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43)
청문회 장면은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 됐다.
당연하지만, 그걸 굳이 실시간으로 챙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중요한 장면은 저녁에 뉴스로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강진후가 출석한다는 소식에 갑자기 관심이 집중되었다.
강진후가 누구인가?
21세기 가장 유명한 투자자이자, 한국을 넘어 세계최고의 부자다. 그리고 전 정권을 무너뜨리고 전 대통령을 구치소에 집어넣은 장본인이기도 하고.
국회의원들은 각오를 다졌다.
강진후를 상대하는 것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때문인지 질의하겠다는 의원들이 줄을 섰다.
뉴스채널은 국회방송을 연결해 강진후의 청문회 출석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국회방송의 시청률은 크게 치솟았다.
잠시 후,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강진후는 증인석에 태연히 앉아있었지만, 질의를 하던 이정혜 의원은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고 자유국민당 의원들 여럿이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이제까지 청문회에서 저렇게 행동한 기업인이 있었던가?
한때 한국경제를 좌지우지 했던 은성그룹 창업자 한영주 회장과 서성그룹 창업자 임영철 회장조차도 청문회장에서 대놓고 국회의원을 모욕한 적은 없었다.
한마디로 이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청문회장에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ㅅㅂ 강진후 패기보소.
-ㅋㅋㅋ미친. 진짜 역대급 청문회다.
-청문회 보다가 지릴 뻔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모인 기관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와 국회의원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막 대하는 건 괜찮지만,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건가?
-보고 있기 불편하네요. 청문회에서 저런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나이도 어린데 자기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국회의원에게 저러는 건 아니죠.
-그럼 국회의원들이 자기보다 연배 더 높은 회장들 불러다가 면박주는 건 괜찮고?
-죄 없는 사람 불러다가 지랄하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나?
-죄가 왜 없어요? 조세피난처에 회사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 이정혜 의원님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누가 좌빨 아니랄까봐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 잡네.
-뭐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이야? 이정혜 의원이 자위대 창설기념회에 참석한 건 사실인데.
-보나마나 여당의원 나오면 머리 조아리며 공손하게 대답하겠지.
-종북좌파끼리 친하게 놀듯.
* * *
점심시간이 다가와 청문회는 잠시 중단되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고 해야지. 다른 회장들은 다들 입맛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난 오후 청문회에도 나가야 하는 관계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낯선 장소에서 혼밥하려니 외롭다.
이래서 택규를 데려와야 하는 건데.
밥을 대충 먹은 다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후덕한 인상에 양복을 입은 50대 중년남자다.
다름 아닌 새정치당 장현준 원내대표다.
그는 커피를 뽑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까는 강진후 대표가 너무 과하게 행동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청문회 자리인데, 서로 선을 지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야당 의원을 면박 줬다고 여당 의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국회의원은 철저하게 국회의원 편이다. 가끔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시킬 때보면, 여야가 대체 언제 싸웠나 싶다.
청문회에는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셈법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궁극적 목표는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서 다음 총선에서 또다시 이기는 것이다.
기업인은 정치인과 적이 되고 싶어 하지 않고, 정치인 역시 기업인과 적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각본과는 다르게 행동한 거고.
“오후에는 여당의원들의 질의도 예정되어 있는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내 말에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 * *
오후 청문회가 시작됐다.
첫 타자로 나선 사람은 새정치당 김상수 의원이다.
그는 자료를 내밀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K컴퍼니는 반썸이라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죠?”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고, 투자했을 뿐입니다.”
내 말에 김상수 의원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거래소에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암호화폐를 사들이고 채굴한 다음 폭락 직전에 대부분 처분했죠? 이게 투기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암호화폐는 투기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기에 증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암호화폐가 투기판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폭등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고, 제가 조장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김상수 의원은 화를 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어 돈을 날렸는데, K컴퍼니는 단기간에 엄청난 이익을 챙겼어요! 이게 옳은 일입니까?”
“옳지 않을 건 또 뭡니까? 투자해서 돈을 번 것도 잘못입니까?”
“이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입니다! 투기!”
난 여기 나오기 전 임진용 회장에게서 받은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거기 적힌 내용들은 불법으로 사찰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고, 이미 언론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들이다.
당연히 다른 회장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건 그동안 저지른 잘못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여론도 신경 써야 하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불법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해도 된다.
“그럼 의원님께서 김포에 땅을 사셨던 것도 투기입니까?”
김상수 의원은 당황했다.
“뭐, 뭐라구요?”
설마 내가 여당의원을 상대로도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그뿐만 아니라 청문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의원님께서는 김포에 800평 정도의 땅을 샀고 이후 개발예정지에 포함되어 3년 만에 10배가 넘는 차익을 남기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건…….”
“설마 어느 장관 후보자의 말마따나 자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땅을 사신 건 아닐 테고. 의원님 말씀대로라면 이거야말로 투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김상수 의원은 소리치듯 말했다.
“그건 투기가 아니라 정당한 투자였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본인이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인 법이죠. 저도 투자였습니다. 됐습니까?”
“…….”
그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타자로 같은 당 홍승용 의원이 나섰다.
“현재 OTK컴퍼니와 K컴퍼니에는 한국대 졸업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필요한 인재를 뽑은 겁니다.”
“그 말은 인재가 한국대에만 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이러한 특혜채용이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고, 대학서열화를 조장하는 겁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러나 비록 상대가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더라도, 나는 말 같은 소리를 해야겠지.
“특혜의혹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의원님께서도 장인어른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있었죠.”
“그, 그게 무슨……?”
“3년 전 의원님께서 행정안전부를 감사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실 때, 행정안전부가 의원님의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공장 앞에 도로를 정비하라고 특별교부세를 지원하지 않았습니까? 의원님의 논리대로라면 이거야말로 다른 기업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 특혜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자 홍승용 의원은 화들짝 놀라며 부인했다.
“그건 특혜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은 자유국민당 은희재 의원이 나서서 질의했다. 그녀는 이정혜 의원의 복수라도 하듯 시작부터 쏘아붙였다.
“OTK컴퍼니는 페이스잇이라는 포르노업체에 투자하고 있는데, 맞습니까?”
이젠 투자한 기업마저 트집을 잡는 건가?
“맞습니다.”
“한국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포르노는 합법이죠.”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그녀는 자료를 꺼내 들었다.
“이건 유럽의 여성인권단체에서 포르노 배우들에 대해 조사한 자료입니다. 포르노 업체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 배우들은 마약중독, 건강악화, 정신이상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파산과 자살 비율 역시 일반인들보다 수십 배가 높아요! 증인은 억압받는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까?”
대체 자유국민당 의원이 언제부터 포르노 배우들의 인권까지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포르노 배우들은 일견 화려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깊은 어둠이 존재한다. 이는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중소 제작업체들 중에서는 조직폭력배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배우들을 빚으로 옭아매거나 협박을 해서 강제촬영을 시키거나 출연료를 갈취하는 일도 있다.
배우들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큰돈을 벌다 보니 사치를 하거나, 마약이나 도박 등에 손을 대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애초에 집안환경이 좋고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라면 굳이 이 직업을 택할 이유가 없겠지.
페이스잇 역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개선을 위해 여러 제작업체들과 협약을 맺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먼저 FBI와 연계해 업계에서 마피아나 카르텔 등을 몰아냈고, 선금이나 빚을 미끼로 강제로 촬영을 시키는 것을 금지시켰다.
또한 정기적으로 배우들의 건강을 검진하고, 저축과 연금 등을 컨설팅 해주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 재교육과 직업소개에도 힘썼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제작업체들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페이스잇이 포르노업계를 장악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하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업체는 아예 서비스에서 퇴출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일부 제작업체들은 갑질이라며 반발했지만,배우들은 두 팔을 들고 환영했다.
여기에는 토비와 제라드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포르노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 종사자들이 먼저 행복해져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페이스잇이 생긴 이후 포르노배우들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설명을 열심히 한다 한들 들어주지도 않겠지.
애초에 포르노 배우 인권이라는 프레임을 꺼낸 것도 내가 그것에 변명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먹게 할 노림수였을 것이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말싸움해서 이겨봐야 포르노 옹호론자밖에는 안 된다.
그래서 대신 다른 프레임을 꺼내들었다.
“의원님께서 여성인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의원님께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극구 반대했던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해 앞장서서 찬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일본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해야한다고 주장하셨죠. 혹시 위안부 할머니들은 의원님이 말씀하시는 여성인권에는 포함이 안 되는 겁니까?”
은희재 의원은 당황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그 얘기를 지금 왜 해요? 증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알았어요?”
“싫은데요.”
“뭐, 뭐라구요?”
난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도 의원님께서는 재작년에 대한민국 우수 여성 국회의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셨더군요. 그런 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그 심사를 의원님께서 주관하셨습니다. 이게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상을 받고, 이상이 이상문학상을 받은 것과 다를 게 뭡니까?”
“닥치세요!”
다음 차례는 다시 새정치당 의원이다.
이용수 의원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OTK컴퍼니가 파생상품 거래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어?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부정하니까 생각났는데, 의원님께서 둘째 딸을 정선여대에 부정입학시켰다는 의혹이…….”
“됐습니다! 그만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