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운호가 지구에서 브라질 헌터들과 전직 CIA 놈들을 추적하고 있을 무렵,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는 용생(龍生)을 통틀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기이한 물건과 마주했다.
‘위쪽이군.’
하늘의 하늘, 이 차원의 본질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높디높은 곳.
퍼미셀카사는 머나먼 별들의 세상으로 비행했다. 그곳은 드래곤도 견디지 못하는 혹독한 환경이었기에 마법의 힘을 빌렸다.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만 저 위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발견했다.
‘오!’
작고 동그란 물체, 생기(生氣)는 느껴지지 않지만 마치 살아 있는 물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지잉, 척! 지잉, 척!
광휘의 물건일까?
그럴 리 없지. 만일 그랬다면 공격의 대상은 제국군이나 자신이 되었을 터,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왔는데 관찰만 할 뿐 위협적인 공격은 없었다.
새로운 신탁자의 가디언.
그것이 누구도 근접 못하는 이 삭막한 공간에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만만치 않은 자로다!’
빙그레 웃음 짓는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 다시 날갯짓을 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전쟁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마저 관찰해야지.
인간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젠 달라진 세상, 손을 쓸 땐 과감하게 써야 한다.
신탁자의 가디언을 발견하기 직전 그는 인간이 건설하고 있다던 철도라는 교통로를 관찰하고 있었다.
제국이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 다른 세상의 문물이지만 그것을 에론 대륙에 과감하게 적용시킨 인간들의 추진력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 드워프들의 조력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흘러갔지만 인간은 기억조차 못하는 과거, 악몽과도 같았던 차원의 퇴화, 드래곤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조율자로서의 역할이 박탈되었다. 생성의 흐름이 뚝 끊겨 버렸는데 무슨 조율, 신마저도 어찌해 볼 수 없었던 창조와 변화의 멈춤을 어떻게 풀겠나?
드래곤들은 모조리 수면 상태에 돌입했다. 휴식을 위한 잠이 아니라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강제적인 유배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퍼미셀카사는 5백 년 전에 유배에서 풀렸다. 신의 권능이 작용했는지 저주가 약화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렇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차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의 판단은 옳았다.
지상에 드문드문 보이는 던전들, 일종의 반창고 같은 것이다. 저 던전들로 인해 에론 차원은 정체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던전들이 사라지면? 또다시 악몽이 펼쳐지겠지.
퍼미셀카사는 전쟁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천리안 마법을 시전했다.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 광휘의 목적은 철도의 파괴, 제국의 군대는 철도를 보호했다.
기사와 기사가 충돌하는 대회전, 서로 불덩이를 날리며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는 마법사들의 대전은 이젠 없다.
검과 마법의 시대는 저물었다.
제국의 군인들은 시커먼 색으로 도색된 화기로 불을 뿜어 대고 있었고, 그에 맞선 광휘의 하수인들은 꼬리에 불꽃을 달고 날아오는 막대기를 발사했다.
‘쯧쯧, 결국 이렇게 나올 거면서…….’
생각만 해도 가소로운 놈이다.
전쟁을 막겠다고? 변화가 대륙을 망칠 거라고?
정작 자신이 일으킨 전쟁과 변화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허튼소리나 늘어놓으면서 매 순간 자기 합리화로 잘못된 신념을 쌓아 가고 있는 놈.
다만 그 광휘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종족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플 따름.
‘엘프…….’
퍼미셀카사는 그 불쌍한 종족들만 생각하면 애처로움과 동정심이 저도 모르게 일어난다.
한때 드래곤 일족의 친구이자 협력자였던 그들, 그러나 차원의 퇴보로 세계수와 정령을 잃어버린 자들. 그 때문에 소통이 막혀 이젠 망령이 되어 버린 숲의 자식들.
드워프들의 신, 최초의 대장장이 이미르는 소멸을 피했다. 하지만 엘프의 신, 세계수는 사라졌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퍼미셀카사는 도저히 엘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었다. 그들이 광휘와 손잡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미치광이 광휘에게서 엘프들을 구원하려면 먼저 놈을 처단해야 한다.
그러나 놈의 흔적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던전에서 던전으로 이동하는 능력, 신이 그에게 줬지만 아직 회수되지 않고 있는 권능, 드래곤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애초에 드래곤은 던전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끝났도다.’
전쟁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종료됐다.
저 대단한 인간 마법사는 가슴에 새겨진 아홉 개의 서클을 자유자재로 돌리며 엘프들이 쏘아 올린 불 막대기를 모조리 막아 냈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떨어지는 붉은빛 광선. 가디언이 쏜 그 빛은 아예 막대기를 허공에서 폭파시켜 버렸다.
‘전쟁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구나. 그럼…….’
불쌍한 엘프들이나 만나 봐야지.
변질되었지만 과거 그들은 현명한 숲의 종족이었다. 드래곤이 직접 나서 설득을 한다면 언젠간 미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퍼미셀카사는 그렇게 되길 간절하게 바랐다.
* * *
사파이어 마탑, 마탑주 콜라시오 카엘은 마침내 자신의 본분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9클래스에 오르면서부터 늘 고민해 왔던 문제였다. 우노라는 신탁자를 만나면서 그것은 확고해졌다.
클래스 마법사로서의 본분.
간단하다. 잃어버린 본류를 찾는다.
클래스 마법사들에게 마법은 학문이다. 따라서 마법사는 전사가 아니다.
물론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마법사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바로 서클 마법사들. 그들에겐 전사라는 말이 적합할 터.
하지만 클래스 마법사들이 그들의 흉내를 내려 했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마법사는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
클래스 마법사가 서클 마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하는 보기 흉한 아이템들.
즉시 시전 마법을 위한 스펠 세이브, 메모라이즈된 주문을 다 소진했을 때 사용할 마법 스크롤, 마나를 통제하는 마법진이 새겨진 아티팩트, 실드 인챈트 아이템, 블링크 인챈트 아이템… 심지어 입고 다니는 로브조차 아티팩트다.
그 모든 것들의 기본은 광휘의 마탑에서 ‘컴퓨터’라는 기물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 신개념의 마법진, 광휘의 마법사들은 그 마법진을 ‘마나 회로도’라고 불렀다.
그로 인해 클래스 마법사들은 서클 마법사들을 몰아내고 기사들까지 지배했다.
그리고 그 승리에 취해 클래스 마법사들은 정작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말았다.
서클 마법사들의 정점이 대마법사라면 클래스 마법사들의 정점은 바로 진리를 탐구하는 ‘현자’. 마나의 이치를 깨달아 세상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구도자’.
그래서 콜라시오 카엘은 그 본분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요 근래 철도 공사에 참여하다 보니 탈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마법진 하나를 창안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소. 더 높으면 속력이 나오지 않아서……. 이것이 내 한계요.”
리들쓰론에서 대륙을 횡단해 바리안 왕국까지 넘어온 와일드스톤이 지상에서 세 뼘 정도 높이로 둥둥 떠올라 있는 스쿠터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한계라니, 난 지금 기절초풍할 지경이오만. 웬만한 장애물은 그냥 넘어 다니겠소. 너무 멋져서 당장이라도 달리고 싶군. 고맙소이다!”
“이 늙은이의 하찮은 발명품에 금칠을 해 주시는군. 송구스럽소.”
“금칠이 아니라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합당한 평가지. 무식하게 힘만 센 그림워커보다 그대가 훨씬 뛰어나오. 자부심을 가지시오.”
“위대한 대장장이이자 장인에게서 이렇게나 극찬을 받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평생 처음 들어 보오. 나 역시 고맙소이다.”
“껄껄껄!”
“허허허!”
서로 추켜세워 주기 바쁜 두 사람.
콜라시오는 깨달음을 통해 창안한 비공정 부유 마법진의 성공이 너무 기쁘다. 마법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기막힌 발명품. 사실 자화자찬해도 괜찮을 만한 업적이 아닌가!
반면 와일드해머는 더 이상 타이어가 없이도 자유롭게 스쿠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신탁자가 바쁜 모양인지 그들에게 타이어를 공급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수명이 다한 타이어를 대체하기 어려웠다. 이미 스쿠터라는 탈것에 매료되어 버린 드워프 종족, 어쩌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몸소 바리안 왕국까지 행차한 와일드해머와 콜라시오가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비공정 부유 마법진!
“그럼 이제 시험 운행을?”
“크험, 내가 직접 타 보겠소.”
기차 보다 혁신적인 에론 대륙의 탈것이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다.
와일드해머는 경건한 자세로 머리에 헬멧을 썼다. 고글도 잊으면 안 되지.
조심스럽게 발판을 딛고 안장에 앉으니.
“흠, 안정적이요.”
원래 떠 있던 높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균형도 흐트러지지 않는 비공정 스쿠터.
와일드해머는 조심스럽게 핸들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우우웅.
비공정 스쿠터가 전방을 향해 스르르 미끄러져 나갔다. 승차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속도도 충분하다. 맞바람이 그의 수염을 흩날렸다.
“오오오! 대단하군, 대단해!”
연신 감탄사를 흘리며 스쿠터를 운전하는 와일드 해머.
콜라시오 카엘 또한 그랬다.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경건함. 마탑주로서의 체통 때문에 그저 흐뭇하게 미소만 지었다.
이제 출력 문제를 해결해 높이를 더 상승시키고 속력을 더 빠르게 하는 것이 남은 과제.
드워프들, 샤파이어 학파의 마법사들, 그리고 리안 시 시민들, 그들 모두 비공정 스쿠터의 시연을 구경하며 박수와 찬사를 날리고 있었다.
와일드해머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하하하… 크하… 하? 하… 아?”
저건 뭐지?
쐐애애애애액!
빛살 같은 속도로 저 먼 리안 시 상공에서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비행하며 날아다니는 물체 하나.
‘드레이크인가?’
쐐애애액, 슈웃! 스팟!
“…어?”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무, 무슨……!”
“마, 맙소사!”
운호는 제트 드론을 지상으로 착륙시켰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무슨 이벤트라도 생겼나 궁금해서 와 봤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드워프 족장 와일드해머, 그리고 콜라시오 마탑주.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죠?”
“…어, 그, 그렇소. 오랜만이야.”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스쿠터, 운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와! 이게 공중에 뜨네. 이제 타이어에서 해방되었네요. 어떻게 만들었지?”
자신이 탄 비공정 스쿠터와 운호가 탄 기상천외한 탈것을 번갈아 쳐다보는 와일드해머.
“이, 이게, …대단하다고?”
“그럼요.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마법은 알면 알수록 놀라워요.”
운호는 정말 감탄한 표정이다.
과학이 아닌 순마법. 자신이 타고 있는 드론과 전혀 다른 방식의 비행체였다.
“이거 부유 마법이죠? 제가 알기론 이론만 정립되었지 실제로 실현시킨 적은 없다고 들었는데, 어느 분께서 만들었나요?”
와일드해머는 떨떠름한 얼굴로 콜라시오 카엘을 힐끗 쳐다보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존경스럽네요, 마탑주님!”
“…아! 으흠. 그, 그것이…….”
하지만 말문이 막힌 듯 끝을 흐리는 콜라시오 카엘.
운호는 진심이었다.
이건 또 하나의 교통 혁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할 일이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제가 조금 바빠서 그러는데… 혹시 골드리안 상단주 윌리엄 님 보신 분?”
“…아마 국경 지대 철도 건설지에 가 있을 거요.”
“아하! 그럼 볼일 보고 다시 뵙죠.”
스팟!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트 드론!
이미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까마득한 높이로 날아오른 후.
쐐애애액!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제트 드론이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콜라시오 카엘.
머쓱한 와일드해머가 슬며시 다가와 그를 위로했다.
“…이거도 괜찮소. 타고 다닐 만하오.”
“…….”
사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콜라시오 카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 줄기 오기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시작이 중요한 법. 게다가 신탁자가 비공정 탈것의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았나.
‘시작이 중요한 법이지. …암,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입맛이 쓰다. 하지만 언젠가 만들어 낼 것이다. 신탁자의 것보다 훨씬 더 성능이 좋은 비행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