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28)
를 보는 투자자 427 >
한국대 컴퓨터공학과.
아직 술 마시기 이른 시간이라 공과대 주점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하지만 컴공과 주점은 이미 만석이었다.
주점에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주가 맛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것도 모자라 앞에는 대기열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구경 온 다른 학교 학생들은 물론, 자기 학과 일을 내팽개치고 온 학생들도 많았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 20대 초반의 백인 여성이 있었다.
한국대는 여러 나라에서 유학생을 받는다. 그런 만큼 캠퍼스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네케의 신분은 무려 노르웨이의 공주.
게다가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게임홍보대사를 했고,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를 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처음 입학했을 때도 졸업 후에는 게임 산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가뜩이나 여자가 적은 공대 특성상 안네케는 입학하자마자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다.
즐거운 표정과 발랄한 모습으로 서빙을 하는 안네케의 모습에 남학생들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컴공과 애들은 좋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컴공과 갈걸.’
‘공대 연합 MT 때도 오려나?’
‘이번 MT 무조건 간다.’
안네케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 설레는 공대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들 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직접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분이 신분인 데다가 항상 주위에 경호원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컴공과 과대인 이현웅은 안네케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물었다.
“힘들지는 않아?”
“예,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한마디에 저절로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뭘 어떻게 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친하게 지내고, 이렇게 옆에서 말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현웅은 과대로서 그녀가 졸업할 때까지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자 임무라고 여겼다.
기꺼이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가 되리라!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해.”
“알겠습니다.”
안네케가 짐을 나르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20대 중반쯤. 살짝 통통한 체격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썼다. 어디 가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남자였다.
“여기가 컴공과 주점 맞나요?”
“예. 맞습니다. 저쪽으로 줄 서시면 됩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안네케는 어디 있나요?”
‘뭔데 공주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이현웅은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왜 찾으시죠?”
“친구에요.”
“친구요?”
의심의 눈초리로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뒤에서 안네케가 반갑게 소리쳤다.
“택규 오빠!”
이현웅을 포함한 학과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오빠라니!
당연하지만, 학교에서 안네케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대체 이 남자는 누구기에 ‘오빠’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듣는 거지?
“자리 벌써 만석이네.”
“오빠 자리 맡아놨어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하필이면 정중앙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데이트라도 하듯 즐겁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택규가 손으로 안네케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 모습을 보는 공대생들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니, 저 자식이!’
‘감히 공주님께 더러운 손을 대다니!’
‘무엄하다!’
차라리 누가 봐도 멋있게 생긴 백인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놈은 대체 뭔데 저렇게 공주님과 친하게 지낸단 말인가?
지금 상황만으로도 믿기 힘든데, 이어서 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주점 안으로 한 여성이 걸어들어왔다. 작은 얼굴, 새하얀 피부, 흑단 같이 긴 생머리, 어깨가 다 드러나는 실크 셔츠에 짧은 프릴스커트.
그야말로 술이 확 깰 정도의 미녀였다.
그녀의 등장에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여자는 누구야?’
‘뭐가 이렇게 예뻐?’
‘연예인인가?’
‘혹시 다른 나라 공주님?’
안네케와 함께 있던 남자는 손을 들었다.
“여기에요!”
“아, 택규 씨.”
안경을 쓴 남자를 가운데 두고 술자리가 벌어졌다.
이현웅의 시선은 여전히 안네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웃으며 장난을 치는 공주님을 보니,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표정은 한번도 본 적 없는데.’
안네케는 여자들과는 친하게 지내도 남자 동기와 선배들과는 일정한 선을 유지했다. 괜한 스캔들이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설마 저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현웅은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어느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니가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해. 니가 듣는 오빠 호칭. 그 호칭이 내 호칭이었어야 해. 모두 다 내 것이었어야 해!’
* * *
“……라고 술 취해서 노래 부르던 놈 빼면 별 일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그냥 다른 애들이 알아서 끌고 가던데.”
별 사건사고 없이 재밌게 놀았던 잘 놀았던 모양이다.
택규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퓨어걸즈가 공연 끝내고 컴공과 주점으로 찾아왔어.”
“응. 내가 가보라고 했어.”
난 리더인 이얼에게만 투자를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라 부대표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컴공과 주점에 들러달라고 부탁하며,공주와 함께 있는 남자가 부대표라고 말해주었다.
택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얼이랑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어. 날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인사하던데.”
“잘했어.”
무명의 걸그룹을 투자로 살려냈으니, 인사 정도는 받아도 되겠지.
“아! 몰래 연락처도 주고 갔어.”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뭐? 연락처를 왜 줘?”
“나도 몰라. 꼭 연락 달라던데.”
“…….”
이거 설마 하렘 멤버가 한명 더 늘어난 건 아니겠지?
* * *
축제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듯, 우리 역시 다음날 출근해 일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기업들은 인수를 끝마쳤고, 아킷은 데이터센터 설계를 진행 중이다.
단일 데이터센터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위치는 유치를 원하는 도시들의 신청을 받아 경쟁을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등이 큰 관심을 보였다.
OTK컴퍼니의 데이터센터 건립에 AMZ와 MS는 강하게 견제하는 분위기였다.
새만금을 둘러본 투자회사들은 투자 규모를 더 늘리기로 했다. 사실 허허벌판에 건물을 올리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부동산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분양이나 공실을 떠안게 된다.
그러나 이미 글로벌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건물과 공장을 만들고 있는 상황.
돈은 안 될 일도 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정도로 자본이 쏟아지는 이상 실패하기가 힘들었다.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신종훈 수사관이 갑자기 양심고백을 하겠다며 언론에 폭로를 한 것이다.
이 폭로로 인해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뭐야? 청와대가 임진용을 잡아넣으라고 지시했다고?
-이게 좌파정부 클래스지.
-결국 재벌 죽이기였네.
-뭔 개소리야? 임진용은 죄를 지어서 구속된 건데. 없는 죄 만들어서 구속한 것도 아니고.
-ㅂㅅ아, 그걸 청와대가 지시한 게 문제라고.
-허창민이 지시했네~ 임진용 죽이라고~
-ㅋㅋ 지들이 야당일 때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본다고 뭐라고 하더니. 정권 잡으니까 아예 수사를 지시하네.
-이거 탄핵감 아님?
-당장 임진용 회장님을 석방해라!
-이 기회에 역대 가장 청렴한 박시형 전 대통령님도 같이 석방해라!
경제청문회 이후 한동안 조용하던 자유국민당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연나경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내회의에서 말했다.
“신종훈 수사관의 폭로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양심선언입니다. 이는 명백한 좌파정부의 재벌 죽이기이자 국정농단이고, 검찰은 즉시 관련자를 철저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합니다. 또한 신종훈 수사관은 비리를 캐낸 공익제보자인 만큼,법에 따라 마땅히 보호해야 합니다. 저희 자유국민당은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이들을 보호하고, 끝까지 싸워나가겠습니다.”
다른 자유국민당 의원들 역시 거세게 정부를 성토했다.
법리적으로 봤을 때 임진용 회장의 구속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전에 청와대와 연락이 오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법부의 판단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은 기소청탁이나 사법거래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는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신종훈 조사관은 뇌물과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이는 공익제보가 아니라 자신의 비위행위를 덮기 위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검찰은 독립적 기관이고 수사에 있어서 청와대의 어떠한 지시나 교감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문대석 검찰총장은 기자들 앞에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입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헛소리를 언론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 * *
난 서성그룹 권영철 실장을 만났다.
그는 은퇴한 김명수 실장의 뒤를 이은 인물로 임진용 회장의 대학과 유학시절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난 그에게 물었다.
“신종훈 조사관의 폭로가 사실인가요?”
폭로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지만, 서성그룹은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룹총수가 잡혀 들어가 있는 만큼 어느 쪽에도 밉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권영철 실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다.
일명 무죄추정원칙이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불구속수사를 하되, 범죄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만 구속수사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회장님들은 각종 이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금융범죄와 경제사범에 대단히 관대한 한국의 특성도 한몫했다.
칼로 사람을 죽이면 무기징역을 받지만, 돈을 빼앗아 수십 명을 자살시키고 수백 가정을 파탄시키고, 수천 명을 빚더미에 앉게 하는 건 기껏해야 몇 년 형이고, 운 좋으면 집행유예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회장님들이 주로 저지르는 범죄는 폭행이나 상해가 아닌, 횡령이나 배임.
증거가 불충분하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증거가 확실하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수사를 한다.
이번 사건 역시 역으로 증거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굳이 구속수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서성그룹은 새만금을 비롯해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는 상황.
정권에도 부담이 되는 만큼 불구속수사를 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임진용 회장은 구속됐다.
“서성그룹이 이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불구속수사를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차피 1심에서 징역형은 피할 수 없지 않았나요?”
“1심에서 징역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구속되는 건 아니죠.”
다시 말하지만, 대법원에서 확정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다. 때문에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이후에도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구속을 미루기도 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피고의 방어권을 이유로 1심 이후에도 구속을 피하고, 2심에서 감형을 받아 집행유예로 끝나는 전략을 짰습니다. 하지만 직전에 갑자기 검찰의 기류가 변했습니다.”
그 계기가 청와대라는 건가?
“임진용 회장님이 구속된 것은 죄가 있기 때문 아닙니까?”
내 말에 권영철 실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대체 언제부터 검찰이 재벌 회장에게 원칙을 적용했습니까?”
* * *
검찰은 계속 출석요구를 했지만 신종훈 수사관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럼에도 잠적해 있던 그는 한 에이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소리쳤다.
“문제는 임진용이 아닙니다. 이 정부는 강진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임진용 회장을 구속시킨 것도 강진후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