 거기에 탑재된 위성들은 단순히 정보 수집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차하면 이 장비들은 탑재된 황혼의 성물을 통해 간이 게이트의 역할 또한 수행할 수 있다.
물론 이 성물들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된 부피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사람 하나 정도가 넘어가는 것이 고작이랄까. 하지만 그 넘어가는 인물이 형진의 아바타라면 그를 통해 티폰이나 스틱스 같은 것이 바로 이동 가능하니, 이것은 실질적인 영역 확장이나 다름없는 일이기도 하다.
탐사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곧바로 상황실에는 탐사선과 그것이 탑재하고 있던 위성으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전투로 인해 파괴된 적의 잔해라든가 기타 부유물들의 위치가 확인되자 형진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스파이더 출격. 밤의 권능이 펼쳐진 영역 내의 부유물들을 수거하는 작업을 시작하도록.”
“스파이더를 출격시키겠습니다.”
곧바로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스파이더들이 스틱스로부터 출격해 사방에 흩어져 있는 부유물들을 수거해서 나스트론드로 옮기기 시작한다. 이것들을 분석하게 되면 적의 실체를 조금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원하는 곳에서 편하게 쉬어도 됩니다. 장모님.”
형진은 일련의 조치가 마무리 되자 포트니아 테론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당분간은 균열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어째서…”
“물론 저는 당신의 능력과 힘을 믿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의도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균열이란 것이 이곳과 연결된 것 하나만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다른 우주라는 것이 이곳 하나만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을 지금까지 틀어막고 있었던 포트니아 테론의 존재는 형진에게 있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형진이 사과하자 포트니아 테론은 작게 웃었다.
“어차피 본신은 어디에 있더라도 상관없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디에 있든 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로선 복에 겨운 일이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그 몸으로는 어디에 나다니거나 하기도 어려운 걸요.”
“그렇습니까.”
하기야 본신이 유람한답시고 지구 상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했다가는 아마도 대번에 난리가 날 것이다. 어떻게 봐도 그녀의 본신은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떠올리는 신의 이미지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과 공포와 죽음을 대동한 채 스틱스로 이동했다.
스틱스는 기본적으로 초광속 항행이 가능한 기동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형진이 머무는 것을 전제로 지어졌기 때문에 내부에 별궁 또한 설치가 되어 있었다. 규모는 왕성 라이언하트보다 작지만, 그 자체로 내부에 거주하는 인원들이 장기간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생산 시설 또한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스틱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강력한 방어력이라 할 수 있다.
티폰들이 두르고 있는 방어 결계는 물론이고, 나스트론드의 외벽을 이루는 복합 장갑을 몇 겹으로 두르고 있으니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핵의 위치에 자리잡은 별궁에 타격을 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방어 능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스틱스를 요새로서 기능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반응 장갑이다.
물론 이 반응 장갑은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반응 장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실 기본적인 원리를 제외하고는 장갑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요격 시스템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지구에서는 한때 거함거포주의가 유행한 적이 있다. 강력한 함포는 물론이고, 자신의 함선에 탑재된 함포의 공격력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장갑을 두른 전함들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무기들이다.
마찬가지로, 스틱스가 제대로 요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존 최강의 병기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페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스트라페의 공격력은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마저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스트라페는 분명 강력한 무기지만,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무기는 아니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아스트라페와 동등한 위력을 가진 무언가로 그 파괴력을 상쇄시키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스틱스의 반응 장갑은 바로 이런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아스트라페의 이중 탄두로 쓰이는 입자포는 스틱스의 주포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지던 물건이다. 아스트라페가 격돌할 때, 바로 이 입자포로 맞대응을 하여 관통력을 상쇄시키는 것이 바로 이 반응 장갑의 기본 개념인 셈이다.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날아드는 아스트라페를 적절한 타이밍에 핀포인트로 요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틱스는 그 규모 만큼이나 입자포의 출력도 압도적이므로 대략적인 격돌 위치만 파악할 수 있다면 표면의 일정 부분으로부터 일제히 입자포를 발산해 상쇄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아스트라페를 상쇄시키더라도 격돌시의 운동 에너지 전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이로 인해 초기형인 알큐비에레 어뢰처럼 강력한 폭발에 휩싸이게 된다. 사실상 스틱스의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중장갑은 바로 이런 폭발 충격으로부터 핵의 위치에 있는 별궁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이론상 스틱스는 아스트라페의 직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두발 정도에 해당하는 얘기고 수십 수백발이 날아드는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스틱스라 해도 견뎌낼 도리가 없다. 아스트라페는 그만큼 압도적인 무기다.
“진님!”
별궁에 도착하자 그곳에 위치한 황혼의 성물을 통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형진에게 와락 안긴다. 바로 보호와 균형이다. 전투 중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잠시 떼어 놓았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모습이다.
“미안. 걱정했어?”
“으아앙!”
전투가 벌어진 잠깐 동안에 불과했지만, 형진과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못내 서러웠던 모양인지 보호와 균형은 그의 팔을 꽉 끌어안은 채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뒤이어 성물을 통해 들어온 희망과 생명은 지쳤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했다.
“네 옆에 있겠다고 떼쓰는 것을 말리느라 아주 미치는 줄 알았어. 다음부턴 그냥 같이 있어. 아니면 전장에 아바타만 보내던가.”
“하하…”
“농담 아니야. 아무리 중요한 전투라고는 해도 본신으로 직접 참관하다니. 별 탈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그러다가 파편이라도 떨구면 어쩌려는 건지. 반성하라고.”
“알았어.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얼굴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바가지를 박박 긁어대기는 했지만, 그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형진은 거듭 그녀들에게 사과하며 가만히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뒤이어 허겁지겁 넘어온 것은 규설과 힐리에타였다. 그녀들은 형진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시 밀려든 업무 내용이 담긴 서류들을 한 아름 지닌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희망과 생명은 대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려고?”
“응. 문제가 생겼을 때 달려오는 것보다는 이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편하니까.”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소파로 가서 편한 모습으로 앉으며 말했다.
“흠… 그런가. 할 수 없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당분간 나도 신세 좀 질께.”
“당신도?”
“당연하지. 그럼 쟤랑 둘이만 있으려고 그랬어?”
“…”
희망과 생명이 가리켜 보인 것은 다름 아닌 공포와 죽음이었다. 말은 안 해도 이번 전투에 그녀만 곁에 있었던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후후. 그럼 전 이만 왕성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포트니아 테론은 형진에게 바가지를 긁어대는 여신들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지켜보다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왕성 쪽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이만.”
포트니아 테론이 성물을 통해 왕성으로 이동하자, 형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책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보호와 균형이 그의 무릎 위에 올라 앉는다.
“저기… 일해야 하는데.”
“네, 하세요.”
“…”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물 맺힌 눈으로 바라보며 답하는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 형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그 자세 그대로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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