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
건축사무소의 직원 이세연.
오늘 그녀는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어젯밤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그 때문에 지각하고 말았다. 과장은 벌써 몇 번째 지각이냐며, 이럴 거면 회사를 관두라고 소리쳤다.
고작 한 시간 지각한 걸 가지고, 그 난리라니. 그러니 그 나이 먹도록 만년과장이나 하겠지.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그녀의 발걸음은 백화점으로 향했다.
기분 전환에는 쇼핑만 한 게 없다. 뭐라도 지르면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1층 전면매장에 샤넬, 프라다, 루이비통 같은 프랑스 명품 매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곳에 들어가 보란 듯이 백 하나 집어 들고 결제하고 싶지만······.
카드한도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현금서비스와 리볼빙 등으로 당겨 쓴 돈이 벌써 800만 원이다.
남은 한도는 채 1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알뜰하게 쇼핑을 해야 했다.
이세연은 평소처럼 중저가 명품인 MPM매장으로 향했다. 이번 달에만 벌써 다섯 번째 방문이다. 덕분에 이미 매장에서 단골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점장과 직원들에게 대접받으며 쇼핑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MPM매장 입구로 다가가는 길에 누가 커피를 쏟았는지 바닥이 엉망이었다. 청소부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며 치우고 있었다.
신경 안 쓰고 지나가려는데, 걸레가 구두에 살짝 닿았다.
며칠 전 세일을 한다고 해서 큰맘 먹고 산 구두였다. 그런데 그 구두가 바닥을 닦던 걸레에 의해 더럽혀진 것이다.
이세연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줌마! 지금 뭐하는 거예요?”
청소부는 고개를 숙였다.
“앗!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하면 다예요? 이게 어떤 구두인데!”
“제, 제가 닦아 드리겠습니다.”
청소부는 직접 구두를 닦아주려는 듯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허리를 숙였다.
“어디서 더럽게 들이대요? 당장 손 안 치워요?”
“죄, 죄송합니다.”
소란이 커지자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달려 나왔다. 그녀의 옷에는 ‘매니저 우미란’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손님?”
이세연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보면 몰라요? 이 아줌마가 걸레로 제 구두를 더럽혔잖아요.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청소부는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
“이게 지금 죄송한 사람 태도예요? 무릎 꿇고 빌어도 부족할 판에.”
매니저는 청소부를 보며 말했다.
“뭐해요, 아줌마? 잘못했으면 어서 손님께 무릎 꿇고 사죄하세요.”
“예, 예?”
중년의 청소부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곳에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얼마짜리 구두인지 알아요? 아줌마가 물어낼 거예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다.
저런 비싼 구두를 물어낼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무릎을 꿇고 비는 걸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청소부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탁!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 * *
청소부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았다.
“여길 어떻게······?”
내가 앞으로 나서자 젊은 여자는 날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당신은 뭔데 끼어들어요!?”
“아들입니다.”
“뭐, 뭐요?”
난 여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분 아들이라구요.”
“······.”
내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청소부의 아들이 나타날지는 몰랐겠지.
백화점 안에 들어선 순간, 명품 매장 끝 쪽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그 앞에 청소부 복장을 한 아주머니가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청소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이 저절로 멈췄다. 어머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난 청소부 복장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내 시선을 살짝 피했다.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이 백화점에 온 적이 있었다. 아마 어머니 생일 때였을 것이다. 지하식당가에서 밥을 먹고, 같이 쇼핑을 했다.
아버지는 큰맘 먹고 어머니에게 가방을 사주었다. 거기에 나도 용돈을 보탰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명품은 아니고 중저가 브랜드제품이었지만, 선물을 받은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고객 상담센터에서 일하고 계신다더니······.
아들이 걱정할까봐 차마 청소부로 일한다는 말은 못하고, 상담센터에서 일한다고 둘러댄 모양이다.
“무슨 일이에요?”
“이 아줌마가 걸레로 내 구두를 더럽혔어요.”
“······.”
고작 그런 걸로 무릎 꿇고 빌라고 난리를 친 건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여자고 뭐고 한 대 패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어머니 보는 앞에서 주먹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난 이를 악물고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어디가 더렵혀졌는데요?”
“여기 안 보여요?”
“어디요?”
검은색 구두는 티끌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몰라요! 아무튼 이 구두는 이제 더러워서 못 신으니까 물어내요. 안 그러면 백화점 게시판에 글 올리고, 소비자원에 고발할 테니까.”
옆에 있던 매니저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짝이다. 무릎 꿇고 빌라고 난리치는 인간이나, 옆에서 부추기는 인간이나.
매니저의 모습에 힘이 났는지, 여자는 다시 큰소리쳤다.
“이게 얼마짜리인지나 알아요?”
나는 바로 되물었다.
“얼마짜린데요?”
내 물음에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60만 원짜리예요!”
그러자 뒤에 있던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세일 중이라 33만 원인데.”
45퍼센트 세일 중인가?
하도 난리를 치기에 몇 천만 원짜리 구두라도 되는 줄 알았다.
난 지갑을 꺼냈다.
“60만 원이면 되는 거죠?”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진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괜찮아요, 어머니.”
난 5만 원짜리 열두 장을 빼서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흥! 진작 이럴 것이지.”
여자는 손을 뻗었다.
난 그녀가 돈을 붙잡기 직전에 손을 뒤로 뺐다.
“먼저 사과부터 하시죠.”
여자는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뭐라구요?”
“돈 받고 싶으면, 사과부터 하라구요.”
여자는 분한 얼굴로 내 손에 들린 60만 원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자존심보다는 돈이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여자는 어머니를 향해 건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해요. 말이 좀 심했네요.”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사과였다.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여자는 내 손에 있는 돈을 붙잡았다. 그러나 잡아당겨도 돈은 빠지지 않았다. 내가 손가락에 힘을 빼지 않았기 때문이지.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구두 벗어요.”
“예?”
난 다시 말했다.
“구두 벗으라구요. 더러워서 못 신겠다고, 돈 물어내라면서요? 그럼 돈을 주면, 구두를 내놔야죠. 설마 구두는 그대로 신고 가고, 돈은 돈대로 챙길 생각이었어요? 무슨 창조경제도 아니고.”
“하아!”
여자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겠지.
“그냥 신고 갈 거면, 이 돈은 안 받는 걸로 알고.”
내가 돈을 빼려 했지만, 이번에는 여자가 손을 놓지 않았다. 또다시 돈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당연하지만, 이 돈 받고 새로 사는 게 남는 장사다. 백화점 안이니 원하는 매장에서 바로 사서 신을 수도 있을 테고.
결국 돈이 이겼다.
“나 참! 별꼴이야, 진짜!”
그녀는 구두를 벗어던졌다. 난 그제야 손가락에 힘을 뺏고, 여자는 돈을 챙겼다.
난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이런 개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죠.”
“······.”
여자는 차마 나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매니저에게 소리쳤다.
“이 백화점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매니저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신고를 하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다. 백화점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난 어머니에게 말했다.
“가요, 어머니.”
어머니와 함께 나가려는데, 매니저라는 여자가 뒤에서 소리쳤다.
“가긴 어딜 가요? 이러고도 내일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런 미친.
조용히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바닥에 있는 봉걸레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매니저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때, 때리려는 건······.”
난 그녀의 손에 강제로 봉걸레를 쥐어주었다.
“다시는 출근할 일 없을 테니, 앞으로 청소는 직접 하세요.”
“뭐, 뭐라구요? 이봐요!”
뒤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든, 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멍하니 내 손에 끌려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화들짝 놀랐다.
“내, 내 정신 좀 봐.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못했다고······.”
난 안절부절 못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이런 일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난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몸은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이 가벼웠다. 어깨와 등에 뼈가 만져졌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마른 거지?
이런 몸으로 하루 종일 백화점을 청소했다니.
난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괜찮아요, 어머니. 앞으로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잠시 당황하던 어머니는 가녀린 팔로 내 등을 쓸어주었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