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0)
콰앙!
로날드는 주먹으로 단상을 내리쳤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자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로날드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빅원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정부는 이에 대한 모든 대책을 수립해 놓았습니다. 저는 즉시 캘리포니아로 가서 구조를 지휘하겠습니다!”
백악관 발표는 거기서 끝났고, 화면은 바뀌었다.
택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를 보며 물었다.
“우리 이제 산 거야?”
“우리는 살았지.”
난 TV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죽었고.”
방금 전까지 로날드가 나오던 화면은 어느새 샌프란시스코를 비추고 있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는 이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서부 끝에서 발생한 지진이 동부 끝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골든게이트 브릿지와 베이 브릿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토막토막 끊어졌다.
옆으로 기운 채 간신히 버티고 있던 고층빌딩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곳곳에서 연기와 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치 뉴스가 아니라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다. 아니, 그 어떤 재난영화도 이 정도로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째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이것을 빅원(The Big one)이라 불렀는지.
* * *
최근 두 달 동안 미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
빅원에 대한 공포로 시작된 혼란은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번졌다. 재난에 대한 불안에 정치적 불안까지 더해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모한 교수와 강진후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로날드는 꿋꿋하게 대피계획을 밀어붙였다.
전 세계가 미국을 비웃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이렇게까지 웃음거리로 전락한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타임지는 강진후를 21세기의 라스푸틴이라며 비꼬았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요승이자 거짓된 예언자였다. 그를 믿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몰락했고,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 정치평론가는 ‘강진후는 로날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내쫓았다’라고 평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탄핵에 앞장선 바우어 부통령 역시 로날드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었다.
보다 못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그들은 블루펠 화재참사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강진후와 로날드를 규탄했다.
덴버 스티븐슨(Denver Stevenson).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학생인 그는 뉴욕에서 로날드의 퇴진운동을 주도했다.
딱히 조직화된 모임은 아니고, 그저 페이스노트에 일시와 장소를 올리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았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매번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가두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마침 오늘은 탄핵안 표결이 있는 날이었다. 탄핵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하원을 통과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시위대는 열광했다.
덴버는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 미국 국민들의 승리입니다!”
“와아아!”
“로날드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강진후를 처벌하라!”
“처벌하라! 처벌하라!”
평소 대기업 광고가 나오던 대형 전광판에서는 ‘대통령 긴급발표’라는 자막이 뜨며, 뉴스 화면이 나왔다.
대통령 사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시위대뿐 아니라 길을 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전광판이나 스마트폰을 보았다.
상원 표결을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 발표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시위대는 거센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이제 로날드의 퇴진은 기정사실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함성으로 인해 TV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땅이 거세게 흔들리고, 사람들이 넘어졌다.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야?”
“방금 뭐였지?”
시위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거리는 마치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때 로날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빅원이 왔습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빅원이 왔다고? 그저 잠깐 땅이 흔들렸을 뿐인데. 혹시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꾸며낸 말은 아닐까?
그러나 이내 전광판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광경이 펼쳐졌다.
미국 내에서 가장 집값이 높고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던 도시는 완전히 붕괴했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고층빌딩들은 무너져 내렸다.
기자가 뭐라 소리쳤지만 헬기 소리와 굉음에 파묻혀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기사를 확인했다. 뉴스란 전체가 빅원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빅원이 왔다!] [샌프란시스코 M9.8 대지진 발생!] [지진관측 이후 최대 규모!]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 [캘리포니아 주정부 상황 파악 중!]사람들의 입에서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이게 현실일 리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오, 하느님!”
시위를 주도하던 덴버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모두의 비난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명만은 모든 것을 걸고 빅원을 경고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그는 확성기를 떨어트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난 대체 뭘 한 거지?”
직전까지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소리쳤다.
“이런 젠장!”
“강진후가 옳았어!”
“그 자식 말이 전부 맞았다고!”
* * *
압도적인 표차이로 탄핵안을 가결시킨 하원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은 이제 상원으로 올라갔다. 만약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는다면, 바로 표결을 단행해 탄핵시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빅원이 왔다.
방금 전까지 환호하던 하원은 침묵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닌 교수와 한국에서 온 투기꾼 말만 믿고 미국을 망가뜨렸다는 것이 탄핵사유였다.
그러나 빅원이 오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한 교수는 재난을 정확하게 예측했고, 강진후는 자신의 전 재산마저 걸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로날드 대통령은 미국을 망가뜨린 게 아니라, 미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
그런 위대한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자신들은 표를 던진 것이다!
같이 탄핵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상원은 일이 터지자마자, 태세를 전환해 즉시 탄핵안을 기각시켰다.
결국 하원만 멍청한 짓을 벌인 셈이다.
한 공화당 의원이 하원의장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원의장은 카메라가 있다는 것도 잊고 중얼거렸다.
“Mother Fuck…….”
* * *
난 빅원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 되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현실은 모든 상상을 뛰어넘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 생각하니, 두려움에 손발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빅원에 비하면 일전에 멕시코에서 있었던 두 차례 대지진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난 정말로 최선을 다했던 걸까? 더 잘할 수는 없었던 걸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한달, 아니, 보름만이라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뭐하고 있나?”
“예?”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까지 TV 안에 있던 로날드가 내 옆에 서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내 등을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
“당장 캘리포니아로 갈 테니 따라오게.”
난 이유를 묻는 대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난 택규에게 말했다.
“넌 여기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난 이쪽 일 마무리하고 갈게. 엘리와 현주 누나에 얘기 잘 전해줘. 아! 상엽 선배와 헨리한테도.”
“아, 알았어. 조심해!”
따로 짐을 챙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로날드의 뒤를 따라가는데, 보좌관은 만류했다.
“캘리포니아는 위험합니다, 대통령님. 일단 이곳에 남아 계시는 게…….”
로날드는 그에게 호통을 쳤다.
“그 위험한 곳에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구조하러 가라고 등을 떠밀 수 있겠나?”
건물 밖으로 나가자 앞에는 바우어 부통령이 서있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대체 자신이 뭔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죄송합니다. 저는…….”
로날드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사태 수습이 우선이네. 난 바로 현장으로 갈 테니, 부통령은 백악관에 남아서 상황을 지휘하게.”
그 말대로 지금은 구조에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잘잘못은 일이 끝난 뒤에 따져도 충분하다.
바우어 부통령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알겠습니다.”
십여 대의 차량은 바로 근처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이 이륙 준비를 끝마친 채 대기 중이었다.
로날드가 굳은 표정으로 먼저 비행기에 올라탔고, 다들 그 뒤를 따랐다.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 *
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면에어포스원에 타게 되는 걸까?
심지어 난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인데.
에어포스원은 하늘의 백악관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내부에 대통령실, 회의실, 의무실 등을 갖추고 있고, 전 세계와 통신이 가능했다.
회의실에는 로날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자리에 참석했다.회의장면은 전부 녹화되었다.
로날드는 나에게 물었다.
“OTK컴퍼니가 미국에 쌓아놓은 구호물자가 얼마나 되나?”
“목록과 수량은 전부 재난통합본부에 제출했습니다. 지금도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계속 생산해 수송 중입니다.”
초기 생산 분은 배로 운송했지만, 9월 중순 이후 생산된 물량은 항공운송을 택했다. 급하게 수배하는 바람에 운송비는 열 배 이상 뛰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미국 내에 있는 것은 물론 추가로 도착하는 물자까지 전부 징발하겠네. 비용은 일이 끝난 후 정산해서 지불하도록 하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을 위해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마음껏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이어서캘리포니아 공대와 화상통화를 연결했다.
화면에 모한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통통하던 노교수는 살이 쭉 빠진 모습이었다.
칼텍은 샌프란시스코와는 500킬로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그의 뒤로 보이는 연구실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책들은 바닥에 쏟아졌고, 집기는 부서진 채 나뒹굴었다.
모한 교수는 괴로운 듯 보였다. 아마도 미리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겠지. 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동안 여진이 계속 발생할 겁니다. 이번과 같은 규모는 아니어도 하나하나가 대지진급입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 있으면 수십 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올 겁니다. 대비하지 않으면 인명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됩니다.”
쓰나미는 어떤 면에서 보면, 지진보다도 더 큰 재앙이었다. 남아시아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때도 사망자 사인 대부분은 쓰나미로 인한 익사였다.
“지진학 센터는 무사한가?”
“대부분 정상 작동하고 있습니다.”
“계속 상황 체크해서 재난통합본부로 보내주게.”
“알겠습니다.”
미 전역의 모든 라디오와 방송사 채널에서 일시적으로 방송이 중단되고, 대통령 성명이 발표되었다.
화면에 나온 로날드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지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여러 차례 여진이 발생하고, 쓰나미가 몰려올 겁니다. 위험지역 주민들은 안내에 따라 가능한 빨리 대피하시기 바립니다. 대피가 여의치 않을 경우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머리를 보호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부는 재난대응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쳤습니다. 이미 군과 소방관, 그리고 민간지원자들이 구조에 투입되었고, 생존자들을 구출해낼 겁니다. 최후의 한 명을 구해낼 때까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국가가 여러분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미국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 * *
다음날.
타임지는 특별호를 발간했다.
평소와 같은 빨간색이 아닌 검은색 테두리로 장식된 표지에는 굳은 표정으로 에어포스원에 오르는 강진후의 옆모습이 실렸다.
표제는 ‘Prophet Kang(선지자 강진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