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became the Three Kingdoms Sackcloth RAW novel - Chapter 72
72화. 하북의 천재
말 위에서 떨어진 염유를 따라 흙바닥에 내려앉았다.
염유의 등에서 뿜어진 혈액을 지혈하기 위해 소매를 찢어 압박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포위하는 저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지고 두터워졌다.
오환의 포위 속 성의는 둥그런 원형의 방어막을 형성해 나와 염유를 철저히 보호했다. 그가 뿜어낸 눈길에 검을 뽑은 적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어쩌면 저들도 더는 희생을 원하지 않는 듯, 아니면 무언가 기다리는 듯 포위만 한 채 시간만 끌었다.
그런 대치가 찰나로 지나고 오환의 무리 중 한 사람이 걸어 나와 말했다.
“감히! 형거를 죽이고도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것도 답돈蹋頓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이냐?!”
그 말에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의지만은 죽은 게 아니어서 성의의 외침으로 답돈의 목소리를 밀어냈다.
“흥! 숫자만 믿고 까부는 게 너희 오환 족속이지. 어쩌면 강족이나, 저족의 무리가 너희보다 훨씬 사내답다. 너희 중 용기 있는 자, 나서라! 여기 서량 사내가 상대하마.”
당당한 성의의 외침에 오환족은 웅성거렸다.
개중에 답돈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고 그가 끄덕이자 검을 부여잡고 다가서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의의 대도에,
또는, 정은, 장횡의 창과 박도에 목 없는 귀신이 되었다.
그쯤 되자 답돈의 표정은 굳었다.
처음 장난스럽게 보내던 오환 병사가 하나둘 죽어가자 이제는 하나가 아닌 대여섯을 동시에 보내며 일행이 지쳐가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한나절을 넘어가자 일행의 몸은 무거워졌다.
그것에 더해 장횡이 저들의 칼질에 상처 입자, 오환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 듯 커지고 저들의 사기는 높아졌다. 그에 반해 일행의 표정은 굳었다.
그 순간, 답돈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서량 것들이 중원 유자보다는 낫군. 하지만 네놈들도 끝이다.”
그 말에 오환족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그 소리보다 더 큰 호각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찌르는 듯한 호각 소리가 길게 퍼졌다. 수풀과 산천초목에 메아리치듯 사방에서 들리는 환청을 만들었다.
그 소리에 답돈의 표정은 굳었다. 또한, 호각 소리가 다가서자 일행을 포위했던 한쪽이 풀리고, 저들은 한 방향으로 뭉쳐 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열린 포위망을 보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친 수하들의 상태와 위중한 염유의 모습에 섣불리 몸을 빼지 못하고 돌격 거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쪽 공간이 열리고, 일단의 기마대가 등장하여 오환족을 마주한 상태로 진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군병을 알아본 성의가 말했다.
“주군, 공손찬의 기병입니다. 그것도 일반 기병이 아닌 백마의종(白馬義從)입니다.”
성의의 말에 그들을 보았다. 저들은 백옥 같은 하얀 백마에 앉아 오환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거대한 말에 올라탄 장수가 앞으로 나서며 커다랗게 호령했다.
“오환 잡것들아! 이곳이 어딘지 알고 선을 넘어.”
그 말에 답돈이 답했다.
“공손월. 더러운 말투는 여전하구나. 선을 넘은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그러니 너와 네놈의 흰 망아지들은 나에게 사정을 봐주어야 해.”
“흥! 우스운 소리. 그것이 협상하는 자의 말투더냐? 네놈들의 하는 짓은 뻔하지. 분명 길목을 붙잡아 도적질하고 있을 터.”
공손월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일행을 한번 훑었다. 아주 잠시의 눈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답돈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다. 지금 저자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흥정하고 있어.
손을 벌려 돈을 요구하고 있어.
아주 잠시 희망을 가졌던 것을 우습게 했다. 공손월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약탈하는 오환족과 그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공손월의 뻔뻔함. 초월의 법은 강자존. 그곳에서 살고 싶으면 돈을 내야했다.
나는 입에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삼키고 나섰다. 이대로 흥정을 진행하게 둘 수는 없는 법.
흥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공손월 장군, 그대는 황제로부터 백성을 지키라 명령받은 관리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공손월은 잠시 내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리고 시선을 답돈에게 돌렸다.
나는 대의명분을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역시 공손월을 상대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
“장군, 저희는 마가장입니다. 공손 태수와 계약을 맺은 마가장입니다.”
그 말이 주효했다. 귓등으로 듣던 그의 눈동자에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아, 마가장. 알지. 알다마다. 전예 따위를 사고자 돈을 벌이는 상단말이지.”
“맞습니다. 그들이 저희이지요.”
“역시 형님의 손님들이군.”
공손월의 웃음에 미소를 보였다. 우리 사이에 연계가 생겼다. 그에게 조소 섞인 호감을 얻었다. 그러자 답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공손월! 이 자식아! 뭐 하는 짓이냐? 길을 비켜!”
욕설을 들은 공손월은 사나워졌다.
“오환 놈에게 욕설을 듣다니? 내가 네놈과 사담이나 나눌 정도로 친했던가?”
그 말에 주변 공기는 싸늘해졌다. 오환 병사들은 칼을 뽑았다. 공손찬 부대는 안장에 매어둔 활을 쥐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일행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말에 올라. 싸움이 터지면 빠져나간다.”
그리고 ‘백마의종’이 시위에 화살을 메김과 동시에 고삐를 내리쳤다.
“달려! 지금이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우린 달렸고, 화살은 날았다. 오환 병사들은 뽑아 백마의종에게 달려들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일행은 교묘히 빠져나갔다.
운이 좋았다. 정말 운이었다.
하늘의 주신 기회와 운으로 북평까지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북평에서 염유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뿜어진 혈액이 상당해 쉽지 않았다. 의원은 남피로 내려가라고 조언했다.
그를 살리고 싶으면 남피의 신의神醫 화타를 찾아야 한다고.
조급한 우리의 발걸음은 남피로 향했다.
*
남피로 내려가는 마차.
염유는 눈을 뜨지 못했다. 위중하던 순간은 넘겼지만, 그는 혼절한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염유를 두고 화타를 만나길 고대했다.
우리의 발걸음은 어렵게 남피의 관문을 넘어섰다.
그리고 운 좋게도 화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신의라 불린 그의 소재는,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물으며 쉽게 알려질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화타가 진료한다는 어느 고관대작의 집안.
그 안으로 들어서기는 정말 어려웠다. 지금도 눈앞에서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긴숨을 내셔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풍족한 자금으로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역시 지위를 가져야 해.
동탁의 등에 올라타야 해.
이곳에 줄을 선 환자는 모두 위중한데, 화타가 다음 순서로 우리를 받아줄까?
우리는 위중한 염유를 앞에 두고 발만 동동거렸다. 그러다 지나치는 화타의 제자를 붙잡고, 이당지를 연결고리 삼아 말을 붙였다. 그러자 표정이 사뭇 다르게 바뀌고 말을 받아줬다.
“이당지요. 그대가 사형의 주인이란 말이지요?”
제자의 목소리는 컸다. 그것이 관심인지? 질타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사실이다. 그 후, 어렵사리 화타와 첫 대면을 가졌다.
그 역시 싸늘한 눈초리를 품고 말을 하고 있다.
“자네들이, 이당지를 뺏어간 마가장이란 말이지!”
그리고 그 사태의 원인인 ‘마비산’을 보길 원했다.
“이것이 마비산이고 조제법은…”
화타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염유의 목숨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염유의 완쾌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약을 내준다.
화타는 내가 내준 약과 제조 방법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나의 바람에 한마디를 했다. 조용하고 낮은 어조지만 강한 약속이었다.
“의원은 환자를 두고 장담하지 않아. 하지만 물러서지도 않지.”
그 말이면 되었다. 화타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화타가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못 할 것이다.
난, 화타를 향해 거듭 고개를 조아리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 할 일 없이 남피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염유의 상태를 살피려고 수시로 드나드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피의 여러 곳을 드나들며 인재의 보고(寶庫)인 이곳에서 사람 찾기로 했다.
물론 예전 기억으로 남피의 후미진 약방에 ‘허유’라는 작자가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경망스럽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그를 서량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찾기를 며칠.
수소문 끝에 찾아간 사람은 당대의 명사인 진림陳琳이었다.
진림.
그는 대장군 하진의 밑에서 주부注簿로 지냈다. 하지만 진림의 관직 생활은 십상시의 전횡과 정치의 더러움으로 회의를 느꼈고, 종국에 낙향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 진림을 찾아간 일행이 처음으로 맞이한 건 그의 명성과 걸맞지 않게 작은 초막. 그 작은 초막에서 진림을 불렀다. 울타리를 너지 않고 정중히 불렀다.
“진림 선생님 계십니까?”
그러자 마른 몸에 팔자수염을 기른 문사가 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지금은 수업 중입니다. 개인적인 일이면 차후에 오시거나, 뒷줄에서 기다리시오.”
그 말에 따라 기다렸다. 수업에 집중하는 그를 쳐다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수업은 열정적이었다. 문장과 글을 놓고 토론하고, 때론 자기가 직접 글을 써서 학사들에게 보여주며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수업에 열중하게 했다.
예전 가후의 수업처럼 어린 학동이 즐비했던 모습과 상반되었다. 이곳에 모인 자는 젊은 청년이거나 나이가 지긋한 문사가 대부분이다.
가르침에 있어선, 스승보다 진림이 더 뛰어낫다.
어쩌면 가르치는 재능이란, 포괄적인 시각으로 모든 걸 한눈에 통찰하는 천재보다, 천천히 나아갈 길을 정해주는 진림이 더욱 뛰어난 스승이었다.
그런 진림을 서량으로 모신다면 어떻게 변할까?
칼을 버리고 책을 든 서량 사람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피식거리는 입가의 미소를 만들고 진림의 수업에 열중하는 학사들의 모습을 하나둘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눈에 띄는 한 사람.
“저 사람은 수업에 관심이 없어.”
이곳의 분위기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는 진림의 수업에 관심이 없다는 듯 먼 산을 쳐다보거나, 때론 기다란 하품으로 열정적인 수업을 우습게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호기심이 들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시선은 이쪽으로 돌려지지 않았다. 굉장히 둔감한 사람도 이 정도 눈길이면 쳐다볼 만도 한데? 원래 둔감한 것인지? 의도적인 행동인지? 그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저자? 분명, 완강한 고집이다.’
그에게 들었던 흥미가 식어갈 즈음 수업은 끝났다. 대부분의 학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떠나갔다.
진림은 수업을 마치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먼 산만 바라보던 자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본 후, 그자에게 말을 건넸다.
“전풍, 아직도 거기 있었나? 바쁜 원가의 손님께서 오늘은 어쩐 일인가?!”
그러자 무미건조한 표정의 그자가 웃는다. 그리고 입을 떼 말했다.
“그것이야. 자네의 글 읽는 소리가 좋아. 매일 방문하는 게 아닌가.”
“허- 쉰소리. 이 친구야, 자네가 수업에 관심이 없는 건 모르지 않아.”
“알았는가? 그걸 들켜버렸어. 허허허.”
눈앞의 진림을 두고 전풍이 웃는다. 그 웃음이 끝난 뒤 진림의 시선은 우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