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8)
보는 투자자 037
37화.
금발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체구가 작은 남자와 갈색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뚱뚱한 청년. 둘 다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서양 오타쿠들 같은 느낌이랄까?
투자자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온 두 청년은 우리를 보며 인사했다.
“Nice to meet you. I’m Tobey Strong.”
“Glad to meet you, too. I’m Gerard Bacon.”
현주 누나와 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Nice to meet you. I am Jessica Oh from GoldenGate.”
“I am Ellie Kim. Thank you for coming all the way here.”
이어서 현주 누나가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대화는 당연히 영어로 이루어졌다.
난 두 사람을 보았다. 외국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스탠포드를 졸업한 지 몇 년 안 되었다고 하니 둘 다 20대일 것이다.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2, 30대들이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열정과 패기로 당당하게 신산업에 도전 중이다.
해외 20대들이 창업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 20대들은 고시촌에 모여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한국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창업했다 실패하면 패가망신하기 때문이다.
뭐, 나만 해도 금융권에 안정적으로 취직하는 게 목표였으니.
인사가 끝나고 나자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었다.
토비는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하며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성공하는 기업은 사업의 핵심을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노트(Face Note)는 SNS서비스부터, 게임, 광고, 메신저, VR 등 손을 안 대는 분야가 없을 정도지만, 사업의 핵심은 간단하다. 바로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핵심을 요약하지 못하고 중언부언한다면, 기업을 경영하는 당사자들도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토비는 사업의 핵심을 간단하게 말했다.
“The goal of Faceit is to be the Netplay in the pornography industry.”(저희 페이스잇의 목표는 포르노그래피 업계의 넷플레이가 되는 겁니다.)
“풉!”
엘리는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했다.
택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포르노그래피’라는 단어는 알아들은 모양이다. 다행히 현주 누나는 기획안을 읽어봤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당당한 둘과는 달리 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
그야 이 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나기 때문이겠지. 현주 누나야 그렇다 치고, 몇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여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힐끔 보았다. 엘리는 프로답게 금방 기침을 멈추고 얘기에 집중했다.
토비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페이스잇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넷플레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넷플레이(NetPlay)는 영상 제작 및 스트리밍을 하는 미국기업. 초기에는 DVD 렌탈이 주력 사업이었다. 그리고 2006년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발을 넓혔다.
이때부터 넷플레이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뭘 봐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넷플레이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추천해주었다. 초기에는 멜로를 좋아하면 멜로를, 코미디를 좋아하면 코미디를 추천해주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가입자가 늘어나고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졌다. 소비자가 시청한 컨텐츠는 데이터가 되어 서버에 저장되었고,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장르 등을 다양하게 분석해 성향에 맞는 다른 컨텐츠를 추천해주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시스템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러다가 넷플레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컨텐츠를 추천만 해줄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서 넷플레이는 자체제작까지 손을 뻗었다. 그동안 축적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수의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장르, 그에 어울리는 배우와 감독을 뽑았고, 그렇게 제작한 컨텐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현재 넷플레이의 가입자 수는 8000만 명, 시가총액은 500억 달러가 넘는다.
“현재 세계 포르노 산업의 규모는 미국이 150억 달러, 전세계적으로는 수백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불법파일까지 포함한다면, 그 열 배는 될 겁니다. 한마디로 포르노는 거대한 시장입니다.”
자꾸만 들리는 ‘포르노’라는 단어에 택규는 엄청난 흥미를 나타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난 핵심 내용만 간략하게 통역해주었다.
토비는 자신감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과거 포르노는 기술발전을 주도하며 성장했으나, 현재의 포르노 업체들은 과거의 사업만 답습하며 변화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넷플레이가 고도의 디지털화와 인공지능, 머신러닝으로 OTT(Over The Top) 시장을 장악했듯이, 포르노도 이제 새로운 형태의 유통과 제작에 나서야 합니다.”
현주 누나와 엘리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진담인지 농담인지 헷갈려하는 듯했다.
엘리가 나에게 물었다.
“이게 사실이에요?
“뭐, 사실이긴 해요.”
그냥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길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포르노는 기술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가정용 비디오 보급에는 포르노의 역할이 컸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두고 VHS와 소니의 베타맥스(Betamax)가 경쟁했다. 베타맥스는 크기와 화질 등의 면에서 VHS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소니가 성인 콘텐츠의 베타맥스 진입을 반대하자, 포르노 업계는 VHS로 포르노 비디오를 쏟아냈고, 결국 베타맥스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VHS로 통합되었다.
포르노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하드용량 증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인터넷은 포르노를 다운받기 위해 점점 빨라졌고, 하드는 포르노를 저장하기 위해 점점 용량이 증가했다.
인간은 기술을 개발하면 그걸 섹스산업에 이용하고, 섹스산업에 이용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택규가 한마디 했다.
“그것과 관련해 시게이트 CEO께서 명대사를 하셨지.”
시게이트는 대표적인 하드디스크 생산업체다.
엘리가 물었다.
“무슨 말을 했나요?”
‘시게이트 CEO’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는지, 토비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Let’s face it, We’re not changing the world. We’re building a product that helps people buy more crap and watch porn!”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말씀을 하셨을 거야.”
대충 해석하자면 ‘솔직하게 말해,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쓸데없는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사고 포르노를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을 만들 뿐입니다’ 라는 뜻이다.
CEO가 저런 말을 직접 했다는 게 좀 놀랍긴 하지만,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운영체제와 필수 프로그램을 다 해봐야 100기가도 되지 않는데, 왜 하드용량이 수 테라바이트까지 올라갔겠는가?(누군가는 그것도 부족해 주기적으로 하드를 정리하겠지)
토비는 말했다.
“저 말에 감명 받아 회사 이름을 페이스잇으로 지었습니다.”
통역을 들은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 회사명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이번에는 제라드가 나섰다. 토비가 사업전반을 컨트롤하고, 제라드가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모양이다.
“현재 저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는 사용자의 나이와 취향, 좋아하는 배우 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최근 작품을 추천해 구매 사이트로 연결시켜주고 있습니다.”
사이트는 현재 무료로 운영되고 있고, 가입자 수는 80만 명 정도.
가파르게 늘던 가입자 수는 슬슬 정체 상태지만, 한 번 가입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사이트를 방문했다. 매일 같이 방문하는 사람은 10퍼센트, 일주일 안에 다시 방문하는 사람도 40퍼센트가 넘었다.
이는 추천 시스템이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희는 넷플레이처럼 소비자의 성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해주고,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를 자체 제공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으음, 내가 고르긴 했지만 정말 별의별 스타트업이 다 있구나.
듣기에는 황당해 보이더라도 어쨌거나 업무는 업무.
현주 누나는 진지한 표정과 사무적인 어투로 제라드에게 질문했다.
“포르노 추천 서비스라는 게 충분한 유인책이 될까요? 향후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그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것 같습니까?”
제라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포르노 컨텐츠가 불법적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법으로 다운받은 컨텐츠 중 실제로 보는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하드용량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 이유는 넘쳐나는 컨텐츠 속에서 보고 싶은 것을 찾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컨텐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다 쓸데없는 컨텐츠를 소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월정액을 내고 넷플레이에 가입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입할수록, 넷플레이는 컨텐츠 공급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많은 가입자를 불러 모으는 유인책이 된다.
현주 누나는 다시 질문했다.
“넷플레이에는 영화, 드라마, 다큐, 예능 등 각종 컨텐츠가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스잇의 컨텐츠는 포르노 하나뿐인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포르노는 1인 제작이 가능한 컨텐츠입니다. 전세계에서 하루 동안 생산되는 포르노 양은 일생에 걸쳐서 봐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또한 포르노 안에는 여러 장르가 존재합니다. 가입자가 즐길만한 컨텐츠는 충분히 다양합니다.”
현주 누나와 엘리는 나를 쳐다보았다.
“저게 설득력 있는 얘기야? 사람들이 포르노를 얼마나 본다고? 필요하면 그냥 찾아서 보면 되는 거 아니야?”
“음······.”
남자들이 야동 검색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여자들이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 걸 이 자리에서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좀.
차마 말을 못하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야?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야동 속에서 볼 만한 거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 저건 세상에 꼭 필요한 서비스야.”
“농담이야?”
“무슨 농담? 저 말대로만 되면, 하드에 야동을 가득 담아둘 필요가 없는 거 아니야? 그럼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나 야동을 즐길 수 있게 될 거라고.”
현주 누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그걸 그렇게 많이 볼 리가······.”
택규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누나가 야동에 대해 뭘 알아?”
“······.”
현주 누나는 반론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야동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황하는 현주 누나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설마 동생에게 모른다고 무시를 당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여자들이 앞에 있다는 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제라드는 당당하게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포르노! 그것이 페이스잇이 그리는 미래입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말해, 서양 오타쿠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