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3)
계절은 완연한 봄이었다.
그런데 봄 햇살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불어 닥쳤다. 시도 때도 없이 미세먼지의 위험성과 바깥 활동의 자제를 촉구하는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심한 날은 마스크 없이는 밖에 나가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약국과 편의점에서는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회사에서는 공기청정기를 풀가동하고,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포장을 보니 중국산이다.
택규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얘들은 미세먼지도 수출하고, 마스크도 수출하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 진정한 창조경제지.”
나날이 심해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친환경차가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우리가 얼른 전기차를 출시해서 전 세계에 팔아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난 오랜만에 데릴과 화상통화를 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지친 것 같은 표정이다. 머리숱도 좀 줄어든 것 같고.
OTK컴퍼니가 투자한 기업 중에는 수익을 내는 기업도 있고, 손해를 보는 기업도 있다.
가장 크게 손실이 나는 기업은 당연히 카로스다. 다른 곳에서 벌어들인 것 이상으로 까먹는 중이다.
판매마진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이후 딜러사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판매량은 급감했다. 생산해봐야 재고만 늘어나는 상황인지라 공장도 부분적으로 가동중단에 들어갔다. 생산라인이 멈추니 직원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다행히 신차개발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크라이슬러는 이미 몇 차례의 경영난을 겪으며 라인업을 대거 정리했다. 때문에 현재 판매하는 차종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차종들마저 전부 단종시키고, 카로스 브랜드로 두 종류의 신차를 내놓을 생각이다. 세단과 SUV 하나씩. 크기는 중형이고, 개발비용 절감을 위해 동일 플랫폼을 사용한다.
엔진은 기존의 것을 최대한 개량했고, 미션은 자체개발 대신 독일업체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일단 내연기관차를 먼저 출시하지만, 향후 신공장이 완공되고 배터리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면, 전기차를 중점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신차라고 해도 성능이나 연비 면에서 다른 완성차업체의 비해 크게 뛰어나지는 않다.
중요한 사실은 업계 최초로 레벨 4단계의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이미 개발이 끝났고, 실험주행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거의 다 온 것 같지만, 이를 양산차에 탑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의 성능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의 파트너는 다름 아닌 서성전자.
서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 제조기술을 갖추고 있고, 오래전부터 전장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는 카로스와 서성전자 연구진이 협력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성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실험차에 들어가는 하드웨어 비용을 합치면 10만 달러에 달합니다.”
데이터 처리를 위해 차량용AP 엑사루스 오토와 각종 반도체, 통신장비가 들어가고, 차량 전면과 측후방에는 운전자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3D카메라, 라이다(LIDAR), 레이더, 초음파 등의 각종 센서가 장착된다.
“양산과 기술개발을 통해 얼마나 비용을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네요.”
생각해 보면 첨단기술을 구현하는 하드웨어는 언제나 비쌌다. 90년대 초에는 386 컴퓨터가 500만 원이 넘었다.(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따져보면 현재 기준으로 1천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수백 배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10분의1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향후 자율주행차 양산이 본격화되면, 관련 부품의 가격도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의 이야기.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재다.
아무리 자율주행을 탑재한 차라고 해도 중형차 가격이 1억이 넘으면,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전기차든 자율주행차든 중산층이 구매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니콜라가 3만~4만 달러 대의 모델TH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거고.
부품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서성전자에게 달려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임진용 회장과 한 번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그쪽에서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겠지.
“보고서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다른 큰 문제도 하나 있습니다.”
데릴은 30분 정도에 걸쳐서 상황을 말해주었다. 듣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구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가서 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화상통화를 종료했다.
난 택규에게 말했다.
“미국에 가야겠는데.”
“나 요즘 바쁜데.”
“응?”
“프로게임단 창단식이 코앞인데, 내가 없어서야 되겠어?”
“…….”
그거 아직 하는 중이었어?
OTK컴퍼니의 프로게임단 창단은 인터넷에서 꽤나 이슈였다. 무엇보다 부대표가 관심을 갖고 직접 진행한다는 점에서 게이머들의 관심이 컸다.
OTK게임즈부터 시작해서 프로게임단 창단까지. 덕질을 하려면 이 정도 스케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중이다.
덕분에 게임 사이트에서 ‘은둔의 오타쿠’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따지고 보면 원래 회장과 부회장은 따로 움직이는 게 맞다. 둘 중 한 사람은 회사를 지켜야지.
“혼자 가기 심심한데.”
출장길에 누구를 데려가면 좋을려나?
잠시 고민하는데, 택규가 말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같이 갈 사람이면 뻔하잖아.”
* * *
난 옆 건물로 건너갔다.
골든게이트 법무팀은 외국 업무가 많은 특성 때문에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복 입은 남자들 틈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가 보였다. 난 메시지를 보냈고, 외국인 직원과 얘기하던 엘리는 폰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엘리는 다른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왔다.
“헤이, 진후. 무슨 일로 왔어요?”
방금 일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왠지 엘리의 모습이 빛나보였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여자는 멋지구나.
“일하던 도중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요.”
그러자 엘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흠, 정말이에요?”
난 웃음을 지었다.
“보고 싶은 건 사실이고, 다른 얘기도 하나 있어요.”
“뭔데요?”
“이번에 미국에 출장 가는데, 같이 갈래요?”
엘리는 눈을 깜빡였다.
“미국이요? 가려면 제시카가 허락을 해줘야 하는데.”
직장에 메인 몸이다 보니 지사장님 허락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다.
“걱정 말아요. 현주 누나한테는 미리 허락 맡았어요.”
내 말에 엘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키스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난 엘리의 허리를 감싸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일 모레 출발이니 준비해요.”
“알았어요.”
* * *
난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예약했다.
택규가 말했다.
“이 참에 전용기를 하나 사는 건 어때?”
“차가 팔려야 말이지.”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자산 가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여기저기 돈 들어가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자금흐름이 경색되기라도 한다면,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현금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걱정할 것 없어. 코인이 떡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희망이 코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올해 안에 반트코인 2만 달러 찍기를 기대해 보자.”
난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5천 달러만 넘어도 다행이겠다.”
“그 이상 갈 것 같은데.”
난 떠나기 전 택규에게 말했다.
“나 갔다 올 동안 회사를 잘 부탁해.”
“뭘 하면 되는데?”
“그냥 자리에만 앉아있으면 돼.”
사실 나도 요즘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게 대표의 역할이지.
“잘 다녀와.”
난 택규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짐을 실고 출발했다. 그랜드 데이턴 호텔로 가자 정문에 엘리가 캐리어와 함께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 입는 검은색 바지정장 대신 쇄골이 드러나는 분홍색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엘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차를 세우자 엘리는 짐을 트렁크에 실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둘만 외국에 가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요.”
일하러 가는 거긴 하지만, 마치 여행 가는 것 같이 들뜬 모습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출국 수속을 하고, 디트로이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퍼스트 클래스는 한산했다.
몇몇 승객이 있었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지라 서로 얼굴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이동이 가능해지자 엘리는 와인을 들고 내 자리로 왔다.
“비싼 돈 내고 탔으니, 와인이라도 많이 마셔야죠.”
“맞는 말이에요.”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엘리는 옷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옷 어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잘 어울린다. 이 모습 그대로 패션화보에 실려도 될 것 같다.
“너무 깊게 파인 거 아니에요? 어깨도 너무 많이 드러났고.”
사실 공항에서부터 엘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신경 쓰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속옷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엘리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한국에서도 다들 이 정도는 입어요.”
“…….”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엘리는 뭔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예뻐요.”
내 말에 엘리는 눈을 찡긋해 보였다.
“역시 진후가 보는 눈이 있네요.”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가로질렀다.
* * *
공항 입국장에는 회사에서 보낸 경호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40대 초반의 덩치 큰 백인 남자는 인사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경호팀장 로니 버틀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엑스캅 소속 경호원들이다. 골든게이트와 OTK컴퍼니에 인수된 이후, 엑스캅은 미국시장에 법인을 만들어서 기업보안 시장에 진출했다.
OTK컴퍼니가 지분을 가진 기업들은 대부분 엑스캅에 보안과 경호를 위탁했다.
우리는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나와 밖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차종은 크라이슬러300C.
카로스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합병한 뒤, 법인차를 전부 크라이슬러 차량으로 바꿨다.
참고로 한국에도 딜러사를 통해 판매하고 있지만, 잘 팔리지는 않는다. 1천만 원 넘게 할인하고 있지만, 판매량은 처참한 수준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 가슴 아프지만, 그 돈이면 차라리 은성차를 사는 게 낫다. 아니면 돈을 더 보태서 독일차를 사거나.
안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우리는 먼저 카로스 본사 근처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서 짐을 풀었다. 당연히 방은 두 개였다.
난 양복으로 갈아입었고, 엘리도 평소처럼 검은색 바지정장을 입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카로스 본사로 이동했다.
본사에 도착하자, 데릴과 경영진들은 회의 준비를 끝마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엘리를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은 골든게이트 한국지사의 변호사예요.”
엘리는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엘리 킴이에요.”
데릴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이전에 엘리를 만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이었다.
난 먼저 경영보고를 받았다.
판매량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얘기.
“신차 얘기로 넘어가죠.”
COO인 라이언은 스크린에 세단과 SUV 차량의 렌더링을 띄웠다.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유선형의 바디는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 딱히 지적할 부분도 없었다.
“양산 과정에서 몇 가지 디테일은 바뀔 수 있습니다.”
오래 봐도 질릴 것 같지 않은 디자인이다. 무엇보다 기존 크라이슬러의 색을 완전히 지웠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제 가장 중요한 얘기가 남았다.
데릴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조가 임금인상을 포함한 21개 요구안을 제시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