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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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축하한다. 아우야.”
“호호호, 축하해요. 오라버니.”
입을 가리고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채 자신을 향해 웃으며 말하고 있는 자신의 형과 여동생의 모습에 크루그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표정은 도대체 뭐야. 그리고 그 말투는 또 뭐고.”
“뭐긴. 당연히 하나뿐인 남동생이 드디어 짝을 만난 것에 대한 기쁨의 표시 아니겠나. 그렇지? 카트린 공주.”
“물론이죠. 폐하. 오호호호.”
“…”
형진과 카트린의 그와 같은 반응에, 크루그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으나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부터 말해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아하, 결혼 언제 시켜줄 거냐고? 이런 응큼한 녀석. 벌써부터 첫날밤을 기대하고 있는 거냐.”
“안 되어요. 오라버니. 아직 두 분은 나이가 되지 않아서 너무 이르게 결혼하면 좋지 않다고 신전의 사제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니 마음이 급하시더라도, 당분간은 마음만으로 사랑을 나눠 주셨으면 해요.”
“아, 물론 뽀뽀나 키스 정도는 상관없어. 아이를 가질 만한 일만 하지 않으면 돼. 물론 참아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해서 놀려대는 둘의 모습에 크루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런 얘기가 아니란 걸 알잖아!”
하지만 그런다고 멈출 형진과 카트린이 아니다.
“어이쿠. 우리 동생님이 화가 나셨군.”
“아무래도 정곡을 찔려서 그런가 봐요.”
“하긴. 원래 맞는 말을 들으면 더 화가 나기 마련이니까.”
계속 되는 놀림에 크루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을 불끈 쥐자, 그제서야 형진은 모르는 척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커흠. 일단 간단하게 둘이 맺어지게 되었음을 알리는 약혼식 정도는 치를 생각이다. 움리드에게 릴의 존재를 알리는 건 그 다음이 되겠지.”
먼저 둘이 맺어지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움리드에게 있어 릴의 존재는 신성불가침에 가깝고, 그런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 맺어진다는 사실부터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형식은 약혼이더라도, 외부적으로는 결혼과 마찬가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형진과 카트린이 놀려대는 것도 그런 부분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크루그 역시 어리석지 않은 관계로 형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라고, 여전히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둘의 시선은 마주할 때마다 자꾸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 약혼식은 언제?”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릴에게도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필요할 테니 사흘 정도 뒤에 하는 건 어떨까.”
어차피 약혼식이라고는 해도 다른 여러 나라의 귀빈들을 초청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왕성의 식구들을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르는 정도가 될 것이다. 크루그가 가르치는 왕족 나부랭이들은 참석해 봐야 소란만 피울 것이 분명하니 제외. 그렇다면 결국 왕성의 식구 외에 따로 참석할 인원은 이미 크루그와 안면이 있는 몇몇 신들 정도가 고작이라고 봐야한다.
“알았어. 그렇게 전하도록 할게.”
크루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바로 방을 빠져 나갔다. 형진과 마찬가지로 웃는 눈을 하고 있던 카트린은 그가 나가자 좀 전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뭐가?”
“릴 언니요. 본래의 자신이 싫어서 요정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지금 상태 그대로 약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본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데… 괜찮을까요.”
일리 있는 얘기다.
“크루그 녀석이 잘 다독거리면 좋겠지만, 녀석의 성질머리로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겠지. 마침 잘 됐군. 시누이 노릇도 할 겸, 네가 살펴주는 건 어떨까.”
“시누이… 픕.”
카트린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지구의 컨텐츠들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카트린이 이른바 새언니라고 부를 만한 이를 맞이하는 건 릴이 처음이 아니다. 유아나 미엘, 제랄딘을 시작으로 형진의 여러 여자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새언니들 아닌가. 하지만 다이애나처럼 아예 다른 곳에서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몇몇을 빼고는 모두 친한 언니 동생 정도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 못된 시누이 노릇이라는 건 해본 일조차 없다.
“알았어요. 하긴 다른 언니들이 나서기엔 오히려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여신님부터 시작해서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니.”
“부탁하마.”
“맡겨주세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카트린의 말대로 릴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크루그에게 그런 부분까지 털어놓기는 아직 뭔가 어색한 면이 남아 있어서 릴은 카트린이 찾아왔을 때 혼자 오도카니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공주님.]
“공주님이라뇨. 뭐에요. 그 딱딱한 호칭은. 이제는 남도 아니니까 그냥 카트린이라고 불러주세요.”
[하지만…]
“어서요.”
조금 엄한 표정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움이 잔뜩 묻어나는 카트린의 모습에 릴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도록 할게요. 그런데… 어쩐 일로.] “혼자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와 봤어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같이 가 봐요.”[네?] “약혼식 때 입을 옷도 봐야 하고. 화장 안 해봤죠? 화장하는 법도 배워야겠네요. 자, 어서요.”
갑작스런 카트린의 말에 릴은 당황해 버렸다.
[아니, 그게… 자, 잠깐… 잠깐만요.] “네? 뭔가 문제라도?”[그게… 지금 모습은 제 본신이 아니라서…] “아하, 그거라면 상관없어요. 그 모습으로도.”
[네?]
상관이 없다니. 릴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버렸지만 이내 카트린에게 이끌려 거짓된 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여신님! 안녕하세요!”
“아, 카트린? 오랜만이네요.”
카트린이 찾아간 것은 다름 아닌 꽃과 바람이었다. 형진과의 만남이후 힘을 얻어 대신에 가까워지던 그녀는 최근 클로리스라는 종족을 신도로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대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물론 그렇게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녀의 태도가 바뀌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녀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한 남신의 입장이 조금 난처해졌을 뿐이다.
“앉아요. 그렇지 않아도 신뢰와 헌신님이 맛있는 디저트를 가져다 주셔서 맛을 보려던 참이거든요.”
꽃과 바람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신뢰와 헌신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카트린은 그 모습에 식은땀을 살짝 흘리며 얼른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소개시켜드릴 분이 있어요.”
“소개요?”
꽃과 바람은 그제서야 카트린의 옆에 동동 떠있는 작은 요정 하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이 본 느낌이긴 한데… 누구신지.”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움리드라는 종족이었다가, 요정의 모습을 갖추게 된 분이에요.”
“릴이라고 합니다. 여신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그 분이셨군요. 저야말로 반가워요. 꽃과 바람이에요.”
“신뢰와 헌신이다.”
신뢰와 헌신은 모처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방해한 불청객들이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꽃과 바람이 보는 앞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불퉁거리는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어쨌든 일단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일이 끝나자, 카트린은 여신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실은, 이번에 릴 언니가 저희 오빠랑 약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 말에 두 신은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약혼? 오빠라면… 설마 진님을 말하는 건가요?”
“아뇨. 그쪽 오빠 말고, 크루그 오빠요.”
“아…”
하긴 형진이라면 약혼 같은 귀찮은 절차 따위를 치를 이유가 없다. 마음이 맞으면 바로 침실로 끌고 가서 일부터 치르는 쪽이니까.
“크루그 왕자님의 약혼인가요. 갑작스런 일이라 조금 놀랐네요.”
“사정이 좀 있었어요. 아무튼, 그래서 꽃과 바람님께 조금 도움을 청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실은…”
카트린은 말을 꺼내려다가 신뢰와 헌신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꽃과 바람이야 도움을 청하는 처지이니 사정을 털어 놓는다 쳐도, 신뢰와 헌신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은 이상 함부로 릴의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남신이기도 하고.
그런 카트린의 모습에 신뢰와 헌신은 당황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꽃과 바람과 마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칫하면 이 자리에서 도리어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풋.”
그런 신뢰와 헌신의 모습에 꽃과 바람은 살짝 웃더니, 카트린에게 천천히 말했다.
“괜찮아요. 이래봬도 일단은 신뢰와 헌신이신 걸요. 지금부터 할 얘기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일 정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앞으로 있을 두 분의 약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테고요. 그렇죠?”
“무, 물론. 당연하지. 누가 뭐래도 난 신뢰와 헌신이니까.”
꽃과 바람이 이만 가보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 안절부절하던 신뢰와 헌신은 얼씨구나 하고 그녀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단순히 꽃과 바람의 힘이 강해져서라고 하기는 뭐하고, 이미 그전부터 꽉 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하지만 카트린이 얘기를 꺼내기 전에, 릴이 앞으로 나섰다.
“언니?”
[이건 제 문제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카트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스로 말할 수 있다면, 굳이 그녀가 옆에서 참견할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오빠의 반려가 될 이가 생각보다 더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그녀는 만족스런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지금의 제 모습은 본래의 그것이 아닙니다.]그렇게 시작된 릴의 얘기를 꽃과 바람은 신중하게 경청했다. 잠시 동안, 조금 머뭇거리는 느낌으로 릴의 얘기가 이어지는 것을 가만히 듣던 꽃과 바람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당장 릴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혹시라도 자신의 본모습을 크루그가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다.
온통 순백으로 물든 모습이라고 하면 얼핏 생각하기에는 매우 정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기괴하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니까. 움리드에게는 그것이 성스러운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는 했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릴은 여전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감이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 크루그님이라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당신이 그의 앞에서 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치장은 필요한 일이겠지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잔잔하게 웃으며 말하는 꽃과 바람의 모습에, 릴은 작게 안도하며 얼른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정말… 감사합니다.]========== 작품 후기 ==========
말보다는 주먹이라던 어떤 신, 자칫하면 맞고 사는 남편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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