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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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와 침실에 들어갈 때마다 아까 같은 해프닝을 연출할 수는 없는 일. 어쨌든 누에 여왕이 공주들을 보내온 이유를 알았으니 후딱 결정해서 내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설마… 나한테 씨를 달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거부하겠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그렇게 말을 건네 보았지만, 누에 공주들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물론 형진이 싫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그녀들에게 있어 번식 행위는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집단의 존속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행위이고, 형진과 일을 벌인다고 해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형진이 그들의 신이라면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행위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이상 굳이 그런 식의 쓸데 없는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에들의 집단 지능은 과연 사랑 같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형진은 굳이 묻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리페가 이렇게 한 마디를 던진다.
“변태.”
“뭐? 왜 또?”
“흥. 모르면 관두고.”
“어이!”
애초에 형진도 그런 일은 참아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을 걸었지만, 리페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자 미아 또한 설마 싶은 표정이 되었고, 아란은 의미 모를 눈웃음만 살살 짓고 있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든 하나를 고르더라도 오체분시쇼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답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미아는 누에 공주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 가장 처음에 그녀에게 시녀로 온 요정 사이즈의 누에 공주 가운데 하나다.
“근데… 괜찮은 걸까요. 이런 작은 애가 여왕이 되어도.”
자신이 선택했으면서도 걱정스러운지 미아가 그렇게 말했다. 똑같은 누에 공주라 해도, 지금 그녀가 선택한 개체는 다른 누에들에 비해 너무 작고 약해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이건 형진도 뭐라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다. 애초에 그도 누에들에 대해서는 미아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글쎄. 뭔가 대책이 있으니 이런 공주를 보내온 것 아닐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새로운 여왕이 될 공주가 선택되자, 당사자는 물론이고 다른 공주들까지 일제히 미아에게 고개를 조아려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달리 필요한 것이 있나 싶어 묻자, 요정 사이즈의 누에 공주는 미아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밖으로… 나가게 해주세요…] “그거면 돼?”[네…]
괜찮은 걸까 싶긴 했지만, 일단 나스트론드 안쪽으로 나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누에 공주가 마침내 나스트론드에 들어서자, 곧바로 둥지에서 수많은 누에들이 몰려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이를테면 누에 공주의 대관식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인지라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누에들은 마치 줄을 서는 듯한 모습으로 공주의 앞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사열은 아닐테고, 뭘 하려는 거지.”
“쉿. 누에 공주가 다가서고 있어요. 앗!”
누에 공주는 천천히 늘어선 누에들에게 다가서더니, 마치 키스를 하듯 가장 선두에 선 누에와 입을 맞췄다. 크기 차이가 워낙 심하다 보니, 얼핏 보기에는 누에 공주가 그대로 먹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비명을 지르려던 미아였지만, 뒤이어 확대된 모습을 보고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허물을 벗는다.”
“정말?”
잠시 동안 앞장선 누에와 입을 맞추는 일이 끝나자, 누에 공주는 스르륵 허물을 벗더니 한 단계 커진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에 선 누에와 다시 입을 맞춘다.
“단순히 인사를 하는게 아니었군.”
“그럼요?”
“아마도 허물을 벗는데 필요한 양분을 건네주는 거겠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곤충들 중에는 이른바 사회 위라는 내장 기관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개미의 경우가 특히 유명한데, 이들은 애벌레들이 소화시킨 영양분을 자신의 사회 위에 저장했다가 동족 가운데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입을 맞대고 자신이 저장하고 있던 영양분을 건네주게 된다. 꿀벌 역시 처음 꽃에서 채취한 꿀을 바로 소화시키는 대신, 이러한 위 속에서 담아 넣고 있다가 벌집으로 돌아와 저장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즉, 벌꿀은 꽃에서 채취한 꿀이 그대로 저장된 것이 아니라 꿀벌들의 내장 속에서 분비된 효소를 통해 영양분이 분리되고 정제된 형태의 꿀인 셈이다.
이전에 균열을 통해 들어왔던 누에의 시체를 통해 어느 정도 기본적인 정보는 얻은 상태지만, 정확히 그들의 내장 기관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영양분이라면 단순히 자연에서 채취한 형태의 것이 아니라 누에들에게 적합하도록 변화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누에 공주는 도열해 있는 누에들을 거쳐 가며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고,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하자 일반적인 누에들보다 훨씬 크고 날렵한 형태의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정말 순식간이군.”
“신기해요.”
단순히 신기한 것을 넘어서, 만약 이 자리에 곤충 학자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해부해보자고 난리를 쳤을 것 같은 느낌이다.
조막만한 요정 사이즈의 누에 공주가 순식간에 커다란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렇게 넋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미아의 머리카락 속에 숨어 있던 누에 공주 가운데 하나가 그녀에게 뭔가를 속닥인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대요.”
“그 공주도 여왕이 되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지금 막 여왕이 된 공주 말이에요.”
“음? 어쩌려고?”
“아무래도 스틱스 근처의 다른 무리들을 불러 모을 모양이에요.”
“아하.”
이미 둥지를 이루고 있는 전대 여왕의 측근에서 무리를 빼내는 것보다, 그 바깥에서 활동하던 무리들을 재활용하는 편이 나은 건 당연한 일. 무슨 뜻인지 이해한 형진은 새롭게 여왕으로 추대된 누에 공주가 무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나스트론드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백 여마리 정도의 누에들이 공주를 호위하듯 에워싼 채 함깨 나스트론드 밖으로 나갔다. 이른바, 혼인 비행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여왕이 균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스틱스 주위에 흩어진 채 경계 중이던 누에 무리 가운데 일부가 뒤따르며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대충 헤아려도 수천 마리는 넘을 듯한 느낌의 누에들이 저마다 보호의 권능을 발현시킨 채 우주를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제법 멋져서 지켜보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동안 균열 주위를 날며 무리를 끌어 모으던 새로운 여왕은 마침내 어느 시점이 되자 스틱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고, 여왕을 뒤따르던 무리들은 그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조용히 앞발을 모은 채 서 있던 누에 공주 하나가 그 말에 바로 답했다.
[둥지를… 만드는 중입니다.] “둥지? 지금 저기서?”[네.]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 역시 그제서야 새로운 여왕이 무리를 끌어 모은 이유를 깨달았다.
누에들의 둥지는 얼핏 하나의 작은 행성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수많은 살아 있는 누에들의 군집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몸에서 만들어낸, 일반적인 누에였다면 고치를 이루었을 물질들로 자신들의 몸을 고정시켜 둥지라고 불리는 거대한 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단 둥지를 이루게 되면 그 구성요소가 되는 누에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기존의 여왕이 머물던 둥지에서 무리를 끌어내지 않은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다. 그런 식으로 둥지를 유지하는 누에들이 빠져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효율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둥지 밖에 남아 도는 무리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둥지를 만드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여들었던 누에들은 하나의 소행성과 같은 형태로 고착되었다. 아직 본래의 둥지보다는 작은 크기지만, 새로운 여왕이 알을 낳아 기르기 시작하면 빠르게 규모가 늘어날 것이다.
“일단… 나스트론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편이 낫겠지?”
“네. 아마도.”
형진이 다시 균열을 열어주자, 새로운 둥지는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이곳에 함께 있는 누에 공주들을 통해 형진의 뜻을 전해들은 모양이다.
“달리 필요한 건 없고?”
새로운 둥지가 빠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무언가가 필요하게 마련. 형진의 질문에 누에 공주 가운데 하나가 다시 대답했다.
[먹이… 그리고, 바위도…] “역시 그렇겠지. 잠시 기다려 봐.”형진은 곧바로 추종자들에게 지시를 내려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 소행성 같은 것을 모아서 나스트론드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엔 그냥 돌덩어리 같지만, 개중에는 얼음으로 구성된 것도 있고, 탄화수소 같은 것이 동결된 상태로 섞여 있는 것들도 있다. 단순한 돌멩이 같은 것들이라면 둥지의 골격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종의 건축 자재로 사용될 것이고, 얼음이나 기타 유기물 같은 것은 둥지 안에서 균류 등을 사육하는 용도로 쓰이게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형진은 다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움직였다.
“식량은 어떤 것이 좋을까.”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누에 공주들도 이제는 지금 모여 있는 이들 가운데 형진이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한 모양이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어눌해 보이는 말투라든가 곤충을 연상시키는 형상에 속고 있었던 것은 오히려 형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곧바로 지구와 타나토스, 그리고 앙그릴과 같은 곳에서 식량 수매가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꽃과 바람에게 귀의하게 된 클로리스인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식량을 사들이도록 했다.
그렇게 모여진 식량은 곧바로 정화 처리를 거친 다음 누에들에게 공급되었다. 식량과 자재가 원활하게 공급되자, 새로운 둥지는 빠르게 기존의 둥지에 버금갈 정도로 덩치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앞서 누에 공주가 여왕의 모습으로 탈피해 가던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엄청나군.”
완전한 자급체제를 갖추려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단 그렇게 체제가 완성되면 기존의 둥지처럼 빠르게 누에들의 수를 불려가게 될 것이다.
형진은 자신의 주위에 늘어선 누에 공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모두 둥지를 가지게 되었을 경우 얼마만큼의 누에들이 태어나게 될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그렇게 누에들의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날 경우 보호와 균형이 얻게 될 힘의 양 또한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미아.”
“네?”
“당신,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가, 갑자기 왜…”
“그냥 그렇다고.”
“…”
갑작스런 형진의 사랑 고백에 미아는 어쩔 줄을 몰랐지만, 지켜보던 리페는 혀를 차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누라가 부자가 되니까 더 예뻐 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커흠. 그게 아니라고. 원래부터 나는…”
“어이구. 속보인다. 속보여.”
리페에게 면박을 당하긴 했지만, 미아는 그래도 좋다는 듯이 상기된 얼굴로 형진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전 좋아요. 그러니 원하시면 얼마든지 가져다 쓰셔도 좋아요.”
“미아…”
“진…”
다른 이들이 지켜보거나 말거나 둘은 다시 핑크빛 분위기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아도 퉁명스런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페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다시 클로리스인들이 건네준 정보가 담긴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에이씨. 나도 얼른 하나 물어오던가 해야지. 눈꼴시어서 원.”
“부러워요?”
“몰라. 묻지 마. 그리고, 사실은 너도 마찬가지면서 뭘 아닌 척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제가 뭘요?”
하지만 리페와 아란은 그나마 나았다. 적어도 그녀들은 여신이니까 얼마든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규설과 힐리에타는 뭐라 말도 못하고 뻔히 눈앞에서 핑크빛 분위기를 이어가는 형진과 미아의 모습에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봄이 오긴 올까?”
“몰라. 묻지마. 괴로워.”
“미안.”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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