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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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치넬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내던져진 채 한동안 방치되었다. 당연히 자신이 지닌 능력이나 도구를 사용해 그 상황을 타개해 보려 했지만 처음부터 그건 될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한참을 그렇게 발광하다가, 결국 쿠치넬리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나 더 가지고 있는 폭탄을 써서 자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채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해 버렸다.
“꺼낼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야…”
다시 깨어났을 때, 쿠치넬리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강화장갑복은 물론이고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벌거숭이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사실도.
“일단 그거라도 걸쳐라. 보기 흉하다.”
“…”
본래부터 뤼넬이라는 종족이 그렇다.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놓고 따지면 열두 종족뿐만이 아니라 알려진 다른 어떤 종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바로 뤼넬이다. 대부분의 종족이 도구를 통해 자신들의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기 마련이지만, 뤼넬의 경우는 도구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종족이다.
그래서 부족한 육체의 능력을 보조하기 위한 강화장갑복을 빼앗긴 쿠치넬리는 극도의 불안과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스스로 중력을 딛고 서는 것조차, 그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건가. 쯧쯧.”
쿠치넬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평범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그는 직감적으로 이 자가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보았다.
“날… 어떻게 할 셈입니까.”
바로 그 남자, 형진은 쿠치넬리의 말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그건 네가 나에게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달려있겠지.”
“큭…”
쿠치넬리는 형진이 던져준 옷가지를 몸에 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가 입어본 어떤 옷보다도 부드럽고 편안한 면 소재의 옷이었다.
“우선 첫 번째 질문. 네가 알마네아들을 찾은 이유는?”
쿠치넬리는 바로 답했다. 아마도 뒤에 자신에게 닥쳐올 무시무시한 고문을 각오한 채 이를 악물고.
“그것은… 대답할 수 없소.”
“그래? 뭐 할 수 없지. 그럼 나중에 보자.”
“…”
거부하면 뭔가 고문 같은 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대답했지만, 형진은 애초에 별로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너무나도 쉽게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그를 뒤덮어 버렸다.
이미 권능을 사용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으로 주위가 뒤덮이자 쿠치넬리는 다시금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며 또다시 예의 남자가 그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 생각이 좀 바뀌었나?”
쿠치넬리는 작게 으르렁거리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어림 없는 소리.”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이번에도 그는 다시 어둠 속에 갇혔다. 하지만 앞서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윽!”
어디선가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그의 이마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물방울이 이마에 떨어진다 한들, 아무리 뤼넬의 육체가 연약하다 해도 그 정도의 일로 통증을 느끼거나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주위의 환경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새카만 암흑 속에서, 물방울이 이마에 떨어지는 자극만 계속해서 가해지니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제, 젠장.”
쿠치넬리는 짜증을 내며 물방울을 피하려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손을 내젓고 바닥을 구르고 머리를 감싸 쥐어 봐도 물방울은 어김없이 그의 이마에 떨어져 내렸다.
똑. 똑. 똑. 똑.
마치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하필 그 순간 귓가에 앵하고 들려오기 시작하는 모기 소리처럼, 이마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끈덕지게 그를 괴롭혔다.
“으으…”
그의 신경은 점차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그저 이마를 때리는 것이 짜증스러울 뿐이었지만, 나중에는 물방울이 이마를 때릴 때마다 천둥이 울려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오직 물방울이 떨어지는 이마의 한 점으로만 모든 감각이 집중되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난리를 쳐도 계속해서 이마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그는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발광하고 난리를 쳐도 물방울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그렇게 이마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달리던 쿠치넬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울먹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 제발 그만! 다 말하겠소. 아니,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빌어먹을 물방울 좀 어떻게 해달란 말이다!”
반말도 아니고 존대도 아닌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다시 시야가 밝아지며 형진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 말하겠다고?”
“으으으…”
쿠치넬리는 흠뻑 젖은 이마를 손으로 닦아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가 허탈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마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사라졌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쿠치넬리는 어쩐지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겠습니다. 말할 테니… 이제 제발 그만…”
“좋아. 그럼 다시 묻지. 알마네아를 찾은 까닭은?”
“실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쿠치넬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술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듣고 있던 형진이었지만,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표정은 점차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전의 전투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와 꽂히는 무기를 보고 저희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우리들도 그와 같은 병기를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사실 완벽하게 똑같은 무기를 만들 수는 없었지만, 얼추 비슷한 느낌의 무기를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스트라페는 기존의 로켓 병기에서 추진 장치를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로 바꾼 형태라 할 수 있고, 로켓 병기 자체는 이미 십 세기부터 사용된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원리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무기를 정확히 목표에 명중시키는 기술인데, 이 녀석이 알마네아를 찾은 것도 결국은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을 적에게 명중시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지요. 그것은… 바로 무기 자체에 그것을 조종할 인원을 탑승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친…”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들은 로켓 무기에 사람을 탑승시키는 방식으로 유도 장치를 대신하려 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이차대전 말기에 일본이 썼던 자살 병기와 같은 방식으로.
“하지만 이것을 조종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보통의 종족이라면 그와 같은 속도 하에서 무언가를 조작하기는커녕 위아래 구분도 못해서 통제 불능이 되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임무에 적합한 종족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후보로 크게 두 종족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알마네아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유익족 알마네아, 그리고 태어나기를 물 속에서 태어난 덕분에 우주 공간과 같은 장소에서 다른 종족에 비해 훨씬 높은 공간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물의 종족 마뇰. 이 두 종족이라면, 신무기를 활용하는데 매우 적합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죠.”
“후…”
만약 누에들이 변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무기를 조작하는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바로 그들이었을 것이다. 본래부터 우주 공간에서의 활동에 특화되어 있고, 효율을 위해서는 동족의 목숨 몇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희생시킬 수 있는 그들이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역할을 받아들였을 테니까.
비슷한 종족으로 크리스털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의사소통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물론 정 안되면 그들을 쓰는 방법도 있긴 하겠지만,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의 대응을 고려한다면 좀 더 의사소통이 원활한 종족을 쓰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형진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쿠치넬리를 다시 감금하고는 네아를 불러들여 심문 결과를 전했다.
“그런… 일이…”
따지고 보면 그녀가 빛의 신을 스스로의 몸에 강림시킨 것과, 이번 신병기의 계획은 크게 차이가 없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목표를 분쇄한다는 건 결국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스틱스의 별궁에서 지내며 형진이나 그의 반려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게 된 지금의 그녀는 신전 측의 그러한 시도에 커다란 분노를 느꼈다.
“알마네아가 그 신병기에 쓰이는 일은 일단 막은 셈이지만, 문제는 그 마뇰이라는 종족이야. 아쉽게도 우리가 장악한 게이트 인근에 그 종족이 사는 곳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나?”
“네. 물론이죠.”
네아는 곧바로 현재 파악된 지역 가운데 마뇰이 살고 있는 지역과 인접한 게이트 몇 군데를 골라내었고, 형진은 곧바로 그 게이트들을 장악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래. 새로운 몸에는 적응이 되었나?”
대기중인 주시자들에게 게이트 공략을 준비시키는 일을 마치자, 형진은 네아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네. 신께서 주신 새로운 날개는 굉장해요. 전보다 힘은 훨씬 적게 들면서도 더 빠르고 높게 날 수 있으니까요.”
“그거 다행이군.”
“다만…”
“다만?”
“아무래도 이건 좀…”
네아는 조금 민망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다른 어떤 종족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가슴이 있었다.
전에 없던 신체 부위가 생긴 것만으로도 뭔가 어색한 느낌인데, 그것이 너무나 크고 묵직해서 네아는 비행 중에 무게 중심을 잡는 일 때문에 고생 중이다. 고작해야 크고 아름다운 가슴이 생긴 것 뿐인데 무슨 문제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알마네아가 본래부터 몸이 가벼운 종족임을 감안하면 이 새로운 신체 부위는 결코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크흠. 그건 일종의 무게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돼.”
“무게… 추요?”
“그래. 본래부터 몸이 가벼운 알마네아가 갑자기 빠른 속도를 손에 넣으면 자칫 자신의 속도에 휘둘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지. 적당한 무게 중심이 있으면, 오히려 조작성이 좋아지는 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실증된 사안이야. 선박에 쓰이는 밸러스트 같은 것이 결국 그런 개념인데,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적당한 복원력과 적당한 수준의 흘수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모래나 자갈 같은 걸 싣고 다니기도 하지.”
“그, 그렇군요.”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럴 듯한 설명에 네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형진의 설명에 있어 커다란 빈틈 하나를 발견해냈다.
“저, 그러면요.”
“왜? 뭔가 이상해?”
“그럼 저희 종족이 저와 같은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면, 남자들도 이런 가슴을 달고 다니게 되는 건가요?”
“그, 그건…”
형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리던 형진은 이내 이렇게 둘러댔다.
“남자들은… 크흠. 원래부터 아주 묵직한 무게 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없어도 돼.”
“원래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
“…”
네아는 그제서야 뭔가 의심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형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이어질 그녀의 질문을 회피했다.
“커흠. 난 이만 게이트 공략을 지휘해야 해서.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
순식간에 눈앞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형진의 모습에 네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어야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걸 원래대로 되돌릴 생각이 그에게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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