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5)
를 보는 투자자 394 >
재선 공식출마 선언 이후 로날드의 첫 행보는 빅원 피해지역의 복구현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난 로날드와 모한 교수와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도시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지역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지만, 어떤 지역은 비교적 멀쩡해보였다.
도시재건사업에는 토지주와 건물주, 세입자 등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도시 전체를 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똑같이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다수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나머지는 강제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재산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주정부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를 바라지만, 사유지(반공유재)의 비극이라는 말처럼, 모두가 각자의 이익만을 내세운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자리를 잃은 이재민들 중 희망자들은 직업교육을 거쳐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덕분에 실업과 자립 문제도 해결되고, 공사속도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거대한 중장비들과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양복 위에 점퍼를 입고, 안전모를 쓴 로날드는 직접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인부들을 격려했다. 높으신 분이 공사현장 시찰할 때의 전형적인 복장이다. 뭐, 옆에 있는 나도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 뒤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따라다녔다. 당연하지만, 이런 시찰에 언론이 빠질 수 없지. 애초에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 아니겠나?
로날드는 현장감독관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저쪽 건물들은 글래스 커튼월 공법으로 지어지는 건가?”
“그렇습니다. 글래스로 통일감을 주되 색상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줄 생각입니다.”
“호오, 다이어그램을 좀 볼 수 있겠나?”
손을 흔들며 이리저리 지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윗동네 최고존엄 느낌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CNN이 조선중앙TV였다면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로날드 동지께서 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며, 캘리포니아가 자력갱생의 길로 나아가 혁명의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또한 감독관들을 부르시어 초고층 살림집의 형식과 형태를 지적하시며 그릇된 건축기풍과 무책임한 유리사용에 대해 심각히 비판하시었고, 건물을 비스듬하게 짓지 말고 똑바로 지어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침을 내려주시었습니다’ 라는 보도를 내보냈을 것이다.(안타깝게도 CNN은 여전히 로날드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면, 쥐뿔도 모르며 온갖 가르침을 내려주시는 윗동네 최고존엄과 달리 로날드는 건축에 대해 웬만한 전문가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부동산 재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세계 곳곳에 서있는 만큼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건설현장 곳곳에는 ‘캘리포니아를 다시 위대하게!(Make California Great Again)’라는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고, 벌써부터 건물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고존엄의 지시 아래 천리마 속도전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처럼 날림공사를 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북한은 고작 수십일 만에 고층빌딩을 지어놓고 이게 바로 공화국의 역량이라며 대외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경탄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속도전을 벌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방식은 전혀 달랐다.
기술은 필요에 의해 발명된다. 미국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가 펼쳐질 계획이 알려지자 건축학자와 과학들은 새로운 건축법을 만들어냈고,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감행했다.
건설현장에는 모듈러 건축(Modular Building), 건축용 3D프린터 등 각종 첨단 건설기법이 총동원됐다.
모듈러 건축은 건축물의 주요 부분들을 각각의 공장에서 만든 다음 이곳으로 가져와 조립하는 방식이다. 마치 레고블록을 모아다가 조립하는 것과 비슷한데, 공사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축용 3D프린터는 입력한 도면에 따라 잉크 대신 콘크리트를 쏟아내 그리듯 건물을 세웠다. 그렇게 한 곳의 공사가 끝나고 나면 옆으로 이동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이렇게 단기간에 신기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상용화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미국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했던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살아남지 않았다면, 도시를 다시 만드는 일도 불가능했을 테니까.
* * *
난 팔로알토 복구현장에서 아킷의 사장 피터 카즈요를 만났다. 일본인 같은 외모이지만, 그의 국적은 잉글랜드.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이민 2세로 리버풀 출신이다.
그가 만든 아킷은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다른 회사와 차이가 있다면,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것.
지금이야 세계적인 건축설계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그동안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다시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기업은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도약한다.
매출이 10억 원인 기업이 기술개발과 투자를 계속하면, 11억, 12억, 13억 원으로 조금씩 증가하는 게 하니라, 한참 동안 10억에 정체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20억, 30억 원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래프로 보면 우상향하는 직선이 아닌, 마치 계단 같은 형태가 된다. 때문에 이를 물리학 용어에서 따와 퀀텀 점프(Quantum Jump)라고 한다.
그 정체기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마 아킷 역시 내가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을지 모르지.
입력한 데이터가 많아지고 머신러닝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며, 아킷은 최적의 결과값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는 사람이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던 건축가들 역시 나중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킷은 인공지능을 외부 건축가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배포했고, 이에 대해 로열티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하며, 기업가치는 급속도로 치솟았고, 유니콘의 기준인 10억 달러는 진작 넘어섰다.
이제 설계에서도 인공지능은 필수요소가 됐다. 물론 이전에도 건축에는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용됐지만, 아킷의 인공지능은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비유를 하자면, 예전에 그림을 한장 한장 그려 찍던 셀 애니메이션 방식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넘어간 셈이다.
건축가들은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걱정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인공지능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었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창의성이 맞물리며, 전혀 새로운 건축물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활용했고, 누구는 기존방식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는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 * *
아킷은 팔로알토와 레드우드시티 도시재건에 있어서 총책임을 맡았다.
카즈요 사장은 본사가 있는 런던 대신 아예 캘리포니아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창업 당시 동료였던 자넬 잭슨은 자신의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났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잭슨이 떠난 자리는 다른 컴퓨터 공학자들이 메웠다.
카즈요 사장은 나에게 말했다.
“도시계획은 반도체설계와 비슷합니다. 손톱만큼 작은 칩 안에 필요한 모든 회로를 집어넣듯,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거공간, 사무공간, 공공기관, 쇼핑센터, 녹지, 교통량, 상하수도 설비 등등. 작은 것 하나만 어긋나도 나중에는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부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치기는 점점 어려워지죠.”
난 예전에 데릴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거대한 기계와도 같아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서 돌아간다. 톱니바퀴를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거나 새로운 부품을 덧대려다 잘못하면 기계가 통째로 멈추기도 있다. 그러니 처음 만들 때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
카즈요 사장은 나에게 물었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바로 사람입니다.”
당연한 대답이다.
그는 한 가지 사례를 설명해주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60년대부터 대규모로 임대아파트를 새로 지어 빈민가에 살던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을 입주시켰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새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놀랍게도 단지 전체가 슬럼으로 변했다.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났고, 제때 유지보수를 하지 않은 건물들은 방치되다시피 하여 급속도로 노후화되었다.
“빈곤과 자립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주거지원만으로는 슬럼화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후 파리시 측에서는 임대아파트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저소득층을 한곳에 모아놓는 대신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도심 곳곳에 분산시켰죠.”
“어떤 건물을 짓고, 어떤 도시를 만들든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군요.”
“누가 사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도시의 모습은 전혀 달라집니다. 아무리 좋은 도시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다행히 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았고, 그래서 도시 재건은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기존에 실리콘밸리에 있던 MS, 구블, 페이스노트 등도 신사옥 건설에 들어갔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더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 만들어졌듯, 이 도시는 더욱 아름답게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세계 첨단산업을 선도하게 되겠지.
도시 중앙에는 빅원 희생자들을 위한 거대한 추모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공원의 이름은 ‘KJN Memorial Park’.
당연히 내 이니셜을 따서 지은 것이다.
카즈요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도시가 계속 존재하는 한 대표님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여기 말고 다른 도시에도 새롭게 들어서는 도로와 공원 등에 나와 모한 교수의 이름이 붙었다.
“혹시 공원 이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계획위원회의 토론을 거쳐야겠지만, 대표님 의견이면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름을 원하십니까?”
난 한국에 있는 친구를 떠올리며 말했다.
“OTK라는 이름으로 붙여줬으면 합니다. 걔도 누구보다 고생했으니까요.”
* * *
난 카즈요 사장을 통해 도시설계에 대한 여러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리며,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사람들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전원주택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었죠.”
실제로 컴퓨터와 인터넷은 급속도로 발전하며, 이러한 미래는 금방이라도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카즈요 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점을 간과했었던 거죠.”
여러 실험에 따르면 인재들은 모여 있을 때 더욱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 때문에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재택근무를 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서로 교류하며 일하는 게 효율성이 더 높은 것이다.
화상통화를 통해 얼마든지 지구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음에도 굳이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만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는 회사뿐 아니라 도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죠. 그래서 대기업들은 점점 도시로 몰려들고, 본사사옥을 더욱 크게 짓는 추세입니다. 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직원들끼리 교류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기 위함이죠.”
여기에 산업의 변화도 한몫했다.
기업들은 정해진 일만 하는 단순 생산직이나 사무직 인력보다,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고,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기업은 인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기업을 찾아 다시 인재들이 몰려드는 일이 반복된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특기할 만한 도시입니다. 대단히 특별하죠. 세계 어느 대도시와 견주어도 그 정도 규모의 메가시티는 흔치 않습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 중 서울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뭔지 아십니까?”
“88 올림픽인가요?”
“바로 OTK컴퍼니입니다. 진짜입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시애틀하면 AMZ가 생각나는 것과 비슷한 거죠.”
난 쓴웃음을 지었다.
“통신과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도심집중화를 더욱 심화시킨 셈이네요.”
이런 걸 보면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예지력 같은 게 없다면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오랜만에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