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38)
를 보는 투자자 437 >
그랜트 데럴 로스차일드.
스스로의 힘으로 거동조차 힘들어 보이는 이 노인이 반세기 넘게 로스차일드를 이끌어 왔다는 건가?
그의 몸은 늙고 병들어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그래서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한건가?
로스차일드는 단순한 부호가 아닌 거대한 금융그룹이다. 설사 장남이라고 해도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체적 장애를 넘어설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예를 들어 나와 마찬가지로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는 또렷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난 그에게 되물었다.
“로스차일드 경께서는 어떤가요?”
난 그에게 예지력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가 나와 같은 것을 봤다면, 그동안 일어난 각종 사건에서 나와 똑같이 투자했을 것이다. 아니, 로스차일드인 만큼 나보다 훨씬 잘했겠지.
그러나 브렉시트 때 외환시장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것도 나고, 러스트벨트에 투자해 로날드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나다.
아무리 비밀리에 움직였더라도 금융시장에서 누군가 나만큼 수익을 냈다면,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겠지.
그의 눈빛에서 강한 동경과 시샘이 느껴졌다.
“그대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군. 평생을 찾아 헤매도 얻지 못한 것인데.”
그는 순수한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탐이 나는 걸까?
더 이상은 말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자세한 얘기는 이 아이에게 듣게.”
백인남성은 다시 휠체어를 몰고 나갔다.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는 책상 밑의 서랍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벽에 있는 책장이 옆으로 열리며, 승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오세요.”
그 모습에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영국인들은 왜 이렇게 고전적인 걸 좋아해?
* * *
지하실답게 창문은 없었고, 천장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늘어선 책장에 책이 꽂혀있는 모습은 비슷했다. 하지만 방금 전 있던 곳이 서재라면, 이곳은 마치 기록보관소 같은 느낌이다.
제습기와 통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온도와 습도를 면밀하게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뭐하는 곳이지?
내가 묻기 전 그녀가 말해주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에요.”
이 많은 기록들은 전부 로스차일드의 선조들이 남긴 것인가?
“당신은 몰라요. 그동안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우리 가문은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박해 받으며 떠돌았어요.”
로스차일드가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때부터다. 하지만 가문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을 것이다.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
“알고 있네요.”
“공부를 좀 했죠.”
일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다.
서기 135년 코크바의 반란 실패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의 예루살렘 입성을 금지시켰고, 그들은 고향을 떠나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흩어졌다.
다른 민족이었다면, 진작 소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경제공동체이자 종교공동체. 때문에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박해받으며 떠돌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와 신념을 지켜냈다.
유럽 전역에 퍼진 유대인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고,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가 돈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각 지역의 동포들 덕분에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접했고, 이를 사업에 활용했다.
점차 경제의 중심이 상공업 쪽으로 옮겨가며, 유대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언제나 그렇듯 부자는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 유대민족의 나라를 건설했고 예루살렘을 되찾았으니까요.”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 국가수립을 약속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다. 여기에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단순히 음모론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녀는 책 한권을 빼들었다.
“한번 볼래요?”
“가문 사람도 아닌, 제가 봐도 되는 건가요?”
“그럼요.”
책을 펼치자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전혀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써져 있었다. 아니, 애초에 무슨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히브리어에요.”
바빌론 유수 이후, 히브리어는 제식에서나 사용했지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현대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성립 이후 다시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게 고대 히브리어로 적힌 거라면 이스라엘인이 보더라도 읽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함부로 만져도 되는 건가요? 잘못 만졌다가는 찢어질 것 같은데.”
설마 물어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안에 담긴 내용이니까요.”
아마 내용은 따로 데이터화 시켜서 보관하고 있겠지.
난 책을 다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최근에는 영어와 독일어로 적고 있어요. 그편이 읽기나 쓰기나 편하니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그녀는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서적들을 훑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예지력을 가진 선조가 있었어요.”
“누군가요?”
“당신도 알고 있을 거예요.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역시 그랬었나?
“어느 분야든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노력으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죠.누구는 아무리 노력하고 갈망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누구는 그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인생은 불공평한 거예요.”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공부한다고 해서 존 폰 노이만이나 앨런 튜링처럼 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마이클 펠프스처럼 수영을 못하고, 열심히 안 해서 우사인 볼트처럼 뛰지 못하겠는가?
노력과는 별개로 그걸 할 수 있도록 태어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안타깝게도 과거에는 예지력이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돈을 벌자고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항상 투쟁을 벌였다. 과거에는 대체로 정치권력이 우위에 있었다. 만약 한국이 절대왕정국가였고 박시형이 왕이었다면, 난 진작 목이 잘렸겠지.
성공이란 본인의 능력보다 시대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보다 미국과 유럽에 부자가 많은 이유는 백인들이 더 성실하고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고 돈을 벌 기회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100년 전 야구선수와 축구선수 몸값과 지금 선수들의 몸값은 수백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게 100년 사이 선수들 기량이 수백 배 이상 좋아졌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 리그와 스포츠 시장 규모가 커지고, 대중매체가 발달한 덕분이다. 이제는 공을 잘 던지거나,공을 잘 차는 것만으로도 수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
만약 그보다 100년 빨리 태어났다면, 그런 재능은 별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가죽을 다루거나 옷을 재단하는 능력이 더 요긴했겠지.
이는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 금을 사기 위해서는 상인을 만나 가격을 협상하고, 저울로 일일이 무게를 달고, 순도를 확인하고, 용병을 고용해 탈취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송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접속해 주문을 넣으면 끝이다.
자본의 흐름이 빨라진 만큼 기업의 성장속도 역시 빨라졌다.
과거에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땅을 사고,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을 만들어서 팔아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불과 2, 3년 만에 유니콘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아이버는 차 한 대 없이 GM과 포드를 뛰어넘었고,에어비앤씨는 객실 하나 없이 힐튼과 메리어트를 뛰어넘었다.
내가 50년 전에 태어났다면, 똑같은 능력을 가졌더라도 벌 수 있는 돈은 지금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250년 전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 능력으로 과연 부를 일궈낼 수 있었을까?
눈에 보이는 미래는 한정적이다. 그걸 명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은 누구나 검색어 입력과 클릭 몇 번으로 중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일부 계층이 정보를 독점했고 전파속도가 느렸다.
“선조께서는 프로이센의 군대가 나폴레옹에게 패한다는 미래를 알았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고, 빌헬름 왕은 그 말을 믿지 않았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점령당하기 전 왕의 재산을 숨기는 것뿐이었어요. 그러느라 정작 가문의 재산은 몰수당했지만요.”
그 일로 로스차일드가는 빌헬름 왕의 신뢰를 얻게 됐고, 왕가의 재산관리자가 됐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손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낮은 확률로 유달리 직관력이 강한 이들이 태어났다.
아무 능력이 없는 후손들이 만든 분가는 몰락했지만, 그들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자산을 불렸다.
“그럼 지금의 가주도……?”
“맞아요. 할아버지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위기를 감지하는 직관력이 뛰어나요. 그래서 지금까지 무사히 가문을 이끌어 오셨죠.”
현대사회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금융이 복잡해진 만큼 위기가 과거에 비해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투자의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돈을 벌거나 잃거나.
명확한 예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직관이 뛰어나다는 것은 엄청난 강점이다. 확률이 반반인 도박에서 이길 확률이 단1퍼센트만 높아져도 결국에는 모든 돈을 쓸어 담게 된다.
“그럴 듯한 소설 같네요.”
내가 밖으로 나가서 이 얘기를 그대로 한다고 한들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당신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난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를 보았다.
나이 들고 몸이 아픈 가주를 대신해 그녀가 마치 가문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나이는 아무리 많이 봐도 스물셋을 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나이가 많다고 똑똑한 건 아니지만,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당신도 그러한 능력을 물려받았나요?”
그녀는 장난스런 웃음을 지었다.
“음, 전 일단 예쁘잖아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저절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농담으로 흘려들을 만한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그녀는 인형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금실을 뽑아낸 것 같은 금발과 사파이어를 세공한 것 같은 파란색 눈동자. 이목구비는 조각 같고,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아마 그녀를 보고 마음을 앓는 남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름다운 외모란 그 자체로 능력이다. 거기에 로스차일드라는 후광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이는 그는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어떠한 자질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대통령에 어울리는 멋있는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기꺼이 그 멋진 외모에 미국의 운명을 맡겼다.
“저는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어렴풋이 알 수 있어요. 완벽하게 맞지는 않지만요.”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앉힐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그래서 그녀가 가주를 대신해 사람들을 만나는 건가?
“저는 어떤가요? 제가 로스차일드에 도움이 될 것 같나요?”
“놀랍게도 당신에게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만나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궁금하지 않아요? 그 능력은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당연히 궁금하다.
“답이 뭔가요?”
“우리도 잘 몰라요.
“……예?”
김빠지는 대답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했어요. 하지만 무엇 하나 알아낸 게 없어요. 당신도 검사를 받아봤으니 알지 않나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쓰러져서 입원했을 당시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중 특이하다고 생각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지력은 뇌와 DNA 같은 육체의 구성요소와는 관련이 없어요. 관련이 있다면, 영혼이겠죠. 우리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뿐이죠.”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분석할 방법은 없다.
몇 가지 의문은 풀렸지만, 가장 큰 의문이 남아 있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이유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