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04)
503화
중국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 위기로 혼란을 겪은 것은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이 처한 위협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정치적 위기고, 다른 하나는 군사적 위기다.
러시아가 전쟁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NATO군과 러시아군의 대치가 이어지자, 유럽 내에서 또다시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 섞인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문제는 금융위기 우려가 잦아들며, 자연스레 해결됐다.
세계는 우주 개발과 JN배터리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다. 이 기회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갈리게 될 것이다, EU와 러시아 모두 지금 한가하게 전쟁이나 하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우주 개발 붐으로 당장 수혜를 볼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다. 냉전시절 미국과 우주 경쟁을 펼쳤던 러시아는 달 자원채굴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경제제재 등으로 기초산업에 제대로 투자를 하지 못한 만큼 기술력이 뒤처졌다는 얘기도 많으나,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노하우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주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EU는 러시아에 대해 전쟁이나 제재보다는 손을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해도, 전쟁을 선포한 이상 러시아가 명분 없이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NATO의 중재 하에 우크라이나 아나톨리 보리소프 대통령은 크림반도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한 사과와 함께 희생자 유족들에게 배상을 약속했고,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크림반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점유를 인정하겠다는 발언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항복했다. 이는 위대한 러시아의 승리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이를 러시아의 승전으로 규정했고,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는 여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EU의장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리고 러시아의 대통령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철군에 대해 논의하고 협정을 맺었다.
그들은 언제 싸우려 했냐는 듯 서명을 한 뒤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둘째는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EU분열이었다.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며, 영국에서는 EU를 떠나 살 길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만큼은 아니지만, 시티오브런던의 금융회사들 역시 투기에 가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영국 금융시장은 만신창이가 됐고,펀드와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하거나, 정부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됐다.
EU의 분열을 막기 위해 강진후까지 힘을 보탰다.
“OTK컴퍼니는 EU와 향후 경제협력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OTK컴퍼니와 EU가 맺은 협정은 EU 가입국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겁니다.”
유럽우주국은 NASA와 로스코스모스와의 협력과 함께 달 탐사 로켓발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우주 개발과 JN배터리가 가져올 산업변화에 있어서 EU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보리스 케인 총리와 보수당 의원들은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유럽우주국과의 협력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없었다.
최근 조사결과 EU잔류를 희망한다는 의견이 75퍼센트가 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국의회는 보리스 케인 총리와 보수당이 주도하던 하드 브렉시트를 가까스로 부결시켰다.
국가부도 위기를 겪으며 EU 탈퇴를 추진하던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 * *
난 골든게이트 중국지사를 방문했다. 그곳에 있던 직원들은 나를 보며, 박수를 쳤다.
먼저 도착해있던 헨리는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헨리도요.”
그동안 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여러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난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나를 보는 눈빛에는 존경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둘만 있게 되자, 헨리는 웃으며 말했다.
“미국에 이어서 중국에서도 영웅이 됐군요.”
내가 전력을 다해 중국시장에서 투기세력과 싸웠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그 덕분에 나는 물론 한국에 대한 호감도까지 치솟았다.
한때 미중무역분쟁의 주범으로 지목돼 조리돌림 당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시장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오늘 인민은행이 고시환율을 1달러에 7.03위안으로 낮췄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도 있고, 지나친 위안화 고평가로 중국경제 역시 피해를 입고 있었으니까요.”
“그 정도면 적정 수준이라 할 수 있겠네요.”
난 그에게서 금융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상황이 뒤바뀌기 직전 빠져나갔습니다. 한순간에 전략을 바꿔 손실을 최소화하며 물러나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 그지없더군요.”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투자에서 가장 힘든 게 손절이다. 그런데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마자 포지션을 청산하다니.
역시 로스차일드라고 해야 하나?
반면, 공세에 가담했던 이들은 멀쩡하게 돌아가지 못했다. 알베르트 매니지먼트, 슈니츠 인베스트먼트 등은 파산했고, 레드스톤, IRR 등은 절반 이상의 시총이 날아갔다.
칸라인그룹이 만든 블라인드펀드의 경우 손실액이 95퍼센트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고, JP모건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
“월스트리트 전체가 초상집이나 다름없습니다. 거대자본들이 너도나도 이번 투기에 가담했으니까요.”
아직 정확한 손실액이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다. 나중에 실적발표하고 나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겠지.
“다행히 골든게이트는 잘 대응했네요.”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남이 그러더군요.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난 웃음을 터트렸다.
“택규가 할 만한 말이네요.”
월스트리트의 IB들 대부분 투기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골든게이트는 차분하게 기다렸고,변화가 시작되기 전 그들과 반대로 움직였다.
“칼 싱어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쐈다고 합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들었어요.”
알베르트 메니지먼트는 그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것으로 유명했다. 그 끝이 이런 건가?
쉬쉬해서 그렇지, 목숨을 끊은 투자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맨해튼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목격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대중들은 대체로 인과응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선량하게 벌었든 악하게 벌었든 돈은 돈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죽은 것은 그저 투자에 실패했기 때문이겠지.
“돈 때문에 목숨까지 끊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에게는 돈이 전부였을 테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 싸우는 투자자는 돈이 삶의 목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헨리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시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시장 또한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니까요.”
난 피식 웃었다.
왠지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다.
* * *
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희망을 먹고 산다.
다시 불붙은 우주 경쟁과 JN배터리가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이번 위기를 통해 OTK컴퍼니가 벌어들인 돈은 약 1조 달러로 추정된다.
심지어는 이 금액이 기업가치 상승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수익도 아니고, 당장 현금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투기에 가담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공매도를 상환하지 못하고 줄줄이 파산하는 사이,그들의 손실은 고스란히 OTK컴퍼니의 수익으로 잡혔다.
한국인들은 강진후가 한국의 1년 GDP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두세 달만이 벌어들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 세계 투기자본을 통째로 털어먹은 결과였다.
OTK컴퍼니는 그동안 여러 사업을 추진했다. 이중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는 바로 VRMMORPG와 새만금 신도시다.
VRMMORPG가 아직 준비단계인 반면, 새만금 신도시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전까지는 OTK컴퍼니를 따라 너도나도 참여하겠다며 숟가락을 얹었지만, 금융위기의 공포가 짙어지고 자금흐름이 경색되자, 참여하기로 했던 기업들은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OTK컴퍼니는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을 확보했다. 다른 기업들이 다 빠진다 해도 OTK컴퍼니만으로도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이 유령도시가 될 거라는 우려는 사라지고, 아시아 최고의 도시로 거듭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펼쳐졌다.
세계최대 기업이 만들고, 미래의 핵심산업들이 모일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그동안 각종 핑계를 대며 몸을 사리던 기업들은 다시 몸을 돌려 새만금으로 뛰어들었다.디즈니와 유니버셜은 바로 새만금에 테마파크 시공을 시작하기로 했고, 다른 기업들 역시 공장과 빌딩 건설을 서둘렀다.
어차피 부지는 남아도는 만큼 추가 건설계획도 발표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로스코스모스와 협력해 새만금에 발사장을 짓기로 했고, OTK컴퍼니, 서성SB, CL화학, SSK이노베이션은 OTK배터리 생산시설에 이어서,새만금에 세계최대 규모의 JN배터리 생산시설을 건설하기로 MOU를 체결했다.
이는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은 향후 산업변화에 있어서 가장 크게 수혜를 입을 나라로 분류되며, 자본이 밀려들어왔다.
시장은 사실상 원화를 준기축통화로 취급했고, 한국 금융당국은 원화가치가 너무 치솟는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허창민이 다 말아먹은 경제를 강진후가 살려놨네.
-ㅋㅋㅋ 이거 레알임. 강진후 아니었으면 한국경제는 폭망했음.
-진짜 될 놈 될인 듯
-허통은 강진후 만난 게 천만다행~
-그 정도 돈 벌었으면, 전 국민에게 100만 원씩 나눠줘라.
-ㅅㅂ 뭔 미친 소리냐고 생각했는데, 그래봐야 50조 원밖에 안 하네. 강진후한테는 껌값.
-허창민이 강진후 안 건드린 게 신의 한수.
-여러분! 강진후 건드렸다가 ㅈ된 각하를 잊지 맙시다!
-감방에서 강진후 잘 나가는 거 보며 배 아파하실 각하를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ㅜㅜ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각하 생각이 나~
-박시형 각하를 석방하라!!
-연나경 단식 한번 더 가즈아!
* * *
중국 관영언론들은 연일 장핑화 국가주석의 업적을 띄우기에 바빴다.
공산당 내에서도 이전까지의 불만의 목소리는 쏙 들어가고, 모두가 그를 중화민족을 구해낸 위대한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장핑화 주석은 직접 경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내외에 중국경제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난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중국기업인들을 만났다. 위챈트의 마화텅 CEO를 비롯해 중국 최고의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오랜만에 텐웨이를 창업한 샤오민과 야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을 여기에 부른 것은 OTK컴퍼니가 투자한 회사이기 때문이겠지.
난 여러 기업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장핑화 주석은 직접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먼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개의 도시’에 나온 첫 구절로 얘기를 시작했다.
“지난 수개월은 중국에게 있어서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습니다.”
이어서 나온 말은 투기세력에 대한 경고였다.
“이익이란 글자 옆에는 칼이 기대어 있습니다. 남의 것을 탐하면 스스로를 해치기 마련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에 따른 필연적 산물이 아닌, 탐욕스런 투기자본들이 일으키는 행위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힘을 모아 대처하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없고, 여럿이 지혜를 모아 행하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중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인류 역사에 평탄한 길은 없었지만, 인류의 전진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 앞에 섰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자신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거나,믿음을 버리거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용감한 자가 창조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행사가 끝난 뒤.
난 장핑화 주석과 둘이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로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꿔놓았군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서 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시장이란 한두 사람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 했던 몇몇 이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세계경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그 믿음들이 모여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난 오기 전 본 뉴스를 떠올렸다.
다행히 홍콩 시위는 잦아드는 분위기다. 행정장관은 강경진압은 없을 것이며,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체제와 장핑화 주석의 권력도 다시 공고해진만큼 굳이 홍콩에 강경한 자세를 취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나라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겠지.
어차피 일국양제는 2047년 종료된다. 그때가 되면 공산당이 홍콩을 직접 통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약속이란 맺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를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힘이 있어야 약속을 지키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자본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이상 중국은 분명히 약속을 지킬 것이다.
장핑화 주석은 나를 보며 물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난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말했다.
“집에 돌아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