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89)
바우어 대통령은 놀라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나?”
“탄핵 사유는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테니,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로날드 대통령을 탄핵하면, 부통령님께서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마이크 바우어는 훌륭한 공화당원이자, 전통적 보수주의자이자, 독실한 복음주의자다. 튀지 않고, 성실하고, 바른 말만 하는 그는 공화당 중진들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지녔다.
공화당 내에 아무런 지지기반이 없던 로날드는 그를 파트너로 택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그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을 끌어 모아 로날드 당선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오죽하면 로날드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당내에서는 마이크 바우어, 당 밖에는 강진후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와이 주지사를 역임한 그는 이번 부통령직이 정치인생의 마지막이었다.
로날드가 재선에 실패를 하면 거기서 끝이 날 테고, 로날드가 재선에 성공한다 해도 4년 후에는 은퇴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아마 평온한 일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와이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집도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역사에 남습니다. 역대 대통령 이름을 말해보라고하면, 길에 누워있는 노숙자라도 그 자리에서 열 명은 댈 겁니다. 하지만 부통령 중 기억나는 이름이 있습니까?”
미국 대통령은 그 자체로 역사의 주인공이다. 임기 도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그 이름은 영원히 기록된다. 그러나 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즉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사이먼 주지사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 있군요. 해리 트루먼도 부통령이었죠.”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부통령이던 그를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만약 루즈벨트 대통령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은 위험하고 은밀한 유혹이었다.
바우어 부통령은 가슴 속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코 오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리……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이먼은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탄핵에 동참하도록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설득해주십시오.”
이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국익을 위해 이렇게 행동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우어 부통령은 사이먼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뭔가?”
“이번 사태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로날드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관련자들은 전부 퇴진해야 할 겁니다. 국무장관, 국방장관, 재무장관, 국토안보장관…… 그 외에도 여럿이겠죠.”
바우어 부통령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그 자리를 달라는 건가?”
사이먼은 부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공화당 힘만으로 혼란을 수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새로운 대통령을 위해 민주당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로날드가 취임 이후 계속 힘 빠진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민주당의 힘은 더 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바우어 부통령은 사이먼을 보았다. 어쩌면 다음 대선에서 자신과 그가 맞붙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면 좋은 거고, 지더라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자신은 미국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될 테니.
“공화당 대표를 먼저 만나보겠네.”
그의 말에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 * *
뉴저지 주지사 사이먼 언더우드는 민주당 상원의원들과 함께 로날드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사흘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이 미친 짓을 멈추고 대통령직을 사임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하원과 상원을 소집해 탄핵표결을 진행하겠습니다.”
의회가 강력하게 반발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탄핵안까지 꺼내든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재선거를 치르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부통령이 직을 승계한다. 따라서 탄핵에 성공해도 정권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뉴스를 본 택규가 물었다.
“미국 역사상 탄핵된 대통령이 있었나?”
“아니.”
직전까지 간 적은 몇 번 있었다.
앤드류 존슨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상원에서 기각되었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하원 통과 직전에 사임했다.
로날드는 민주당을 만나 설득하는 대신 투위터에 글을 올렸다.
[당나귀가 짖어도 코끼리는 간다!]?당나귀는 민주당, 코끼리는 공화당의 상징이다.
하원에서는 탄핵 찬성표가 과반을 넘으면 통과하는 만큼 다수인 민주당이 작정하고 표결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상원에서는 3분의2 이상의 찬성표를 필요로 한다.
하원이야 힘들지 몰라도 상원은 공화당이 결집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수많은 조언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날드 스탬퍼 대통령은 모한 교수의 잘못된 주장과 강진후의 말만 믿고 미국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그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판단력을 상실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지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국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이크 바우어 부통령이었다!
그는 사실상 공화당의 수장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공화당 중진들마저 로날드에게 등을 돌렸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공화당이 탄핵대열에 합류하며 상원과 하원 모두 가결에 필요한 표를 충분히 확보했다.
[탄핵당할 것인가, 사임할 것인가?] [21세기의 라스푸틴, 최고 권력자를 몰락시키다!] [강진후야 말로 진정한 빅원이다!] [여론조사 결과 91퍼센트가 탄핵을 압도적으로 지지!]?탄핵표결일은 9월 28일.
미국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소파에 기대 깜빡 잠들었는데, 또 다시 그곳에 서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체 나에게 뭘 보여주려 하는 걸까?
내 옆의 남자는 계속 시계를 보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통화했다.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은 길을 건넜다.
또 다시 땅이 갈라지고, 난 떨어지려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끌어당겼다.
난 그의 오른쪽 손목에 있는 롤렉스시계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발밑이 꺼지며 난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눈을 뜨니 세상은 조용했다.
택규가 물었다.
“이번엔 또 뭘 봤어?”
“빅원이 오는 시간.”
택규는 깜짝 놀랐다.
“진짜? 몇 시인데?”
“12시 47분. 빅원은 그때 올 거야.”
* * *
28일이 되었지만, 예정되었던 엔폰Z의 출시는 없었다.
출시는커녕 아예 신제품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기업들의 행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봤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아마 나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한 거겠지.
모두가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난 모한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노교수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샌 안드레아스와 헤이워드 단층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이제 정말 코앞까지 온 것 같네만……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군.]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모한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캘리포니아 공대에는 모한 교수를 해임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에 최고등급의 지진경보가 발령되었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은 공언한대로 탄핵소추를 진행했다. 이제 로날드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탄핵 당하거나, 그전에 사임을 하거나.
로날드는 지친 모습이었다. 이제까지의 열정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70대 노인처럼 보였다.
“슬슬 사임발표를 준비해야겠군,”
“잠시 기다려보죠.”
내 말에 로날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다리면 뭐가 바뀌나?”
“그전에 빅원이 올지도 모르죠.”
내가 본 게 맞다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난 계속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예정된 12시 47분이 되었다.
빅원은…… 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내가 당황하자, 로날드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왜 그러나?”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내가 본 건 손목시계의 시곗바늘이었다. 몇 분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30분이 흘러도, 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택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제대로 사고가 되지 않았다. 내가 뭘 착각한 거지? 설마 내 행동이 지진에까지 영향을 끼친 건가?
그럼 난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밖에는 시위대의 함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백악관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경찰이 막으며 한창 몸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
잠시 후, 로날드는 짧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하원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군. 잠시 후면 상원표결이 진행될 거네.”
TV에 하원의장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는 탄핵표결의 결과를 설명하며 말했다.
“대통령 탄핵은 대단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로날드 대통령께서 빨리 결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로날드는 손뼉을 가볍게 부딪치며 몸을 일으켰다.
“이걸로 모든 게 끝났군.”
빅원이 와야 할 시간은 이미 두 시간이 넘게 지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TV에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베이는 여전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제 상원 표결이 시작된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었다. 지금이 로날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난 사임발표를 하려는 로날드를 말릴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제는 돈 날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야말로 모든 게 끝장이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만약 로날드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우리 둘 다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절 원망하십니까?”
로날드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한 일이네.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평소 그는 대통령답지 않은 경박한 언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사임을 눈앞에 둔 지금, 누구보다도 대통령 같은 모습이었다.
로날드는 사임발표를 위해 기자실로 향했고, 우리 둘만 남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택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대체 뭐야? 왜 지진이 안 터지는 건데?”
“이젠 모르겠어.”
날짜를 착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이 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대체 뭐였을까?
그것은 정말로 미래였을까, 아니면 내가 만든 환상이었을까? 어쩌면 빅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대체 난 뭘 원하는 걸까?
뭔가를 얻기 위해 지진이 일어나는 게 좋은 걸까, 모든 것을 잃더라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 걸까?
난 지진이 일어나길 바라는 걸까,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 않는 걸까?
이제까지 나를 향한 비난의 말들, 지진피해를 막기 위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까?
TV화면에 로날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밑에는 ‘백악관 긴급발표’ 라는 자막이 떠있었다.
무엇 때문에 기자회견을 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게 사임발표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로날드가 사임하면 긴급조치는 전부 중단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빅원이 온다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말로 모든 게 끝났구나.
그 순간, 시야가 멀어지며 이명이 들렸다.
‘그래서…… 방금…… 샌프란…… 에 도착…….’
난 그게 횡단보다 옆에 서있던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거야?
‘이번 건은…… JP모…… 반드시…… IPO……’
설마…….
택규는 나에게 물었다.
“왜 그래?”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남자 JP모건 직원이었어.”
“그 남자가 누군데?”
“JP모건 본사는 월스트리트에 있어. 샌프란시스코에는 일 때문에 출장 온 거야.”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껌뻑거렸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동부와 서부는 시차가 세 시간이야.”
스마트폰은 GPS와 기지국을 체크해 시간이 자동으로 변한다. 하지만 아날로그시계는 용두를 돌려 직접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그가 따로 시간을 맞추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지진발생 당시 현지시간은 12시 47분이 아닌, 3시 47분이다!
설명을 들은 택규는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방금 지났는데.”
난 TV로 고개를 돌렸다.
로날드는 담담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발표문을 읽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현 시간부로 미합중국 대통령직을…….”
난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마치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땅이 흔들리고 있다!
택규는 바닥에 넘어졌고, 화면에 보이는 로날드는 단상을 붙잡은 채 비틀거렸다. 당황한 기자들의 목소리가 방송에 그대로 흘러나왔다.
“방, 방금 뭐지?”
“무슨 일이야?”
“설마……?”
보좌관이 화면 안으로 뛰어 들어와 로날드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 순간, 로날드는 들고 있던 발표문을 와락 구겼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The Big one has come.(빅원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