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7)
10억이 쌓인 순간부터 게임은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이기려면 9억9356만 원을 쌓아야 하는데, 평범한 대학생이 무슨 수로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채명호는 날 보며 말했다.
“제가 부모님 믿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착각하지 마요, 선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MCK홀세일이 니 꺼라며?”
채명호는 초등학생 시절 증여세 100만 원을 내고 MCK홀세일 지분 87퍼센트를 물려받았다. 그 후 MCK홀세일은 마스터치킨에 식자재를 독점공급하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편법승계를 위한 전형적인 일감몰아주기 수법이다.
시중에서는 2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소스 한 통이 MCK홀세일을 거치면 3만 원이 된다. 산지의 생닭 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MCK홀세일이 공급하는 염지 닭 가격은 계속 올랐다.
그렇다고 가맹점이 따로 구매할 수도 없다. 가맹계약에 모든 식자재는 반드시 MCK홀세일을 통해서만 구매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가맹점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식자재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MCK홀세일은 원래 가맹점주들이 가졌어야 할 이익을 빨아들이며 성장한 것이다.
덕분에 아직 비상장임에도 기업 가치가 200억이 넘는 걸로 알려져 있다.
200억짜리 기업을 고작 증여세 100만 원만 내고 물려받다니. 역시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다.
얘가 단기간에 얼마나 현금을 더 동원할 수 있을까? 아마 기껏해야 10억에서 20억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재밌다는 건 대체 언제 보여줄 건데요?”
“잠깐 기다려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유리가 물었다.
“어디 가요?”
“대부업체에 대출상담 좀 하고 올게.”
“······.”
호프집을 나온 나는 먼저 상엽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진후야.]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K컴퍼니에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돼요?”
[350억 정도.]“그 이상은요?”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잡으면 1700억까지는 가능할 거야.]“······.”
아예 마스터치킨을 통째로 사들일 수도 있겠구나.
이상함을 느꼈는지, 상엽 선배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아니요. 재밌는 일이에요. 지금 택규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제가 말한 대로 해주세요.”
난 지시사항을 말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택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좀 올 수 있냐?”
[아니. 게임 하느라 바빠.]“그러지 말고 나 좀 도와줘.”
[무슨 일인데?]난 상황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녀석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바로 갈게.]“게임하느라 바쁘다며?”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경일이가 물었다.
“대부업체에서 뭐래?”
“대출 승인됐다고, 조금만 기다리래.”
“얼마나 빌렸는데?”
난 10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보다 훨씬 많이.”
채명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다른 애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당연하지만, 대부업체가 미치지 않고서야 대학생에게 10억 넘게 빌려줄 리 없다.
하지만 OTK캐피탈이 출동하면 어떨까?
초조하게 지켜보는 애들과는 달리 나는 잡담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채명호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유리였다.
어째서인지 유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면 정말 저놈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생각인가?
약속을 했다고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 애초에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믿거나, 다른 수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채명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30분 남았네요.”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게임 캐릭터가 붙어있는 경차가 호프집 앞에 도착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택규는 호프집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내가 왔다, 친우여!”
갑자기 등장한 특이한 캐릭터에 호프집 안은 조용해졌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길이 좀 막혔어.”
유리는 내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물었다.
“누구예요?”
“같이 사는 친구.”
그러자 유리는 재빨리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전 진후 선배의 후배인 신유리라고 해요.”
택규는 깜짝 놀랐다.
“오오! 그 신유리? 반갑습니다, 오택규예요.”
“예. 저도 반가워요. 진후 선배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도 진후한테 얘기 많이 들었는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둘은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남매처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택규는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갑질한다는 치킨본사 아들내미가 누구야?”
난 앞을 가리켰다.
“얘.”
택규는 채명호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아주 닭 같이 생겼네. 그런데 치킨 팔아서 근근이 먹고 사는 꽃제비 같은 애를 자퇴시켜도 되는 거야?”
“미안하면, 나중에 치킨 좀 시켜먹어.”
“노노. 마스터치킨 끊었어.”
채명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부탁한 건?”
“뒤에 따라오고 있어. 아! 도착했네.”
검은색 SUV가 멈췄다. 문이 열리며 세 명의 남자가 내렸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40대 초반 정도의 남자와 SECURITY라고 써진 경호복을 입은 젊은 남자 둘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검은색 보스턴백이 들려있었다.
양복 입은 남자는 나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골든게이트 강남지점장 유성무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붙잡았다.
“누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희 학교 선배님이시라고.”
“하하, 맞습니다. 학교 근처는 오랜만에 오네요. 대표님께 말씀 전해 들었고, 부탁하신 것 가지고 왔습니다.”
“예. 수고하셨어요.”
테이블 위에 두 개의 보스턴백이 놓였다.
난 보스턴백의 지퍼를 열었다.
“이제 재밌는 게 뭔지 보여줄게.”
촤르륵!
회색 돈다발이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개수는 총 500개. 녀석이 쌓은 건 5만 원짜리지만, 이건 100달러짜리다.
“총 500만 달러.”
난 유성무 지점장에게 물었다.
“현재 환율이 어떻게 되나요?”
“1108원입니다.”
난 채명호를 보며 말했다.
“들었지? 그럼 55억4000만 원이네. 여기에 645만 원 더해서 총 55억4645만 원. 앞으로 17분 안에 45억4546만 원만 더 쌓으면 니가 이겨. 아니면, 내일 자퇴서 제출하고.”
채명호는 당황하다 못해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진짜일 리가······.”
“못 믿겠으면 직접 보던가.”
난 돈다발 하나를 집어서 녀석의 앞에 던졌다. 뒤에 있던 정 실장이 나서서 돈다발을 집어 들고 살펴보았다.
유성무 지점장은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방금 골든게이트 금고에서 가져온 돈입니다. 위폐가 있을 시에는 골든게이트 측에서 책임지겠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들었어? 골든게이트래.”
“세계최대 IB인데.”
“대체 어떻게······?”
아무리 200억짜리 회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17분 안에 45억4546만 원의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택규는 오길 잘했다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자 택규는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 타이머를 보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십, 구, 팔, 칠, 육······.”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호프집 안에 있는 모두가 다 같이 합창을 했다.
“오! 사! 삼! 이! 일!”
삐삐삐!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난 채명호를 보며 말했다.
“오늘 봐서 즐거웠고, 내일부터는 보지 말자.”
콰앙!
채명호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너 정체가 뭐야?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러는 넌 대체 왜 그러냐?”
녀석은 절규하듯 소리쳤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택규가 나서서 꾸짖었다.
“아직도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너네는 치킨이 너무 작아! 양심이 있으면 10호 닭은 써야 되는데, 9호 닭을 쓰는 걸로 의심돼. 그런 주제에 얼마 전에 가격을 2천 원이나 올렸지. 이제 짜증나서 못 시켜먹겠어. 전국의 치킨피플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돼. 알았냐,
이 닭 같은 새끼야?”
“······.”
이건 또 뭔 소리야?
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몇 명은 공감하는 듯했다. 누군가가 먼저 박수를 치자, 모두가 따라 쳤다.
짝짝짝!
난 멍하니 서있는 채명호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
“······.”
결국 녀석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뒤에 있던 남자들은 허겁지겁 007가방에 10억을 담은 다음 사라졌다.
골든게이트 직원들도 테이블 위에 있는 500만 달러를 보스턴백에 담았다. 이걸 다시 가져가서 강남지점 금고에 입금해야 한다.
난 기왕 뽑은 600만 원은 과대에게 주었다.
“오늘 회비 걷지 말고 이걸로 내. 남은 건 다음 회식 때 쓰고.”
“엇! 감사합니다, 선배님.”
택규와 함께 나가려는데, 선아가 내 팔을 붙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저 돈 어디서 났어?”
난 택규를 가리켰다.
“내 친구가 돈이 많아.”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난 더 많고.”
* * *
자퇴를 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채명호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나오더라도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지.
규원 선배는 미안하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비슷한 일을 당한 입장에서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기에 기꺼이 사과를 받아들였다.
역시나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경영대는 물론 인문대와 공대, 미대 할 것 없이 내 이름이 학교 전체에 알려졌다.
* * *
우리는 오랜만에 상엽선배를 만나 등심을 꿔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내 얘기를 들은 상엽 선배는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나도 그 자리에 갔어야 했는데. 표정 진짜 볼만했겠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재밌었어요. 게임하느라 안 갔으면 좋은 구경 놓칠 뻔.”
우리는 술잔을 부딪쳤다.
“만약 선배 왔으면, 애들 난리 났을 걸요.”
사실 현재 학교의 가장 큰 이슈는 내가 아니라 상엽 선배다.
한때 수학과 박상엽은 한국대의 전설이었다.
집 보증금을 빼서 학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한 것과 그 돈을 투자해서 3억 넘게 번 것 등등.
그러나 그 전설의 끝은 몰락이었다.
옵션 투자를 잘못해서 전재산을 날렸고 빚까지 졌다. 결국 빚쟁이들에게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수천억 대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되어 나타났다. 인생역전도 이 정도면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현재 K컴퍼니는 놀라울 정도로 잘 나가고 있었다.
1년 전쯤 투자해놓은 24개의 국내 스타트업의 가치는 폭등했다. 일부 기업들은 B2C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고, 대기업과 사모펀드에서 인수와 투자제안이 물 물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상엽 선배가 따로 굴린 60억은 현재 3000억이 넘었다.
자본의 규모에 따라 운용방법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과연 상엽 선배가 수십억이나 되는 자본을 굴릴만한 그릇이 될지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거액의 투자금을 손에 쥔 상엽 선배는 현물, 선물, 옵션을 가리지 않고 돈이 될 만한 기회는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조자룡 헌창 쓰는 듯했다.
그 사이 나는 간간히 떠오른 예지들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물론 예지라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긴 채 다른 곳에서 들은 것으로 위장해서.
상엽 선배는 내가 알려준 정보들을 철저하게 분석했고, 자신만의 기법을 적용해 투자했다. 그 결과 1년 사이 무려 50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장기투자는 어떨지 몰라도 단기투자에서 이 정도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처럼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심지어는 현주 누나가 골든게이트 내에서도 이런 실력을 갖춘 사람은 못 봤다며 감탄했다.
자본을 대고, 예지를 알려준 것은 나지만, 회사를 이만큼 키운 것은 상엽 선배다. 아마 내가 직접 했어도 이렇게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K컴퍼니 설립 1년 후.
난 약속한대로 상엽 선배에게 K컴퍼니의 지분 2퍼센트를 주었다. 현재 K컴퍼니 가치가 1조 원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200억을 넘게 받은 셈이다.
초반에 직원 하나 없었던 사무실은 이제 제법 투자회사 같은 모습을 갖췄다. 그 사이 직원도 계속 뽑아 현재는 사무직 여직원들을 포함해 15명에 이른다.
몇 달 전 위층에 있던 컨설팅 업체가 나간다고 하자, 아예 거기까지 임대해서 확장했다.
상엽 선배는 맥주를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요.”
“표정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뭐야?
난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만간 큰일이 하나 생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