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7)
난 2차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애초에 수천억이 넘는 자금을 혼자 운영하려고 했던 게 문제야.”
워렌 보트라고 해서 혼자 버크셔 캐셔를 키운 것은 아니고, 조지 소로스라고 해도 혼자 퀀텀펀드를 운영한 건 아니다. 지주회사든 헤지펀드든 PEF든, CEO 밑에는 최고의 팀이 존재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예 OTK컴퍼니 자회사로 투자회사를 설립하자. 우리 밑으로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거야. 내가 예지를 주축으로 투자방침을 정하면, 그것을 실행할 만한 조직을 만드는 거지.”
2대 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일 먼저 영입해야할 인재는······.”
그 순간, 택규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링!
“주주총회 중에는 핸드폰 끄라니까.”
“잠시만······ 헉!”
발신자를 확인한 택규는 깜짝 놀랐다.
“누군데?”
“우리 누나.”
이 타이밍에 먼저 연락이 올 줄이야.
난 택규에게 말했다.
“어서 받아봐.”
택규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핸드폰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옆에서 들어 보니, 이사하기 전 집으로 찾아간 모양이다.
택규는 변명하듯 말했다.
“나 어제 이사했는데.”
[주소 불러.]“여기가 삼성동······.”
택규가 주소를 부르고 나자 현주 누나는 다시 소리치듯 말했다.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누, 누나 지금 한국이야?”
뚜뚜뚜!
대답도 없이 통화가 끊겼다.
택규는 날 보며 말했다.
“누나가 지금 이쪽으로 온다는데.”
“설명 안 해줘도 돼.”
스피커 통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들었다.
“잘 됐네. 어차피 현주 누나 만났어야 했잖아.”
“그렇긴 한데······.”
택규는 뭔가 찝찝하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엄청 화가 난 것 같은데.”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빠른 편이었다.
그런 만큼 어렸을 때부터 여러 사고를 쳤고, 그때마다 뒤를 수습하는 것은 현주 누나의 몫이었다.
내가 현주 누나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택규네 집에 놀러가서였다. 그때 현주 누나는 MBA 과정을 밟고 있던 대학원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20대 중반이던 현주 누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외동으로 자란 나는 예쁘고 멋진 누나를 가진 택규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택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택규가 현주 누나에게 혼나는 모습을 본 뒤였다. 그때 이후로 어째서 누나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택규에게 물었다.
“너 뭐 잘못했어?”
“그, 글쎄.”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하나만 뽑기 힘드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택시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
투피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미녀가 택시에서 내렸다. 다름 아닌 현주 누나였다.
택규는 대문과 현관문을 열어주었고, 현주 누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옷매무새와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야! 오택규!”
택규는 깜짝 놀라며 내 뒤로 숨었다.
“왜, 왜 그래, 누나?”
그동안 현주 누나가 화내는 걸 여러 번 봤지만, 오늘처럼 화난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
“진후 너도 같이 있었어?”
“예.”
그제야 나의 존재를 알아 챈 현주 누나는 표정을 조금 풀었다.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하아.”
현주 누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줄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넓은 거실을 가득 메웠다.
담배라면 질색을 하는 택규와는 달리 현주 누나는 애연가다. 택규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몰래 꾸준히 피웠다고 한다.
“콜록콜록!”
간접흡연은 몸에 안 좋은데.
택규가 슬쩍 일어나 창문을 열려는데, 현주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앉아.”
“넵.”
택규는 재빨리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이 집은 뭐야?”
“내가 샀어. 앞으로 여기서 살려구.”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뭘? 이 집을 왜 샀는지?”
택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현주 누나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택규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 같은 모습이다.
“몰라서 물어? 계좌에 있는 수천억은 어떻게 된 거야?”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그것 때문에 온 거야?”
* * *
최근 국제금융계에서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을 뽑아보라면, 단연 L6 폭발사건이었다.
그 일로 잘 나가던 서성전자와 한국 증시는 폭락했고, 관련 파생상품을 발행한 금융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그런데 그 후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일이 터지기 전 어떤 법인이 서성전자와 KOSPI200 풋옵션을 집중적으로 매수했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법인은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에 계좌를 두고 있었고, 덕분에 아시아지사의 예금 잔액은 6억 달러 넘게 증가했다.
애널리스트고 펀드매니저고 할 것 없이 법인의 정체에 대해 떠들어댔다.
파생상품으로 이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매수주체가 OTK컴퍼니였다는 건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오현주는 그때까지도 설마 그 일이 동생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페이퍼 컴퍼니는 넘쳐난다. 알파벳을 아무렇게나 조합해서 쓰는 회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회사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이었다. 골든게이트 강남지점장으로 있던 선배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이다.
강남지점장인 유성무는 100억이 넘는 해외법인의 돈을 국내계좌로 송금하는 일을 처리하며, 현주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 계좌는 그녀가 동생을 대리해서 만들어준 것. 때문에 조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오현주는 OTK컴퍼니 계좌에 접속해보았다.
놀랍게도 계좌잔고는 6720억 원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름만 같은 다른 계좌를 잘못 열었나 싶었다. 여러 번 다시 접속해보았지만 분명히 동생의 계좌가 맞았다.
놀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눌러 거래내역을 살펴보았다. 풋옵션을 매입한 내역이 주르륵 떴다.
오현주는 회사라는 사실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오택규!!!”
* * *
현주 누나는 머리가 아픈지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얘기를 들은 나와 택규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우리에 대한 얘기가 골든게이트까지 다 퍼졌다고?
현주 누나는 택규를 보며 물었다.
“정말 니가 서성전자 풋옵션을 매집한 거야?”
“응.”
“······.”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본인에게 직접 들으니 충격이던 모양인지, 현주 누나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현주 누나는 담배를 빼물며 말했다.
“말이라고 해? 그것 때문에 지금 금감원에서 골든게이트 쪽에 자료제출 요청까지 들어온 상태야.”
“예?”
난 깜짝 놀랐다.
진짜로 조사를 시작했단 말이야?
“무, 무슨 자료제출이요?”
“이제까지 OTK컴퍼니의 거래내역과 법인 소유주에 대해 넘기래.”
“그, 그래서요? 설마 넘어간 건 아니죠?”
“법인 소유주에 대한 정보는 골든게이트도 몰라. 법인이 설립된 국가만이 알고 있지.”
조세회피처에 있는 법인 대부분은 세금회피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런 만큼 법인 소유주 보호에 대해서도 철저하다.
“줄 수 있는 거라고는 계좌 거래내역 정도인데, 고객정보는 그렇게 쉽게 넘겨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래도 금감원이 협조를 요청해오면, 거절하기 힘들지 않나요?”
현주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국내 금융사들 얘기고.”
수사기관의 말 한마디면 정보를 몽땅 넘기는 국내 금융사들과는 달리, 외국 금융사들은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가 엄격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법원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택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넘어갔다니, 다행이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어째서 금감원이 자료제출을 요청한 거예요?”
“내부자거래로 의심 중이겠지.”
“예?”
놀라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부자거래가 뭔데?”
현주 누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부자거래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금융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짓을 저지른 것이다.
난 대신 설명을 해주었다.
“투자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매매하는 것을 의미해.”
상장된 주식회사들은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그리고 공시 전에 그 정보를 이용해 매매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게 작년에 있었던 한비약품 사건이다.
제약회사인 한비약품은 항암제 기술수출이라는 호재와 신약 임상시험 중단이라는 악재가 동시에 발생했다.
한비약품 측은 전날 장마감 후 호재공시를 먼저 발표했다. 다음날 장이 열리자마자 거래량이 늘며 주가가 상승했다.
그런데 갑자기 9시 반에 악재공시를 발표했고, 수직 상승하던 주가는 그대로 고꾸라져 ?23퍼센트로 마감했다.
불과 17시간 차이로 호재와 악재를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하루 동안 주가의 등락폭이 40퍼센트가 넘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사이 정보를 입수한 특정인들과 기관투자자들이 악재공시 전에 일제히 보유물량을 매도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심지어는 공매도까지 퍼부었다. 이날 장 초반 공매도 물량은 평소 대비 10배 이상 폭증했다.
당연히 전날 발표된 호재만 믿고 매수에 나선 개인들만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언론이 주목하자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고, 미공개정보를 유출한 관계자들과 부당이득을 챙긴 수십 명을 기소했다.
“큰 죄야?”
“아무래도 금융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니까. 일단 걸리면 부당이득은 전부 몰수돼.”
한마디로 불법행위로 번 돈을 국가가 회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벌도 꽤 센 걸로 알고 있는데. 금액에 따라서는 5년 이상 징역이 나올 수도 있을걸.”
“헉!”
내 말에 택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이상한 데 끌려가 조사 받는 거야?”
난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사실 내부자거래를 입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증뿐 아니라 명확한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비약품 사건 때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기관투자자들과 공매도 세력 같은 큰손들은 다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 걸려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내부자거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현주 누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설명해봐. 누구한테 얘기를 듣고 이런 짓을 벌인 거야?”
택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가리켰다.
“얘한테.”
현주 누나는 나를 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택규 말이 맞아요. 제가 정보를 줬어요.”
“진후 넌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데?”
“그게······.”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려나?
내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현주 누나는 화를 냈다.
“니들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알아? 내부자거래는 금융범죄행위야!”
만약 내부자거래로 확인되면, 부당이익(?)이 수천억 대에 이르는 만큼 벌금 내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잘못되면 동생이 구속되게 생겼으니 화를 내는 게 당연하지.
“아니야, 누나. 일단 들어봐.”
택규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얘기는 그야말로 중구난방 뒤죽박죽이었다.
같이 일을 벌인 내가 들어도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듣다 못한 현주 누나가 말했다.
“진후 네가 설명해 봐.”
“예.”
난 그동안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