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82)
그레이스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사이 또 많은 일들을 했네요. 당신으로 인해 이 세계의 역사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역사에 당신의 이름이 어떻게 남을지 생각해봤어요?”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훗날, 사람들은 과연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당신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요. 원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있을 거예요.”
난 일전에 그녀가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거절했을 텐데요.”
“사람의 생각이란 바뀌기 마련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하죠.”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 않나요?”
내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황금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죠.”
돈만이 영원하다는 건가?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인이 다 아는 금융가문. 가진 명예와 지위는 왕가 다음이고, 가진 재산은 그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오랜 거짓말이다.
국적, 재산, 지위, 성별, 인종 등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갈린다.
영국은 입헌군주제고, 왕과 귀족들은 여전히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판사들은 새하얀 가발을 쓰고 재판을 하고,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는 귀족들만 참석할 수 있는 상원의회가 열린다.
상류층은 상류층의 삶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고, 모임을 갖고 파티를 벌인다.
누군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평생 애를 쓴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계급은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내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로스차일드가 가진 부와 명예를,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지속해 나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 위에 올라가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위에 올라서면 그 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그러나 난 계속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을 택했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전기차, 배터리, TWR, 게임, 새만금, 남북경협 등등. 당신은 미래로 가는 많은 열쇠를 손에 넣었어요.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죠.”
“뭐가 위험하다는 건가요?”
“당신이라면 알고 있지 않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얼마 후면 금융위기가 일어날 거예요.”
마치 내일 비가 올 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투였다.
“무슨 뜻이죠?”
“금융위기는 금융위기를 의미하죠. 다른 뭐가 있겠어요?”
그녀의 말은 TV에 흔히 나오는 폭락론자들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갖는 무게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위기는 이전과는 다를 거예요.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일일 테니까요. 이전이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대침체(Great Recession)였다면, 이번에는 대붕괴(Great Collapse)라 할 수 있겠네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거예요. OTK컴퍼니도 대비를 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재밌지 않다.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고.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그녀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게 확실한 정보라면, 누구에게도 쉽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한테 그걸 말해주는 이유는?”
그녀는 생긋 웃음을 지었다.
“말해주지 않아도, 어차피 당신이라면 알아낼 거잖아요.”
그 순간,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보였나 보네요.”
마치 내가 뭘 봤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를 만나고 난 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250년 동안 세계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18세기에는 증기기관이 발명됐고,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나폴레옹의 군대는 전 유럽을 휩쓸었다.
이어진 19세기와 20세기는 세계의 질서가 바뀌는 격동의 연속이었다. 열강들의 식민지배, 무역 확대, 두 차례의 세계대전,수차례의 경제위기, 브레튼우즈 체제, 닉슨 쇼크, EU탄생, 브렉시트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다.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망하고, 무수히 많은 은행들이 파산하고, 무수히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몰락했다.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나처럼 미래를 볼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로스차일드를 금융명문가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도 로스차일드는 200년 넘게 계속 성장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난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당신들이 미래를 만들어 온 건가?”
그녀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거죠.”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 중요한 건 그게 언제냐는 것이다. 시기를 모르는 예측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면?
잔에 물이 찼다 싶으면,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위기를 발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긴 건가?
특정 대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공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금융계에서는 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일을 벌인 헤지펀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그보다 규모가 큰 이들은 나라를 대상으로 한다. 영국 외환시장을 공격한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고, 한국 역시 그렇게 무너졌다.
그런데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건가?
난 속에서 뭔가 울컥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총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은 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돈도 그러하다.
돈은 얼마든지 삶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 거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동안 세계는 너무나도 긴 호황을 누렸어요. 파티가 한창일 때 누군가는 펀치볼을 빼야 돼요.”
윌리엄 마틴 전 연준 의장이 말한 유명한 격언이다.
“그 역할을 로스차일드가 하겠다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이에요.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전 세계예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렸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 돈을 일시에 회수하면, 엄청난 충격이 덮칠 것이다.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한국을 예로 들어 보죠. 만약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산업 구조조정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전까지 한국의 대기업들은 일본에서 핵심부품과 소재, 기계 등을 수입해서 가공한 다음 되파는 손쉬운 장사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환율이 세 배 넘게 오르며 더 이상 수입제품에 의존하기 힘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국산화에 나섰다.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기술을 개발했고, 이는 한국이 기술강국으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됐다.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이 실시되며,한계 기업들은 무너졌고,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더욱 덩치를 키웠다. 고환율 덕분에 수출은 크게 늘었고,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더욱 기술력을 키웠다.
금융시장 개방으로 국제기준에 맞춘 회계가 확립됐고, 재무제표가 투명해지며 외국자본의 투자가 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양극화는 심해졌지만, 성장은 지속됐고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IMF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27퍼센트까지 올리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어요. 방만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인원을 20퍼센트 감원하고, 월급과 각종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금융시장을 개방해 선진화시켰어요. 만약 IMF가 아니었다면,한국정부가 자체적으로 그런 개혁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
누구도 구조조정과 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의 그리스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권도 그런 강력한 구조조정을 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과 긴축의 주체는 한국정부가 아닌 IMF였다. 덕분에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IMF 뒤에 숨어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국민들은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외국자본에 대한 분노로 장롱 속에 있던 금까지 꺼내서 나라 빚을 갚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닷컴버블이 없었다면 지금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존재할까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기술발전이 가능했을까요?”
자본주의는 이제까지 수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마치 산불의 역설처럼 그러한 위기는 다음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위기 역시 당연한 일일까?
위기를 통해 경제가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위기임을 눈치 채고 투자를 한다고 해도 이를 비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신들이 버블을 키워온 건 아니고?”
이게 정말로 필요한 일이었다면, 위기가 커지기 전에 대응했어야 한다.
그런데 위기가 극에 치달은 지금에서야 이러는 것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의도했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당신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 * *
난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골든게이트 본사에서 제임스와 헨리를 만났다.
정장을 입은 채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이곳이 세계금융의 중심지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헨리 역시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으로 건너와 있었다. 월스트리트만큼 금융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좋은 곳이 없으니까.
집에서 건이 볼 때와는 달리, 정장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그는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못 본 사이 많이 늙고 지친 것 같은 모습이다. 다시 말하지만, 90세까지 정정한 워렌 보트가 이상한 거다.
내 얘기를 들은 제임스는 손에 든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흐음, 로스차일드 그 친구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아직도 옛날 버릇 못 버린 모양이로군요.”
헨리가 말했다.
“세상에 위기를 일으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제임스는 안경을 올려 쓰며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큰 부자는 흉년 뒤에 탄생하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그게 가능하냐의 문제죠.”
농부는 굶어죽더라도 종자를 끌어안고 죽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흉년이 지속되면 종자로도 밥을 해 먹고, 쌀 한 바가지에도 논밭을 팔아야 한다.
흉년이 오면 모두가 피해를 입지만, 피해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 논밭을 헐값에 사들여 이후에 올 풍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중산층은 몰락하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된다. 이는 기업 간에도 국가 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금융자본들은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과 국가가 무너져 내리면, 그때 들어가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이란 생물과도 같아서 아무리 인위적으로 조종한다고 해도, 예측 못 한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후 시장에는 온갖 악재가 넘쳐났다.
남미 국가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중이고, 남유럽 국가들 역시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모두 다들EU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EU가 쓸 수 있는 대책도 얼마 없다. 이미 제로금리인 데다가 여러 차례 양적완화를 실시한 만큼 더 이상 돈을 풀기가 힘들다.
남은 방법은 채무탕감과 금융지원인데, 이건 결국 그동안 열심히 일해 저축한 나라들의 돈을 퍼다 빚을 내 흥청망청 쓴 나라를 지원해주겠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나라들이 무너진다고 해서 금융위기라는 쓰나미가 밀어 닥치지는 않을 겁니다. 위기인 것은 맞지만, 아직 세계경제의 붕괴를 논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자본이 클수록 투자는 힘들어진다.
로스차일드가 이번 위기로 이익을 보려 한다면, 투자할 만한 규모의 시장이 있어야 한다. 고작 푼돈 벌려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어지는 않을 테니.
결국 그들이 노리고 있는 목표는…….
헨리가 말했다.
“중국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