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81)
우리는 식사가 끝난 뒤, 커피를 들고 회사 뒤의 오솔길을 걸었다.
기온은 낮지만, 햇빛이 세서 그렇게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기 좋네요.”
워렌 보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럼요. 살기는 세상 어디보다 좋습니다. 제가 여기를 떠나지 않는 이유죠.”
성공하면 대도시로 떠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줄곧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살아왔다.
에덴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워렌 보트 덕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주총회가 열리는 5월에는 전 세계에서 버크셔캐셔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이 조용한 소도시로 몰려든다.
그때가 되면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오래전, 제 꿈은 버크셔캐셔 주총에 참가하는 거였습니다.”
내 말에 그는 반색했다.
“정말입니까?”
“예. 돈을 모아서 B주를 살 생각이었어요. A주는 너무 비싸니까요.”
“그럼 다음 주주총회 때 초청하겠습니다. 꼭 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장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세계최고의 투자자와 얘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하하하!”
내 말에 워렌 보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옆집 할아버지가 따로 없다.
“세계최고의 투자자라니요. 이제는 강진후 대표께 밀리지 않았습니까?”
난 쓴웃음을 지었다.
“전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미래가 아니었다면, 그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예지는 평범한 청년이었던 나를 어느새 이곳까지 이끌었다.
“강진후 대표께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뤄낸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워렌 보트는 60년 넘도록 꾸준히 수익을 냈지만, 내 투자경력은 아직 10년에도 못 미친다.
오늘은 이겼어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시장이다.
도박사의 능력은 가장 많이 딴 순간 정해지는 게 아니다. 끝에 가서 도박판에서 일어날 때 수중에 얼마가 남아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투자자 역시 시장을 완전히 떠날 때, 그가 어떤 업적을 이뤄냈는지 제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벤츠에 앉았다.
주식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투자자들은 매일 같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느라 속병을 달고 산다. 당연히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90세가 넘었음에도 아직 정정한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돈을 많이 번 것보다 이게 더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뜻이니까.
난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회장님께서는 금융위기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런 질문임에도 그는 편하게 대답했다.
“요즘 많이 나오는 얘기로군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기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금융위기는 주기적으로 발생합니다.”
“언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금융위기를 맞춘다는 것은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일이죠.”
유명한 속설이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비슷하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만 해도 한 5년 전부터 매년 금융위기가 발생할 거라고 얘기해왔다.얼마 전, 뉴욕타임즈 기고문에는 내년에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재작년, 작년, 올해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진단했다.
가뭄이 지속돼도 언젠가는 비가 오듯, 호황이 지속돼도 언젠가는 위기가 발생한다.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것이다.
시기를 맞추지 못하는 예측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난 질문을 바꿨다.
“누군가 금융위기를 일으킨다는 게 가능할까요?”
워렌 보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내가 뭔가를 알고 있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묻는 대신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시겠지만, 음모와 모략만으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이내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거대한 세력이 금융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 주식을 사면 그 주식이 올랐으면 하고, 주식을 팔면 떨어지으면 한다.
누군가는 상승을, 누군가는 하락을, 그리고 누군가는 붕괴를 바란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뤄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금융계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워렌 보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누구도 없는 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거짓과 기만으로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잠깐이라면 시장을 흔들 수는 있어도 시장의 방향을 틀 수는 없다.
“하지만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잔에 있는 물을 넘치게 하는 것은 한 잔의 물이 아니라, 한 방울의 물이라고.”
난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잔에 물이 가득 차있지 않다면, 한 방울의 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잔에 물이 가득 차있다면 단 한 방울의 물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까? 히틀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그저 한 방울의 물이었다.
만약 유럽이 평화로웠다면,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은 그냥 관련자만 처벌받고 끝났을 테고, 히틀러는 무명 화가로 살다가 죽었을 거다.
“그럼 지금은 물이 가득 차 있는 상태인가요?”
워렌 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잔도 물도 투명해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잔의 크기가 얼마인지, 물이 얼마나 차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물이 넘쳐흐르고 나서야 모두가 깨닫게 되죠. 하지만 경기가 고점에 다다른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마 오랫동안 투자해온 만큼 직감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최근 워렌 보트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버크셔캐셔가 보유한 현금은 1500억 달러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가격이란 산책하는 강아지와 비슷합니다. 때론 앞서 달리고, 때론 뒤처지더라도 결국에는 주인 곁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유명한 얘기다. 시장에서 가격과 가치에 괴리가 생기는 일은 매우 흔하다. 오히려 일치하는 일이 드물다 할 수 있다.
만약 가격이 가치를 앞서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버블이다. 그리고 버블은 언젠가 꺼진다.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좋지 않은 기업도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아이디어만 내보이면, 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옵니다. 그중에서 제대로 된 기업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난 그런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지를 봤기 때문이고, 이후에도 막대한 자본력으로 지원했다. 만약 브렉시트를 통해 투자금을 확충하지 못했다면,지금의 카로스도 없었겠지.
비슷하게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 중 상당수는 망하거나, 아직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투자자들에게 채권과 주식을 팔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위기가 온다면,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게 되겠네요.”
“부실한 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멀쩡한 기업마저 흔들리게 만듭니다. 누군가한테는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워렌 보트는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돈을 번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거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다들 공포에 비명을 지를 때, 워렌 보트는 가진 돈을 전부 투자해 자산을 사들였다.
지금이야 다들 결과를 알기 때문에 그때 사지 못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 한들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뒤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늘 위기를 극복했고, 다시 성장해왔으니까요. 지난 번 역시 그러했고, 다음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군요.”
얘기를 끝낸 그는 나에게 물었다.
“제 얘기가 도움이 되었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매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 *
난 골든게이트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정보만 있으면 돌멩이를 황금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 한국증시만 봐도 외국인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은 기관이 움직인다.그리고 개인은 항상 막차를 탄다.
금융자본들은 오래전부터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골든게이트, JP모건, BOA, 웰스 파고(Wells Fargo), Citi, 캐피탈 원, 레드스톤, KRR, 론스타, 스타우드 캐피탈 등등.
그 정점에 있는 건 누구일까?
난 카르텔 바깥에서 탄생한 이단자라 할 수 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예지를 통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장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회색빛의 건물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맨해튼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들에게 24달러를 주고 샀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이 세계금융의 중심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면적과 인구에 비해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곳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 작은 얼굴, 새하얀 피부, 윤기가 흐르는 이마,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코, 보석 같이 빛나는 눈동자.
완벽한 외모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외모라 마치 혼자서만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난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레이스 로스차일드.”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차 한 잔 할 시간 있어요?”
* * *
그녀가 나를 안내한 곳은 고풍스럽게 꾸며진 티하우스였다.
미리 손을 썼는지, 손님은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설마 저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건가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전 보름 전부터 이곳에 있었어요. 당신의 전용기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뿐이에요.”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부터 월스트리트에 있었다는 건가?
그레이스는 손에 낀 장갑을 벗고, 우아한 동작으로 찻잔을 들었다.
찻잔은 화려한 문양에 테두리에 금이 입혀진 본차이나. 홍차도 도자기도 중국에서 건너갔으나, 어느 순간부터 영국귀족들의 문화가 됐다.
“월스트리트를 찾는 사람은 둘 중 하나예요. 투자를 하러 왔거나, 투자를 받으러 왔거나.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어느 쪽 같아 보이는데요?”
그녀는 차를 마시며 농담처럼 말했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말해요.”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해주게요?”
“당신이 원한다면요.”
난 뒤로 등을 기댔다.
“얼마까지 대출이 가능한가요?”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죠. 당신에게라면 무제한 대출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상대의 신용이 아니라, 은행의 대출능력이 되는 한 대출을 해주겠다는 건가? 만약 그 사람이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은 파산이다.
당연히 이런 대출이 가능할 리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딱 한 명 있었어요. 로스차일드 은행이 무제한 대출을 허용한 사람이.”
“누군가요?
그녀는 마치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비밀을 얘기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에요.”
“하하.”
저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소설 속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몇 개의 은행과 무제한으로 거래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로스차일드. 그중에는 유서 깊은 베이링스 은행도 있었지만, 그 은행은 닉 리슨에 의해 1995년 파산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둘러싼 음모론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이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 역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현실에 멀쩡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19세기 소설 속에서도 대부호로 언급되는 가문이 지금까지도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한국은 서성공화국이라 불린다.
서성그룹의 힘은 정계, 재계, 법조계, 학계, 언론 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뻗어 있고, 이들은 알게 모르게 서성그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고작 수십 년 재벌이었던 이들이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차일드는 어떨까? 그들은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금융가문으로 군림했다.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자산이 있고, 얼마나 많은 추종자들이 있는지, 얼마나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게 세계의 자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