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52)
탈원전 문제를 놓고 야당은 연일 정치공세를 펼쳤다.
민생법안이나 추경 등 국회에 산적한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탈원전 논란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본의 아니게 내가 있다.
수세에 몰린 여당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우리 쪽에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회사 앞에서 환경단체의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 환경단체에서는 모금을 받아 방송과 신문에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신문광고에는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모습과 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동물의 사진 등이 실렸다.
그 광고가 나간 뒤로 시위 참가인원이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
택규는 시위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존 원전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진행파 원자로에 투자한 것뿐이잖아. 처리도 보관도 힘든 폐연료봉을 완전히 연소시킬 수 있으니, 더 친환경적인 거 아니야?”
“환경단체는 경수로든 중수로든, TWR이든 원전은 다 안 된다는 입장이니까.”
원래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미세먼지는 아무리 심해도 건강에 나쁘겠다는 생각이 들지, 공포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사능은 유해여부를 떠나 공포가 밀려온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서는 미세먼지와 매연,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력발전이, 단 1퍼센트라도 사고 가능성이 있는 원전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사고가 100퍼센트 안 난다는 보장도 없고.
과연 언제쯤 완벽하게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에너지가 나올까?
난 김호민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
[진행파 원자로 투자라니. 생각도 못했는데.]“잘한 건지 모르겠어요.”
[잘한 거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원전이 아무 문제없는 에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원전을 없애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어. 기왕 써야 하는 거라면 최대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생각해야지.]“정부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김호민 교수는 소리 내서 웃었다.
[하하, 언제부터 정부 신경 썼다고?]“그렇긴 하죠.”
만약 정부 눈치 봤다면, 이제까지 아무 일도 못했겠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줄까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만, 한번 정해진 방향을 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무슨 일이든 하다보면 관성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특히 정치인들은 쓸데없는 고집이 있어서 말이지.]* * *
세계적으로 원전시장은 호황을 맞이했다.
누구나 지을 수 있는 화력발전소와는 달리,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을 가진 나라는 몇 개국이 안 된다.
실제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이렇게 여섯 개 국이다.
이중 네 나라는 상임이사국이고,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맨땅에서 시작해 기술을 일궈낸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이러한 강국들과 수주경쟁을 벌였다. 중국이 가격 면에서 앞설지 몰라도 한국은 기술적으로 앞서고, UAE 원전을 수주한 경험도 있다.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선언 이후 어려움을 겪었고, 여기에 OTK컴퍼니가 로사톰에 투자했다는 소식은 결정타였다.
당장 체코 원전수주는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왔고, UAE는 원전유지 관리를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바꾸겠다고 통보해왔다.
원전건설을 추진 중이거나, 계획이 있는 나라들은 다들 러시아를 주목했다.
러시아 정부 관료들과 로사톰 관계자들은 열심히 내 이름을 팔며 러시아의 원전기술과 진행파 원자로 실험을 홍보했다.
진행파 원자로가 완벽한 기술은 아닐지 몰라도, 기존 원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따라서 향후 원전시장은 경수로와 중수로가 아닌 진행파 원자로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아도 페트로프 교수팀이 TWR 실험에 성공하는 것은 정해진 사실. 퍼스트무버가 될 수 없다면, 패스트팔로워라도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이 불가능하다면, 빠르게 러시아와 손을 잡는 편이 현명하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세계 원전발주 물량을 혼자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기술표준화와 시장 확대를 위해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싶을 것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일본이다. 오카자키 총리는 직접 비소츠키 대통령에게 연락해 빠른 시일 안에 러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상엽 선배는 이번 일과 관련해 한수원 사장과 원전건설 기업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하루 전 한수원 사장은 불참을 통보했다.
“무슨 일 있대요?”
내 물음에 상엽 선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은 무슨. 정부 눈치 보고 있는 거지. 지금 높으신 분들 심기가 대단히 안 좋으니까.”
난 이제까지 투자를 하면서 딱히 정부를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박시형에게 찍혀 온갖 일을 겪었지만.
투자자라면 눈앞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움직여야 한다. 그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단지 지금 추진 중인 정책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편하게 여길 줄이야. 이런 걸 보면 OTK컴퍼니가 미국기업이라서 다행이다.
“러시아 원전에 대한 투자도 투자지만, 정부쪽에 통보 하나 없었다는 것에 대해 단단히 삐친 모양이야.”
난 어이가 없어졌다.
“뭔 애도 아니고.”
“우리 쪽에서 먼저 통보하고 상의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정책을 선회할 명분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그러면 야당에게 욕먹고 OTK컴퍼니에 등 떠밀려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잖아. 한마디로 국민들 보기에 그림이 안 좋다는 거지.”
“앞으로는 투자할 때마다 정부랑 상의라도 해야 할까요?”
상엽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 이제 정부 눈치 볼 레벨도 아닌데.”
* * *
자다가 눈을 뜨자, 옆에서 갈색 머리카락의 미녀가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엘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택규는 게임을 하다 잠들었는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얘가 제일 팔자 좋다고 할 수 있겠지.
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밖으로 나왔다. 은은한 조명이 어두운 정원을 밝혔다. 난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왜 나왔어요?”
“깨어나 보니 진후가 없어서요.”
엘리는 품이 큰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정장을 입고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런 귀여운 모습은 나만 볼 수 있겠지.
“이젠 밤에도 별로 안 춥네요.”
“그러게요.”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다.
“혼자서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리는 내가 마시던 맥주를 빼앗아서 몇 모금 마셨다.
“거짓말하면 혼나요.”
난 혼나지 않기 위해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하는 투자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 생각 중이었어요.”
예전이었다면 내가 어디에 투자를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내 투자처를 주목했고, 그로 인한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세상에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진 투자자는 나와 워렌 보트밖에 없을 것이다.
“하긴. OTK 효과라는 단어도 생겨났으니까요.”
“…….”
사람들은 그냥 오타쿠 효과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이것도 돈을 너무 많이 벌었기 때문이겠죠.”
“정말 많이 벌긴 했죠.”
자율주행전기차, 배터리, 포르노, 피자, 건축설계 등등. 현재 OTK컴퍼니의 가치는 1조 달러를 훌쩍 넘었다.
여기에 OTK게임즈가 만드는 VRMMORPG가 출시되고,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건설이 시작되고, 진행파 원자로 실험이 성공하면 앞으로 기업가치는 어떻게 변할까?
2조 달러? 3조 달러?
“이 많은 돈을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 쓸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줄 수도 없다. 예지가 보이는 한 나보다 이 돈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엘리라면 내가 왜 이 야밤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진후는 정치에는 관심 없는 거예요?”
“없진 않죠. 투표도 꼬박꼬박 하고 있고.”
경제와 정치는 항상 함께 움직인다.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실업률, 성장률 등 경제지표들이고.
“성공한 기업인들은 보통 정치권에 줄을 대기 마련이잖아요.”
“그렇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본권력은 시장을 넘어 정치권력을 탐했다.
삼두정치를 연 크라수스는 로마 최고의 부자였고, 은성그룹 창업주 한영주 회장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선에 출마했었다. 이는 은성중공업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한상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마련이지.
최근에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보다는 돈을 이용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사실상 모든 한국 재벌들이 하는 일이었다.
서성그룹의 경우 정치권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펼쳤다. 또한 장학사업을 통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들은 서성그룹에 들어와서 일하기도 하지만 정치권이나 법조계로도 진출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할 것 없이 권력 중심부에는 친서성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국가의 이익이 아닌 서성그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아무리 서성그룹이 한국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고 해도, 이를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 여러 체제가 다투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의 경제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의 역사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 말이 맞는지는 약간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현재 선진국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다.
이 둘은 국가를 유지하는 두 가지 축이다. 따라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균형을 유지하고 서로를 견제해야 한다. 자본권력이 정치권력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제가 반드시 옳은 선택을 할 거라는 확신도 없구요.”
투자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다면, 그 자체로 선이다.
그러나 정치는 선악이 분명하지 않다. 탈원전이 옳은지 그른지, 무상급식을 할지 말지, 증세가 좋은지 감세가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어렸을 때는 멋있다고 생각해서 했던 행동이 나이가 들어서는 흑역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옳다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 나중에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러시아가 미국에 알레스카를 팔았을 때만 해도 동토를 비싸게 팔았다며 좋아했었지. 반대로 미국정부는 아무 쓸모없는 땅을 샀다고 국민들에게 욕먹었고.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돈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구요.”
엘리는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거 알아요? 전 진후의 그런 점이 좋아요.”
“그래요?”
난 잠시 엘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예뻐서요.”
그러자 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뭐, 뭐예요, 갑자기? 사람 부끄럽게.”
난 남은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뭐, 문제는 저쪽에서 제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주냐는 거죠.”
* * *
허창민은 원래 노동변호사이자 인권변호사였다. 대기업들의 횡포에 맞서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했고, 독재정권과 맞선 이들을 위해 변론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한국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이던 그는 이제 대통령 자리에 올라섰다.
한국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힘으로도 자본권력을 제어하기는 힘들었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재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재벌이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이동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때 한국은 서성공화국으로 불렸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망해도 서성은 망하지 않지만, 서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서성그룹을 지배하는 임일권과 임진용은 곧 한국을 지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사라졌다. 서성그룹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서성그룹을 발밑에 둘 만큼 초거대 기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OTK컴퍼니다.
OTK컴퍼니는 이제까지의 재벌그룹과는 형태가 완전히 달랐다.
서성그룹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임진용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전체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연금을 통해 그보다 훨씬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그룹은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따라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은 여전히 자본권력을 견제하는 막강한 힘이다. 그렇기에 청문회 때 재벌들을 불러다가 호통을 칠 수 있고, 각종 비리를 털어서 구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OTK컴퍼니는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았다. 지분 80퍼센트를 가진 강진후의 지배력은 공고하다.
상장계획도 없으니, 이 지배력은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강진후가 투자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고작 5년 만에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거머쥐었다.
그의 부는 전성기 때 카네기나 록펠러를 능가했고, 사우디 왕가와 아부다비 왕가의 재산을 뛰어넘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앞으로 5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또 그 5년 뒤에는?
허창민 대통령은 몇 달 전 만났던 한 청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이 나라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