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02)
새해가 시작된 때가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은 12월로 넘어갔다.
난 택규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로 향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 가는 이유는 바로 노벨상 시상식이 있기 때문.
같은 이유로 김호민 교수 역시 스웨덴으로 향했다.
노벨상이 만들어졌을 당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속해 있었다. 이후 1905년에 노르웨이가 분리 독립하며 노벨평화상 시상권한만 가져갔다. 그래서 다른 노벨상 시상식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뤄지는 반면, 노벨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따로 이뤄진다.
“노르웨이 잘 살지?”
“응.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 정도야.”
택규는 깜짝 놀랐다.
“8만 달러? 뭐가 그렇게 높아?”
한국이 이제 간신히 3만 달러를 넘었으니, 두 배 이상 높다. 뭐, 인구는 열 배 차이니 전체 GDP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노르웨이에 연어 말고 유명한 게 있나?”
“설마 연어 팔아서 그렇게 벌었겠어? 다 석유 덕분이지.”
그 외에 관광, 제조업, 어업 등도 있지만, 역시나 자원수출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만약 북해유전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부는 누리지 못했겠지.
“노르웨이는 춥겠지?”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위도는 높으니까.”
“그런데 한국도 만만치 않게 춥잖아.”
“그렇지.”
여름은 미친 듯이 덥더니, 반대로 겨울은 미친 듯이 춥다. 뭔 날씨가 여름과 겨울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도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겨울엔 따뜻한 나라로 놀러 가야 하는데.”
전에 못 간 여행을 추진해볼까? 괌이나 하와이로?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던 택규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 정말로 노벨상 받는 거야?”
“설마 불러놓고 안 주진 않겠지.”
살면서 노벨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노르웨이로 가고 있으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알프레드 노벨은 모두가 알다시피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사업가다. 그리고 그걸 팔아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폭약은 건설용으로 쓰인 것보다 전쟁터에서 쓰인 게 훨씬 많았다.
그 사실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 노벨은 자신의 유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노벨상을 만들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덕분에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 대신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고, 그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시상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만약 노벨상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의 유산은 친척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졌을 테고, 노벨은 그저 그런 보통의 사업가들 중 한 명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을 지도 모르지.
이런 면에서 보자면 돈을 어떻게 버느냐 만큼이나,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도 대단히 중요하다.
나도 록펠러 센터나 카네기 홀 같은 거 하나 지어볼까?
“그런데 이거 나 혼자 받아도 되는 건가?”
“로날드 대통령과 모한 교수랑 공동수상이잖아.”
“아니, 너 말이야.”
본인이 알려지는 걸 싫어해서 그렇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 것은 택규 역시 마찬가지. 나와 함께 자신의 지분마저 전부 공탁했다.
그런데 혼자 받으려니 왠지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깟 노벨상보다 우리 우정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
이 자식이 하기에는 너무 멋진 대사인데.
택규는 팔짱을 꼈다.
“노벨상하니까 생각나는데, 나도 죽기 전에 OTK상 같은 거 만들어 볼까?”
“응? OTK상?”
“게임, 애니, 만화, 소설 전반에 걸쳐 시상하는 거지. OTK게임상, OTK애니상 이렇게. 상금은 한 100만 달러씩 주면 되나? 서브컬처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진짜로 하게?”
“못할 것도 없잖아. 그럼 내 이름도 노벨처럼 서브컬처 역사에 남게 되지 않겠어?”
“…….”
그냥 오타쿠상으로 불릴 것 같은데.
* * *
비행기는 오슬러 가더모엔 공항에 착륙했다.
엑스캅 경호원들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경호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공항 앞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우리는 대기 중인 차에 올라탔다.
도심으로 들어오자 곳곳에 피켓을 든 시위대의 모습이 보였다. 피켓에는 영어로 ‘화석연료 퇴출’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보였다.
원유유출 사고 이후 노르웨이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북해유전을 폐쇄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리를 다니는 차들 중에는 전기차가 많이 보였다. 노르웨이는 5년 안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각종 특혜를 주며 전기차 보급에 힘을 썼다.
그 덕에 신차 중 전기차 판매율은 30퍼센트가 넘었고,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때문에 카로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 이는 노르웨이에서도 큰 논란거리였다.
화력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친환경발전을 늘려야 한다 등등.
화력발전은 필연적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원자력발전은 발전단가가 싸고 오염물질 배출이 적지만, 방사능폐기물 처리가 문제다. 체르노빌 원전이나 후쿠시마 원전 같은 사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가장 좋은 것은 친환경 에너지인데…….
“엄밀히 말해 완전한 친환경 에너지란 없지.”
보통은 풍력, 수력, 태양열, 태양광, 지열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본다. 그러나 풍력은 엄청난 소음을 발생시키고, 블레이드에 수많은 새들이 부딪쳐 죽는다. 태양열과 태양광은 흐른 날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데다가 단위면적당 에너지 생산량이 낮아 넓은 땅을 필요로 한다. 수력은 물길을 막고 댐을 건설하는 만큼 강의 생태계를 바꿔놓는다. 지열발전은 땅속 에너지 흐름을 바꿔 지진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훗,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경파괴는 피할 수 없지.”
다만 얼마나 적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전까지는 환경을 오염시키더라도 경제발전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환경오염은 이제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 경제의 발목까지 붙잡았다.
지구 기온은 해가 지날수록 오르고 있고, 이상기후현상도 잦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미세먼지가 심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걸어다나기 힘들다.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도시 인근 공장가동을 멈춰야할 지경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한다.
과연 기술발전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 *
우리는 미국계 유명 호텔체인 그랜드파로스 호텔에 머물렀다.
난 대충 짐을 푼 다음 엘리와 통화했다.
[노르웨이는 어때요?]“도시가 아름답네요.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히잉, 저도 가보고 싶었는데.]엘리는 전에 런던에서 유학할 때 노르웨이로여행을와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일 때문이니 어쩔 수 없죠.”
연말은 원래 금융사들이 바쁜 시기다.
[거기 미녀가 많은 동네인데. 한눈팔면 안 돼요.]“설마 엘리보다 예쁜 여자가 있겠어요?”
내 말에 엘리는 소리 내서 웃었다.
통화를 끝낸 나는 씻고 휴식을 취했다. 로날드 대통령과 모한 교수는 내일 도착 예정이다.
저녁때쯤 호텔로 한 중년남성이 나를 찾아왔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 키가 크고 피부가 새하얀 전형적인 백인이다.
이름은 니콜라스 칼센.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금융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바로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운용본부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는 무려 1조 달러. 한국 국민연금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따라서 금융계에서 노르웨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국부펀드다.
운용자금의 원천은 북해유전.
갑작스레 자원의 축복을 받게 된 국가들은 대부분 흥청망청 쓰거나, 일부 지배층들이 독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자원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했고, 국부펀드를 만들어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로 구성원들끼리 합의했다.
원유는 원자재시장 중 가장 큰 시장임과 동시에 가장 왜곡된 시장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시장의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자연스레 결정된다. 그러나 그동안 석유시장은 공급자중심이었고, 오펙의 담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장이었다.
담합은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망가뜨린다. 오펙 회원국들이 멋대로 공급량을 조절해 가격을 폭등시키는 바람에 세계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어야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석유가 현대문명의 밀알이기 때문이다. 석유 없이는 어느 문명도 존속할 수 없는 만큼 아무리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했다.
북해유전 생산국들은 오펙에 속해있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오펙 회원국 담합에 의한 혜택을 같이 누려왔다.
누가 뭔 짓을 하든 유가만 오르면 좋은 것 아니겠나?
영원할 것 같던 오펙 카르텔이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카르텔 밖에서 거대한 공급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셰일암석을 파쇄해 그 안에 있는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고, 채산성도 확보했다.
미국은 세계최대 원유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었고, 오펙 회원국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베네수엘라는 몰락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아랍에미리트 등은 수출액이 크게 줄어 어려움에 처했다.
이전부터 충분히 대비를 해놓았다지만, 유가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브랜트유 수출국인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역시 마찬가지.
특히 이번 유전파손과 원유유출은 꽤나 타격이 클 것이다.
현재 북해유전은 가동중단 상태로 복구에 한창이다. 겨울은 계절적 요인으로 석유수요가 늘어나는 시기. 북해유전이 가동을 멈춘 사이 중동국가들은 신나게 두바이유를 팔아치우며 유가안정에 기여하고 있었다.
금전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원유유출로 인한 환경파괴는 더 심각한 문제다. 북해 주변국들 중에서는 노르웨이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검은 기름띠가 해안까지 뒤덮었고, 어민들은 총력을 기울여 방재작업을 펼쳤다.
이러니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났겠지.
칼센 본부장은 영국식 영어로 인사했다.
“강진후 대표님을 만나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저 역시 항상 뵙고 싶었습니다.”
1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략 80개국, 1만 여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니, 사실상 전 세계에 투자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국내 주식과 채권에도 투자하며, 서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주요주주기도 하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후, 그는 본론을 꺼냈다.
“대표님께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뭔가요?”
“첫째 제안은 OTK컴퍼니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노르웨이는 국부펀드 운용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가와 상관관계가 적은 자산에 투자하는 거죠.”
“맞습니다.”
특정 자원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자원 가격이 오를 때는 좋지만, 하락할 때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때문에 유가하락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OTK컴퍼니가 보유한 기업들은 유가와 상관관계가 적다. 특히 카로스는 전기차가 주력인 만큼 오히려 반대라 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그동안 전기차 보급에 힘을 쏟은 것만큼이나 전기차 관련 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해왔다. 니콜라, BID, CL화학 등. 그런데 요즘 그 기업들 주가가 별로 안 좋은 게 문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투자하겠다고 하면, 웬만한 기업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겠지만, 나는 좀 다르다.
“당장은 추가 투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서요.”
칼센 본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둘째로 말씀드릴 건 국부펀드 운용에 대한 자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난 속으로 깜짝 놀랐다.
OTK컴퍼니에 대한 투자제안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러나 운용자문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의외였다.
자본시장은 철저하게 1원 1표다. 따라서 돈이 많으면 무조건 유리하다. 그리고 그 돈이 내 돈인지 남의 돈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분가치가 커서 그렇지, 쓸 수 있는 현금만 놓고 보면 그리 많지는 않다.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금융계에서 내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자산도 아니고 노르웨이 국민들의 돈인 만큼, 내가 한마디 한다고 투자가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러나 중요한 지침이 될 것만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투자에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만약 국부펀드를 내 뜻대로 운용할 수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칼센 본부장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조건과 대우는 가능한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