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91)
490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고 안경을 낀 중년남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그동안의 선례(?)와는 달리 휠체어를 타지도 않았고, 손에 성경을 들지도 않았다.
그 앞에는 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반원형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역시 바깥 공기가 좋네요.”
난 그에게 말했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무게를 재보니 3킬로나 쪘더군요.”
난 검은색 봉지를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서 열어보았다. 안에 든 것은 새하얀 두부. 그는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두부를 먹었다.
카메라는 그 모습을 쉴 새 없이 찍었다.
지금 우리 모습은 CNN, BBC, CCTV, NHK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방송 되는 중이다.지금쯤 많은 외국인들이 왜 그가 두부를 먹는지 궁금해 하겠지.
난 차문을 열어주었다.
“타시죠, 선배님.”
“감사합니다, 후배님.”
우리는 뒷자리에 나란히 올라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 때문에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도.
차가 출발하자, 임진용 회장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저를 빼내준 이유가 뭡니까?”
난 그에게 말했다.
“배터리를 좀 만들어주셨으면 해서요.”
* * *
[임진용 회장, 1심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보석으로 풀려나] [강진후와 허창민 대통령 만남 이후 전격적인 보석 허가!] [보석에 강진후의 개입 가능성은?] [사법부, 특혜는 없었다고 선 그어] [임진용 회장 구치소 앞까지 마중 나간 강진후] [경실련, 서성그룹 회장의 보석 허가는 재벌 특혜라며 거세게 비난]강진후와 임진용이 구치소 앞에서 만나는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기사로 나갔다.
임진용 회장의 유죄 판결, 그리고 갑작스런 보석 허가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찬반의견이 엇갈렸다.
-뭐야? 진짜로 강진후가 허창민한테 뇌물 먹여서 임진용 석방시킨 거야?
-ㅋㅋㅋ 그럼 그렇지. 다 똑같은 놈들이네.
-재벌들은 좋겠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돈만 내면 석방되니~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왔는데, 석방이 웬 말이냐?
-석방이 아니라 보석입니다. 보석금을 낸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최종심에서 유죄 나오면 다시 감옥 들어가야 함.
-1심 유죄 떠도 최종심까지 구속 미루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국가경제를 위해 보석을 허가한 게 뭐가 문제냐? 애초에 종북좌파 놈들이 선량한 기업인을 무리해서 구속시킨 거 아니냐?
-역대 가장 선량한 기업인 임진용을 석방하라! 더불어 역대 가장 청렴한 대통령 박시형도 석방하라!
-진짜로 강진후가 풀어달라고 한 걸까?
-그전에 허창민과 만나고, 그리고 보란 듯이 구치소까지 찾아와 두부 내민 거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그러니까 강진후가 어째서? 빼주려면 진작 빼주던지, 왜 이제 와서?
-강진후는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 * *
임진용 회장을 태운 차는 OTK컴퍼니 본사에 도착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팀장급 이상이 모여 있었다. 현주 누나와 엘리도 이쪽으로 건너왔고,김호민 교수 역시 와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임진용 회장은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OTK연구소에서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성SB에서 이 배터리를 활용해 배터리팩과 양산라인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기술이 개발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양산화 여부다. 공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는지, 수율은 얼마나 나오는지 등등.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양산에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임진용 회장은 큰 관심을 내보였다.
“어떤 배터리입니까?”
JN배터리에 대한 내용은 극비사항이다.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제외한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다.
김호민 교수의 설명을 들은 임진용 회장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난 그에게 물었다.
“JN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잘 팔릴까요?”
“말이라고 합니까? 이게 사실이라면,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 기계, 항공, 의료, 로봇 등 모든 산업분야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걸 진작 개발했다면, 대체 왜 이제까지 상용화하지 않은 겁니까?”
기존 배터리 용량을 고작 두 배 늘린 OTK배터리는 산업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그런데 그보다 20배 용량이 더 큰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는 혁명이나 다름없다.
말을 하던 임진용 회장은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물더니, 우리를 보며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어요. 이게 주원료가 제라티늄이거든요.”
“제라티늄이요?”
“예. 그러니까 이건 리튬이온전지가 아닌 제라티늄전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성전자는 세계최대의 반도체기업.
반도체에는 희토류가 필수로 들어가는 만큼 임진용 회장이 제라티늄이 뭔지 모를 리 없다. 아마 가격 역시 잘 알고 있겠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려면, 약 100킬로그램 정도가 필요해요.”
내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얼마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현 시세로는 1그램에 230달러 정도 되겠네요.”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제라티늄 가격만 약 300억 원. 정말로 이걸로 전기차를 만든다면, 부가티는 우스울 정도의 가격이 나올 것이다.
김호민 교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JN배터리에 들어가는 제라티늄은 순도가 최소 99.99퍼센트여야 됩니다. 조금이라도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불량이 생깁니다.”
임진용 회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결국 제라티늄 순물질을 대량으로 구하지 못한다면,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배터리 생산라인을 만드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한번 생산하고 끝낼 게 아니라면, 원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제라티늄만 놓고 본다면, 다 사들인다고 해도 공장을 일주일도 돌리기 힘들 것이다.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얘기를 듣던 상엽 선배가 물었다.
“그래서 제라티늄을 대체 어디서 구해올 겁니까?”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의문을 가진 표정이었다. 이걸 알고 있는 것은 택규와 김호민 교수,그리고 현주 누나뿐.
난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고, 난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서요.”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엘리가 손을 들며 물었다.
“저기에 뭐가 있다는 건가요?”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거 보여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을 말하는 거예요?”
“맞아요.”
난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달에서 제라티늄을 채굴해서 지구로 가져올 겁니다.”
* * *
이게 내가 본 예지였다.
처음 ‘풍요의 바다’라는 것을 보고 깊은 바다에 매장되어 있다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고 그게 달의 지명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들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있는 것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엘리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달이요?”
“예.”
“그러니까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달에서 채굴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렇죠.”
“달까지 우주선을 타고 가서 제라티늄을 실고 지구로 돌아 오겠다구요?”
“바로 그거예요. 역시 엘리는 이해가 빠르네요.”
엘리는 실소를 흘렸다.
“그게 말이 돼요?”
“뭐…….”
놀랍게도 말이 된다.
현주 누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고, 상엽 선배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달?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정기홍 팀장, 서상원 팀장, 마이클 리 팀장 등의 표정도 비슷했다. 대놓고 ‘이게 뭔 개소리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심정이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서상원 팀장은 짜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실례되는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해보세요.”
“제정신이십니까?”
“예. 전 멀쩡해요.”
난 아직까지도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정기홍 팀장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어, 음. 제가 왜 이 회사에 입사했나 생각 중이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진 모양이다.
현주 누나는 두통이 이는지 손으로 이마를 꾸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둘이서 또 뭘 하나 했더니. 이젠 하다하다 달까지 나올 줄이야.”
택규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화성 아닌 게 어디야?”
“시끄러.”
또다시 침묵이 흐른 뒤, 힙겹게 정신을 차린 상엽 선배가 물었다.
“그럼 대표님께서는 달에 제라티늄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예. 달에는 다양한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고, 제라티늄은 그중 하나입니다. 달이라는 특성상 순물질 그대로 말이죠.”
내가 아무리 말을 해봐야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이럴 때는 역시 전문가가 나서야겠지?
나를 대신해 김호민 교수가 앞으로 나왔다.
“저도 얘기를 듣고 나서, 관련된 논문들을 좀 찾아봤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우주에는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원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달에는 지구상에는 거의 없는 희귀 원소들이 대량 매장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일단 입을 다물고 김호민 교수의 얘기를 경청했다.
희토류란 말 그대로 흙에 희귀하게 섞여 있는 원소다. 이는 원래 지구상에 존재하던 물질이 아니라, 운석 등을 통해 우주에서 날아온 것들이다.
지구의 경우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소실되거나 변형되고, 이후에도 비와 바람 등 풍화작용이 일어난다. 하지만 달에는 이러한 기상현상이 없고 극저온 지역이 많은 만큼,달 표면에 떨어진 운석은 원래 성분 그대로 쌓여 있다.
이를 캐내서 지구로 가져오면 엄청난 돈이 된다. 때문에 NASA 역시 달에서 자원을 채굴하려는 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위해 미국은 우주에서 누구나 자원을 채취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만들었다.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낸 것은 미국뿐이지만, 무인우주선은 다른 나라들도 여러 차례 보낸 적이 있다.
현재 기술로 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것은 큰 어려움은 없다. 달 채굴사업은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우주산업의 캐시카우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다양한 업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바로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Z.
알렌 에버하트는 ‘문 마이닝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올해 달에 매장된 자원지도를 만들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내가 말했다.
“알렌 에버하트에게 직접 물어보니,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니콜라와 스페이스Z의 창업자인 알렌 에버하트는 이쪽 분야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다.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지만, 이 정도까지 얘기했으면 믿지 않기도 힘들 것이다.
억지로 납득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임진용 회장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달에 제라티늄이 있고, 그것을 채굴해서 가져올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채굴비용과 운반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로켓을 회수해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용이 싸졌다고 해도, 우주선 한번 보내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실행할 경우 비용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희토류나 백금 같이 가격이 비싼 광물을 채굴한다는 계획이었다.
100만 원짜리 금을 캐내는 데 200만 원이 들어가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죠. JN배터리가 우주분야에도 쓰인다면, 발사비용 역시 계속 줄어들지 않겠어요?”
우주선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료. 그런데 JN배터리는 같은 부피와 무게임에도 OTK배터리 20배의 용량을 지니고 있다.
이를 잘만 활용하면 우주선 날리는 비용을 비행기 날리는 정도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말에 다들 눈을 빛냈다. 갑자기 스케일이 우주로 뻗어나가다 보니 혼란스럽긴 하겠지만,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직감한 것이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게 될지, 향후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임진용 회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오늘이야말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거 성공한다고 해서 형량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는 거 아시죠?”
그는 안경 너머로 눈을 빛냈다.
“상관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