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942)
〈 942화 〉 942. 아카데미의 구원자
나는 마루한 아카데미 암살자 사건으로 내게 미안함을 느끼는 강지영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실제로는 저녁 식사 약속이었지만, 내가 적당히 떼를 쓴 끝에 정식으로 데이트하게 되었다.
물론 강지영의 생각은 알고 있다. 말만 데이트이지 저녁 식사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게 맞다. 저녁 식사나 데이트나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단어의 차이로 인한 느낌이 다르지.’
약속 시각은 오후 3시.
나는 약속 장소에 1시간 전부터 미리 도착해 강지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강지영은 날 남자로 안 보고 있어. 학생이자, 친구 아들로만 보고 있지.’
그녀와 나 사이에 있는 나이 차이가 문제였다. 약 20살 차이. 그 간격을 좁히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기다리게 했군.”
강지영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녀는 눈에 띄었다. 180cm에 달하는 커다란 키와 비단 같은 흑갈색의 긴 머리카락. 그녀의 복장은 캐주얼했다. 회색 블라우스와 감색의 슬랙스 바지. 잘 어울렸다. 뭐, 기본적으로 키도, 가슴도, 엉덩이도 큰 편인 강지영에겐 어지간히 망한 옷이 아닌 이상 잘 어울리겠지만.
“10분이나 일찍 오셨네. 그렇게 오늘 데이트를 기대했어?”
강지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게 정상이다. 넌 언제 도착했지.”
“2시.”
“…1시간이나 일찍 왔다고? 네가?”
강지영이 의심쩍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와 그녀가 서로 알게 된 지도 벌써 몇 년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성격 같은 건 대충이나마 파악이 끝났다.
“난 그만큼 오늘을 기대했거든.”
“…미리 말해두마. 네가 원하는 대로 일단 데이트이긴 하다만, 별거 없다.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먹고 헤어질 거다.”
“왜 이래. 사전에 약속했잖아. 10시에 헤어지기로. 저녁 먹고 놀아야지.”
“그래. 딱 오후 10시가 되는 순간,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갈 거다. 네가 뭐라 해도 소용없다. 알겠나?”
“알았어. 떼도 안 쓸게. 대신 데이트는 진지하게 임해줘.”
“약속은 약속이니 진지하게 임하지. 뭘 하면 되지?”
“데이트는 처음이야?”
“처음이다. 이상하게 내겐 남자가 잘 다가오지 않더군.”
강지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어지간한 남자는 자연히 압도된다. 타고난 카리스마와 기본적으로 무표정한 얼굴. 무엇보다 S급 히어로가 풍기는 강함.
그녀는 어떤 남자도 감히 쉽게 넘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데이트 동안 이름으로 부를게. 괜찮지?”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있다.
남녀 사이에 호칭은 중요하다. 특히 나와 그녀 사이에는 더더욱. 데이트 중에 상대 여자를 이모라고 불러봐라. 그게 데이트 분위기를 만들어줄까?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데이트의 오묘한 분위기를 박살 내겠지.
배덕감을 느끼기에는 나쁘지 않으나, 지금 나와 그녀는 배덕감을 형성할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
“데이트잖아.”
“…알았다. 내가 뭐라 부르면 되지?”
“오빠라고 불러줘.”
“하하.”
강지영이 웃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잡았다. 그녀의 손에 힘이 빡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악!”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픔이었다.
“그, 그만! 농담이었어, 농담!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강지영이 손을 놓았다. 그녀에게서 해방된 머리는 아직도 지끈거렸다.
“…대신 나도 내 마음대로 부를 거야. 지영이라고.”
“……딱 10시까지 허락해주지.”
강지영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이내 허락했다. 강지영은 냉혈한이 아니다. 선을 넘지 않는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준다.
‘일단 이걸로 첫 번째 단추는 잘 끼웠고….’
이제 남은 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거다.
“그런데 지영아.”
강지영을 불렀다. 강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날 노려보다가 한숨과 함께 표정을 풀었다.
“……어색하군.”
어딘가 득도한 얼굴이었다.
“왜 사람들이 지영이, 널 주목하지 않는 거야?”
강지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살기나 분노한 기색은 없다. 어색함에 손발이 오글 거리는 것이다.
“…나는 얼굴이 알려져 있다. 웬만한 사람들도 내가 마루한 아카데미 학장이란 걸 안다. 그런 내가 학생과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봐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거다. 특히나 네 엄마가… 후우. 생각만으로 끔찍하군.”
그러면서 강지영은 내게 반지 하나를 던졌다. 슬쩍 그녀의 손을 보니 나와 같은 반지가 오른손 검지에 있었다.
“커플링?”
“인식저하 마법이 걸린 반지다. 우리 정체가 알려지면 골치 아파지니 너도 껴라.”
“효과는 언제까지 지속되는데?”
“급하게 만든 거라 하루 정도가 한계다.”
아쉬웠다. 현실로 가져가진 못할 것 같았다.
반지는 그녀와 똑같이 오른손 검지에 꼈다. 지나가면서 나를 힐끔 보던 여자들의 시선이 전부 사라진 걸 느꼈다.
‘효과를 경험하니 더 아깝게 느껴지네.’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강지영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호감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름: 강지영
근력: S+ 체력: SS 민첩: A+ 내구: S+ 마나: A+
특성: 호루스의 눈(SS), 대지의 늑대(S)
스킬: 중검(S), 마법(A), 육감(S), 괴력(A), 자연회복(S).
호감도: 55』
호감도 55.
좋다. 50 이상은 호감을 느끼는 수치다. 달리 말해서 연애 감정을 느끼는 수준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게임 기준이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기에 호감도 50 넘는다고 바로 사귈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
내가 준비한 데이트 코스는 무난했다. 강지영의 성격을 고려한 것이다. 그녀의 성격상 너무 특이한 데이트 장소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었다. 오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괜찮은 데이트 코스를 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걸 보고 감이 왔지. 얼죽아지?”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차가운 것에 익숙해져서 따뜻한 걸 잘 못 먹겠더군.”
카페의 창문 없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여종업원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주문하지도 않은 조각 케이크 하나를 들고 왔다.
“케이크는 시킨 적 없습니다만.”
강지영이 정중하게 망했다. 여종업원은 물러서지 않고 산뜻하게 웃었다.
“지금 저희 매장에선 가게에 입장하시는 커플분들께 이벤트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서비스인 딸기 조각 케이크를 드리고, 폴로라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강지영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요즘은 신기한 이벤트도 하는군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에헤이. 지영아. 내 의견은 안 물어봐? 하자. 공짜 케이크에 사진도 찍어 준다는데 당연히 해야지.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
“굳이 그런 걸 할 필요가….”
“우리 지금 데이트 중이야. 데이트.”
“…하아. 알겠다.”
나는 여종업원과 눈을 마주쳤다.
커플에게 조각 케이크를 주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 그딴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전부 종업원과 짠 계획이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더 잘 부릴 수 있다.
“그럼 서로 함께 앉아주세요.”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지금 대충 찍어주셔도 됩니다.”
“커플이잖아요. 기왕 하는 거 추억이 남도록 찍어야죠.”
“…….”
우리는 어색하게 나란히 앉았다. 여종업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여성분…. 얼굴 표정이 너무 딱딱해요. 좀 웃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러면 됩니까?”
억지로 호선을 그린 강지영의 입가가 바들바들 떨렸다.
“조금 낫긴 한데 여전히 이상하네요. 남성분 여자친구분의 어깨를 한 팔로 꽉 안아 주세요.”
“이렇게요?”
강지영의 어깨를 잡아 확 끌어안았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여종업원의 눈치가 보였는지 밀쳐내지는 않았다.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네요!”
찰칵! 찰칵!
여종업원이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나와 강지영은 각자 한 장씩 사진을 가지게 되었다.
“잘 나왔죠?”
“…잘 나오긴 했군.”
묘한 눈으로 보던 강지영은 고민하다가 사진을 챙겼다. 아무리 그녀라도 내가 보는 앞에서 사진을 찢거나, 버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말이다. 여자의 몸을 함부로 잡는 건 아니다.”
“아무 여자도 아니고 우린 지금 데이트하고 있잖아요. 그 정도는 이해해줘요.”
“…….”
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다소 따분한 대화 주제였다. 아카데미 시내에 있는 맛집이니 뭐니 하는 그런 시시한 대화.
‘아카데미 내부 대화는 안 돼. 학장인 강지영에겐 민감한 내용일 테니까.’
하지만 얕은 대화만 이어가는 것도 좋지 않았다. 사람은 진솔한 대화를 나눠야 비로소 관계가 더 깊어진다.
허나 무턱대고 그녀의 깊은 것을 물을 수 없으니, 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마침 적당한 주제도 있다.
“지영아.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알아?”
“너의 아버지라면…. 성하리의 남편을 말하는 건가? 그건 내가 아니라 성하리에게 물어야 하지 않나?”
“엄마한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안 해줘. 나중에 전부 말해주겠다고 미루고 있고…. 따로 조사해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고.”
강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성하리는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정확하게는 배가 불어 오르기 전까지 쉬지 않고 활동했었다. SS급 히어로로서의 자긍심… 은 아니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았지.”
“…내 얼굴 모를 아버지랑 같이 활동했어?”
“아니. 혼자서 활동했다. 내가 알기로 성하리와 친하게 지내는 남자는 없었다. 성하리는 혼자서 활동하는 게 편하다고 했지.”
“…흐음. 혹시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내가 태어난 건….”
“그 당시의 성하리는 날카로웠다. 웬만한 사람은 접근하기도 힘들었지.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 힘들지만, 가능성은 적다.”
“대체 내 아버지의 정체가 뭐야.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안 돼?”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담겼다. 내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성하리가 너를 임신했을 시기를 따지면, 한 사건이 나온다.”
“사건?”
“……비공식 사건이다. 정부와 히어로 협회의 소수만이 알고 있다. 나 또한 이 사건에 대해서 함구하기로 계약했기에 전체는 알려줄 수 없다. 그나마 너는 성하리의 아들이니 일부만 말해주마.”
“엄마와 관련된 일? 무슨 사건인데?”
“개경에 대규모 던전이 발생했고, 성하리를 비롯한 50명의 히어로가 파견되었다. 사망자는 A급 히어로 14명, B급 히어로 35명.”
“…50명이라며. 그 말은….”
“맞다. 성하리를 제외한 모든 히어로가 사망했다. 다행히 던전은 클리어 되었다.”
“죽은 사람 중에 내 아버지가 있는 거야?”
“네가 태어난 시기를 계산하자면 그렇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는 척을 했다. 아버지란 놈이 죽었다면 됐다. 살아서 나타날 일은 없다는 거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강지영의 반응이다. 여기서 심각해 보여야 한다.
“미안하지만, 정확히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도 모른다.”
“…괜찮아. 잠깐 내 뿌리가 어딘지 생각했을 뿐이야.”
“네 뿌리는 성하리다. 성하리의 뿌리는 진령성가지. 네가 가진 정령안이, 그 정령사의 재능이 진령성가의 혈통을 타고났다는 증거다.”
“고마워, 지영아. 마음이 좀 홀가분해지네. 카페도 질렀지? 슬슬 일어날까.”
“……그 호칭은 영 익숙해지지 않는군.”
나와 강지영은 카페를 나가 잠시 거리를 걸었다.
부아아아아앙!
스포츠카 한 대가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질주한다. 이쪽을 향하는 꼴이 아슬아슬하다.
“지영아!”
나는 도로 쪽으로 걷고 있는 강지영의 팔을 잡아 내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스포츠카는 저 멀리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것 또한 내 계획대로다. 품 안에서 그녀의 풍만한 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