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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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생명체이기에, 일단 무력으로 제압한 다음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전투 준비에 들어갔던 일행은 갑작스런 벌레들의 그같은 모습에 당황해 버렸다.
[뭐죠?] [글쎄…]규설과 힐리에타는 물론이고 타스쿠마저도 형진을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혹시나 자신의 신격인 밤과 관련이 있다 싶은 생각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벌레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커흠. 네가 이 무리의 여왕인가.”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벌레들은 그냥 고개를 수그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을 뿐, 그의 말에 대한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의미 전달이 잘못 되었나 싶어 다시 말을 걸어 보았다.
“고개를 들어라.”
하지만 역시 벌레들의 반응은 마찬가지. 이쯤 되면 의사 소통 이전에 무시당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
이어진 두 번의 말에도 꿈쩍 않는 벌레들의 모습에 규설과 힐리에타, 그리고 타스쿠 역시 이건 아니다 싶은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벌레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이 자리에 있는 신급 존재는 단 두 명. 형진이 아니라면, 결국 소거법을 적용할 경우 하나 만이 남게 된다.
“미아. 나와 봐.”
“에? 에에? 저, 저요?”
“내가 아니면 당신뿐이잖아.”
“하, 하지만…”
사감 선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맹이 자체는 보호와 균형일 뿐이다. 혹시나 전투가 벌어질까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이내 울상이 되어 버렸다.
보호와 균형은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토끼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얼마 되지도 않는 힘을 모조리 쏟아 붓는 바람에 잊혀진 신이 되었을 정도다. 형진과 계약을 맺었을 때도, 귀여운 카트린을 추종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혹했을 정도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지금 눈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거대한 벌레들은 너무나도 규격 외의 존재들이다.
아무리 관점을 다르게 바라본다 해도 이건 아니다. 그들의 거대한 몸집과 꿈틀거리는 다리들, 그리고 번들거리는 껍질들은 그녀로 하여금 절대 귀엽다는 식의 감상을 불러 일으킬 수 없는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나와 보래도.”
생각 같아서는 절대로 옷깃 안에 마련되어진 공간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귀여운 것 이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형진의 말을 이대로 무시할 수도 없는 일. 결국 미아는 울상이 된 채로 머뭇거리며 옷깃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키기기기기긱!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이 벌레들이 그렇게 울부짖는 것이 아닌가!
“히이이익!”
껍질이 일제히 마찰음을 일으키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인지도 모를 이상한 소리로 울부짖는 그 소리라니! 미아는 기겁을 하며 형진의 뺨에 매달려 버리고 말았다.
겁에 질린 채 자신의 뺨에 달라붙어 어쩔 줄 모르는 미아의 모습에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그녀를 다독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 벌레들은 분명하게 미아의 존재에 반응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에게.
“의외네. 꽃과 바람은 그렇다 쳐도, 이 벌레들이 당신과 연관이 되어 있다니.”
“으으으으…”
형진은 예상 외로 간단하게 일이 풀리자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미아는 정말 이것이 꿈이기를 바랄 뿐이다. 하다 못 해 클로리스인들은 머리에 꽃이라도 달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이 녀석들은 그런 식의 귀여운 부분이 전혀 없지 않은가.
세상에, 어째서 이런 일이!
하지만 그녀의 악몽은 이제 고작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미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울려퍼진 벌레들의 울부짖음은 동굴 안 구석 구석으로 메아리치며 퍼져 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도대체 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동굴 안의 모든 벌레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토끼들은 시간이 지나자 배은망덕하게도 자신들에게 힘을 준 보호와 균형의 존재를 잊었다. 하지만 이 벌레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우주 공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신의 존재를, 이 거대한 벌레들은 절대로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엇!”
“이건…”
곧바로 지축을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동굴 안의 벌레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여왕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 여왕이 배알한 자신들의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히이이이익!”
그렇지 않아도 눈앞에 있는 벌레들 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던 미아에게 있어 그것은 악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크고 작은 놈은 물론이고, 날개가 있는 놈과 그렇지 않은 놈도 있다. 여기에 배로 기어 다니는 놈과 다리로 후다닥 달려드는 놈에 이르기까지, 전부 같은 종이 맞나 싶을 정도의 다양한 곤충들이 일제히 그들이 있는 장소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벌레들이 고층 빌딩을 연상시키는 몸집을 지닌 채 몰려들고 있다! 미아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이런 모습에는 질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딱히 벌레를 무서워 하지 않는 규설이나 힐리에타, 그리고 타스쿠 역시 그건 마찬가지다.
“위험…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신에게 반응한다 해도 일반적인 지성체와 같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원시적인 부족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대상의 시체를 먹는 행위를 통해 그 힘을 전해 받는다고 여기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만약 이 벌레들이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상황은 어쩌면 최악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스쿠의 말에 형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모르겠군. 대화가 통하지를 않으니.”
형진 역시 가능성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금까지 만나봤던 어떤 생명체와도 다른 존재이다보니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곤충학자 같은 이를 데려와서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 것 같고. 물론 그런 이를 데려오면 분명 놀라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긴 하겠지만, 당장의 상황을 해결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이 벌레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곤충들과는 여러모로 다르니 말이다.
“미아, 말 좀 걸어봐.”
“말… 이요?”
“그래. 나한테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당신 말이라면 들을지도 모르니까.”
“으…”
왜 굳이 형진을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물론 자신이 따라온 덕분에 싸움이 벌어지지 않고 원만하게 상황이 해결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무래도 기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계약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형진의 말은 그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어려울까?”
형진이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하자, 미아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뇨… 하, 할 수 있어요. 네. 할 수 있어요.”
“…”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대답하는 미아의 모습에 형진은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침실에서 민망해하는 그녀에게 이런 요런 저런 그런 짓을 시킬 때도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건만.
아무래도, 돌아가면 좀 더 잘 대해줘야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이런 저런 귀여운 것들도 많이 만들어주고,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도 물론 빼먹으면 안 되겠지.
“그럼 부탁해.”
“네.”
보는 사람이 애처로울 정도로 와들와들 떨면서 미아는 앞으로 나섰다. 가뜩이나 작은 사이즈로 모습을 바꾼 상황이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벌레들과 너무 비교되어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쥔 모습으로 앞에 나섰다.
다행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벌레들은 일제히 경건한 태도로 머리를 조아렸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본 척 만 척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시하듯 콧방귀까지 뀌어댔던 어딘가의 몹쓸 토끼 녀석들에 비하면 확실히 아주 경건한 태도다.
모습만 좀 더 귀여웠으면 좋았을 텐데.
미아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는… 미아라고 해. 너희들은 이름이 뭐니?”
그러자 그녀에게 마치 텔레파시처럼 하나의 단어가 전해져 왔다.
[누에…] “누에? 비단 만드는 벌레?”[네…]
두 번째 말을 듣고서야 미아는 그 말들이 모든 벌레 가운데서도 가장 큰 개체, 즉 여왕에게서 전해져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사이즈라서 더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여왕의 모습에 미아는 다시금 찔끔하는 기분을 느껴야했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형진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누에란 건… 네 이름인거니?”
[아니요… 우리들, 전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일상적으로 대화를 사용하는 종족이 아니다보니 어휘의 개수 자체가 너무 적었다. 계속해서 미아가 이런 저런 말을 걸어 봤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이 벌레들이 스스로를 누에라고 부른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누에가 개미나 벌처럼 사회성을 가지고 군집 생활을 하게 된건가. 정말 놀랠 일이군.”
토끼만큼은 아니지만 누에나방도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꽤 귀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누에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누에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의미가 전달되는 와중에 비슷한 생물의 이름으로 이해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보호와 균형을 자신들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준 신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들이 스스로를 누에라고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클로리스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미아.”
“네.”
“뭘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우으으으…”
시키길래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이 많은 수의 벌레들을 모조리 추종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미아의 얼굴은 다시금 핼쓱해지고 말았다. 물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신을 잊지 않고 있다가 이렇게 보호와 균형을 맞이한 존재들을 단순히 모습 때문에 싫어하면 안 될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감성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란 것도 분명히 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하지만 형진의 말을 어길 수도 없는 일이라, 미아는 머뭇거리며 여전히 자신에게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고는 자신의 문장을 전해 주었다.
그구구구구구!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미아가 문장을 전해준 것은 여왕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모여 있는 모든 벌레들의 머리에 보호와 균형의 문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 어어?”
그것만이 아니었다. 순간 미아는 엄청난 힘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감히 그 양을 측량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이 정도의 힘이 과연 존재했었는가 싶을 정도의 막대한 힘이다.
“세상에…”
꽃과 바람이 클로리스인들을 추종자로 맞이하긴 했지만, 아직 눈에 띌 정도로 막대한 힘을 얻는다거나 하지는 못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신도나 추종자로 받아들인 것은 백 이십억이나 되는 클로리스인들 가운데도 몇 되지 않는 지배층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포교를 계속하다 보면, 늘어나는 신도와 추종자의 숫자만큼 꽃과 바람의 힘도 증폭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여왕 하나만 추종자로 만들었을 뿐인데, 마치 누에들을 모조리 추종자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집단지능. 그런가… 이들은 전부가 하나와 같은 종족이었던 건가.”
앞서 미아와의 대화에서도 여왕은 ‘우리’라든가 ‘전부’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단어가 있다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의미를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다. 그래서 미아가 여왕에게 추종자의 문장을 내리자, 모든 누에들이 일시에 추종자가 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신앙의 힘이 일순간 미아에게 집중된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바로 그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미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형진에게 아란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집결 중이던 적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어요!”
“뭐?”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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