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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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사이즈의 누에 공주들을 생각하면 인간 사이즈는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처음 만났을 때의 미아가 요정 사이즈였기 때문에 처음 보내진 누에 공주들이 요정 사이즈였고, 평상시의 미아가 인간 사이즈이기 때문에 다시 인간 사이즈의 누에 공주들이 보내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작은 사이즈였을 때와 지금 미니 스커트마저 차려 입은 채로 도열해 있는 모습은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작을 때는 그냥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느껴졌던 검은 빛의 겹눈도, 지금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뭔가 확실히 인간이 아니구나 싶은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 인간을 흉내 내긴 했지만 역시나 외골격이 확실히 드러나는 팔다리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곤충이 인간의 외모를 흉내 냈다기 보다는 곤충형의 외계인이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전해져 온다고나 할까. 미묘하게 닮았는데, 또한 그 미묘한 부분의 위화감이 장난 아닌 그런 느낌이다.
누에들로서는 나름대로 미아의 모습을 최대한 본 떠서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혐오감을 줄이려고 한 모양이지만, 아예 완전히 다른 것보다 오히려 어설프게 비슷한 경우가 오히려 더 혐오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걸 가리켜서 전문 용어로 불쾌한 골짜기라고 한다던가. 어떻게든 닮아 보이려고 애쓴 건 알겠는데. 이래서는 오히려 역효과다.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안 되겠지?”
“그게…”
미아가 벌레를 싫어하면서도 요정 사이즈의 누에 공주들을 계속 데리고 다니고 정을 붙여보려고 하는 이유가 사실 따로 있다. 누에와 같은 집단지능을 지닌 종족들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저들은 효율을 따져서 거기에 부합되지 않는 동족들은 가차 없이 도태시켜 버리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 도태라는 것은 단순히 왕따시킨다든가 그런 식의 얘기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폐기 처분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집단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각각의 개체가 또한 개성 역시 가지고 있는데 집단의 효율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동족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설령 저들이 여왕의 직계이고, 다음 대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는 공주들이라 해도 마찬가지. 실제로 처음 누에 공주들이 보내졌을 때 화들짝 놀란 미아가 돌려보내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폐기처분하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겁했던지.
여기 있는 인간 사이즈의 누에 공주들도 다를 바 없다. 혐오스럽다고 돌려보내려고 들었다가는 자칫 눈앞에서 오체분시되는 누에 공주들의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을 닮은 만큼 장면의 그로테스크함 또한 더욱 극대화될 것이고, 그 기억은 자칫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
“커흠… 아무래도 겉모습을 좀 바꿔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형진의 운을 떼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아가 허둥거리다가 그의 뜻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얼른 말을 받았다.
“그, 그래요. 으음… 너무 인간을 닮으려고 하느니 그냥 얼굴만이라도 누에들의 개성을 좀 더 살리는 쪽이 나을지도…”
미아가 그렇게 말하자 누에 공주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뭔가 의논을 하는가 싶더니 허물을 벗는 듯한 느낌으로 얼굴 모습을 바꾸었다.
뭔가 엄청나다. 저들의 표현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즉석에서 누군가로 변장하는 것도 간단하게 해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쨌든 누에 공주들의 미묘하게 인간과 닮은, 하지만 그래서 더 비호감적인 모습은 누에 본연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과연. 이렇게 아예 안 닮아 있는 모습이 차라리 좀 더 나은 느낌이다.
미아는 물론이고 형진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누에 공주들의 습격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자, 잠깐. 설마 침실까지 따라 들어오려고?”
“…”
이래저래 피곤한 탓에 침실로 들어가려는데, 누에 공주들은 거침없이 그런 형진과 미아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잠만 자는 거라면야 누가 따라 들어오든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형진은 만년 신혼인 남자이고, 미아 역시 새로운 몸으로 그와 밤을 지새는 걸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런 중대한 상황에 갤러리들이 난입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있겠는가.
물론 미아는 형진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중대한 일을 치르는 것만큼은 사절이다.
게다가 누에들은 하나가 전부인 그런 존재들. 지금 누에 공주들이 보는 앞에서 거사를 치렀다가는, 아직 그 숫자가 몇이나 되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모든 누에들에게 그 모든 광경을 월드 와이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중계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적어도 순간 최대 시청률 기록 따위를 찍고 싶은 생각 따위, 미아는 절대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크흠… 나름대로 그것도 꽤 자극적이지 않을까. 어차피 쟤들이 누군가에게 자기가 본 걸 떠들고 다닐 일도 없고.”
형진은 은근히 변태끼가 발동하는 모양이었지만, 미아는 그런 형진에게 그녀답지 않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방금 어디에 뭘 하러 다녀온 건지 잊은 거에요?”
“응? 어, 그게…”
그렇다. 방금 전에 그들은 허세와 망상에게 다녀왔다. 누에들이 지닌 집단 지능을 일종의 생체 컴퓨터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 말은, 바꿔 말하자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들이 고스란히 허세와 망상을 비롯한 잡신들에게 그대로 공유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커흠. 그, 그건 곤란하지. 하하하…”
“…”
곤란한 정도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식의 영상이라든가 하는 것이 퍼져 나가 버린다면 보호와 균형은 그대로 엘리시온 깊숙이 틀어박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들지도 모른다. 형진에 대한 애정이나 의존증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은 쉽게 무마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만 잡고 잠이 들 수도 없는 일.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결국 형진과 미아는 누에 공주들에게 부부의 침실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에 대한 것과, 이런 저런 이유로 가급적이면 단둘이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냥 나가 있으라고 했다가 자칫 자신들이 필요 없다고 여기기라도 하면 자칫 누에 공주들의 오체분시쇼가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 제대로 납득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역시 광신도란 난감한 존재들이다. 더욱이 그들이 집단주의로 똘똘 뭉친 존재들이라면 더욱 더.
“물의 종족, 꼭두각시 종족… 음,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
“뭐가요?”
침실에 들어간 형진과 미아가 누에 공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동안, 리페는 클로리스인들에게서 전해 받은 열두 종족의 정보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꽃과 바람도, 보호와 균형도 자신을 신앙하는 종족을 찾아냈잖아. 그렇다면 나를 모시는 종족도 이들 중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하.”
열두 종족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르고 있긴 하지만, 각 종족들은 저마다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 형진이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낸 누에 공주들의 모습으로부터 혐오감을 느꼈던 것처럼, 열두 종족 역시 비록 빛의 신이라는 이름의 절대적인 존재 아래 하나로 묶여 있긴 해도 생리적으로는 서로에게 크던 작던 혐오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환수들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본신이 따로 있긴 해도 인간과 생식행위가 가능할 정도로 닮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설프게 닮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활동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미 논외인 셈이다.
“공포의 종족…”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란 역시 흥미가 생겼는지 조심스럽게 다가와 목록을 살피더니 그 가운데 한 가지 이름을 골라냈다.
“이름은 비슷한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네. 정말로 공포의 신을 섬기는 건지, 단순히 모습이 공포스럽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잖아.”
“하긴.”
클로리스인들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공포의 종족은 검은 불꽃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종족 자체도 차라리 은둔형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로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꺼리는 쪽인데다, 열두 종족을 다스리는 이가 빛의 신이다보니 어둠의 이미지를 지닌 그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더욱더 적을 수밖에 없다.
리페와 아란이 그렇게 자신들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종족을 찾느라 애쓰는 동안, 형진과 미아는 마침내 설득을 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아가 지쳐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결국 둘은 문자 그대로 손만 잡고 자다가 나왔다.
“미안해요.”
“하하, 뭐 미안할 것 까지야.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고작 하룻밤 정도에 불과하긴 해도 형진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한 나머지 미아는 울먹거리는 모습마저 보일 정도다. 영락없이 꼬장꼬장한 사감 선생 같은 모습으로 울먹거리고 있으니 형진 안의 변태성이 다시 불끈 일어날 뻔했다. 그러나 침실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빤히 그들을 에워싼 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누에 공주들의 시선은 물론이고 리페와 아란을 비롯해 규설과 힐리에타 역시 지켜보고 있으니 무작정 덮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크흠. 뭔가 변동 사항이라도?”
얼른 말을 돌리자, 아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규설과 힐리에타가 형진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들어온 보고들을 전했다.
“그나저나, 얘들을 이렇게 보낸 이유가 뭘까.”
보고가 끝나자 문득 리페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응? 시녀라면서.”
“그게 아니라… 공주라면 여왕의 뒤를 잇는 존재들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많을 이유가 있어?”
“아… 그 얘기였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공주는 분명 여왕의 뒤를 잇기 위한 존재. 그것은 누에라는 종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래도 좋은 존재라면 굳이 공주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으니까.
“미아님이 후계자를 선택해 주시길 바라는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왜 굳이 지금?”
“그거야…”
힐리에타가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 봤지만, 왜 하필 지금이냐는 말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부분이 궁금하시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아란의 말에 따라 형진은 누에 공주들에게 어째서 공주들을 이렇게 미아에게 잔뜩 보낸 것인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누에 공주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여왕… 여신께서… 선택해주셨으면…] “이 중에서 하나만?”괜히 하나를 선택했다가 나머지 누에 공주들이 눈앞에서 오체분시쇼를 벌이는 것 아닌가 싶어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이 또 의외였다.
[여럿도… 괜찮습니다.] “…”여럿도 괜찮다니. 여신들은 물론이고 비서들마저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여럿을 선택한다는 얘기는, 누에 무리를 이끄는 여왕의 수가 여럿이 된다는 뜻이다. 이들의 집단에서 여왕은 그 자체로 누에 무리의 머리와도 같은 존재. 여왕이 여럿이 된다는 얘기는, 머리가 여럿이 된다는 뜻도 된다. 자칫하면 누에라는 종족의 일원화된 사고 패턴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형진은 누에 여왕이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바로 알아챘다.
“설마… 무리의 수를 늘리겠다는 얘기냐?”
[네…]
누에 여왕은 그 자체로 집단의 머리 역할을 하는 존재지만, 그 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번식. 여왕이 있기에 누에 종족은 그 압도적인 숫자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여왕의 숫자를 늘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한 번에 번식 가능한 누에의 숫자 또한 늘어난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누에 여왕 위에 보호와 균형이라는 이름의 여신이 군림하고 있다. 여왕이 늘어나더라도 그들 특유의 수직적인 집단 지능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의 여왕이 늘어남으로 인해, 그들 무리에게 부족했던 다양성이 부여될 수도 있다. 누에 여왕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자신의 후계자이며 또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누에 공주들을 이렇게 미아에게 보내온 것이다.
“대단해. 이게 집단 지능의 힘이란 건가.”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얕볼 수 없다는 것을 형진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누에 여왕은 이미 보호와 균형의 추종자가 된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여신에게 더 큰 도움이 될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침대에서 안 나가고 버텼던 것도 혹시 둘 사이의 일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형진이 미아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형진은 그런 생각마저 떠올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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