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83)
리만브라더즈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침체에 빠트렸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매년 10퍼센트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며, 어느새 경제규모와 무역규모 모두 세계최대로 올라섰고, 세계의 생산공장인 동시에 세계의 소비시장이다.
만약 중국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 충격을 전 세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제임스는 지팡이의 머리에 있는 호박을 매만지며 말했다.
“중국의 위기론은 오래전부터 나왔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 20년도 더 된 것 같네요.”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는 민주화 요구 때문에 망할 거라고 했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때는 일자리가 부족해 망할 거라고 했다.
지금 나오는 얘기도 비슷하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다, 인구 고령화가 시작됐다, 환경이 오염됐다, 양극화가 심각하다, 지역격차가 우려된다, 부동산에 버블이 있다,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 여러 나라로 갈라질 거다 등등.
폭락론자 하나 데려다 놓으면, 중국경제가 망할 거라는 근거를 100개는 댈 수 있지 않을까?
“소로스 그 친구는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었죠.”
헤지펀드의 황제 조지 소로스.
3년 전쯤, 그는 중국경제가 붕괴할 것이라 믿고 위안화 공매도에 나섰다. 영란은행을 무너뜨리고, 아시아 외환위기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그는 이때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피할 수 없다.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지금보다 40퍼센트 하락해야 정상이다.’
경제지표로 봤을 때, 당시에도 중국 기업들의 부채는 심각했다.
외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를 무너지게 놔두면 성장률 하락과 자본유출로 위안화가 하락한다. 반대로 중국정부가 부실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면, 금리를 낮추고 화폐를 찍어내야 한다. 이는 역시나 위안화를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제임스는 회상을 하듯 계속 말했다.
“조지 소로스가 앞장서자,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은 집결했습니다. 카일 바스, 스탠리 드러큰밀러, 자크 슈라이버, 데이비드 아인혼, 데이비드 테퍼 등등. 월스트리트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 덩치 큰 자산을 전부 매각하고 실탄을 마련해 달려들었죠.”
그리고 그 실탄을 중국 외환시장에 쏟아 부었다.
중국은 총리까지 나서서 이를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공매도 투기꾼들이 공황을 조장해 차익을 챙기려 한다! 중국경제는 투기꾼들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 않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조지 소로스가 패했죠.”
중국 은행과 기업은 무너지지 않았고, 위안화 역시 멀쩡했다.
공매도를 쏟아내던 헤지펀드들은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물러났고, 조지 소로스 역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손을 털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CEO들은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지식과 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생각이 틀렸던 걸까?
각종 지표를 놓고 봤을 때 중국경제가 위험하다는 조지 소로스의 생각과 주장은 상식적이었다.
다만 중국이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였을 뿐이지.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나라다. 15억이라는 인구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다.
이조차도 말이 자본주의지,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탈을 쓴 국가주도형 계획경제다. GDP의 대부분은 국영기업에서 발생한다.
이 국영기업에게 돈을 대출해주는 것은 국영은행이다.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기업이 부실해져도 은행은 바로 돈을 회수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었다.
또한 장핑화 주석의 말마따나 중국경제는 거대한 바다다. 연못을 뒤집을 수는 있어도, 바다를 뒤집기는 어렵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헨리가 입을 열었다.
“250년 동안 로스차일드의 재산이 꾸준히 늘어왔다 해도 그들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축소됐을 겁니다. 그만큼 신흥국들이 성장했으니까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의 부는 수십 배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중 절반 이상은 신흥국에서 발생했다.
로스차일드가 아무리 미국과 유럽의 정재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들, 신흥국에서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다.
헨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 금융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계속 컨트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장난을 잘못하다보면 불이 옮겨 붙기도 하고, 흉년이 대기근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난 버킹엄셔의 대저택에서 만난 그랜트 데럴 로스차일드를 떠올렸다.
로스차일드가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면, 나에게 손을 내밀 필요가 없지 않을까?
금융위기를 일으키려는 것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국까지 확장하려는 게 목적인가? 그래야 자신들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난 한국의 사례를 떠올렸다.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은 강제적으로 금융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해야 했다. 주식, 채권, 외환 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입출입이 자유로워졌고, 금융자본의 외국자본 지분 제한이 철폐됐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시중은행들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중국자본은 전 세계 기업들을 집어삼킨 반면, 중국기업들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는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또한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 금융 분야에 대한 투자규제는 더욱 강하다.
제임스가 말했다.
“중국경제가 붕괴하면 미국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중국 금융시장을 집어삼킬 수만 있다면, 로스차일드는 누가 피해를 입든 상관하지 않겠죠.”
롱이든 숏이든,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수록 초기 투자자의 이익은 극대화된다.
때문에 IB, PEF, 헤지펀드 등은 자신들이 투자한 방향이 맞다고 주장하며, 모든 투자자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기를 바란다.
조지 소로스는 실패했다. 많은 투자자들이 중국이 붕괴하지 않을 거라 믿었고, 붕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로스차일드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제임스가 대답했다.
“3년 전에 비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졌고, 자산버블은 심해졌고, 부채는 더욱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로스와는 달리 기준금리를 인상시킬 만한 힘이 있죠.”
워렌 보트의 말대로 누구도 없는 일을 만들 수는 없다.
맥클레이 연준의장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로스차일드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들이 로날드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기준금리 인상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쯤은 둘 다 눈치 챘을 것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화폐가치는 상승한다. 달러가 강세를 띤다는 것은 위안화의 약세를 의미한다.
중국도 따라서 금리를 올리면 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위험이 크다.
“중국경제가 무너질 거라는 신호를 주기만 하면 됩니다. 신호만 확실하게 줄 수만 있다면, 세계 자본은 명령하지 않아도 로스차일드의 뜻대로 움직일 겁니다.”
돈은 모두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확신만 생기면 거대은행과 헤지펀드는 일제히 공격에 동참할 것이다.
어차피 중국 일이니,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강 건너에 불이 난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큰집에 불이 난 셈이다. 당연히 불길이 사방으로 옮겨 붙을 것이다.
“중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이 넘어가는 순간, 아세안과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줄줄이 넘어가게 될 겁니다.”
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겠네요.”
그동안 중국성장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금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교역국이고, 수출 규모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중국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넘쳐나지만, 막상 중국이 망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진짜 위험한 나라는 따로 있죠.”
“어느 나라요?”
“모든 무역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나라가 있었다.
난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북한.”
중국경제의 붕괴는 이제 막 경제개발에 나서는 북한에게는 치명적이다. 위기가 심화되면 북한은 힘겹게 열었던 문에 다시 빗장을 걸고 자력갱생을 외칠 것이다. 체제안정을 위해 또다시 도발을 감행한다면 지정학적 위기까지 고조될 수도 있다.
이 역시 한국경제에는 또 다른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심각한 경우입니다. 그 전에 위기기 커지지 않도록 공조한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금융위기는 일어날 거예요. 그에 맞춰서 대비해야 돼요.”
내 말에 헨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확신하시는 겁니까?”
“예.”
그레이스의 말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지를 봤기 때문이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후 터진 가장 큰 위기였다. 하지만 인류는 그 위기를 극복했고, 세계는 다시 호황을 누렸다.
그렇다면 다음 위기는 어떨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뭐가 있을까?
* * *
난 미국에서의 일정을 끝마치고 헨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로날드를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백악관을 찾아가봐야 별 도움은 안 될 것이다. 지켜보는 눈도 많으니, 한동안은 서로 접촉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택규는 눈을 껌뻑거렸다.
“금융위기를 일으켜서 해먹겠다고? 미친놈들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250년 동안 해먹고도 모자르대?”
“앞으로 250 더 해먹고 싶은 모양이지.”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다. 특히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손에 쥔 것을 놓으려하지 않는다.
난 그레이스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문이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예지를 봤으면, 이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인 건가?”
“아마 그렇겠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누나한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미 헨리가 말했을 거야. 본사 차원에서 대응책을 세우고 있을 테고.”
택규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양털 깎기라는 게 진짜 있었던 거야?”
먼저 신흥국에 자본을 빌려주어 경제성장을 돕는다. 이후 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회수해 파산시킨 다음 헐값이 된 자산을 쓸어 담는다.
그리고 다시 경제를 회복시켜 자산 가치가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마치 양을 잘 먹여 키운 다음 주기적으로 양털을 깎듯, 투기자본이 약탈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고, 훨씬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왜냐하면 털을 깎는 동안 양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어느 양이 힘들게 키운 털을 빼앗기고 싶겠는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
“일단은 충격에 대비해야지.”
OTK컴퍼니의 주력은 자동차와 배터리. 가계로 보면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큰 자산이고, 국가로 보면 가장 교역량이 많은 품목이다.
금융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신차 구매를 꺼릴 것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지연될 테고, 배터리 판매량 역시 함께 감소하겠지.
위기가 더 커지면, 지금하고 있는 투자도 발목이 붙잡힐 가능성이 크다. 지금 짓고 있는 공장들도 그렇고, 새만금 개발도,남북경협도, 모든 게 다 문제가 되겠지.
* * *
암울한 전망과 비관이 쏟아졌다.
기준금리 인상의 후폭풍은 계속 이어졌다. 신흥국들이 줄줄이 금리를 올리며 경기침체와 자산버블 붕괴의 우려가 커졌다.
시장은 작은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경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심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실물경제에 직접적으로 타격이 온 것은 아니지만, 금융시장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저가매수가 들어와 반등하는가 싶던 주가는 다시 주저앉았고, 매수세는 자취를 감추며 부동산 거래는 얼어붙었다.
연말 결산을 앞둔 기업들은 환율이 더 오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에도 전혀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
또 다시 안 좋은 소식이 금융시장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