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0)
보는 투자자 039
39화.
택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무조건 잘 될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해?”
“배고플 때 피자를 시켰는데, 늦게 도착하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알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어. 그런데 식고, 기름 흐르고, 맛대가리까지 없으면? 내가 당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런데 여기는 초벌 한 다음 배달 도중 트럭 안에서 오븐에 굽는다잖아. 그럼 배송도 빠르고 따끈따끈한 상태에서 피자가 도착할 거 아니야? 그런 피자를 한 번 맛보면 다른 데서 시켜먹을 수 있겠어?”
들으니 그럴 듯한데,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게 그렇게 차이가 나나?”
택규는 나를 꾸짖듯 말했다.
“눈 감고 먹으면, 다이스 피자와 마마존스 피자도 구분 못하는 놈이 뭘 알아?”
“······.”
사실 눈 뜨고 먹어도 구분 못한다.
마일로는 한국말을 모르는 만큼 택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못 알아들었겠지만. 직감적으로 자신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챘을 것이다.
마일로는 재빨리 말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그 돈을 재료에 아낌없이 투자할 겁니다. 신선한 유기농 재료를 구매하고, 토핑을 가득 올릴 생각입니다.”
통역을 해주자 택규는 또다시 큰소리쳤다.
“바로 그거야. 내가 이틀에 한 번은 피자를 시켜 먹어봐서 아는데, 피자의 생명은 재료와 토핑이야.”
“······.”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피자도 많이 먹어본 놈이 잘 아는 건가?
“식고 맛없는 배달피자를 따끈하고 맛있는 피자로 만드는 것. 이런 게 진정한 혁신이야! 다이스 피자나 마마존스 다 꺼지라 그래!”
처음에 같이 미팅룸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하고 있다.
정작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 아까는 쪽 팔려서, 지금은 잘 몰라서.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 피자 좀 시켜먹을걸.
현주 누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었으나, 엘리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과는 달리 피자는 미국인들의 주식이나 다름없어요. 어쩌면 작은 맛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거예요.”
M피자가 필요로 하는 투자금은 450만 달러. 투자금은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설비 구축, 주문 시스템 개선, 배달트럭 구매, 홍보 등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신산업이 넘쳐나는 시대에 피자업체에 투자하는 게 맞는 걸까?
만약 예지력으로 찾아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택규는 계속해서 강하게 주장했다.
“무조건 투자해야 돼.”
난 마지막으로 기획안을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현주 누나는 마일로에게 말했다.
“We will invest in MPizza.”
지분 매입 범위와 각종 조건에 대해 협상이 이뤄졌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협상이 끝나자, 엘리는 투자계약서를 작성했고, 양측이 서명했다.
* * *
마지막 미팅이 끝났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밤 10시다. 정신이 없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풀썩!
난 양복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옷 갈아입기도 귀찮네.”
탈진한 나와는 달리 택규는 멀쩡해보였다.
“안 힘들어?”
“앉아만 있는데, 힘들 게 뭐 있어?”
사실 몸이 힘들 건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꽤 컸다. 큰돈이 오가는 일인 만큼 쉽게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이런 일을 태연하게 처리하는 현주 누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품하며 앉아있던 이 녀석도.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한다고 생각해. 심시티 같은 거 안 해봤어?”
“······.”
안 해 봤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될 줄 알았다면, 해볼 걸 그랬나?
“자기 전에 게임이나 한 판 해야지.”
우리는 하루만 이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 투숙한다. 때문에 택규는 집에서 게임기와 노트북 등을 바리바리 챙겨왔다.
녀석은 능숙하게 게임기를 호텔 벽걸이 TV에 연결했다. 이러니 집 거실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내일도 미팅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얼른 자고 일어나 내일 일정을 준비해야 한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잠 좀 자자!”
“나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자.”
“······.”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뭔 스킬을 쓸 때마다 굉음이 울리며, TV에서 빛이 번쩍번쩍 뿜어져 나왔다.
이곳은 1박에 40만원이 넘고, 비용은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다. 현주 누나와 엘리 방이야 따로 잡아줬지만, 우리가 굳이 다른 방을 쓸 필요는 없기에 하나만 잡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방을 따로 잡을걸!
결국 난 자는 걸 포기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어디 가?”
“바람 좀 쐬고 올게.”
“다녀와.”
난 호텔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시간에도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구나.
난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나에게 수천억이 생겼고, 지금은 그 돈으로 외국 스타트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생긴 일이다.
문득 선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말했던 성공이라는 게 이런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호텔 주변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야밤에 운동을?
거리가 가까워지자 난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아는 사람이었다.
엘리는 날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이 시간에 운동하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비행기를 탔더니, 몸이 좀 찌뿌둥해서요. 자기 전에 가볍게 뛰는 중이었어요.”
가볍게 뛴 것 치고는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진후 씨는 왜 나와 있어요?”
“아! 잠이 안 와서 그냥 이러저런 생각 중이었어요.”
“무슨 생각이요?”
“······.”
헤어진 전 여친 생각?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뭐, 향후 세계경제 흐름과 앞으로의 투자 계획이라든지······.”
말을 하다 보니, 내가 지금 골든게이트에서 일하는 사람 앞에서 뭔 헛소리를 지껄이나 싶다.
난 엘리를 자세히 보았다.
짧은 갈색 숏커트, 새하얀 피부, 커다란 눈에 그린 듯이 가지런한 눈썹. 키는 170센티 초반에, 몸매는 압도적인 볼륨감을 자랑했다.
타이즈처럼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지라 시선을 두기가 마땅치 않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변호사가 아니라 서양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가 물었다.
“아직도 향후 세계경제 흐름과 앞으로의 투자 계획에 대해 생각 중이에요?”
“아, 아니에요, 생각 다 끝났어요. 이제 들어가서 자려구요.”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엘리가 말했다.
“같이 술 한 잔 할래요?”
“······예?”
이 시간에?
* * *
늦은 시간인지라 호텔 바 영업이 끝났다.
그러나 한국에는 24시간 언제든 술을 파는 곳이 곳곳에 있다.
난 파라솔 밑에 앉았다. 날씨가 춥지만, 어차피 오래 있을 건 아니니. 지금 시간에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고.
엘리는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여기요.”
“고마워요.”
난 맥주를 받아들었다.
“방에 돌아가면 혼자서 마실 생각이었는데, 진후 씨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이 시간에 나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난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운 좋게 서로 마주쳤네요.”
우리는 캔맥주를 가볍게 부딪혔다.
“한국은 처음이에요?”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이 세 번째예요. 일 때문에 온 건 처음이지만.”
“와줘서 고마워요.”
“불러줘서 제가 더 고맙죠. 제시카의 얘기를 듣고 흥미가 좀 있었거든요.”
“현주 누나······ 아니, 제시카랑은 친해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안에 비슷한 나이 대의 여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한국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비슷한 나이라고 해도 차이가 꽤 나지 않나?
난 엘리를 슬쩍 보았다. 외모만으로 나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나랑 몇 살 차이나지 않을 텐데,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이다. 이런 게 대학생과 대기업 다니는 직장인과의 차이겠지?
엘리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어요. 금융업계를 뒤집어 놨던 OTK컴퍼니가 제시카의 동생과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였다니.”
그 말에 난 적잖이 놀랐다.
“그 정도였어요?”
“워낙 큰 사건이었잖아요. 금융사들 손실도 엄청났고.”
서성전자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스마트폰 역시 국내보다 외국 판매량이 수십 배는 더 많다. 때문에 L6 폭발은 전세계적 이슈였다.
그 일로 관련 선물옵션을 발행한 금융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당장 골든게이트가 입은 손실만도 수백억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OTK컴퍼니라는 이름 모를 기업이 수억 달러의 이익을 챙겼잖아요. 그 사실이 알려지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죠. 특히 골든게이트 안에서 난리가 났어요.”
OTK컴퍼니는 만들어질 때부터 골든게이트 아시아 지사에 계좌를 개설해 사용했다. 그런데 계좌의 금액이 6억 달러 넘게 증가했다.
세상에 부자는 많아도 현금 자산을 이 정도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당연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 금융계의 이목을 끌었다고 하니 신기하다.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L6 단종을 예측한 것도 그렇고, 과감하게 옵션에 투자를 결정한 것도 그렇고, 단지 운이 좋다고 되는 일은 아니죠.”
L6 단종을 예측한 건 나였지만, 자금을 댄 것은 택규였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투자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택규였다. 그리고 중간에 상엽 선배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다.
아무리 예지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고 해도, 나 혼자서는 이렇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현주 누나가 보내준 자료 덕분에 스타트업들을 골라낼 수 있었고, 국내 투자는 상엽 선배가 발로 뛰고 있다.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면, 혼자 헤매고 있지 않았을까?
“다들 OTK컴퍼니를 일본계 투자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알아요? 그래서 제시카에게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농담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생 이름을 듣고 납득 했지만요.”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하기 좋은 이름이긴 하죠.”
덕분에 한국계 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런 걸 보면 회사 이름을 참 잘 지었단 말이지.
계속 듣다 보니 정감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난 엘리를 보며 말했다.
“한국까지 와주셔서 고마워요.”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같이 일하게 되어 제가 영광이에요.”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엘리는 빈 맥주캔을 흔들어보였다.
“한 잔 더 하고 싶지만, 내일을 생각해야겠죠?”
“이만 일어날까요?”
우리는 같이 호텔로 돌아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가 머무는 방은 20층, 엘리의 방은 21층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20층에서 멈췄다.
“그럼 내일 봐요.”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엘리가 말했다.
“아까 들은 얘기 중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지금 물어봐도 돼요?”
“예. 뭔가요?”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예요?”
“배우요?”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야동 배우 말이에요.”
“······.”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