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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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형진의 말이 떨어진 순간, 기동 요새 스틱스의 주위에는 거대한 어둠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균열 주위를 뒤덮고 있던 밤의 권능이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같은 느낌이라면, 이제부터 발현되는 밤의 권능은 우주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거대한 성운과도 같은 모습이다.
밤의 권능으로 균열 주위를 에워싼 형진은 나스트론드로부터 이번 전투에 동원될 전력들을 끄집어냈다.
우선 그 중심에 선 것은 기동 요새 스틱스. 그리고 그것을 호위하듯 새로운 티폰 세 마리가 주위에 늘어선다. 기존에 균열을 보호하고 있던 세 마리와는 또 다른, 언데드의 힘이 정화되어 완전히 형진의 손 안에 들어온 새로운 개체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티폰의 뒤를 이어 다시 세 개의 거대한 구형의 물체가 뒤를 따른다. 최근 분가하여 그 모습을 갖춘, 아직 본래 있던 둥지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그 자체로 수천의 누에들을 실시간으로 생산하여 동원하는 것이 가능한 둥지가 스틱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엄청나네요.”
“그렇지?”
행성급의 개체만 해도 일곱.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적들은 질려버릴 정도인데, 여기에 다시 만 단위의 누에들이 밤의 권능 속에 숨은 채 함께 이동하는 중이다. 그럴 생각만 있다면, 항성계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누에들에게 더 가까이 붙으라고 해.”
[네.]
형진의 명령을 받은 누에 공주의 대답과 함께, 뒤따르던 둥지들이 티폰의 등 뒤에 찰싹 달라 붙었고, 그 주위에 퍼져 있던 누에들 역시 둥지와 티폰에 달라붙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누에 공주 가운데 하나가 공손한 어조로 그렇게 보고하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를 내렸다.
“워프 버블 전개.”
“워프 버블, 전개합니다.”
규설의 대답과 함께 스틱스 주위로 거대한 워프 버블이 형성되었다. 이 거대한 워프 버블은 그 자체로 스틱스 주변을 호위하듯 에워싼 티폰과 그 뒤에 달라붙은 둥지들까지 전부 에워쌀 정도의 규모다.
“이동한다. 목표는, 이곳.”
“이동을 시작합니다.”
워프 버블로 군세를 모조리 감싸는 일이 끝나자, 힐리에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형진이 가리킨 지점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형진이 가리킨 곳은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는 게이트가 아니었다. 일전의 난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쪽에 자리 잡은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적의 분견대 중 하나였다.
“등 뒤를 노리는 칼을 방치한 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형진의 말이 떨어진 순간, 채 1광년도 떨어져 있지 않은 적의 코앞에 그가 이끄는 군세가 도달했다.
“입자포 전개.”
“입자포, 전개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세력이라면 굳이 형진이 이끄는 군세가 나설 필요도 없다. 초광속 항해에 의해 발생하는 여파만으로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형진의 군세를 보고 상대는 기겁하다가 갑자기 스틱스로부터 뿜어져 나온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버렸다. 아주 잠깐 동안의 초광속 항해였지만, 스틱스가 만들어낸 워프 버블의 규모는 아스트라페나 알큐비에레 어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 당연히 소우주에 농축되는 소립자의 압력도 훨씬 막강할 수밖에 없다.
콰가가가가!
아주 잠시 동안의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괴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갑작스런 군세의 등장에 허둥거리며 진형을 가다듬던 적의 군세는 그 한 번의 일격에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버렸다.
돌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적의 군세에게 더욱 불운했던 것은, 이 강렬한 입자포가 감마선 폭발을 동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입자포의 전개는 몇 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전기적 에너지를 그 활동 능력의 근본으로 삼는 돌의 종족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공격보다도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없었다 해도, 단순히 입자포가 지니는 물리적 에너지 만으로도 대부분의 생명체는 절멸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주 잠깐 동안의 입자포 발사 만으로 적의 분견대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워프 버블이 해제되며 거대한 암흑과 그 암흑 속에 도사린 존재들이 해방되었다.
“5분 주겠다. 정리하도록.”
[맡겨주세요.]
누에 공주의 공손한 대답과 함께, 티폰과 둥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누에들이 뛰쳐나가 그렇지 않아도 대부분의 주요 전력이 파괴되거나 기동 불능의 상태에 빠진 돌의 종족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앞서 누에들의 전향 시점에서 이미 난전으로 인해 상당부분의 전력 손실을 입은 시점에서 입자포를 얻어맞기까지 한 분견대는 저항할 틈조차 없이 순식간에 우주 먼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저항이 사라졌다면 이만 물러나라.”
[네.]
또다른 누에 공주의 대답과 함께 적의 숨통을 끊던 누에들은 다시 급속히 둥지로 물러났고, 그 자리에는 티폰이 대신 나섰다. 그리고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남겨진 잔해들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이동부터 시작해서 티폰에 의해 잔해를 정리하는 작업까지 단 십분. 이래서야 분견대가 보낸 소식을 전해 받은 적의 본진이 뭔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전장이 마무리 된 셈이다.
“나머지 분견대도 단숨에 쓸어버린다. 이동하라.”
“티폰 원 위치로. 대열 정비가 완료 되는대로 이동을 개시합니다.”
속전속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티폰이 다시 자리를 잡는 순간 스틱스는 다시금 거대한 워프 버블을 만들어 내었고, 방향을 틀어 두 번째 분견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적의 포격입니다.”
앞서 전멸 당한 분견대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인지, 두 번째 분견대는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워프 버블의 위치를 예측해 포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앞서의 입자포 전개로 소모된 소우주를 채워주는 역할 밖에는 되지 않았다.
“전개!”
“입자포 전개!”
다시 한번 찰나의 순간 입자포가 전개되며 분견대를 휩쓸어 버린다. 적의 규모가 더 많았다면 숫자로라도 어떻게 버텨봤겠지만, 이미 질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숫자로도 밀리는 분견대로서는 감당할 방법이 없다.
그런 식으로 세 곳의 분견대를 차례대로 각개 격파하는 일이 끝나자, 비로소 형진은 게이트 방면으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적의 본진을 목표로 삼았다.
“전면에 방어결계 최대.”
“방어결계 최대 수준으로 활성화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진의 명령이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는 거침없이 도착과 동시에 입자포를 전개했는데, 이번에는 입자포 전개는 물론이고 방어 결계 역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적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맞아. 바보가 아닌 이상, 세 번이나 같은 패턴을 썼는데 그걸 그대로 얻어맞을 이유는 없겠지.”
분견대야 규모가 작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 균열에 맞서는 형태로 모여있는 적의 본대는 얘기가 다르다. 균열로부터 나타날 수 있는 공세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탈취하기 위한 준비도 되어 있을 테니까.
만약 이런 대비들이 되어 있지 않다면, 적의 군세를 움직이는 수뇌부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빛의 신이나, 그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 사이에 문제가 생겨 현재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형진으로서는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게 일이 간단하게 풀릴 거라면 고민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역시나 형진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적으로부터 고에너지!”
“티폰을 선행시켜 방어합니다!”
워프 버블이 걷혀지고 입자포가 전개되는 시점에서 적으로부터 거대한 에너지가 발현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입자포가 쏟아내는 에너지와 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건… 빛이군.”
미리 스틱스의 방어 결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데다, 세 마리의 티폰을 선행시켜 방패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공진으로 인해 둥지에서 대기 중이던 누에들 가운데 상당수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버렸다. 그나마 모든 개체가 보호의 권능을 통해 방어능력이 보강된 상황임에도 그 격렬한 폭발의 충격을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피해는 그 정도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마치 해일처럼 출렁거리며 사방으로 퍼져 가는 충격파에 휩싸인 적의 군세는 태풍 속으로 들어가 버린 조각배처럼 출렁거리며 혼란에 빠졌고, 앞쪽에서 그 파장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돌의 종족들은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치 모래처럼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다.
“방어 쪽의 권능은 부족한 건가.”
빛의 신이 모든 신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상태라면, 방어와 관련된 권능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것이 옳다. 어쩌면 상대는 절대적인 빛의 권능이 적을 단숨에 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자신을 떠받드는 종족들의 안위 따위 처음부터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지도. 처음부터 소모시킬 목적으로 집결시킨 것이라면,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상대 역시 바라고 있었던 양상이라는 의미가 된다.
“상대의 위치는?”
형진의 말에 규설과 힐리에타가 허둥거리며 방금 전의 빛이 날아든 곳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틱스 자체에 피해를 입는 것은 어떻게 막았지만, 그 여파가 주위에 퍼져나간 탓에 형진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는 위성들 역시 적의 군세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남은 위성들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도 새로운 위성들의 배치를 서두르자 지켜보고 있던 아란과 리페, 그리고 미아 역시 그녀들을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존한 위성들의 정보를 토대로 위치를 추정했습니다.”
“이건…”
형진은 아란이 나타난 추정 위치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새로운 정보의 의미를 바로 알아챈 것이다.
“배웠군.”
그렇다. 적은 앞서 형진이 균열을 장악할 때 썼던 전법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가 균열 너머에서 티폰을 방패로 삼아 아스트라페를 날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적은 게이트 너머에서 현재 집결해 있는 군세를 방패삼아 방금 전의 빛을 쏘아낸 것이다.
최소한 상대 역시 바보는 아니라는 얘기다. 바보는 커녕, 자신을 억누르고 최선의 기회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강한 인내심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옵니다!”
힐리에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형진은 지시를 내렸다.
“티폰을 일렬로 세운다!”
“티폰, 일렬로!”
앞서와 같이 티폰 세 마리가 적의 공격과 그 여파를 균등하게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일렬로 세운다는 의미는, 그대로 적의 공격을 티폰으로 받아내며 강행돌파하겠다는 뜻.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앞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티폰의 피해가 그만큼 더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대로 포격을 교환하는 식으로는 결국 소모전으로 이어질 뿐이다. 아직 예비 벙력이 충분하지 않은 형진에게 있어, 그것은 가장 피해야할 상황. 하지만 방패 역할을 하는 적의 군세를 제치고 게이트를 아스트라페로 직격할 수 있는 위치에만 도달하면 이 싸움은 그가 승리하게 된다. 결국 누가 먼저 상대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타격할 수 있느냐에 이 싸움의 승패가 갈려지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티폰을 일렬로 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뒤에서 대기중이던 둥지 가운데 하나가 일렬로 서는 티폰 앞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놀란 형진이 누에 공주를 채 다그치기도 전에, 둥지는 적의 공격을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의 누에가 사라져 버렸다. 손 쓸 틈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 누가 앞으로 나서라고 그랬나!”
멱살을 잡아 채며 고함을 지르는 형진에게, 누에 공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께서 부리는 저 거대한 존재는 우리와는 달리 저 정도의 크기로 자라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저희 누에들은 충분한 양식이 주어진다면 둥지 하나 정도는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소모해야 할지 선택한다면, 당연히 둥지가 선택되어야만 합니다.]==========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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