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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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들의 합류로 인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숫자의 차이가 단숨에 메워졌다.
아직 모든 누에 공주들의 분가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한꺼번에 분가를 진행하기에는 당장 형진이 공급할 수 있는 물자의 양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지금까지 숫자의 부족으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균열의 방어 외에도 적극적으로 다른 지역의 공략에 나서는 등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원거리 이동은 게이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얘기지?”
[네.]
누에 공주들이 처음에 미아에게 보내진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언어의 학습이다. 실질적인 이유는 새로운 여왕이 되기 위한 개체의 선택을 미아에게 맡기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인 언어의 학습 역시 누에 공주들은 소홀하게 여기지 않았고, 여러 개체들이 동시에 학습을 하다보니 그 성취도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들의 발성 기관 자체가 인간의 언어를 말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감이 있는 탓에 텔레파시 비슷한 형식의 대화 밖에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텔레파시라고 간단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누에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요정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초음파 비슷한 어떤 파장에 그들의 의사를 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나름으로는 인간과 다를 바 없이 말을 건네고 있는데, 인간의 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말하고는 있는데 소리는 전달되지 않고 의미만 전달되는 그 기묘한 의사소통 수단 역시 허세와 망상이 이끄는 잡신들에 의해 분석되고 있는 중이지만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발성의 문제 때문에라도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얼핏 생각하기에 의미 없는 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 습득이 가지는 진짜 목적은 인간의 어휘 그 자체를 습득하는 것에 있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단어 그 자체를 배움으로서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그 외에 미아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개념을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배우고 있는 셈이다.
누에는 매우 뛰어난 종족이고, 그 발전 가능성도 엄청나다. 솔직히 말해서 형진은 그들의 학습 속도를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두려워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자칫 순식간에 인간을 초월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형진은 본래 인간이었다가 신이 된 경우이기에 모든 종족을 공평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성향은 아마도 시간이 훨씬 많이 지나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는 얘기는…”
“게이트를 장악할 수 있다면, 적의 이동이나 집결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얘기겠네요.”
규설과 힐리에타의 말에 회의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누에가 포섭되면서 이제까지 추측만 하고 있던 사실 하나가 확실하게 밝혀졌다.
적은 정말로 초광속 항해를 실현하지 못한 상태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클로리스인들을 받아들이면서 어느 정도 기정사실로 굳어진 상태. 하지만 어떤 사회든 간에 민수용과 군수용의 기술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민수용에서 그 효과가 실증되어 군용 물품에 도입되는 사례도 없는 건 아니지만, 특정 기술에 대해서는 기밀 유지를 위해 민간에 퍼트리지 않고 군용으로만 틀어쥐는 경우가 있다.
초광속 항해를 위한 알큐비에레 드라이브 기술을 형진은 아직 민간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 자체로 핵무기를 초월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간용의 운송이나 이동은 황혼의 성물을 이용한 이동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민간에 그런 무지막지한 파괴 무기를 쥐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클로리스인들에게 초광속 항해가 아직 이쪽 우주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전해 받았어도 만약의 경우를 상정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 이유로, 아니면 그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이유 때문에 클로리스인과 같은 군사 활동과 관계 없는 종족에게 그 기술이 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누에의 합류를 통해 적이 초광속 항해를 실현하지 못했음이 마침내 완전하게 확정되었다.
“가장 좋은 것은, 게이트를 실현한 기술이 뭔지 확인해서 장악하는 것이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게이트 시스템을 자신의 뜻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적에게 더 큰 혼란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와는 엉뚱한 곳으로 연결을 지어 버림으로서 적 군세의 집결이나 이동이 완전히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뒤엉키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진이 구현해서 설치하고자 하는 게이트는 황혼의 권능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신들에게는 여러 가지 권능이 있고, 황혼이라는 신격이 지닌 경계선의 의미가 다른 신에 의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적의 게이트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먼저겠네요.”
“물론… 적도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겠죠.”
자신의 약점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법이다. 초광속 항해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게이트 하나를 장악한다는 말은 바꿔 말해서 그 게이트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는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앞서 형진이 말했던 게이트 시스템의 장악을 전제하지 않고 단 하나의 게이트만 전술적으로 판단한다 쳐도 그 정도의 무게감이 주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육상 전투에서 고지나 기타 교차로와 지협, 해상 전투에서 운하의 점령과도 맥을 함께하는 중요도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초광속 항해가 아니더라도, 일단 막무가내로 이동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단기간에 끝날 전투가 아니라면 최소 몇 년 정도는 여정에 소모되는 것을 감안하고 그냥 이동을 시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우주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우주는 너무 넓고 광활해서 은폐나 엄폐조차 쉽지 않다. 무언가가 항성계를 침공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로 이동을 시작했다면, 그것을 은폐나 엄폐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형진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권능이 그들에게 은폐나 엄폐의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이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최소 지금 당장 출발하더라도, 거의 빛의 속도에 근접한 속도로 이동을 시작하더라도 최소 삼사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전쟁 중이 아니라면 새로운 항성계를 개척하는데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투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개의 우주가 서로의 전력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삼사년 동안이나 전력을 이동을 위해 묶어두는 건 완전히 바보짓이다.
“게이트 외에 적의 대규모 이동은 없다고 봐도 좋겠지만, 게이트 자체를 그런 식으로 옮기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되겠네요.”
“확실히… 그건 이쪽으로서도 대응하기가 상당히 곤란하겠어.”
대규모 적의 항성간 이동은 불가능해도 게이트 그 자체를 은밀하게 시간을 들여 이동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만약 그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형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곳을 타격 받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게이트의 성능이 되겠군.”
황혼의 성물은 대응되는 두 개의 성물만 존재하면 그 사이에 가로 놓인 공간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양의 힘이 소모되겠지만, 이제 막 교단을 만든 잡신들이라면 몰라도 우주 단위의 전쟁을 수행하는 신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쪽의 게이트 역시 같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확인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전략이나 전술의 방향도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게이트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뜻인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게이트의 탈취 문제로 얘기가 돌아왔다.
“클로리스 때처럼 은밀하게 침투하실 건가요?”
가장 간단한 건 역시나 그것이다. 적이 예상치 못하는, 가급적이면 전방이 아닌 후방의 게이트를 목표로 삼아 단숨에 탈취하고 귀환하게 되면 아직 그런 식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적들로서는 손 쓸 틈도 없이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글쎄. 지금 그 방법을 쓰긴 아깝군.”
클로리스인들을 포섭할 때는 아예 상대가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람들을 빼돌리긴 했지만 본래의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놨고, 저들은 한창 전쟁중인 상황에서 클로리스인들의 사회에 일어난 소소한 납치극 같은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트는 문제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다시 본래대로 가져다 놓을 생각도 없다.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다시 나타나도 전략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일부 클로리스인들과는 달리, 게이트는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한 지역의 물류나 군의 이동에 큰 차질이 생긴다. 파급효과가 다른 만큼, 저들도 더욱 신경 써서 확인할 터. 그리고 그 과정에 다른 신의 힘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형진으로서는 적이 인지하지 못한 중요한 카드 하나를 그 중요성에 걸맞지 않는 수준의 일 때문에 소모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형진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는, 정면 대결로 가는 것이 좋겠군.”
정면 대결. 그것은 지금까지처럼 막후에서 수 싸움을 하는 식이 아니라, 서로가 지닌 힘대 힘으로 맞서 결판을 내겠다는 의미다.
이전이라면 질적인 우위는 있어도 수적으로 열세라 만에 하나 공략 도중에 역으로 균열을 빼앗기는 사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어했겠지만, 누에라는 강력한 전력이 합류하면서 수적인 우열 역시 뒤집어진 상태다.
게다가 적은 현재 군세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던 누에의 이탈로 인해 커다란 전력 공백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도 혼란에 빠져 있을 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정면에서 맞붙더라도 충분히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편에서도 신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미아가 그렇게 묻자, 형진은 빙긋 웃었다.
“아스트라페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태라면, 상대편에서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매우 적어. 내가 고안한 무기이긴 하지만, 아스트라페는 신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기니까.”
등장하기가 무섭게 비싸고 다루기 어려운데다 여러 가지 제약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이 기존에 존재하던 다른 원거리 무기들을 빠르게 대체한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총탄이 기사든 왕족이든 구별 없이 단숨에 쓰러뜨렸던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어쩌면 아스트라페의 등장은 권능을 몸에 두른 신에게도 과거 총의 등장으로 인해 몰락해 갔던 왕족들과 같은 운명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다만,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 신의 권능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만 해.”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빛의 신이 지닌 권능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어째서 전투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는 아직 형진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추측해 보건데, 뭔가 내부적으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빛의 신이 부재중이라든가 하는 식의 문제보다는, 신의 권위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이쪽에서 직접 신이 나서서 도전을 한 것도 아닌데, 아직 부릴 수 있는 전력이 이렇게 많은데 이 세계의 유일신이라는 자가 직접 나서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쪽 세계의 신이 권위를 중요시하는 입장이라면 그런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만약, 상대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문제는 없어. 오히려 그런 상황이야 말로 나로선 바라는 일이니까.”
그에게는 인스턴트 킬이 있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순간 적을 꿰뚫을 수 있는 아스트라페마저 갖추고 있다. 상대가 신이라고는 하지만, 자신 또한 하나의 우주를 다스리는 주신. 거느린 권속의 숫자가 차이 나는 것도 언데드의 힘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만약 상대가 그것을 초월한 힘의 소유자였다면, 지금까지 포트니아 테론이 막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테니까. 포트니아 테론의 저지를 뚫고 균열을 돌파할 힘이 있었는데도 아껴두고 있다면 적의 내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전투는 그러한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마침내 형진은 상황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찍으며 선언했다.
“출진한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거울과 같은 형상의 게이트가 1번이라는 숫자를 단 채 자리잡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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