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비공정 스쿠터.
운호는 제트 드론을 타고 가는 와중에도 그 생각뿐이다.
비교적 크기가 작고 가벼운 스쿠터라 할지라도 물체를 허공에 띄우는 부유 마법진이라니, 얼마나 놀라운가!
현재 타고 있는 제트 드론은 사실 과학의 산물이다. 수직 이착륙과 드론의 결합이라고 보면 간단하다.
과학의 수준을 따져도 최첨단을 달리는 기술인데 콜라시오 카엘은 오로지 마법만으로 비공정을 구현해 냈다.
‘잘하면 비공정 전함도 볼 수 있겠네.’
하늘을 나는 전함, 그야말로 우주선이지.
이제 에론 차원은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발전할 터.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광휘의 존재다.
자신과 광휘는 각각 양립할 수 없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서로 존재 자체가 장애물. 언젠가 부딪친다. 한 명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운명.
놈이 전쟁을 걸어오고 있었다.
‘병신 같은 놈.’
그렇게도 지구 무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놈이, 아마도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한다!’라는 어리석은 자기합리화나 쳐 하고 있겠지.
제국의 군대와 그림워커, 위성 드론이 손쉽게 막아 냈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 자신도 그렇지만 광휘 또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광휘를 상대하는 건 어렵다.
광휘는 최초의 신탁자로서 신의 권능을 품고 5백 년 동안 이 에론 차원에 존재했다.
마법과 과학을 양손에 쥐고 있으면서 9클래스 마법사와 하이 엘프도 수족으로 부리는 놈이다.
‘나도 조력자가 필요해.’
조력자라면?
순간 생각나는 건 둘.
운호는 위성 드론이 전해 온 영상을 떠올렸다.
전설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마법의 생물, 드래곤!
‘일단 드래곤은 우리 편인 것 같고.’
확실치 않지만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위성 드론에 명령을 입력해 두었다.
드래곤이 포착되면 알림이 울리도록 말이다.
‘한번은 만나 봐야겠지?’
그도 광휘란 존재를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입장은 어떠한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광휘를 처리할 또 하나의 도우미는 다름 아닌 에론의 신.
이세계를 던전으로 연결시키느라 권능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신이다.
‘슬슬 확장 모드 소통이 이루어질 때가 됐는데 말이야.’
요즘 뜸하다.
신의 말이 지상으로 직접 전달되는 것, [신어 확장 모드] 또는 계시(啓示).
그것도 권능의 힘이 필요하다. 신의 권능이 약해졌기에 간단한 메시지 전달을 제외하면 꼭 필요할 때만 소통이 이루어졌다.
업적이 세워지거나 특별한 경우가 있으면 신과의 직접 소통이 가능해질 터. 그때를 기다려야지.
운호는 제트 드론의 속도를 최하로 낮추었다.
가는 도중 변화된 바리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리안 왕국의 수도 리안 시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문화 발전이 눈부시다.
서점들이 곳곳에 생겨났고,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는 수정구는 어디에나 있었다.
길거리에 식당에 심지어 가정집에 웃기는 건 각각 서로 다른 방송이 나오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들어 보니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정말 다채널 방송까지 왔구나.’
운호는 잠시 제트 드론에서 내려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왕국 전용 방송국도 있었다. 주로 뉴스를 알려 주는 채널.
-왕립 라디오 방송국이 정오를 알려 드립니다. 뚜뚜뚜, 뚜!!
-속보입니다. 바리안의 아버지이시자 영도자이신 샤스티안 3세께서는 데지온 왕국과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데지온 국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 배상금과 철도 건설을 받아들이며 하야를 선언함과 동시에…….
시간을 알리는 시보와 동시에 울리는 왕국 뉴스, 내용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것이다.
아마도 철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나 보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바리안 왕국이고.
-샤스티안 3세께서는 오늘 앙트 시에 건설 중인 제2 제철소를 방문하시면서 노동자들을 격려하시고…….
-샤스티안 3세께서는 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쟁 배상금을 왕국민들에게도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공포하셨습니다.
-샤스티안 3세께서는 평민들의 관직 승진 제한을 완화하는 특단의 조치를 시행함과 동시에 공석인 궁정 대신에 어쓰랜드 아카데미 교장이자 평민인 말론도 씨를 임명…….
뉴스는 샤스티안 3세의 행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 옛날 한국 독재자의 선전선동 방송 뉴스를 연상케 했지만 국민들은 열광했다.
조금만 들어 봐도 유추가 된다. 변화하고 있는 바리안 왕국의 권력 구도, 귀족들의 권력은 위축되었고 평민들의 권리는 신장되고 있다는 내용.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사파이어 마탑이 샤스티안 국왕을 지지했고, 새로운 무력 부대 창설로 귀족들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기사 계급은 완전하게 몰락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곳 바리안에서도 귀족 계급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
‘결국 이 방향으로 가는구나.’
현재 로산트 제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 지형의 변화, 바리안 왕국도 그 경로를 밟고 있었다.
절대 왕권의 확립.
귀족 계급 쇠퇴와 시민 계급의 성장, 지구와는 달리 시민 혁명을 거치진 못했지만 근대적인 법률과 시민들이 주축이 된 의회도 만들어질 것이다.
에론 대륙의 극과 극의 위치에 놓인 바리안 왕국과 로산트 제국, 그 두 국가를 연결하는 대륙 횡단 철도가 건설되면 변화는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대륙 전체가 요동치겠지.
운호는 짬타와 함께 국경 지대 철도 건설지에 도착했다.
수많은 인부가 철도 건설에 여념이 없었다.
윌리엄 상단주는 어디 갔지?
갑자기!
두두두두두!
한 사람이 운호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왔다.
“우, 우노 님! 우노 님 맞으시죠? 정말 야속하십니다. 왜 이제야!”
“…누구?”
“냥?”
“접니다! 저, 윌리엄 골드리안. 짬타님도 오랜만입니다.”
“냥!”
“오! 몰라봤네요. 미안해요. 잘 지내셨죠?”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까맣게 탄 피부에 먼지투성이 옷차림, 정리하지 않아 이리저리 무성하게 난 수염.
“지, 지금 타고 오신 건 뭡니까? 혹시 비공정 스쿠터? 아닌데? 그게 이리 높이 날 리도 없고.”
“아! 이건 제트 드론인데……. 음.”
설명을 하려 다 보니 갈 길이 멀다.
가르쳐 준다 해서 당장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화제를 전환했다.
“참! 미오 씨는 요즘 뭐 하시나요? 마탑에도 안 보이던데.”
“마법사님께선 데지온 왕국으로 가셨습니다.”
데지온이면 바리안 왕국과 전쟁을 벌였던 나라.
“데지온 왕국 던전의 모든 권리를 사파이어 마탑이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특수 던전이 발견되어 조사차 가셨지요.”
“특수 던전? 어떤 곳인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언데드의 공격성이 낮고 한 가지 동작에 몰두하는 움직임을 보인답니다. 생산형 특수 던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한 건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죠.”
새로운 특수 던전, 구미가 당긴다.
윌리엄과 사업 이야기를 끝내고 그 데지온 왕국에 가 볼까? 오랜만에 미오 론티아도 만날 겸 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용무가 있다.
일단 월리엄부터.
“참, 제가 부탁이 있는데…….”
“말씀만 하십시오.”
“식사는 하셨어요?”
“네? 아직…….”
“일단 뭐라도 먹고 하죠.”
“냐앙!”
“넌 안 돼! 살 더 빼자.”
“냥?”
운호는 아공간에서 캠핑 세트를 꺼냈다. 예전에 미리 관세 결제해 둔 것.
이것도 생소한 물건이라 그런지 윌리엄의 표정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가 보여 주려는 것은 캠핑 세트가 아니다.
냄비에 가지고 온 생수를 붓고 휴대용 가스버너에 올린 후 라면 봉지를 뜯었다.
“이건…….”
“라면이라는 겁니다. 일종의 보존식이죠.”
글리제 차원, 안식처에 음식을 공급하려면 지구에서 조달하는 건 무리가 있다.
관세가 제일 문제.
관세면제 차원인 에론에서 가지고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밀을 바탕으로 라면을 만들어서 글리제 차원으로 전부 가져간다.
생산 비용은 다 자신이 감당하고.
물은 금방 끓었다.
그러나 정작 윌리엄은 이 가스버너에 관심이 있는 모양, 이것저것 물어 오는 것이 성가실 지경.
이럴 땐 입에 빨리 라면을 넣어 줘야지. 순한 맛으로 골랐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맛은 부담스러우니까.
“자, 드셔 보시죠. 이 포크를 사용하면 편할 겁니다.”
윌리엄이 포크를 들어 라면 면발을 감았다. 그리고 입에 넣으니.
“으흠,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먹을 만하네요. 특히 적당한 요깃거리가 없는 상황에선.”
그러자 토실토실한 앞발을 슬쩍 면발로 뻗어 보는 짬타.
탁!
“넌 안 된다고!”
“냐아아앙!!”
운호는 적어 온 라면 제조법을 윌리엄에게 넘겨줬다.
“이걸 생산해야 합니다. 비용은 제가 다 감당하죠.”
“유탕 처리? 아! 기름에 튀기는 거군요. 그럼 보존 기간이 늘어나겠죠. 어렵지 않습니다. 이 물에 넣는 스프라는 것도 비슷한 음식이 있어서 재현 가능합니다. 포장은 종이로 대체하면 문제가 없겠고… 일단 제가 요리사들을 모아서 조언을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물량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많이!”
“물량요? 그거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점차 늘려 나가는 것이…….”
“여기서 팔 게 아닙니다만.”
“아! 그러시다면.”
에론 차원의 주식은 밀, 당연히 면 형태의 음식도 원래부터 있었고.
가장 커다란 장애는 언제나 ‘시간’이다.
라면이 본격적으로 생산이 되려면 몇 달? 아니, 아무리 빠르다 해도 1년 이상은 걸릴 터.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우노 님!”
“병조림 한 달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현재 10만 개 정도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생산량을 줄여야죠. 재고도 많이 남았고요.”
“남아 있는 재고, 제가 다 사겠습니다.”
“네?”
“무조건 다 삽니다. 생산량도 최대한 늘려 주세요.”
“여, 염려 마십시오.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윌리엄은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필요하다면 무조건적으로 협조해야지.
* * *
특수 던전, 현재는 광휘가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는 곳. 이 특수 던전은 에론 대륙의 것이 아니다. 그가 직접 ‘가지고 온 던전’.
던전 안에서 광휘는 엘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하이 엘프 메이린을 위로했다.
“자책하지 마라, 메이린. 오히려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상을 받아야지.”
“광휘시여! 말씀을 거두소서. 상이라뇨. 전 패배한 머저리일 뿐입니다.”
“패배? 드래곤이지 않느냐! 놈은 나도 감당 못한다. 그럼 나도 벌을 받아야 해?”
“…온당치 않습니다.”
“됐다. 몸 성히 돌아온 것만 해도 기쁘다.”
솔직히 이기려고 덤빈 전쟁은 아니었다. 간만 봤을 뿐이다. 물론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고.
“드래곤이 살아 있는 한 계획의 성공은 불가능합니다. 제게 ‘징벌의 불무리’를 내려 주소서. 놈과 함께 소멸하겠나이다.”
“불허한다. 이만 가서 쉬어라.”
“하지만…….”
“쉿! 명령이다.”
메이린은 여전히 안타까운 얼굴로 물러났다.
사실 광휘의 마음도 그리 편치 않았다.
자신이 직접 에론 대륙을 활보하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그놈의 드래곤.
죄다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깨어났는지 새까만 도마뱀 한 마리가 무려 5백 년 동안 자신을 방해하고 있었다. 거기에 새로운 신탁자라는 애송이까지.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의 목적은 자신을 죽여 빌어먹을 신이 넘겨준 권능을 회수하는 것.
순순히 당해 줄 수 없지.
반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점점 불리해진다.
‘정녕 핵을 써야 하나?’
지금은 망해 버린 자신의 차원에서 가져온 무기들, 그중에 위력이 가장 강한 것이 바로 핵무기다. 하나 그걸 사용하면 이 아름다운 에론 대륙도 타격을 면치 못할 것.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광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 핵무기라는 카드를 꺼내야 할 거라는 걸.
‘에론 대륙의 반이 날아간다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반은 무사할 테니까.’
광휘는 집 밖으로 나갔다.
던전 중앙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 높이만 해도 300미터가 넘는다. 이 특수 던전 공간의 3분의 1을 저 나무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나무 밑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엘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쯧쯧, 딱하군.’
짝퉁 세계수에도 저리 만족하는 엘프들이라니.
하나 짝퉁이라 하더라도 본질은 세계수. 현재 엘프들의 멸망을 막아 주는 단 하나의 버팀목, 비록 정령을 연결시켜 주는 권능은 없지만 말이다.