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6)
난 CEO로서 본사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주주는 강진후와 오택규.
다시 말해 거실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는 얘기다.
택규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마 내 표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
시장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특정 종목 풋옵션을 집중 매수했다는 것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적어도 주문계좌라도 좀 분산시킬 걸.
그때는 일이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지.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지 않아? 그딴 옵션을 만들어서 판 놈들이 잘못이지, 산 우리가 무슨 잘못이야?”
“원래 롱 포지션으로 돈을 벌면 칭찬을 듣지만, 숏 포지션으로 돈을 벌면 욕부터 먹고 시작해.”
“무슨 말이야?”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매수를 하는 것을 롱 포지션(Long Position)이라고 하고, 가격 하락을 기대하고 매도를 하는 것을 숏 포지션(Short Position)이라 한다.
풋옵션을 매수하고 공매도를 하는 것은 전형적인 숏 포지션.
롱 포지션은 다른 투자자들이 돈을 벌 때 같이 돈을 벌지만, 숏 포지션은 다른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입을 때 혼자 돈을 번다.
때문에 시장 참여자 누구도 좋은 시선을 보지 않는다.
“걱정할 건 별로 없지 않아?”
난 고개를 저었다.
“이번이야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다음에 또 비슷한 의심을 받게 되면?”
우연히 산 복권이 로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1등에 당첨되면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럼 앞으로 풋옵션 투자는 하지 말자는 거야?”
“하지 말자는 건 아니지만, 다른 투자방식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어차피 숏 포지션은 한계가 있어.”
“왜?”
롱 포지션이 시장의 흐름에 따르는 거라면, 숏 포지션은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다. 때문에 말 그대로 단기투자에나 적합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은 반드시 성장하니까.”
시장은 만들어진 이래 계속 성장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 전쟁, 각종 테러, 금융위기 등등.
그때마다 금융이 붕괴되고 시장경제가 끝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잠시 되돌릴 수는 있어도 누구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위기는 극복되었고, 금융과 산업은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계속 발전해나갔다.
“어차피 금융위기 정도의 충격이 오지 않는 이상 수천억을 숏 포지션에 배팅하는 것은 불가능해.”
대부분의 자산으로 롱 포지션을 구축하고, 남은 자산으로 일이 터질 때마다 숏 포지션으로 대응해도 충분할 것이다.
난 결론을 내렸다.
“OTK컴퍼니를 지주회사로 해서, 다른 기업들 지분을 인수하자.”
* * *
금융이 생겨난 이래 수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싸워왔고, 일부는 전설적인 투자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들 중에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장 투자자를 꼽아 보자면, 단연 워렌 보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워렌 보트는 어렸을 때부터 투자의 귀재로 유명했다. 30대에는 이미 자신의 투자회사를 경영할 정도였다.
이후 투자방식을 고민하던 그는 버크셔 캐셔라는 섬유회사를 통째로 인수했다. 당시 섬유는 사양 산업이었고, 버크셔 캐셔는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어서 버크셔 캐셔의 자금으로 내셔널 인피니티라는 보험회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었다.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정기적으로 보험금을 납입 받기 때문에 현금자산이 풍부했다. 그는 보험금으로 내재가치가 높은 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금융규제가 강화된 현재는 불법이나, 당시에는 관련 규제가 미비했다. 만약 일이 잘못됐으면 워렌 보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험금을 날려먹은 희대의 사기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낸 수익률은 연평균 20퍼센트 정도.
언뜻 ‘그거밖에 안 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50년 넘게 꾸준히 수익을 냈다. 그것도 복리로.
대략 3, 4년마다 자산이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현재까지 거둔 수익률은 대략 200만 퍼센트.
망해가던 섬유회사인 버크셔 캐셔는 수많은 유명 기업들의 지분을 가진 지주회사가 되었고, 현재 세계 시가총액 순위 5위에 올라있다.
엔플이나 구블 같은 IT기업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된 것이다. 그리고 버크셔 캐셔 최대주주인 워렌 보트의 재산은 90조 원에 달한다.
“그러니 우리도 성장할 만한 기업들을 골라 지분을 인수하자는 거지. 괜찮은 기업은 아예 과반의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어 버리고.”
난 2대 주주에게 브리핑을 끝마쳤다.
그러자 2대 주주는 질문을 던졌다.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일단 3년 안에 100퍼센트가 목표야.”
“그거밖에 안 돼?”
이 자식이 두 배를 우습게 생각한다.
“6700억의 두 배면 1조가 넘어.”
그 정도만 되도 우리는 한국 부자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위권에 들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포지션을 그렇게 잡고, 몇 백억 정도는 예지에 따라 그때그때 선물이나 옵션에 베팅하자는 거지. 일종의 헤지 개념으로.”
택규는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마음에 드네. 역시 옵션이 최고지.”
“······.”
옵션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거늘.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지 모른다고, 한 번 옵션 맛보더니 아주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뭐부터 하면 돼?”
“성장할 만한 기업들을 찾아내야지.”
* * *
투자방침이 결정되자, 나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먼저 코스피200을 구성하고 있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부터 자료를 뽑아 분석했다.
분석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공시자료에서 기업현황과, 개요, 펀더멘탈과 컨센서스 등을 살펴보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다가 예지가 뜨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상위 200개 종목을 전부 훑어봤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코스피 전종목을 분석하기로 했다.
ETF나 우선주, 스팩주 등을 제외하면 대략 1000개 정도였다.
시총 상위 종목들은 대부분 이름만 달으면 알 만한 대기업이나 유명기업이다. 서성, 은성, SSK, 리테, 신세기 등등.
아래로 내려갈수록 듣도 보도 못한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적이 몇 년 연속 마이너스인 데다가 거래도 거의 없어서, 조만간 상폐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기업도 있고, 심지어는 동전주(1천 원 이하로 살 수 있는 주식)도 여럿 있다.
자정이 될 때까지 코스피 전 종목을 살펴봤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난 다 읽은 종이뭉치를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택규는 또 다른 종이뭉치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번엔 코스닥이야.”
“······젠장.”
코스닥도 종목수는 코스피와 비슷하다. 상장된 기업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상장조건이 까다롭고 대기업들이 주로 몰려 있는 코스피와는 달리 코스닥은 진입장벽이 낮아 신생기업들이 주로 상장되어 있다.
그런 만큼 성장성이나 잠재력이 뛰어난 기업들이 많지만, 반대로 내실 없이 주가만 부풀려진 기업들도 많다.
옥석을 골라내기에는 코스피보다 코스닥이 더 적합하다.
“오늘은 자고 내일 계속 하자. 졸리다.”
“너 먼저 자. 난 좀 보다가 잘게. 커피 한 잔만 부탁해.”
“알았어.”
택규는 커피를 뽑아 가져다주고는 자러 들어갔다.
난 커피를 마시며 계속해서 자료를 훑어보았다.
* * *
어느새 날이 밝았다.
두 번에 걸쳐 코스피와 코스닥 종목을 전부 살펴본 나는 자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커피잔을 들었다가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내려놓았다.
한 잔 더 마실까?
대략 열 잔은 마신 것 같은데.
쓸데없는 걸로 고민하고 있는데, 2층에서 택규가 걸어 내려왔다.
“잘 잤냐?”
“뭐야? 너 밤 샌 거야?”
“이제 자야지.”
택규는 테이블에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뭉치를 보며 물었다.
“뭐 좀 알아낸 게 있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어.”
“뭔데?”
“완전히 헛다리짚고 있다는 걸.”
택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라클 아이가 그렇게 말해?”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냐?”
예지력이 생긴 뒤로 감이 발달했는지,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오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기업 인수 계획이 틀렸다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방향은 맞는데, 방법이 잘못됐다는 느낌이야.”
홀로그램으로 ‘투자종목 20선’ 같은 걸 띄워주면 편하겠지만, 이제까지 패턴으로 봐서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인수할 기업을 정한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지분을 인수하느냐도 문제야.”
블록딜(Block Deal) 형식으로 대주주 지분이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장내에서 주식을 매수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시총이 수십조씩 되는 대기업이야 별 문제 없겠지만, 시총이 1조 아래의 기업이라면 우리가 지분을 매입하는 즉시 주가가 폭등하고, 반대로 팔면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토끼가 호수에 들어가 봐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코끼리가 들어가면 물이 밖으로 넘치고 나오면 수위가 낮아지는 것처럼.
내 얘기를 들은 택규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네.”
“그러게 말이다.”
자금규모가 커지니 운용이 쉽지 않다.
택규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외국 주식은 어때? 엔플이나 구블 같이 좋은 기업들도 많잖아. 베트남이나 인도, 중국 같은 신흥 시장도 있고.”
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좋은 의견이다.
한국시장은 세계시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볼 만한 얘기야.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루트가 있어야지.”
“외국 사정을 잘 아는 금융인을 고용하면 되지 않아?”
안 그래도 큰물에서 놀려면 업계 관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다. 아무리 좋은 정보가 있더라도 우리 힘으로 그 정보를 분석하고 투자방식을 정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믿을만한 사람이······ 응?”
나와 택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너 지금 나랑 같은 생각하고 있어?”
“아마 그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