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36)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
이 표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좁은 땅에 전 세계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수보다도 많은 치킨 가게가 존재한다. 한 골목에 치킨 파는 가게가 대여섯 개씩 늘어서 있는 모습도 그다지 신기한 광경이 아니다.
이렇게 치열한 치킨시장에서 업계 1위로 올라선 기업이 바로 마스터치킨이다.
마스터치킨의 직영점과 가맹점을 합치면 약 2300개. 더 이상 가맹점을 늘리기 힘들 정도로 골목상권 곳곳에 뻗어 있다.
가맹점들에게 원재료를 독점공급하며 얻는 마진과 로열티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이 된다. 그러나 한국 프랜차이즈들은 끝없이 가맹점을 늘리려고 하는 이상한 본능이 있다.
때문에 치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피자 시장에 진출했다.
MCK그룹 회장 채대호는 아들 채명호 앞으로 법인을 새로 만들고, 신규 피자 브랜드를 런칭했다. 그리고 가맹점을 모집하며, 대대적으로 TV광고를 했다.
10년이 넘는 프랜차이즈 노하우와 자본이 뒤를 받쳐주자, 마이스터피자는 피자업계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도심 곳곳에 직영점을 세우고, 번듯한 골목마다 가맹점이 들어섰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가맹문의가 쇄도했다.
이 분위기라면, 1년 안에 피자업계 3위까지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강의가 끝난 뒤, 채명호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대체 이놈의 대학은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 건지…….”
신입생 때 그 일이 있은 후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별로 없었다. 딱히 공부할 마음도 없고, 경영 같은 건 아버지 밑에서 배우면 그만이니.
그러자 차 안에 같이 타고 있던 경영본부장이 말했다.
“회장님께서 기대가 크십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다니는 거지.”
MCK그룹 회장 채대호는 고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치킨을 팔아 자수성가했다. 그때 못 배운 게 한이 됐기 때문인지 자식만큼은 일류대학을 나오기를 바랐다.
그러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그리고 무사히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한국대 졸업장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랜만에 복학한 학교는 별 재미도 없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신유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랄까?
그동안 숱하게 여자를 만났고 지금도 만나는 여자들이 있긴 하지만…….
‘역시 예쁘단 말이지.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진작 내 여자가 됐을 텐데.’
신유리를 떠올리는 사이 경영본부장은 옆에서 매출을 보고했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채명호는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파주에 있는 15호점 매출은 어떻게 되나요?”
경영본부장은 매출표를 찾아보았다.
“저번 달 매출 165만7300원입니다.”
이 정도면 하루에 한두 판도 제대로 못 팔았다는 뜻이다.
마이스터피자는 마스터치킨의 프랜차이즈 경영 노하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노하우 중에는 가맹점을 다루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사가 쉽게 돈을 방법 중 하나는 잘되는 가맹점에게 확장이전을 권유하며 인테리어를 다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직접 통화까지 하며 몇 차례 권유했으나, 가맹점주는 끝까지 거절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앞에다가 직영점을 차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건 일종의 본보기였다. 본사의 지시를 거부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다른 가맹점들을 길들이기 하는 것이다.
“직영점 할인행사 몇 달 더 연장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채명호는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시키는 대로 했어야지.’
차가 본사 사옥 안으로 들어가는데, 앞에서 한 남자가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 알아본 채명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차 세워요.”
* * *
마이스터피자 본사는 사당동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김재학은 걸어가며 강진후와 통화했다.
[벌써 도착했어요?]“응.”
[전 지금 출발했어요. 20분 정도 걸릴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봐요.]“알았어. 천천히 와.”
본사 사옥 앞에 도착한 김재학은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건물 1층과 2층에는 마이스터피자 매장이 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가게 안은 근처 직장인과 주부들로 넘쳐났다.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피자를 먹었다.
가맹계약과 교육을 위해 찾아왔을 때는 이 모습을 보며 기뻐했었다. 본사 직영점이 이렇게 잘된다는 것은 가맹점도 얼마든지 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강진후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앞을 서성거리는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섰다.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마이스터치킨 대표이사 채명호가 내렸다.
“어! 가맹점주님 또 오셨네요.”
교육 받을 때도 보고, 직영점 개설에 대해 항의하러 왔을 때도 본적이 있다. 마지막에는 직원들에게 끌려서 쫓겨나긴 했지만.
채명호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몸도 불편하실 텐데, 무슨 일로 말씀도 없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오신 거예요?”
“그, 그게…….”
어째서인지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채명호는 다정하게 팔을 붙잡았다.
“날도 쌀쌀한데 길에 서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
“아, 아니…….”
뭐라 할 새도 없이 그는 김재학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의 직원들은 일어나서 인사했다.
둘은 직원들과 함께 대표이사실로 올라갔다.
채명호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찾아오실 거면 미리 연락을 하시지. 앞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한테 직접 연락주세요. 아! 번호 찍어드릴테니까 핸드폰 좀 줘보세요.”
김재학은 얼떨결에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채명호는 화면을 슬쩍 살펴보더니, 번호를 찍는 대신 책상 위에 던져놓았다
“다행히 녹음은 안 켜놨네. 요즘은 뭔 말만하면 갑질이다 뭐다 사방에서 난리라서.”
“예?”
손짓을 하자 직원들은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돌변했다.
채명호는 싸늘한 눈빛으로 김재학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다리병신이 여기가 어디라고 또 기어와? 너 저번에 내가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경고했지? 한 번만 더 오면 가맹점 날려버리겠다고.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놀란 김재학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저, 저는…….”
마치 궁지에 몰린 쥐처럼 도망칠 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으나, 문은 잠겨 있고 그 앞에는 직원들이 길을 막으려는 것처럼 서있었다.
뒷걸음질을 치다보니, 어느새 등에 벽이 닿았다.
채명호는 비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그의 멱살을 붙잡고 발끝으로 의족을 툭툭 건드렸다.
“다시는 찾아올 생각 안 들게 해줄게.”
* * *
차는 사당동으로 향했다.
옆에는 택규가 함께였고, 경호원들도 동행했다. 운전은 새로 들어온 경호원이 했고, 그 옆에는 이철진 경호팀장이 앉아있었다.
내가 통화를 끝내자, 그가 말했다.
“무슨 일로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아가시나 했더니, 군 시절 선임 때문이었군요.”
“예. 친한 사람이라서요.”
“하긴 군대에서 쌓은 남자들의 우정만큼 오래가는 게 없지요.”
난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은 군대를 어디로 다녀오셨나요?”
방금 전까지 잘 말하던 그는 갑자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역시 해병대나 특전사인가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러자 택규는 궁금하다는 듯 계속 캐물었다.
“설마 북파 공작원이나 비밀요원이에요? 아니면 해외 용병?”
계속되는 물음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공익이었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공익이요?”
“이런 터미네이터 같은 몸으로 공익이 말이 돼요?”
이철진 팀장은 마치 변명하듯 말했다.
“그, 그때는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군대신검을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몸 상태가 전체적으로 별로면 3급이 나오는 반면 다른 곳이 다 괜찮더라도 특정부위 한 곳이 안 좋으면 4급이 나온다.
남들보다 건강해 보이는 운동선수들이 오히려 평범한 일반인들보다 4급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마 비슷한 케이스인 모양이다.
택규는 대단히 좋아했다.
“이야! 팀장님도 공익이셨을 줄이야. 이제 보니 제 공익 선배님이셨네요. 같은 공익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좀 빨개진 것 같다.
난 이철진 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공익 역시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예.”
얘기를 하는 사이 마이스터피자 본사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김재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먼저 와있다고 했는데…….
“화장실 갔나보지. 전화 한 번 해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안으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경호원과 함께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회사 건물과 마찬가지로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카드키를 찍고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구조다.
로비에 있던 직원은 인사를 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다른 직원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호, 혹시 강진후 대표님?”
난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혹시 지금 대표이사님 계신가요?”
“지금 계시니, 바로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난 수화기를 들려는 그를 제지하며 물었다.
“혹시 손님이랑 같이 계시지 않나요?”
“예. 방금 전에 가맹점주 한 분과 함께 올라가셨습니다.”
역시…….
난 그에게 말했다.
“바로 대표이사실로 안내해주세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머, 먼저 위에 말씀드려야…….”
그러자 이철진 팀장이 나서서 수화기를 빼앗은 다음 탁자 위에 놓여있는 카드키를 집어 들었다.
“이거 잠깐 빌립시다.”
“예, 예?”
이철진 팀장은 다른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대기하고, 위에 전화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직원이 말릴 새도 없이 우리는 카드키를 찍고 스피드게이트를 지나갔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어서 우리는 바로 올라탔다.
“대표이사실이 어디지?”
“보통 가장 높은 층에 있기 마련이지.”
난 맨 위에 있는 7층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대표이사실은 7층이 맞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잠겨 있다. 이철진 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열겠습니다.”
그는 거리를 좀 벌리더니, 발로 문을 세게 걷어찼다.
콰앙!
철문도 아니고 합판으로 된 문이다. 발길질 한 번에 문고리가 박살나며 문이 활짝 열렸다.
안쪽에 있던 청년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니, 니들 뭐야?”
채명호의 물음에 택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다, 이 씹새끼야.”
내가 갑자기 웬 욕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택규는 감격스러워했다.
“살면서 이 대사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
그래, 잘했어. 사람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이 새끼들 뭐야? 당장 끌어내!”
“알겠습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직원이 먼저 달려들었다. 이철진 팀장은 때릴 것도 없다는 듯이 직원의 멱살을 붙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켁켁!”
그 모습을 본 다른 직원들은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난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대표이사실답게 내부는 고가의 외제 가구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등을 붙인 채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는 김재학과 그 앞에서 있는 채명호다.
그는 오른손으로 상대의 멱살을 잡고 왼발로는 오른쪽 발등을 밟고 있었다. 아마 그게 의족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저러는 건 고통이 아닌 모욕을 주기 위함인가?
뒤따라 들어온 택규가 말했다.
“이 닭대가리는 아직도 똥오줌 못 가리고 바지에 질질 싸고 있네.”
그제야 나를 알아본 채명호는 당황했다.
“가, 강진후?”
난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5초 줄 테니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봐.”
채명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내가 등장할 줄은 몰랐겠지.
나도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난 김재학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다친 건 아니죠?”
“어, 어. 괜찮아.”
다행히 맞은 것 같지는 않다.
난 채명호를 보며 말했다.
“5초 지났네. 오늘은 이만 돌아갈 테니, 나중에 보자. 이 다음 일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김재학을 데리고 나오는데, 뒤에서 채명호가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선배.”
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누가 니 선배야? 전에 약속한 대로 자퇴서나 제출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