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4)
보는 투자자 013
13화.
우리는 소파에 앉아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탁자 위에는 L6가 놓여 있었다.
“이번 건 확실히 잘 만들었는데.”
경제학자 케인즈(Keynes)는 말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죽는다고.
이걸 핸드폰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폰은 단종되지.”
그러므로 최신폰인 L6 역시 언젠가는 단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이유로, 언제 단종이 되냐는 거지.”
난 L6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사용하면서 이상한 점은 없었어?”
“이상은커녕 지금까지 써본 폰 중에 제일 괜찮아.”
“서성전자 스마트폰 중 문제가 생겨 단종된 게 있나?”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기로는 없을걸. 그리고 폰에 문제가 있다 해도 수리나 보상을 해주지, 단종을 시킨다는 건 말이 안 돼.”
맞는 말이다.
과거 전화와 문자만 하던 피처폰(Feature Phone)과는 달리 스마트폰(Smart Phone)은 노트북, MP3, 카메라 등의 휴대전자기기를 하나로 집대성한 제품이다.
스마트폰 하나에는 엄청난 기능이 들어 있고, 기능이 복잡해진 만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만약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단종을 시켰다면, 모든 제조사가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볼 짓을 할 리가 없는데.”
대체 잘나가는 스마트폰이 단종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 * *
그날 밤.
소파에서 자는데, 갑자기 방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으아악!”
“뭐, 머야?
놀란 나는 몸을 일으켜 방으로 달려갔다.
콰앙!
방문이 활짝 열리며 택규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경도 제대로 못 쓴 채 혼비백산한 모습이었다.
“왜 그래?”
“뭔가가 펑하고 머리 쪽에서 폭발했어.”
난 어이가 없었다.
“뭔 개소리야? 꿈 꿨냐?”
“아, 아니야. 진짜 폭발했다니까. 나 멀쩡하냐? 혹시 눈이나 귀가 날아간 건 아니지?”
“······.”
정신 상태는 별로 안 멀쩡해 보인다.
난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보았다. 놀랍게도 택규의 말은 사실이었다. 침대패드가 그을린 채 불씨가 조금씩 타들어갔다.
“야! 물 가져와!”
택규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왔고, 난 그것을 침대에 부었다.
치이익!
큰불이 난 건 아닌지라, 물을 뿌리니 불씨는 금방 꺼졌다.
야밤에 이게 뭔 일이래?
난 화재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굳이 힘들게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불에 탄 패드 한 가운데에 검게 녹아내린 핸드폰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손을 가져가보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택규는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뭐야? L6가 터진 거였어?”
난 택규에게 물었다.
“핸드폰에 뭔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충전기만 꽂아놨을 뿐이야.”
택규의 말에 따르면 자기 전까지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고, 잠들기 직전에 충전기를 꽂았다. 그리고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터져?”
“나도 몰라.”
난 충전기를 살펴보았다. 충전기는 서성전자 정품이고 단선이나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택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니, 뭔 폰이 산지 일주일 만에 폭발해? 무슨 폭탄이야?”
“폭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설마······?”
* * *
택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그 전에도 몇 차례 폭발사고가 있었어.”
처음 글이 올라온 것은 출시 된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뽐뿌질’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폭발한 L6의 사진이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피해자는 충전 중에 아무 이유 없이 핸드폰이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서성전자 측에서는 빠르게 대처했고, 피해자와 잘 합의를 했는지 사건은 금방 무마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블로그와 페이스노트에는 비슷한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다.
당장 인터넷에서 확인 한 것만 해도 세 번이었다.
“너까지 치면 네 번인가?”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치면 더 많겠지.”
제조사 입장에서는 품질논란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때문에 현금보상 등을 조건으로 입막음을 했어도 이상할 건 없다.
“서성전자 쪽에서는 원인이 뭐래?”
“외부충격 때문이라고 하지. 사실 핸드폰이 터지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야.”
택규는 설명을 해주었다.
핸드폰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자기기에는 리튬이온 배터리(Li-Ion Battery)가 들어간다. 부피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튬이온은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엔플이나 다른 제조사가 만든 핸드폰이 터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문제는 그 비율이다.
100만 대 중 한 대 터지는 것과 1만 대 중 한 대 터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과연 이게 정말로 외부충격 때문일까?
우리는 밤새 서성전자와 L6에 대한 기사와 SNS에 올라온 글들을 검색해보았다.
폭발사건도 여러 차례 있고, 음성인식이나 액정밝기 같은 사소한 문제도 몇 가지 있었지만, L6 판매량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CL전자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프라임5를 내놓긴 했지만, L6에 밀려 빛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엔플에서 엔폰7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독주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업체의 폭발사례도 살펴보았지만, 확실히 L6의 폭발비율은 다른 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제조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을까?
설마 중소업체도 하지 않을 실수를 서성전자가 할 리가······.
침착하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마음이 급했다.
“이건 기회야. 우린 지금 엄청난 정보를 손에 넣은 거라고.”
“기다려봐.”
“왜 기다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지.”
택규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다가 서성전자 쪽에서 먼저 단종을 발표해버리면? 그럼 전부 나가리야.”
반트코인을 매각한 건 투자가 아니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설사 마운틴힐 파산이 현실화되지 않았더라도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WTI 매수는 자산의 일부인 3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만약 저번처럼 200만, 혹은 300만 달러만 투자할 거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종이 확실하다고 해도 그게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종 시기와 그로인해 미칠 파장에 대해 파악하고 투자방식을 정해야 한다.
난 신중하게 말했다.
“일단 며칠만 상황을 좀 지켜보자.”
* * *
다음날.
택규는 AS센터에 전화해 L6 폭발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바로 직원이 집으로 달려왔다.
서성전자 유니폼을 입고 서성전자 제품을 수리한다고 해서 모두가 서성전자 직원은 아니다. AS센터 직원 대부분은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그런데 집에 방문한 사람은 하청업체 직원이 아닌 본사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난 직원에게 물었다.
“폭발 원인이 뭔가요?”
직원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사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원은 폭발한 L6를 수거하고, 새 제품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현금 보상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보상을 다 받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이 한 가지 있었다.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인터넷에 이 사건에 관련한 글과 사진을 올리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직원은 사정을 하듯 부탁했다.
택규는 알았다고 하고 직원을 돌려보냈다.
“비슷한 사건이 꽤 많았나본데.”
직원은 불타 녹아내린 L6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실제 터진 L6는 인터넷에 올라온 것보다 몇 배는 되겠지.”
단순히 기기이상이라면, 수리나 교체로 끝나지 단종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폭발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전자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안전성 문제에 있어서 핸드폰은 특히 민감하다. 사진이나 연락처 같은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데다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다.
택규의 경우만 해도 옆에 놔둔 채 폭발했기에 망정이지 게임이나 통화 중에 폭발을 했다면 큰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폭발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면, 단종 사유로는 충분하다.
현재 서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60조.
한 해 영업이익은 30~35조 정도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CE, IM부문 등에서 골고루 발생한다.
이 영업이익 중 4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포함되어 있는 IM부문이다.
“만약 L6가 단종되면, 영업이익 40퍼센트가 날아가게 되는 건가?”
택규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중저가 라인업도 있으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전 세대 모델도 있고.”
한 해 프리미엄폰 한두 개만 내놓는 엔플과는 달리 서성전자는 대당 100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폰부터 30만 원 이하의 저가폰까지 다양한 모델을 출시한다.
국내 시장에서야 L시리즈가 주력이지만, 소득이 적은 신흥국 시장에서는 저가폰 위주로 팔린다.
이런 점들을 전부 감안하더라도 L6의 단종은 서성전자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다.
난 택규에게 물었다.
“1차 출시한 나라가 몇 군데지?”
“한국, 미국, 캐나다, 유럽이니까······ 한 10개 국 정도 되지 않을까?”
“판매량은?”
“대충 600만 대쯤 될 걸.”
정말이지 엄청나게 팔렸구나.
만약 폭발로 인해 단종이 된다면 앞으로 팔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이제까지 판 것도 전부 환불해줘야 한다.
대당 100만 원이면, 환불금액만 6조 원이다.
여기에 계속 팔았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수익과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을 고려한다면, 손실은 몇 배로 불어나게 될 것이다.
정보만 맞는다면 제대로 기회를 잡은 셈이다.
* * *
L6의 단종이 확실하다고 해도 문제는 이제부터다.
특정 주식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주식을 매수하면 그만이다. 만약 좀 더 확신이 있다면, 신용이나 미수를 끌어다 써도 되겠지.
그러나 특정 주식이 하락할 것을 예상한다면?
이 경우 투자방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텍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때를 위해 공매도가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공매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주식을 빌린 다음 파는 것과, 없는 주식을 일단 파는 것이다. 전자는 차입 공매도, 후자는 무차입 공매도다.
현재 한국에서는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되어 있고, 차입 공매도만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개인투자자도 공매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접근 방법이 제한적이라 현실적으로는 기관과 외국인만 가능하다.
하지만 OTK컴퍼니는 해외법인. 그리고 OTK컴퍼니 계좌는 골든게이트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택규의 자금은 외국계로 분류된다.
일명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법인을 세우고 외국자본으로 둔갑해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증시를 교란시키는 세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일정부분 사실이기도 하고)
공매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일반적인 주식 투자가 산 다음 파는 것이라면. 공매도는 먼저 판 다음 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수익률인데······.”
공매도의 수익률은 결코 100퍼센트를 넘을 수 없다.
100만 원짜리 주식을 공매도 해 나중에 1만원에 사서 되갚는다 치더라도 수익률은 99퍼센트에 그친다.
냉정하게 생각해 서성전자 주식이 그 정도 폭락할 가능성은 없었다. L6 단종이 현실화 되더라도 하락률은 20~30퍼센트에 그치게 될 것이다.
“130억 투자해서 잘해봐야 3, 40억 버는 건가?”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수익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
이 좋은 기회를 이 정도 수익으로 만족해야 할까?
더 큰 수익을 거둘 방법은 없을까?
열심히 고민하는데, 택규가 말했다.
“선물옵션은 어때?”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파생상품 쪽은 잘 몰라.”
“대학교에서 안 배웠어?”
“고작 1년 다녔다니까.”
선물옵션 관련 과목은 3, 4학년이나 돼야 수강한다.
“투자동아리에서는?”
“투자금이 100만 원이었는데, 해봤겠냐?”
그런 푼돈으로는 선물옵션 시장에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자금은 1250만 달러. 내 돈은 아니지만, 거액의 투자금이 수중에 있다.
이 정도면 제대로 한 번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