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35)
김재학은 의병전역을 한 뒤 재활치료를 받으며 앞으로 먹고 살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평소 꿈꾸던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음식점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장사는 자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니, 오래 서 있거나 서빙을 해야 하는 고깃집 같은 것은 하기 힘들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프랜차이즈 가맹점, 그중에서도 마이스터피자였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브랜드지만, 맛도 뛰어나고 본사가 워낙 탄탄한 곳이라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본사와 가맹계약을 하고, 상가도 계약했다. 그리고 매장 인테리어를 하는 사이 각종 교육을 받았다.
몇 개월 후, 마이스터피자 15호점이 파주에 개점했다.
치킨만큼은 아니지만, 피자시장 역시 치열하기는 마찬가지. 개점 후 몇 달 동안은 고전했으나, 본사가 유명연예인을 내세워 TV광고를 해 주고, 점주 본인도 성실하게 영업한 덕분에 조금씩 매출이 늘었다.
단골도 많아지고, 수익도 커지며 이렇게 열심히 하면 더 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본사 매니저가 가게로 찾아왔다.
매니저는 그에게 이 지역 상권이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2층짜리 매장으로 확장하라고 권유했다.
이제 장사 시작한 지 1년째고,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확장을 하려면 자리도 옮기고 인테리어도 전부 새로 해야 한다.
아직 투자한 돈도 건지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몇 차례 본사에서 높은 분들이 순차적으로 찾아와 계속 권유했지만, 그는 전부 거절했다. 몇 달 전부터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하면서 보니, 맞은편 대로변에 마이스터피자 간판이 올라가고 있었다.
* * *
김재학의 얘기가 끝나자 엘리가 물었다.
“본사에 항의는 안 해봤어요?”
“왜 안 해봤겠어요? 바로 본사로 달려가 항의했죠.”
가맹점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직영점을 내는 게 어디 있냐고 항의하자, 본사는 고객편의를 위해 직영점을 차린 거라며,행정구역이 다르니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이 달라지긴 한다. 그러나 그걸 정치인과 공무원이나 신경 쓰지, 누가 신경 쓰겠는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길 하나의 차이일 뿐이다.
똑같은 브랜드에 똑같은 음식을 팔고 있다면, 골목 안에 있는 작은 매장과 대로변에 있는 2층짜리 대형 매장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계속 찾아가서 항의하자, 아예 면담을 거부하고 경비원들을 동원해 끌어냈다고 한다.
“자꾸 이러면 나중에 다른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하니, 더 이상 항의도 못하겠더라.”
본사가 가맹점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가맹점은 본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근처에 김치찌개를 파는 가게가이미 있다고 해서 가까운 곳에다른 김치찌개 가게를 차릴 수 없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제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 차린 가게의 김치찌개는 맛도 다르고, 양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둘 중 어느 김치찌개를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는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가격에 판매한다. 때문에 보통은 자체적으로 근거리 출점을 제한한다.
물론 한 지역에 같은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강남, 홍대, 명동처럼 유동인구가 받쳐주는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가 무슨 서울 중심지나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유동인구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애초에 근거리에 직영점이 들어선 시점에서 매출하락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영점이 들어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할인이야.”
직영점은 개점하자마자 오픈행사로 전 품목 40퍼센트 할인을 실시했다.
똑같은 피자를 40퍼센트나 싸게 파는 곳이 생기니매출은 당연히 곤두박질 쳤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손님이 뚝 끊긴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할인이 끝나면 좀 나아지겠지. 매장에서 먹는 거야 다들 저쪽으로 가겠지만, 배달 매출이라도 회복되지 않겠어?”
그런데 그 오픈행사를 벌써 2개월째 하는 중이고, 언제 끝난다는 얘기도 없다. 매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본사에서 주문한 식재료들은 써보지도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런데 저렇게 팔면남는 게 있어요?”
김재학은 고개를 저었다.
“재료비야 그렇다 쳐도 임대료와 인건비 생각하면 적자라고 봐야지.”
오픈행사에 대해 따지자, 원한다면 똑같이 40퍼센트 할인행사를 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사는 적자를 보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지만, 가맹점은 그렇지 못하다.
이대로 몇 개월만 지나면,폐점해야 할 판이다.
김재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했거나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가 안 되는 거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열심히 장사 잘하고 있는데, 본사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는 손으로 오른쪽 다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다리 하나 잃고 받은 보상금을 여기에 전부 밀어 넣었어. 이런 몸으로는 어디 가서 취직은커녕 알바도 못해. 이 가게가 망하면 난 끝장이야.”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하나 같이 가맹점과의 상생을 외친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도 산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가맹점이 망하면 점주는 전 재산을 잃는 반면, 본사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뿐 다른 가맹점을 유치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본사와 가맹점은 기본적으로갑을관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는 프랜차이즈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지만, 자본주의는 1원 1표.
금융이든 산업이든 돈이 많으면 무조건 유리하다. 그래서 그냥 시장원리에만 맡겨 놓으면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이나, 가맹사업법 등이 있으나…… 언제나 그렇듯 법은 별 도움이안 되기 마련이지.
엘리는 날 보며 물었다.
“대체 한국은 왜 이런 거예요?”
“…….”
할 말이 없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은 역사가 매우 깊다. 일방적인 가맹계약 해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강요, 과도한 마케팅비 요구, 납품재료에 붙이는 통행세 등등.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가맹사업법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관련법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가?
물론 별 문제없이 상생하는 프랜차이즈도 많다. 하지만 본사를 잘못 만나면 지금처럼 가맹점주만피눈물을 흘리는 게 현실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뭐하는 곳이에요?”
“MCK그룹이야.”
“MCK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뭐하는 데에요?”
“마스터치킨 알아? 마이스터피자가 거기 계열사야.”
“마스터치킨이면…… 채명호?”
김재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이스터피자 대표이사가 채명호야.”
“…….”
설마 마스터치킨과 관련됐을 줄이야.
엘리는 내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래요?”
난 헛웃음을 지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예전 일이 좀 떠올라서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학교후배가 군대선임에게 갑질하고 있을 줄이야.
난 오래 전 학교에서 봤던 경영학과 후배를 떠올렸다. 정신 좀 차렸나 했더니, 역시 제 버릇 개 못주는구나.
어쨌거나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난 우울한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그건…….”
난 돈이 많다. 그러나 그게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돈의 힘을 이용해 부당한 형태로 마이스터피자를 공격한다면, 그건 재벌들이 흔히 하는 갑질밖에는 되지 않는다.그리고 요즘은 여론도이런 일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임진용 회장이 흥부네 부대찌개 망하게 만들겠다고 나선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내가 자동차나 배터리, IT 같은 분야는 알아도 요식업은 잘 모른다. 딱히 음식점에서 알바해본 적도 없고.
모르는 건 전문가와 상의해야겠지?
난 내 주위에 요식업 전문가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다행히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강진후 대표님.]“안녕하세요, 임수미 사장님.”
실론호텔의 주력은 호텔과 면세점. 그러나 전국에 있는 호텔에서 카페, 베이커리, 한정식, 뷔페 등을 자체적으로 운용한다.
음식점들은 하나 같이 맛집으로 유명하고, 베이커리 브랜드는 따로 프랜차이즈로 런칭했다. 그런 만큼 요식업에 대해 웬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를 좀 드렸어요.”
왠지 필요한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 것 같아 좀 미안하다.
임수미 사장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진후 대표님 부탁이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죠.]난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말했다.
“혹시 프랜차이즈 전문가 한 명만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지금 바로 보낼게요.]“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난 뒤, 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좀 있으면 전문가가 온다니까, 한 번 얘기를 들어보죠.”
* * *
한 시간 정도 후.
매장 앞에 검은색 S클래스 마이바흐가 멈췄고, 정장차림의 중년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냥 전문가만 보내주시면 되는데…….”
임수미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쪽 분야는 제가 제일 전문가예요.”
“그, 그래요?”
김재학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에 있는 프랜차이즈 피자가게에 실론호텔 사장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게 무슨 윈도우 오류 나서 문의했더니, 빌 게이츠가 컴퓨터 고치러오는 것도 아니고…….
“식사를 안 해서 그러는데, 일단 피자를 하나 만들어주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김재학은 주방으로 들어가 재빨리 피자를 만들었다.
임수미 사장은 자리에 앉아, 방금 나온 피자를 먹어보았다.
“저번에도 몇 번 먹어봤는데, 확실히 맛이 있네요. MCK그룹은 메뉴개발팀과 품질관리팀을 따로 운영할 정도로 맛과 품질을 중시하고 있어요.”
마스터치킨은 그동안 수차례 본사와 회장의 갑질문제가 터졌다.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그때뿐. 매출에 별 타격은 없었다.
착한소비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브랜드 인지도와 가격, 그리고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스터치킨 채대호 회장은 인성과는 별개로 사업수완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특히 맛과 품질에 대해서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뛰어난 맛, 체계적인 시스템, 지점마다 균일한 서비스는 마스터치킨의 최대 강점이다. 괜히 그 치열한 치킨시장에서 업계1위로 올라선 게 아니다.
김재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여러 피자 프랜차이즈 중에서 고민했는데, 먹어보니 마이스터피자가 가장 맛있어서 선택했어요.”
“오는 길에 새로 생긴 직영점을 둘러봤어요. 확실히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긴 하네요. 이 지역 유동인구를 생각한다면, 같은 프랜차이즈가 두 개나 만들어질 이유는 없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건 본사가 가맹점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고 봐도좋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본사에 무슨 이득이 있는 거죠?”
“주변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새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고, 택지개발도 한창이에요. 물론 입주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리겠지만, 이 지역 상권이 커질 것만은 분명해요. 가맹점이 못 견디고 문을 닫으면, 그 자리를 직영점이 차지하게 되겠죠.”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식으로 잘되는 가맹점을 본사가 빼앗는 일은 프랜차이즈업계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강진후 대표님께서 나서서 항의하시는 거죠.”
가맹점주 항의야 귓등으로 듣더라도 내 항의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임수미 사장은 날 보며 말했다.
“본사에서 강진후 대표님과 가맹점주의 관계를 알게 되면, 즉시 사과하고 직영점 폐쇄할 거예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어렵게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일단 본사로 가서 얘기를 해보죠.”
김재학은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몇 차례 본사에 가서 항의했다가 쫓겨났다고. 이제 면담 신청은 받아주지도 않고,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주지도 않아.”
난 걱정하는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랑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