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80)
내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자, 옆에서 듣고 있던 택규가 재빨리 물었다.
“방금 무슨 얘기한 거야?”
전화 받는 내 반응만 보고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난 로날드가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택규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소리쳤다.
“누가 미국 대통령의 약점을 쥐고 협박하고 있다고? 아니, 이게 무슨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정말이지 영화나 넷플레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물론 말한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겠지만.
“아, 알았어.”
CEO실은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만큼 목소리가 새나갈 일은 없지만, 택규는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대체 뭔 스캔들인데?”
“나도 몰라. 하지만 절대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일 거야.”
빅원 당시 그는 탄핵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건 탄핵이 쉽게 통과될 리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지만.
그렇다면 이번 스캔들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거라고 봐야 한다.
“로날드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왜 그냥 알리지 않은 거지?”
“칼은 뽑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니까.”
현재 로날드의 지지율은 70퍼센트가 넘는다. 캘리포니아에서 지지율만 놓고 보면 거의 90퍼센트 육박한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잘 되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안 되기를 바란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로날드를 탄핵하려고 한다면, 분명 여론의 거센 역풍이 불 것이다. 칼을 뽑아들면 상대를 죽여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거야. 피를 보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느니 차라리 로날드를 그 자리에 앉혀 놓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 낫다.
“숨어서 미국 대통령을 조종할 수 있으면,완전 세계를 지배하는 비선실세 아니야? 러시아에 핵폭탄을 날리라거나, 중국과 전쟁을 벌이라고 지시하면 어떡해?”
“그건 불가능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다. 만약 로날드가 터무니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의회고 언론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명령에 따를 정도면, 로날드 역시 탄핵을 당하는 걸 택할 테고. 손발을 묶은 정도에서 만족하겠지.”
내가 말하면서도잘 믿기지가 않는다. 차라리 로날드가 편집증이나 과대망상이 있다는 편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것 같다.
“어쨌거나 이걸로 한 가지는 분명해졌어.”
“뭐가?”
“금리인상의 배후에 뭔가 있다는 게.”
택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미 행정부 쪽에 어떤 세력이 있고, 걔들이 금리인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지.”
“나도 알아.”
그전부터 어렴풋이 느꼈고, 로날드의 말을 듣는 순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금리인상만으로 끝일 리가 없어. 아니,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야.”
“그러면?”
“다른 뭔가가 더 일어나겠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 걸까?
난 불안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좀 더 알아봐야겠어.”
* * *
금융계에서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정보는 어딘가에서 새나가기 마련.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정보를 접했다면, 거래를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 내일 폭락한다는 것을 안다면, 손 놓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미국 기준금리가 0.75퍼센트 오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사전에 뭔가 손을 썼을 게 분명하다.
내 지시에 따라, 상엽 선배는 주식시장을, 서상원 팀장과 유리를 비롯한 팀원들은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의 거래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다들 퇴근도 미룬 채 업무에 매달렸다.
제일 먼저 보고를 올린 것은 서상원 팀장이었다.
“6개월 전부터 신흥국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시장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매도를 한 모양입니다. 매도량 상위은행을 보면 HSBC, 바클레이즈(Barclays),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oyal Bank of Scotland),스탠다드 차타드(Standard Chartered) 등입니다. 이밖에 다른 자금도 움직인 것 같은데, 파악이 힘듭니다.”
돈에 이름표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계 자금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 미국계 자금이 움직였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 돈들은 과연 어디로 흘러갔을까?
“아! 그리고 이건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알베르트 매니지먼트는 지난달에 주식과 채권 등 자산을 전부 처분했습니다.”
“그 벌처펀드요?”
“맞습니다.”
칼 알베르트 싱어가 창업한 알베르트 매니지먼트는 최근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비상장회사다 보니, 어디에서 자금을 투자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난 속으로 웃었다.
어쩐지 급성장한다 했더니.
난 팀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아시다시피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 쪽 종속회사들 재무상태 면밀하게 파악하고, 불안요소 있으면 미리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시장에 알려지지 않도록 나눠서 전부 달러로 바꿔놓으라고 지시하세요.”
카로스, 페이스잇, OTK게임즈 등은 신흥국에서도 서비스를 하고 있고, 그곳에서의 이익은 당연히 그 나라 화폐로 들어온다.
“이미 환율이 너무 올랐습니다. 지금 환전하면, 손실이 꽤 클 겁니다.”
“앞으로 더 오를 수도 있어요.”
내 말에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신흥국 화폐를 팔고 달러를 산다는 것은 앞으로 위기가 가라앉기는커녕 더 커질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엽 선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뭔가 짐작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다음 사건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일어났다.
바로 브렉시트였다.
* * *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도 더 전.
그런데 아직도 영국의 EU 탈퇴를 놓고 협상이 이어지는 중이다. 영국 하원은 또다시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켰고, EU에 협상 종료시한 연장과 함께 새로운 협상을 요구했다.
이미 여러 차례 있었던 일인 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EU 집행의장은 이를 거절하며 영국을 비판했다.
“EU는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 영국은 자신들이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
EU가 이렇게 강경자세를 취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의 일은 다른 일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 미국의 금리인상은 가뜩이나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에 직격타를 날렸다.그리스는 이미 구제금융을 받고 있고 EU의 요구에 따라 긴축안을 이행 중이었다. 그런데 추가 긴축 얘기가 나오자, 민심이 폭발했다.
그리스 안드레아스 시미티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현재의 EU체제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강대국들뿐이고, 많은 나라들은 빚에 신음하고 있다.”
이는 단일통화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예전이었다면, 국가 신뢰도가 높고 경상수지가 흑자인 독일의 마르크의 가치는 오르고, 위기에 시달리는 그리스의 드라크마의 가치는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같은 유로로 묶여있다 보니, 독일은 수출이 잘 됨에도 불구하고 화폐가 저평가를, 그리스는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화폐가 고평가를 받았다.
다시 말해 유로라는 단일통화는 독일에게는 유리하고, 그리스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이전부터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로 사용을 포기하고 드라크마로 회귀해야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리스는 이전에 EU의 긴축안의 찬반을 묻는 투표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EU 탈퇴를 묻는 것은 처음이다.
만약 투표에서 찬성이 높게 나온다면, 브렉시트에 이어서 그렉시트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EU탈퇴시 그리스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영국처럼 원하는 협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버티면 그만이다. 나쁜 협상은 하지 않겠다!”
이 상황을 방치한다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도 비슷하게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EU 입장에서는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영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EU는 영국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영국의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협상안을 받아들이고 EU를 나가거나, 협상 없이 EU를 나가거나.”
* * *
금리인상의 충격과 브렉시트, 그리고 EU 위기가 겹치며, 금융시장은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미 흔들리고 있던 증시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또다시 추락했다.
TV에 나온 폭락론자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부터 금융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역시나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 그는 닥터툼이라는 별명답게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다.
“글로벌 경제는 아홉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제 그중에서 겨우 두 가지가 발생했을 뿐이다.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고,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수단을 거의 소진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그리고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디커플링이다.”
* * *
10시가 넘어서 퇴근을 한 엘리는 겉옷도 벗고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요즘은 맨날 퇴근이 늦네요.”
“지금 상황 어떤지 알잖아요. 출근하면 지옥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매일 손실이 얼마씩 나는지 무서울 정도예요.”
골든게이트가 이 정도라면, 다른 금융사들 상황은 더 심각하겠지. 1년 동안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추수 직전에 홍수가 난 셈이다.
“히잉,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진짜 그만두게요?”
“진후가 저 먹여살려줄 거예요?”
“그럼요.”
엘리는 두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았다.
“싫어요. 제가 진후 먹여살릴래요.”
이렇게 안고 있으니,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진후는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난 피식 웃었다.
“요즘 다들 제 생각을 궁금해 하네요.”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지금처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날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요즘 내게 인터뷰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내외신 기자들은 회사 앞에 진을 친 채 직원들을 무작위로 붙잡고 내 생각과 OTK컴퍼니의 대응책을 물었다.
난 엘리에게 말했다.
“며칠 동안 미국 좀 다녀올게요.”
“무슨 일 있어요?”
“선배님께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요.”
* * *
미국 조지아주 에덴스.
조용한 소도시에는 5층짜리 작은 건물이 서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고, 간판에 크게 걸려있는 것도 아닌 만큼,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에 어느 회사가 있는지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놀랍게도 이곳은 바로 미국 최대의 투자회사이자, 현재 미국 시가총액 6위 기업인 버크셔캐셔의 본사다.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자이자,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인 워렌 보트 회장은 정문 밖까지 나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버크셔캐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직원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난 그들과 함께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500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회사임에도 버크셔캐셔의 직원 수는 고작 60여 명에 불과했다. 투자은행에서 수천, 수만 명이 일하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적은 인원이다. 하지만 이들 한 명 한 명은 세계 최고의 금융 엘리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돈은 내가 훨씬 많이 벌었다. 그래서 다들 이렇게 나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먼 길 오느라 배고프시죠?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시죠.”
워렌 보트는 자신의 차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번에 새로 뽑은 차입니다. 어떻습니까?”
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멋진 차네요. 잘 사신 것 같습니다.”
그의 새 차는 다름 아닌 카로스의 AD3다.
난 워렌 보트가 모는 차를 타고 회사 근처에 있는 팬케이크 가게로 향했다. 단골인지 주인과 손님 모두 워렌 보트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아! 깜빡 잊고 500만 달러를 놓고 왔네요.”
“예?”
“워렌 보트 회장님과 점심식사를 하려면 최소 500만 달러 아닌가요?”
내 농담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신용카드도 받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택규는 뭔가를 떠올린 듯했다.
“이거 혹시……?”
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