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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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오자 차가 대기 중이었다.
택규는 직접 공항까지 차를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난 그 차에 올라탔다.
“내 선물은?”
“놀러갔다 온 것처럼 보이냐?”
택규가 집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자율주행모드를 킨 채 나를 보며 물었다.
“로스차일드가 뭐래?”
공항까지 나온 이유는 그게 궁금해서겠지.
난 로스차일드 저택에서 알게 된 사실들을 말해주었고, 역시나 택규는 엄청난 흥미를 나타냈다.
“이놈들도 예지력으로 엄청 해먹었구나.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 여자는 왜 너한테 운명 드립을 친 거야?”
“그만큼 나를 필요로 하는 거겠지.”
정확히는 내가 가진 예지력이겠지만.
이 능력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예지야 그렇다 치고, 그 직관이라는 것도 그렇게 대단한 건가?”
“글쎄.”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예지력 덕분에 지금의 로스차일드 가문을 만들었다.
한국 재벌만 봐도 창업주가 은퇴 후 망한 곳들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는 금오그룹과 GH그룹도 무너지는 중이고.
창업주가 막대한 부를 쌓았던 록펠러, 카네기, 벤더빌트 가문 역시 후대로 갈수록 위세가 쪼그라들고 있다.
그런데도 로스차일드의 후손들은 그 유산을 200년 넘게 이어오며 더욱 발전시켰다. 놀라운 일이다.
“결혼해서 섬에다 영연방국을 만든다라.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그럼 OTK아일랜드가 되는 건가?”
“……아니. 설마 그렇게 짓지는 않겠지.”
나라 이름이 장난도 아니고.
“그때 예지를 봤어.”
“뭘 봤는데?”
얘기를 들은 택규는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진짜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예지가 어긋난 거야, 아니면 뭘 하든 결국에는 그렇게 된다는 거야?”
“나도 몰라. 어떻게 되든 엘리랑 결혼할거야.”
택규는 씨익 웃었다.
“훌륭해. 그래야 내 친구지.”
얘라면 이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흑막이 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깝지 않아?”
내가 큰 실수를 한 건가? 아니면, 나랑 결혼할 생각이 없다거나…….
만약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으려나?
난 고개를 저었다.
“전혀. 어차피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잖아.”
“앞으로 그 여자 다시 볼 일은 없으려나?”
“그건 모를 일이지.”
로스차일드는 거대금융그룹이고, 그녀는 가문 내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기업으로 치면 최고인사책임자(CHO)쯤 되려나?
금융계는 의외로 좁다.
이 바닥에 있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 * *
난 골든게이트 빌딩 로비에 앉아 퇴근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가는 직원들 중 몇 명이 조심스럽게 사인을 요청해왔다. 잠시 후, 일을 끝낸 엘리가 내려왔다.
검은색 바지장정에 블라우스, 갈색머리는 단정하게 묶었다. 평소에는 털털해도 일할 때는 빈틈없는 모습이다.
고작 며칠 안 봤을 뿐인데, 왠지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 왜 집에 안 있고 여기로 왔어요?”
“보고 싶어서요.”
내 말에 엘리는 미소를 지었다.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갈까요?”
“그래요.”
우리는 차에 올라탔고, 엘리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진후 기자회견 나가자마자 영국 주식시장이랑 파운드화 반등했어요. 노딜 브렉시트가 안 일어날 거라는 전망도 높아졌구요.총리의 반대에도 보수당 쪽에서 하원의장에게 긴급토론을 요청했고, 모레 토론과 표결을 다시 할 거예요.”
“다행이네요.”
난 엘리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호텔 커피숍에 걸어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때는 숏커트에 보이시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머리를 많이 길러 한껏 여성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어느 쪽이든 예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몇 년 동안 매일 같이 본 얼굴이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예쁘고,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느 날, 생겨난 이 능력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줬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엘리를 만나게 해줬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침대에서 그 돈 끌어안고 있을 것도 아니고.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뭐 먹을까요? 먹고 싶은 거 없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결혼할래요?”
잠깐 멈칫하던 엘리는 피식 웃었다.
“뭐예요, 갑자기?”
“아, 아니에요. 그냥 뭐…….”
다행히 농담처럼 받아넘기는 분위기였다. 역시 이런 얘기는 정식으로 날 잡고 하는 게 맞겠지?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운전 중에 청혼할 뻔했네.
한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려보니, 엘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차안을 감돌았다.
“저기…….”
그런데 갑자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가 눈물을 쏟고 있었다.
난 놀라서 급하게 자율주행모드를 종료하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왜 그래요?”
그러자 엘리는 울음을 터트렸다.
“흐엥! 진짜 뭐예요?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그 말해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예?”
“흐윽,그런데 진후는 결혼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이고, 어디 멀리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고.”
“제가 그랬어요?”
“훌쩍, 사람들은 막 금방 헤어질 거라고 수군거리고.”
“아…….”
우리에 관한 기사가 올라갈 때마다 인터넷에 그런 식으로 댓글 다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조만간 헤어진다, 이미 헤어졌다, 결혼 절대 안 할 거다, 결혼하면 얼마 못가 이혼할 거다 등등.
대체 왜 그렇게 남의 연애에 관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그동안 엘리가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까.
혹시……내색했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챈 건가?
“그럼 얘기를 하지 그랬어요?”
“히잉,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았단 말이에요!”
고백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청혼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정말 우유부단한 건가?
난 엘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엘리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훌쩍,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말해줬으니까.”
그 모습이 참기 힘들 만큼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대답은요?”
“예스예요. 예스!”
엘리는 날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길을 가던 행인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잠시 후, 울음을 멈춘 엘리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엽다.
“그럼 우리 이제 뭐해야 하죠?”
“음, 글쎄요.”
프로포즈는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마침 명품거리를 지나는 중이라 길 양쪽으로 매장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난 그중에서 쥬얼리 매장을 가리켰다.
“순서가 좀 바뀐 것 같지만, 반지부터 사볼까요?”
엘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 *
이 소식을 누구한테 제일 먼저 알려야 하나?
난 택규에게 전화를 하며, 바로 남산 실론호텔로 향했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내 등짝을 때렸다.
“악! 왜 때려요?”
“넌 돈도 많은 애가 프로포즈를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엄마가 진짜 부끄러워서. 나중에 꼭 다시 제대로 해. 알았어?”
“알았어요.”
어머니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엘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 진후 잘 부탁할게.”
엘리는 어깨를 펴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진후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이런 말은 보통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니는 듬직한 며느리를 얻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뿌듯해 하셨다.
* * *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 택규가 축하해주었다.
“축하해! 드디어 내 친구가 유부남이 됐군.”
“응. 아직 아니야.”
이제 곧 그렇게 되겠지만.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할 게 한둘이 아니다. 상견례도 해야 할 테고.
엘리의 왼손 약지손가락에는 얇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까 명품거리에 있는 티파니 매장에서 구매한 거다. 우리가 들어가자 직원들은 깜짝 놀랐고, 점장까지 나와서 설명해주며,진열되어 있지 않은 제품들까지 꺼내서 보여주었다.
원래 반지는 사이즈에 맞춰서 따로 주문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매장에 맞는 사이즈의 커플링이 있어서 바로 살 수 있었다.
씻고 침대에 누운 엘리는 손등을 펼친 채 계속해서 반지를 보며 웃었다.
“다음에 더 예쁜 걸로 사줄게요.”
“전 이게 좋아요. 진후가 처음 사준 반지니까요.”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사줄 걸 그랬다.
난 그동안 엘리가 어째서 불안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이 살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마 오래 전부터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평생 속이고 살게 아니라면, 말을 해줘야겠지.
난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엘리한테 말해줘야 할 게 있는데요.”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그리고 엘리는 얘기를 듣고 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내 표정을 본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말해준다는 건 절 믿는다는 거죠?”
“네.”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하구요?”
“뭐, 그렇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날 끌어안았다.
“그러면 됐어요. 그 얘기는 결혼식 끝나고 해줘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 * *
결혼하기로 했다고 해서 바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같이 잠자리에 들고, 같이 깨어나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이 밝자 우리는 다 같이 골든게이트로 출근해 엘리의 상사에게 보고했다.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요.”
보고서를 보고 있던 현주 누나는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혹시 임신했어?”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택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누나 같은 줄 알아?”
현주 누나는 인상을 쓰며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택규에게 집어던졌다. 혼날 줄 알았다.
“진짜 결혼하는 거지? 나중에 안 한다고 말 바꾸면 안 돼.”
“그럼요.”
현주 누나는 인터폰을 들고 사내방송을 연결했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 직원들에게 알립니다. 엘리 킴 법무1팀장이 OTK컴퍼니 강진후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다들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사가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10분 후, OTK컴퍼니 빌딩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왔다.
* * *
[(속보) OTK컴퍼니 CEO, 깜짝 결혼발표!] [상대는 골든게이트 법무팀장으로 현재 동거 중] [이번 결혼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베스터 모델로 활동한적 있는 재원……]언론들은 기사를 쏟아냈고, 외신들 역시 속보로 다뤘다. 기사가 나가고 나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야! 진짜 세기의 결혼식이겠네.
-내가 강진후면 그냥 결혼 안 하고 놀 것 같은데.
-쯧쯧, 바보네. 세상에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널려 있는데. 나 같으면 여친이랑 헤어지고 다 만나고 다니겠다.
-ㅋㅋㅋ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인생 살아보니 사랑하는 사람 만난다는 게 쉬운 게 아님.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잡아야 함. 난 그걸 못해서 아직 혼자지만ㅜㅜ
-어차피 노는 것도 다 한 때임.
-나도 돈 많이 벌어서 저런 여친 만나고 싶다~
-둘이 잘 어울리긴 함. 부럽다^^
-좋은 사랑하세요^^
-강진후 결혼하면 페이스잇 할인 이벤트 안 하나?
-결혼식에 누구누구 오나요? 로날드, 장핑화, 비소츠키 다 올까요?
-ㅋㅋㅋ 결혼식장 강대국 정상회담. 허창민 자동소환이네.
-인간적으로 구치소에 계신 각하께도 청첩장 하나 보내라. 맨날 콩밥만 먹는데, 결혼식 뷔페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난 사방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았다.
백악관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로날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축하하네.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그는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웨딩업계(?)에서 이 정도면 프로 중의 프로라 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과연 어떤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
[바로 혼전계약서네. 이혼위자료 부분을 명확하게 명시해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기지. 그래서 난 전처들과 이혼할 때도 미리 정한 위자료만 지급하고 깔끔하게 끝냈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게.]“…….”
아주 좋은 거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