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1)
보는 투자자 040
40화.
며칠 동안 미팅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번 미팅 상대는 중국계 스타트업.
최근 10년 사이 중국 경제는 무섭도록 성장했다. 어느새 일본을 제치고 세계경제 2위의 자리를 차지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이끄는 G2로 불리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발전에 젊은이들은 창업에 나섰고, 성공한 사람들은 속속 신흥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말은 중국에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중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항저우 출신으로 IT회사에서 일하던 샤오민과 물류회사를 다니던 야오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다. 경제 개발 이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철로가 깔렸지만, 아직도 물류의 상당 부분은 도로 운송에 의존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업체와 화주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하이에서 화물을 실고 출발한 트럭이 시안에 도착해 화물을 내리고 빈 차로 돌아오는데, 정작 시안에서는 상하이로 화물을 운송할 사람을 찾아 헤매는 식이었다. 게다가 일부 지방 도시들은 교통사정이 열악해 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이는 고스란히 화주와 운전사의 피해로 이어졌다.
둘은 화주와 운전사를 연결하고, 최적의 경로를 안내해 운송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나섰다.
샤오민은 영어로 말했다.
“이동경로에 따라 화물을 효율적으로 실을 수만 있다면 물류비를 30퍼센트 이상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운행이 줄어들면 교통 사정도 나아지고, 환경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설명을 들은 현주 누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샤오민은 열심히 대답했다.
열정적으로 나서는 샤오민과는 달리 옆자리에 앉아있는 야오는 내내 팔짱을 낀 채 불편한 기색이었다.
우리가 기획안을 검토하는 사이 샤오민과 야오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중국어인지라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가 말했다.
“Don’t worry. We’re not trying to con you.”(걱정 말아요. 사기 치려는 게 아니니)
그러자 그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백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중국어를 알아들을 줄은 몰랐나 보다.
엘리가 말했다.
“I am Hongkong Chinese.”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륙인들은 홍콩을 중국의 일부로 여긴다.
그래서 엘리는 일부러 자신을 ‘Chinese’라고 말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편해졌다.
미팅 내내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야오는 샤오민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지분 협상 끝에 투자가 결정되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의 창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쳤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이 기업들을 골라낸 시점에서 내 역할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투자금액과 지분매입을 결정하는 것은 현주 누나의 일이었다.
현주 누나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협상을 이끌어갔고, 난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집 나와서 호텔로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슬슬 이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느낌이다.
띠링띠링!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난 나는 옆 침대에서 자는 택규를 깨웠다.
“야야, 일어나.”
택규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좀만 더 자자. 오늘은 미팅도 없다며.”
“그래도 조식은 먹으러 가야지.”
내가 계속 깨우자 택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니가 언제부터 아침 챙겨 먹었어!”
“······.”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 아침은 거의 거르는 편이다. 그러나 40만 원이 넘는 방값에는 조식뷔페까지 포함되어 있다.
혼자라면 몇 번 가다가 안 갔겠지만, 현주 누나와 엘리 역시 조식을 먹기에 아침마다 넷이 모여 식사를 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난 더 자겠다는 택규를 억지로 끌고 1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식사하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외국인이다.
조금 늦었는지, 좋은 자리는 대부분 차 있었다.
“여기예요.”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창가 쪽에 현주 누나와 엘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서 앉았다.
“먼저 와 있었네요.”
엘리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요, 진후?”
“예.”
며칠 동안 같이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엘리도 이젠 편하게 나와 택규의 이름을 불렀다.
하긴, 사실상 자거나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붙어있었으니.
오기 싫다던 택규는 막상 자리에 앉자마자 알아서 음식을 챙겨왔다. 일어나기는 싫어도 일어나면 배가 고픈 모양이다.
현주 누나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간만에 휴일이네.”
난 누나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하세요?”
“방에서 일해야 돼. 처리해야 할 게 좀 있어.”
현주 누나는 우리 일을 도와주러 파견되긴 했지만,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화상 통화로 회의를 하거나,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것은 엘리 역시 마찬가지. 그래도 업무 영역이 다른지라 현주 누나만큼 정신없이 바쁘지는 않았다.
엘리는 쉬는 시간 대부분을 운동으로 보냈다.
주로 스쿼시와 수영을 한다고 하는데, 역시 이런 몸매가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다행히 내부에 헬스장, 스쿼시장, 실내 수영장, 실외 수영장, 스크린 골프장 등 각종 운동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진후는 일정 있어요?”
“없는데요.”
언제나 바쁜 두 사람과는 달리 나와 택규는 미팅이 없으면 한가했다. 이런 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차이지.
엘리는 내 말에 반색했다.
“잘 됐네요. 서울 구경을 좀 하고 싶은데, 혹시 가이드해줄 수 있나요?”
호텔은 리조트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쇼핑과 외식, 영화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심지어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카지노도 있다.(외국인 전용이라 엘리만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에 와서 계속 호텔 안에만 있었으니, 갑갑한 느낌이 들 법도 하다.
현주 누나는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데이트 신청이야, 엘리?”
“예?”
당황하는 나와는 달리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되나요? 어때요, 진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물론이에요.”
“그럼 전 올라가서 데이트 준비할 테니, 한 시간 후 로비에서 봐요.”
엘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현주 누나에게 물었다.
“저거 홍콩식 유머예요?”
그러자 현주 누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아서 생각해.”
“······.”
그렇게 말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나?
* * *
느긋하게 조식을 먹는 택규와는 달리 난 빵조각 몇 개 집어먹은 다음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씻고 나갈 준비했다.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으려나? 양복을 입는 건 좀 이상하겠지?
난 캐리어 안에 던져 넣은 청바지를 꺼내고, 최대한 깨끗한 셔츠를 입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집에서 올 때 옷을 좀 더 챙겨올 걸 그랬다.
그런데 어디를 구경하고 싶은 걸까?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원래 자기 지역 관광지는 잘 모르기 마련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난 서둘러서 방을 나왔다.
로비에는 엘리가 먼저 내려와 있었다.
“일찍 내려왔네요.”
스키니진에 흰색 니트, 그리고 위에는 베이지색 코트를 걸쳤다. 얼굴에는 옅은 화장과 함께 작은 귀걸이와 목걸이를 했다.
매일 정장 입은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색다르다. 변호사라기보다는 한국에 유학 온 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난 속으로 양복 안 입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엘리는 날 보며 물었다.
“어때요? 이상하진 않죠?”
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어울려요.”
잘 어울리는 걸 넘어 눈이 부실 정도다. 주위 남자들은 힐끔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럼 가볼까요?”
호텔에서 공항철도역까지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역까지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정문으로 나가니, 셔틀버스가 떠나는 것이 보였다.
다음 출발은 20분 후다. 기다리기 애매한 시간이다.
“택시 타야겠는데요.”
마침 택시 한 대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택시를 잡아타려는데, 그보다 앞서서 웬 경차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정문에 서있던 호텔 직원까지 놀란 표정으로 차를 쳐다보았다.
운전자는 주위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차문을 열고 당당하게 내렸다. 그는 다름 아닌 오택규.
놀라는 나에게 녀석은 차키를 내밀었다.
“이거 받게, 친우여.”
“응?”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설마 차를 빌려주겠다는 건가?
당황하는 나에게 택규는 눈을 찡긋해보였다.
“너한테만 특별히 빌려주는 거야.”
“아, 아니, 대체 왜 나한테만 특별히······.”
내가 뭘 잘못했다고?
택규의 차는 빨간색 경차. 정확히는 대후자동차를 인수한 한국GM에서 만든 스포크.
경차인 것은 상관없다. 요즘 경차들은 모양도 예쁘고, 편의장치도 잘 되어 있으니. 문제는 양쪽에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스티커다.
뭔 게임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라는데, 이것 덕분에 택규의 차는 평범한 경차에서 오택규카······ 아니, 오타쿠카로 거듭났다.
내가 차키를 받지 않고 멍하니 서있자, 녀석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어서 받아.”
“······.”
너무 부담된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타고 내릴 때마다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젠 운전까지 하라니.
나 혼자라면 모를까 엘리까지 이런 치욕(?)을 느끼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차라리 다른 차를 렌트하고 말지.
그런데 엘리가 먼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고마워요, 택규. 잘 탈게요.”
머뭇거리는 사이 거절 타이밍을 놓쳤다!
난 어쩔 수 없이 차키를 받아들었다. 운전석에 올라타려는데, 택규가 한마디 했다.
“소중한 루시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해.”
“루시가 뭐야? 차 이름이야?”
“아니. 문에 붙어있는 캐릭터 이름. 맨날 보면서도 몰랐어?”
“······.”
알고 싶지도 않았다.
* * *
경차는 쭉 뻗은 영종대교를 힘차게 달렸다.
면허가 있긴 하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다행히 금방 적응되었다. 어차피 오토 미션이라 엑셀과 브레이크만 번갈아서 밟으면 된다.
공항고속도로를 지나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타면 시내까지는 금방이다.
난 운전하며 생각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데려갈 만한 관광지로 어디가 좋으려나?
막상 서울 살면서 경복궁이나 남산타워 같은 곳도 몇 번 가본 기억이 없다. 이런 건 역시 본인에게 직접 묻는 게 좋겠지?
“가보고 싶은 데 있어요?”
“예. 있어요.”
“어딘데요?”
내 물음에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대학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