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6)
난 어머니에게 어제의 일을 말했다.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트코인이라는 게 대체 뭔데? 어디서 발행하는 거니?”
“인터넷상에서만 발행되는 가상화폐예요.”
“그럼 게임머니 같은 거니?”
“뭐, 그렇게 이해하시는 게 편할 거예요.”
아무튼 중학생 때 받은 10만 원의 반트코인이 136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 12억4천만 원이 내 몫이다.
수익률로 따지면 무려 10만 배가 넘지만, 택규가 번 돈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택규가 판 캐릭터는 고렙이었던 데 비해, 내 캐릭터는 고만고만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열심히 키울걸 그랬나?
* * *
돈이 생겼으니, 제일 먼저 할 일은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반지하에서 계속 살 수는 없는 노릇. 좁고 지저분한 걸 떠나 건강에 좋지 않다. 어머니가 기침이 잦은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최대한 좋은 집으로 구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했다.
“갑자기 큰돈 생겼다고 함부로 쓰면 안 돼.”
결국 중개업소를 몇 군데 둘러보고 전세금 1억2천만 원에 투룸빌라를 계약했다. 지어진 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얼마 전 도배와 장판까지 새로 해서 내부는 깨끗했다.
이사하는 날.
워낙 없는 살림인지라 딱히 이삿짐센터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용달 한 대면 충분했다. 이사는 금방 끝났다.
짐을 다 옮긴 후 용달기사가 떠나자, 난 어머니와 함께 짐을 정리했다.
“집은 마음에 들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방도 두 개고, 햇볕도 잘 들고. 너무 좋네.”
돈을 더 썼다면, 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마음에 들어 하시니 다행이다.
박스를 열며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던 어머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작은 박스 안에는 액자와 앨범, 낡은 수첩 등이 들어있었다.
몇 차례 이사할 때마다 집 크기는 작아졌다. 공간이 줄어든 만큼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물건들은 대부분 버려졌다.
박스 안에 있는 건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인 셈이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액자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 담겨있었다. 나를 가운데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양쪽에 섰고, 뒤에는 아담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보였다.
어머니는 단독주택에 사는 게 꿈이었다. 아버지는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땅을 매입해 직접 집을 지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집이 다 지어졌고, 태어날 때부터 그 집에서 살았다. 우리 가족의 추억 대부분은 그곳에 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말없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가끔 아버지 생각해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고생만 하다 갔는데. 그래도 살아 있었으면, 지금처럼 좋은 날도 같이 봤을 텐데.”
난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그런지 왠지 어색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며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청소나 한 번 더 해야겠다. 진후 너는 방에 들어가서 정리 좀 하고.”
“알았어요.”
짐이 없으니 정리는 빨리 끝났고, 집이 작으니 청소도 금방 끝났다.
으음, 이것도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거실에 앉아 둘러보니 집이 꽤 넓어보였다.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있을 게 없어서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당장 세탁기와 냉장고, 식탁, 침대 등을 전부 새로 사야 할 판이다.
“당분간 일 좀 쉬어요.”
“몸이 멀쩡한데, 어떻게 집에서 놀아?”
말린다고 들을 어머니가 아니다.
“그럼 일단 3개월만 쉬세요. 알았죠?”
몇 번을 다그치자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들. 그렇게 할게.”
집을 구하느라 큰돈을 썼지만, 아직도 3억7천500만 원이 통장에 남아있었다.(세금신고 전이라 이 중 1억 정도는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그리고 택규에게 받아야 할 돈이 아직 7억4천만 원 더 있다.
이 정도면 몇 십 년은 걱정 없지 않을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한 기분이다. 돈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벌리는 거였나?
난 1억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어머니께 드렸다.
“이 돈은 어머니가 쓰세요. 필요하신 거 있으면 사시구요.”
“엄마는 괜찮아.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있는데.”
“제가 안 괜찮으니까 받으세요.”
정리를 다 끝내고 한숨 돌리는데, 택규가 손에 화장지와 세제를 들고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저 왔습니다, 어머님!”
어머니는 반색했다.
“어머, 택규 왔구나.”
평소 우리 집에 하도 자주 놀러왔던 터라, 어머니도 택규를 마치 아들처럼 대했다. 내가 군대에 가있는 동안 택규는 명절과 생일 때면 어머니를 찾아왔고.
“밥은 먹었니?”
“아직 안 먹었어요. 이삿날에는 짜장면이죠. 이따 시켜 먹어요.”
택규는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도와드릴 건 없어요?”
난 괜히 툴툴거렸다.
“도와주려면 좀 일찍 오던가.”
짜장면 먹으러 왔냐?
사실 일찍 왔어도 도와줄 건 별로 없었다.
난 택규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과 의자도 없었기에 우리는 방바닥에 앉았다.
“과일 먹어라.”
어머니는 과일접시를 놓아주고 방을 나갔다.
난 포크로 사과를 찍어먹으며 말했다.
“기사 보니, 마운틴힐 쫄딱 망했더만.”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야.”
마운틴힐은 세계최대의 반트코인 거래소.
해킹으로 인한 피해금액은 적게는 수천 억, 많게는 1조 정도로 추산되었다. 원칙대로라면 마운틴힐 측에서 이용자들에게 피해금액을 배상해줘야 한다.
그러나 일개 거래소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 정도 금액을 배상해준단 말인가?
결국 마운틴힐은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그럼 이용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그냥 돈 날리고 끝난 거지.”
만약 은행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세우고 피해보상이나 관련자 처벌 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트코인은 관리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대책을 세우는 기관도, 피해보상을 받을 방법도 없었다.
이는 반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었다.
택규의 얘기에 따르면, 거래소 해킹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전체 거래규모에 비해 소액이었는지라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건은 얘기가 달랐다.
피해규모로 볼 때 이번 해킹은 반트코인 역사상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누가 이번 사건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었다.
그저 IS에 소속된 해커집단이라든지, 국제 해커조직 어나니머스(Anonymous)라든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1BNT에 1120달러 정도로 거래되던 반트코인은 마운틴힐 폐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1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루 만에 또다시 20퍼센트 넘게 폭락해 1BNT에 800달러마저 무너졌다.
한국 언론에서까지 가상화폐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가상화폐 반트코인의 운명은?
-마운틴힐 해킹으로 드러난 반트코인의 문제점
-미래의 화폐 반트코인. 기로에 서다
-반트코인의 신뢰성 다시 도마 위에
-가상화폐에 대해 커지는 회의론
몇몇 금융전문가들은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대중이 반트코인에 부여하고 있던 가치가 사라졌다. 몇 달 안에 반트코인은 모노폴리 달러(보드게임 화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소리를 지껄였다.
“조만간 반토막 날 기세네.”
어차피 택규에게는 이제 남 얘기다. 그 전에 전부 팔아치웠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돼.”
“파산이?”
“아니. 니가 그걸 맞춘 게.”
“그냥 우연의 일치야.”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어. 내 생각에는······.”
택규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혹시 뭔가를 알아낸 건가?
난 귀를 기울였다.
“진후 너한테 원래 초능력이 있었던 거야. 위기상황이 닥치자 그 능력이 개화한 거고. 원래 슈퍼히어로는 그렇게 탄생하지.”
“······돌았냐?”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러나 택규는 여전히 진지했다.
“잘 생각해봐. 그건 분명······ 아! 나 지금 좋은 생각난 것 같아.”
“뭔데?”
“그 능력을 오라클 아이(Oracle Eye)라고 부르는 게 어때? 괜찮지 않아?”
“응. 괜찮지 않아.”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혼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클 아이 좋네. 앞으로 그렇게 불러야겠다.”
“······제발 그러지 마.”
그 순간, 택규의 폰이 울렸다.
띠리링!
“너한테 전화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냐?”
“있어. 항상 고생하시는 택배기사님들과 각종 스팸들.”
택규는 폰을 보니 깜짝 놀랐다.
“헉!”
전화를 받는 택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언제 한국에 왔어? 응? 지금? 나 바쁜데······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아, 알겠······ 넵!”
전화를 끊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난 택규에게 물었다.
“누구야?”
택규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누나.”
“현주 누나?”
택규에게는 10살 연상의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오현주.
누가 봐도 훌륭한 오타쿠인 택규와는 달리 현주 누나는 골든게이트(Golden Gate)라는 미국계 IB에서 일하고 있는 재원이었다.
택규가 반트코인을 팔기 전 델라아일랜드라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현주 누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한국에 들어왔대. 지금 바로 튀어 오래.”
현주 누나는 홍콩에 있는 아시아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홍콩에서 지냈고, 한국에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인지 택규는 어렸을 때부터 누나를 무서워했다.
택규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너도 같이 가자.”
“나는 왜?”
“나에게는 고작 친누나에 불과지만, 너에게는 하늘같은 선배님이잖아.”
“뭐······ 하늘같긴 하지.”
현주 누나는 한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과는 다르지만, 나에게는 10학번 위의 대선배님인 셈이다.
“우리 누나 본 지도 오래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니 군대 가기 전에 같이 밥 먹은 게 마지막이었구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같이 가자.”
내 말에 택규는 반색했다.
“잘 생각했어.”
난 대충 패딩을 챙겨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규랑 잠깐 나갔다 올게요.”
“가보겠습니다, 어머님.”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언제 들어오는데? 저녁은 어쩌고?”
“늦게 들어올 수도 있으니, 먼저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